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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25화 (226/386)

< MISSION 04 : 츠바키 (53) >

트레이시를 추적해 온 CIA 요원 티모시 응옌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납치된 요원을 구출하기 위해 막 창고로 진입하려던 그에게 같이 잠복하던 여자 요원이 달려오며 말했다.

상황실에서 지금 도착하는 사람의 지시를 따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는 것.

지금 도착하는 사람?

티모시 응옌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기 전에, 골목으로 새롭게 진입한 차량의 시동이 꺼지고, 사람들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어떻게 되는거지? 저 사람들인가?

티모시 응옌은 당황했다.

갑자기 나타는 저 사람들은 뭐지?

하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 나타난 사람이 셋. 잠복한 여자 요원까지 합하면 다섯이다.

다섯 명이 들어가 단숨에 저 미친놈들을 단숨에 제압해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의 기대는 새로 다가온 차에서 내린 남자의 말에 무참히 깨어졌다.

“여기서 기다리시오.”

그가 말했다.

그러고는 문으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열고 걸어 들어갔다.

혼자서?

티모시 응옌은 순간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가 혼자서 들어갔다. 다섯 명이 있는데, 혼자서 들어가 버렸다.

혼자서 들어간 것도 그렇지만 티모시 응옌이 무엇보다 놀란 것은 그 남자의 정체였다.

자신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 혼자 들어간 남자는 납치된 요원의 남편이었다,

매일 호텔에서 먹고, 자고, 수영하고 책 보면서 시간을 때우던 그 남자였다. 이 남자도 요원이었던 것인가?

티모시 응옌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함께 온 두 사람은?

남편과 같은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애초에 창고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는 듯 한 명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고, 다른 한 명은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당황한 채로 문 앞에 서 있던 그에게 카메라를 든 요원이 시야에 걸리니까 비켜 달라고 말했고, 티모스 응옌은 바보 같은 모습으로 문에서 비켜섰다.

그래서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창고 안에서 비명, 비명이라고 부르기에 너무 끔찍한 괴성을 흘러나왔지만, 티모시 응옌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끄아아아악!”

다시 한번 안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사람이 아닌 괴물의 비명 같았다.

씨발, 모르겠다.

티모시 응옌은 그렇게 생각하고 문으로 다가갔다.

“거기, 비켜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요원이 말했다.

티모시 응옌은 그를 힐긋 보았다.

사표 쓰겠군.

그렇게 생각하고 창고 안으로 몸을 날렸다.

***

티모시 응옌이 막 창고 안으로 들어온 그 순간에, 한규호는 리더의 팔을 꺾고 있었다.

한규호의 예상대로 리더는 처음 한규호의 돌려차기에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그래서 한규호는 이미 박살 난 그의 왼쪽 무릎을 완전하게 꺾어 버리는 것으로 그의 의식을 다시 깨웠고, 그가 고통을 느낄 정도로 정신이 돌아오자 그의 오른쪽 어깨를 꺾어 버렸다.

그는 더 이상 그는 왼쪽 다리로 땅을 디딜 수 없을 것이다. 오른쪽 팔을 들어 올릴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무언가를 씹는 행위도 불가능하다.

어깨를 박살 낸 한규호는 그를 잠시 내버려 두기로 결정했다.

비명이 시끄럽기는 했지만 고통을 충분히 느낄 시간을 주기 위해서 당장은 기절을 시킬 생각은 없었다.

한규호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매트리스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트레이시에게 다가갔다.

한규호는 먼저 트레이시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의 맥이 느껴졌다.

맥은 안정되어 있었다. 아주 급한 위급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한규호는 손목을 놓으면서 그녀의 전신을 살펴보았다. 육안으로도 딱히 눈에 보이는 외상은 없었다.

그저 속옷이 위로 젖혀져 그녀의 가슴이 노출되어 있을 뿐이었다.

한규호는 무릎을 굽혀 앉아 있는 그 자세에서 그대로 자신이 입고 있던 셔츠를 벗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노출되어 있는 그녀의 몸 위에 덮어 주었다.

트레이시가 일단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한규호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몸을 돌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납치범을 바라보았다.

납치범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남자는, 한규호가 처음 창고에 들어섰을 때 서 있던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한규호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공포에 완전히 잠식되어 있었고,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카메라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규호는 그에게 걸어갔다.

그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발이 땅에 못이라도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온몸을 떨면서 한규호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녀석의 한 걸음 앞까지 다가온 한규호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던 카메라를 잡았다.

“놔.”

한규호가 말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남자는 한규호의 영어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에게 카메라를 받아 든 한규호는 카메라를 살펴보았다. 녹화 중임을 알리는 빨간색 동그라미가 깜빡이고 있었다.

한규호는 녹화 종료 버튼을 누른 후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영상에 재생되었다.

트레이시가 매트리스에 누워 있고, 트레이시 위에 올라탄 놈이 그녀의 속옷을 들어 재끼는 영상이 녹화되어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화면이 돌아가고, 자신이 들어와 한 명씩 제압하는 모습도 깔끔한 화질로 녹화되어 있었다.

CIA가 이 영상을 가지고 싶어 하겠군.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꺼내고 손가락으로 비벼 가루를 만들어 버렸다.

***

창고로 들어온 티모시 응옌은 이 상황을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혼자 창고로 들어가고 몇 분 정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창고 안은 말 그대로 초토화되어 있었다.

창고 안에 있던 납치범 일당은 가부키초에서처럼 다섯 명이었고, 그중 서 있는 사람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단 한 명뿐이었다.

두 명은 각자 어깨와 무릎을 잡고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죽어 버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바닥에 박고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남편에게 팔을 잡혀 있었다. 인간의 신체 구조상 불가능한 각도로.

빠각!

어깨뼈가 탈골되는 소리가 창고를 울렸다.

티모시 응옌은 본능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남자의 어깨를 완전히, 현대 의학으로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만든 남편은 그의 아내에게 다가갔다.

상태를 살펴보고, 옷을 벗어 그녀의 노출된 상체를 가려 주었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든 납치범에게 다가가 카메라를 받아 들 때까지 티모시 응옌은 그 자리에 서서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상식으로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2분? 3분? 아무리 길게 잡아도 3분이다. 그 짧은 시간에 이 상황이 벌어졌다고?

저 남자 혼자서?

“기다리라니까.”

티모시 응옌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남편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게. 저기, 그…….”

티모시 응옌은 말을 하지 못했다.

혼자 들어간 당신이 걱정되어서 지원하기 위해 들어왔습니다라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데려가시오.”

남자가 유일하게 멀쩡한 납치범의 엉덩이를 툭 차면서 말했다.

그저 툭 찼을 뿐인데, 납치범은 그 자리에서 바로 허물어져 버렸다.

그의 사타구니가 축축이 젖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 어디로…… 말입니까?”

티모시 응옌이 물었다.

“아카사카.”

남편이 말했다.

***

도쿄 미나토구 아카사카 1쵸메에 위치한 주일미국대사관은 자정을 훌쩍 넘긴 야심한 새벽 시간임에도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본토에서 내려온 갑작스러운 명령에 오후 5시에 퇴근한 직원들이 다시 대사관으로 불려 와야 했다.

그렇게 침대에서 끌려나온 사람 중에서는 마이클 몬스필드 주일 미국 대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호출 때문에, 그의 복장은 파자마 차림이었다.

“알겠습니다.”

수화기를 들고 있는 마이클 몬스필드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감사하다고 전해 달랍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말씀을.”

마이클 몬스필드 대사는 그렇게 말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워싱턴은 오후 1시겠군.

마이클 몬스필드 대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옆에 서 있는 비서관에게 물었다.

“지금 몇 명이 들어와 있지?”

“랭리 쪽 사람들이 서른두 명, 일본인이 두 명, 그리고 신원미상의 여성 한 명을 포함하면 서른다섯 명입니다.”

그나마 청바지라도 챙겨 입은 비서관이 말했다.

“미치겠군. 랭리 놈들…….”

몬스필드 대사는 그렇게 말하며 엄지손가락으로 머리를 문질렀다.

그가 받은 전화는 국무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 우리나라의 외교부) 부장관(Deputy Secretary)이 걸어온 전화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CIA에서 작전을 진행 중인데 장소를 제공하고 협조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용은 간단했지만 그 무게감은 엄청났다. CIA가 직접 국무부에 요청을 했고, 국무부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부장관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어디에 있나?”

“랭리 쪽 요원들에게 골프 섹션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곳에 임시 상황실을 구축한다고 말했습니다. 통신실에 대한 임시 권한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환자도 있다고?”

“일본인 하나, 미국인 하나입니다. 현재 치료 중입니다.”

“신원은?”

“확인해 주지 않았습니다.”

“미친놈들. 정보라도 알려 주면서 일을 벌리든가. 일은 지들이 벌리고 수습은 우리가 하고.”

몬스필드 대사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랭리가 요청했고, 국무부가 전달했다는 이야기는 백악관의 승인이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젠장, 집에 가긴 글렀군. 통신실 권한을 내어 주게.”

몬스필드 대사가 말했다.

“내일 카스미가세키(일본 외무성) 놈들이 지랄해 댈 터이니 준비를 해 두자고.”

“알겠습니다. 대책 회의 준비를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몬스필드 대사가 말했다.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비서관이 센스 있게 말했다.

몬스필드 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번위스키라도 한잔 마시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밤이 될 것 같았다.

***

한규호는 침대에 누워 있는 트레이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트레이시는 아카사카의 대사관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치료실로 보내졌고,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들에 의해 검사를 받고 있었다.

아카사카 주일미대사관에는 대학 병원에 버금가는 치료 시설이 있었고, USUHS(Uniformed Services University of the Health Sciences : 미국국립국방의과대학) 출신 전문의가 배치되어 있었기에 치료를 위해 그녀가 일본 병원으로 갈 필요는 없었다.

트레이시의 맥은 정상이었고, 육안으로 보이는 외상은 없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규호는 그저 말없이 잠든 것처럼 누워 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 그에게 의사가 다가오며 말했다.

한규호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혈액과 소변에서 감마 하이드록시뷰티르산이 검출되었습니다.”

“GHB?”

한규호가 물었다.

“맞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데이트 강간 약물이죠.”

의사가 말했다.

츠네타카가 약을 썼군.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환자에게 직면한 큰 위험은 없습니다. GHB가 알콜과 혼용되면 최악의 경우 심장마비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 정도까지 투여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잠들어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한규호는 그 말에 다시 시선을 돌려 트레이시를 바라보았다.

“문제는 후유증입니다. GHB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일시적인 두통, 감각 이상, 기억력 저하, 불면증, 시력 저하가 나타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영구적인 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당분간은 경과를 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한규호는 시선을 여전히 트레이시에게 고정한 채로 말했다.

“그리고 옆 병실의 환자는.”

한규호의 시선이 다시 의사를 향했다.

“상당히 안 좋습니다. 우선 비골(코뼈)과 하악골(아래턱뼈)이 골절되었습니다. 치아도 손상이 심합니다. 6, 7, 8번 늑골(갈비뼈)도 골절되었습니다. 내부 장기가 상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거동하려면 최소 8주 이상이 치료가 필요합니다. 무엇을 씹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의사가 말을 흐렸다. 수술을 하려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일본인인 그를 보호자의 동의와 정당한 절차 없이 수술할 수는 없다는 의미였다.

“말할 수 있습니까?”

한규호가 물었다.

의사는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수술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치료가 아니었다. 심문을 하기 위한 조치였다.

“……의식을 차리면 말을 할 수는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리 권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의사는 의학적인 관점에서 권장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그가 말을 해야 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옆 병실에 있는 환자는 가부키초 골목에 버려져 있던 츠네타카였다.

CIA에서 그를 회수한 이유는 그를 치료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트레이시를 겁탈하려 했다는 증언을 받기 위함이었다. 물론 다른 누군가의 정체도 알아내고.

“강한 진통제는 사용하지 말아 주십시오.”

한규호가 요청했다.

“알겠습니다.”

의사가 그 의도를 이해하고 답했다.

< MISSION 04 : 츠바키 (5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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