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4 : 츠바키 (50) >
“뭐야! 상황이 어떻게 되는 거야!”
운전석에 앉아 있는 CIA 요원 티모시 응옌(Timothy Nguyễn)이 외쳤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괴한들이 자신들이 지켜보고 있던 두 사람을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지시는?”
티모시 응옌이 조수석에 앉아 있는 또 다른 CIA 여자 요원에게 물었다.
“아직입니다.”
여자 요원은 시선을 손에 든 요원 전용 스마트폰에 고정한 채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씨발.”
티모시 응옌은 손바닥으로 핸들을 내리치며 욕솔을 뱉었다.
단순한 감시 대상이라면 지금 상황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끌려가는 두 남녀 중 여자가 같은 요원이고, 그들이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라면 문제가 된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저녁에 교대한 티모시 응옌은 남자의 집에서 나온 여자가 호텔 대신 가부키쵸의 바로 들어가자 그저 지루한 잠복이 길어졌다고 생각했다. 제발 빨리 나오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두 사람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티모시 응옌은 마치 연인처럼 붙어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딘가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술에 취했다는 느낌과는 달랐다.
약.
그 모습을 보고 티모시 응옌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모든 CIA 요원은 고문 교육을 받는다. 고문을 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배운다.
현장 요원은 거기에 추가적인 교육도 받는다. 어떻게 고문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자백제를 사용하는지에 대해 배우게 된다.
영화에서는 자백제가 만능의 약처럼 묘사되고는 한다.
주사 한 대를 맞으면 비밀을 털어놓을 수 받게 없는, 비밀을 감추려면 정신적으로 커다란 고통을 받는 그런 약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자백제로 쓰이는 물질은 그런 만능의 약은 아니었다. 단순히 방어기제를 무너트리는 기능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대표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자백제가 에탄올, 술이다. 수면 마취제로 사용하는 프로포폴도 자백제의 범주에 들어가 있다.
현장 CIA 요원은 자백제를 투여하고, 투여받는 훈련을 통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심문 대상의 방어기제를 무너트리는 훈련을 받는다.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여자, 자신들이 감시하면서 지켜야 하는 여자의 모습에서 방어기제가 무너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티모시 응옌은 조수석에 앉은 요원에게 빠르게 코드 23을 임시 상황실에 전송 할 것을 지시했다.
현장 상황 코드 23. 요원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내용을 담은 코드가 빠르게 임시 상황실로 보고 되었다.
보고를 받은 상황실에서는 여자를 구출하라는 지시를 내려올 것이라고 티모시 응옌은 생각했고, 지시만 내려오면 바로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구출이라고 해도 별다를 것이 없었다.
두 사람에게 다가가서 ‘어? 애블린?’ 하면서 알은체를 하고, ‘당신 누구야? 브랜든이 아닌데?’ 하면서 그냥 여자만 데려오면 될 뿐이었다.
그때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두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괴한들은 멀리서 봐도 갓 스무 살을 넘겼을까 싶은 어린애들임을 알 수 있었다. 기껏해야 스물 남짓 정도? 그런 괴한 다섯 명이 두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리고 괴한 중 하나가 남자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남자의 몸이 휘청였고, 마치 계획하기라도 한 것처럼, 괴한들은 두 사람을 에워쌌다.
개입하라는 지시를 받지 못한 두 명의 CIA 요원은 차에 앉은 채로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시는?”
티모시 응옌이 시선을 그들에게 고정한 채로 물었다.
“없습니다.”
여자 요원이 말했다.
“코드 22!”
티모시 응옌이 말했다.
여자 요원은 빠르게 손에 들고 있던 요원 전용 스마트폰으로 코드 22를 송신했다.
코드 22. 요원이 실질적인 피해 상황에 직면해 있음.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코드가 빠르게 전송되었다.
“장비 챙겨.”
티모시 응옌이 말했다.
여자 요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글로브 박스에서 3단 봉을 꺼냈다.
CIA에서 전투 훈련을 이수한 여자 요원은 일대일이라면 웬만한 일반인 남성은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수를 상대로 맨손으로 격투를 벌이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장비가 있으면 다르다.
독일 보노비(Bonowi)에서 제작한 디스크록 3단 봉, 마찰고정식 3단 봉과는 달리 찌르기가 가능한 디스크록 3단 봉이 있다면 어느 정도의 인원은 상대할 수 있다.
“준비해. 지시오면 바로 뛰어나간다.”
티모시 응옌이 말했다. 여자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해야 할 요원과, 요원과 같이 나온 남자와, 그들을 둘러싼 괴한들은 이제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시야에서 사라질 것 같았다.
그 순간 여자 요원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남자 요원은 차 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힘을 줘 열려는 순간 여자 요원의 목소리가 짧은 외침이 들려왔다.
“대기!”
티모시 응옌의 고개가 뒤로 확 돌았다.
“대기하랍니다!”
여자가 다시 말했다.
티모시 응옌은 그녀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대기하라는 내용을 담은 코드가 적혀 있었다.
티모시 응옌는 그녀의 전화기를 집어 던지고 자신의 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들리기도 전에 바로 통화가 연결되었다.
“코드 22. 씨발 코드 22!”
상대방의 말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티모시 응옌이 외쳤다.
상황실 이 새끼들은 지금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대기 명령이라니! 요원이 위험에 직면해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
-대기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씨발 코드 22이라고!”
티모시 응옌이 다시 외쳤다.
-일단 대기. 감시 상태 유지. 랭리의 명령이다. 코드 21 상황이 와도 대기.
그 말을 들은 티모시 응옌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을 받았다.
코드 21 상황. 요원이 물리적으로 피해를 입는다고 하더라도 대기하라고?
티모시 응옌은 현장 요원으로 15년 넘게 근무하면서 그러한 명령은 들어 본 적 없었다. 그런 명령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뭐야, 씨발! 어떻게 되는 거야!”
티모시 응옌이 외쳤다.
***
CIA의 네일 밀러 국장은 상황실에서 전면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면에는 도쿄 가부키쵸의 방범용 CCTV 화면이 떠 있었다.
화소가 그리 높지 않은 CCTV 화소에, 야간이라는 특성상 화면에는 노이즈가 자글거렸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뭉쳐 있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밀러 국장은 뭉쳐 있는 사람들 중에 트레이시 테일러가 있고, 그녀가 코드 22 상황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밀러 국장은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번 일본에서의 작전은 그녀에 대한 테스트다. 그녀가 테스트에 탈락한다면 그건 전부 그녀의 잘못이다.
트레이시가 한규호의 마음을 얻었다는 보고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코시자와중공업과의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무언가를 얻어 내지도 못했다.
그 성적만으로도 그녀는 낙제를 피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녀가 위험에 빠진다면? 그리고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테스트는 중단이다. 테스트에서 탈락하면 그녀는 자리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트레이시 테일러가 스튜의 전담 요원이 된 이유는 그녀가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단순히 트레이시가 그 시간에, 그 장소에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녀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트레이시가 앉아 있던 의자가 비어 버리면 다른 누군가를 앉히면 된다.
밀러 국장의 머릿속에는 두 사람의 후보가 있었다.
우선 시애틀, 머다이나에 연금 중인 한 여자.
얼마 전에 코드네임 스튜와 그 여자가 통화를 했다.
처음 통화와는 달랐다. 스튜가 그와 통화하기를 원한 것이다.
스튜에게 그 여자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두 사람의 통화가 끝나고, 여자가 랭리와 같이 일할 의향이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재미있군.
밀러 국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여자를 당장 스튜에게 붙일 수는 없다. 그녀가 확실히 CIA의 카드라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내 손에 포켓 에이스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커뮤니티 카드와 매치가 안 된다면 그저 에이스 원 페어에 불과하다. 물론 홀덤 테이블에서 에이스 원 페어를 약한 패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녀는 좋은 패임은 분명하다. 스튜와의 연관성도 그렇고, 신시아 챔버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에이스 원 페어로 올 인을 할 수는 없다.
그녀가 확실히 미국의 품에 안긴다는 확신이 있기 전 까지 절대로 그녀를 사용할 생각이 없다.
확신이 든다면?
그녀만큼 트레이시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그녀에 대한 생각을 마무리한 밀러 국장은 두 번째 후보를 떠올렸다.
자신의 조카. 미국이 확보한 또 다른 기프티드 앤 챔버.
앤 챔버를 스튜 전담 요원으로?
이미 베네수엘라에서 스튜와 안면을 익혔다. 두 사람 사이에는 베르나라고 하는 아이도 있다. 두 사람의 사이에서 윤활역할을 할 일곱 살 여자아이 말이다.
앤 챔버는 CIA의 요원은 아니지만 CIA의 보호를 받았고, 또 다른 후보자보다는 CIA의 통제를 따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녀를 스튜 전담 요원으로 붙이기에는 커다란 제약이 있다.
앤 챔버의 제한 조건. 출산.
앤 챔버가 스튜와 사랑에 빠진다면?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면? 그리고 낳으려 한다면?
“흠.”
거기까지 생각한 밀러 국장은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이즈가 자글자글하게 껴 있는 화면은 여전히 어두운 골목 입구를 비추고 있었다.
저 골목 안에서 트레이시가 코드 22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얼마나 남았나?”
국장이 물었다.
“30분 남았습니다.”
상황 요원이 말했다.
밀러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
츠네타카와 트레이시를 골목으로 끌고 들어온 괴한들은, 괴한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어린 스무 살 남짓의 남자들은 츠네타카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명치를 맞고 이미 전투력을 상실한 츠네타카에게 그들은 마치 작은 동물을 학대하는 것처럼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츠네타카는 온몸을 웅크리고 두 팔로 머리를 감싼 채로 그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 이번엔 내 차례.”
괴한 중 하나가 프리킥을 차는 축구 선수처럼 짧은 도움닫기를 한 후 발끝을 세워 츠네타카의 옆구리에 ‘사커 킥’을 꽂아 넣었다.
옆구리에 발차기를 맞은 츠네타카는 충격으로 몸이 들썩였지만 자세와 머리를 감싼 팔만은 풀지 않았다.
“히히히, 병신.”
다른 청년 하나가 그렇게 말하면서 사커 킥을 찬 청년을 비웃었다.
“뭐야?”
“자, 내가 하는 거 잘 봐 봐.”
비웃은 청년은 공수도라도 배웠는지 자세를 취한 후 다리를 높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반동에 더욱 힘을 주어서 뒤꿈치로 츠네타카의 허리를 찍었다.
척추를 맞은 츠네타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몸을 풀었다. 그런 그의 뺨에 발 하나가 더 날아들었다.
그 발길질에 츠네타카의 비명이 멈추고, 그의 입에서 치아 몇 개가 튀어 나왔다.
“콤보라는 거다, 콤보.”
츠네타카의 자세를 무너트린 청년은 마치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를 쫙 펴면서 말했다.
“씨발, 그럼 나도. 나 한 번만 더.”
옆구리에 킥을 날린 청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만, 거기까지.”
그런 그를 제지한 것은 처음 츠네타카의 명치에 주먹을 날린 청년이었다.
스물셋 정도? 20대 중반에 더 가까워 보이는 얼굴을 한 남자가 그들을 제지했다.
그의 말에 다른 청년들이 모두 행동을 멈추었다.
몸 안에 일렁이는 가학욕구가 당장 터져 나올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의 말 한마디에 모두들 동작을 멈춘 것이다.
“숨 쉬나 봐.”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청년 중 하나가 다가가 츠네타카의 얼굴에 귀를 가져갔다.
“숨 쉬어요.”
미약한 숨소리를 확인한 청년이 말했다.
리더로 보이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옥에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폭행과 강간으로 감옥에 가는 것과 폭행치사로 감옥에 가는 것은 형량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크다.
리더로 보이는 남자의 시선이 옮겨졌다.
한쪽 구석에 넋 잃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백인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서 할 건가요?”
청년 중 하나가 물었다.
“아니.”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조직에서 지시를 받았다. 여자를 강간하고 그 영상을 찍으라는 지시였다.
어떤 식으로 강간하고, 강간 도중에 어떻게 폭행을 하고, 어떤 식으로 영상을 찍을 것인지 샘플도 보여 주었다.
저 여자가 누구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리더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조직의 명령이 내려오면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차 가져와.”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청년 한 명에게 말했다. 지시를 받은 청년은 빠르게 골목을 튀어 나갔다.
여자는 약을 먹은 것 같았다. 지금 상황에서 여자를 덮친다고 하더라도 조직이 만족할 만한 영상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샘플 영상에서 여자는 울부짖었고, 반항했고, 살려 달라고 소리쳤고, 애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찍은 영상도 전달하려면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작업을 하다가 경찰이라도 들이닥치면 조직의 명령은 수행하지도 못하고 그냥 감옥만 가게 되는 것이다.
감옥에 가더라도, 조직이 지시한 명령은 이행해야 한다.
리더의 눈짓에 몇 명의 청년이 여자에게 다가가 양팔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여자는 놀란 눈빛이었지만, 무기력하게 자신의 몸을 그들에게 맡겼다.
리더는 골목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차가 도착하면, 여기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그들의 은신처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직이 내린 지시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 MISSION 04 : 츠바키 (50)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