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4 : 츠바키 (49) >
츠네타카는 옆자리에 앉은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츠네타카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츠네타카는 그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귀는 열렸지만, 그의 모든 감각은 시각에 집중되어 있었다.
츠네타카는 그저 여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중형 포유류를 먹이로 삼는 보아과(Boidae) 뱀과 비슷했다.
아나콘다로 대표되는 보아과 뱀들은 먹이를 먹을 때, 바로 삼키겠다고 달려들지 않는다.
먹이가 완전히 무력화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아나콘다가 그렇다. 쪼이는 힘이 4톤 가까운 아나콘다는 먹이를 포착하면, 그 탄탄한 몸으로 먹이를 감싼다.
그 상태로 한참을 기다린다.
먹이가 기절하거나 목숨을 잃을 때까지, 먹이를 감싼 채 한참을 바라만 보고 있다.
츠네타카는 아나콘다와 같은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GHB가 들어간 칵테일을 마신 여자는 천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여자가 무슨 말을 하건 상관이 없었다. 그녀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니까.
츠네타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텐더를 돌아보았다.
바텐더는 컵을 닦고 있었다.
“슬슬 된 것 같지?”
츠네타카가 바텐더에게 말했다.
그러나 바텐더는 츠네타카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흠…….”
대답 없는 바텐더를 보면서 츠네타카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호의라고는 하나도 담겨있지 않은, 비릿한 미소였다.
“오늘 이상하네.”
츠네타카가 말했다. 연장자에 대한 예의라고는 없는 말투였다.
바텐더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어서 데리고 사라져버려.”
바텐더가 말했다.
“왜? 갑자기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껴지나?”
츠네타카가 말했다.
“…….”
“웃기는군, 처음도 아니면서 왜 그런 재수 없는 표정을 짓는 거지?”
바텐더의 손이 멈추었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하이볼용 잔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 잔으로 츠네타카의 입을 후려갈기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그렇게 잠시 하이볼 잔을 바라보다 다시 수건을 컵으로 가져가 닦기 시작했다.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그도, 츠네타카가 데려온 수많은 여자들처럼, 츠네타카의 몸에 칭칭 감겨있다는 것을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바텐더가 츠네타카를 처음 만난 것은 5년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예의 바른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희생된 다른 여자들처럼.
도쿄 최고의 환락가인 가부키초라고 해도, 이 바는 위치가 좋지 않았다. 매출은 점점 줄어 갔고, 어떻게든 이 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 사채를 쓴 것이 잘못이었다.
문을 닫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상황에서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츠네타카였다.
-이렇게 보물 같은 바가 없어진다니. 너무 아쉽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예금 통장을 내미는 그를 보면서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더랬다.
바텐더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의 새로운 동업자가 사채꾼보다 더 뱀 같은 놈이라는 것을.
투자를 하고 지분을 가져간 그는 손님들을 모셔왔고, 비싼 술을 팔아주었다.
그가 데려온 손님이 단골이 되고, 그 단골이 다른 손님을 데려왔다.
폐업 위기까지 직면했던 바는 다시 매출이 증가했고,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다.
바텐더는 이 모든 것이 그의 새로운 동업자이자, 나이는 어리지만 등을 맡길 수 있는 친구인 츠네타카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감사했고, 그래서 그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사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줄 것. 그의 부탁이었다.
대부분은 여자였지만, 일부는 남자였다. 츠네타카의 상사이기도 했고, 경쟁사의 직원일 때도 있었다.
그가 GHB를 구해 왔고, 정량을 알려 주었다. 문제없을 것이라고 했고, 이번에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문제는 없었다. 다만, 마지막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호의로,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시작했던 일이, 어느새 자신의 목에 걸린 올가미가 되어 버렸다.
츠네타카는 더 이상 부탁을 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것은 명령이었다.
“닥치고 이제 사라져.”
바텐더가 완전하게 적의를 드러내며 말했다.
츠네타카는 그의 그런 적의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바텐더를 보며 말했다.
“흠, 나중에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겠군. 우선 알겠어. 슬슬 준비가 된 것 같으니까.”
츠네타카는 트레이시를 힐긋 보고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었다.
뱀 같은 새끼.
바텐더가 그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츠네타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츠네타카는 녹음 어플을 실행시켰다.
“애블린, 괜찮아요? 집에 갈까요?”
바텐더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바로 고개를 돌려 컵에 집중했다.
“으, 음. 괜찮아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그렇지.
츠네타카가 원한 대답이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혼자 갈 수 있죠? 그럼 조심히 들어가요.”
츠네타카가 말했다.
“……네. 오늘…… 즐거웠어요. 그럼…… 다음에.”
트레이시는 정신을 잃은 상황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츠네타카는 작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녹음 어플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일어서려는 트레이시의 어깨를 누르면서 그녀가 일어나지 못하게 막고서는 그녀의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가 작게 속삭였다.
“같이 가야지. 같이 있고 싶다고 말해야지.”
츠네타카는 귀에서 입을 떼고 다시 녹음 버튼을 누른 다음 평소의 목소리로 말했다.
“즐거웠어요, 애블린. 그럼 다음에 봐요.”
“.......”
그러나 트레이시는 말이 없었다.
츠네타카는 쯧 하고 짧게 혀를 차고는 다시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조금 전과 같은 행동을 한 후에 다시 녹음 버튼을 누르고 같은 대사를 던졌다.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봐요.”
“……같이.”
“네?”
“……같이 있고 싶어요.”
세 번 만에 츠네타카가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
“애블린, 취했어요?”
“……아니, 저 괜찮은…….”
“참나, 곤란하네. 마스터, 한잔 더 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안 되겠네요. 우선 데려다주고 다시 오든가 할게요.”
츠네타카는 휴대전화 화면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가 녹음되고 있다는 파장이 휴대전화 화면에 일렁이고 있었다.
“자, 일어날까요? 마스터, 고마워요.”
츠네타카는 그렇게 말하고 녹음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안전장치는 만들었다. 나중에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또는 법적 증거가 필요할 때, 이 녹음 파일은 도움을 줄 것이다.
츠네타카는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가슴을 움켜쥐었다.
방어기제가 무너진 트레이시는 살짝 움찔할 뿐, 더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다 되었군.
츠네타카는 트레이시를 부축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옆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는 모습을 만들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다정히 품에 안고 걸어가는 모습이 CCTV에 기록될 수 있도록.
“우리,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츠네타카는 바텐더를 잠깐 노려보면서 낮게 말했다.
그리고 자세가 무너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출구 쪽으로 나아갔다.
거리로 나온 츠네타카는 그녀를 품에 안고 걸으면서 거리의 방범용 CCTV에 자신들의 모습이 기록되는 지점에서 밀어를 속삭이듯 그녀의 귀에 대고 바람을 불었다.
귀에 뜨거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트레이시는 본능에 의해 몸을 움츠렸다.
츠네타카는 CCTV에 그 모습이 마치 서로를 희롱하는 연인의 모습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좋아. 증거도 다 만들었고, 요리는 완성되었고, 어디에서 이 음식을 먹느냐만 남았다.
다시 집으로? 아니면 애블린의 호텔? 아니면 러브호텔 같은 제3의 장소?
츠네타카는 제일 먼저 트레이시가 머무는 호텔을 제외했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남편을 떠올리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
자신의 집은 어떨까? 법적 다툼이 생겼을 때,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그의 귀에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 약 썼네.”
그 소리에 츠네타카의 등골에 공포가 스며들었다.
츠네타카는 목소리가 들려온 뒤를 돌아보았다.
건장한 젊은 남자 몇 명이 그의 뒤에 바로 붙어있었다.
“누, 누구야!”
츠네타카가 말했다,
“우리?”
건장한 남자 중 한 명은 그렇게 말하더니 씩 웃었다.
“지나가던 강간범.”
츠네타카의 척추에 스며든 공포가 그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
지역구에서 당협위원들과 같이 저녁 식사를 마친 시마다는 차에 타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밥을 먹으면서 마신 반주가 조금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서 이 정도 술은 마셔줘야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
그를 따라다니는 보좌관이 차 뒷문을 열어주면서 말했다.
시마다는 그를 힐긋 보고는 차에 몸을 실었다.
그가 자리를 잡자 보좌관은 차 문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닫고, 후다닥 뛰어가 앞자리에 탑승했다.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보좌관이 말했다.
시마다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시마다의 몸을 실은 고급 세단이 부드럽게 그의 집을 향해 출발했다. 도쿄에 있는 집이 아니라, 그의 고향 본가를 향해서.
시마다는 오랜만에 본가에서 잠을 잘 계획이었다.
며칠 동안 시마다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 MD시스템즈의 에이전트라는 그 여자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보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사춘기 소년처럼, 무언가를 이렇게 가져보고 싶다는 열망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그 여자는 MD시스템즈의 에이전트이다. 미국인이다. 그리고 코시자와 회장의 손님이다.
그 여자를 건드렸다가 파멸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까지 이룩해 온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니 시마다는 미칠 노릇이었다.
그러다 시마다는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그 얼굴만 볼 수 있다면, 꼭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것 아닐까?
물론 그가 직접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고,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에 침을 뱉고, 반항하는 그녀의 뺨을 때리고, 울며 사정하는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영상만으로도 괜찮다.
영상도 영상 나름의 장점이 있다. 원할 때마다 다시 그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볼 수 있으니.
니시야마구치구미가 시마다를 위해 아이들을 골랐다.
시마다를 대신해 여자를 겁탈하고, 폭행하고, 영상을 찍고, 감옥에 갈 어린아이들이다.
오늘 밤, 도쿄에서는 그 아이들이 순간적인 욕망에 강간 사건을 벌일 것이다.
마에하라로부터 오늘 밤 자중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오늘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 밤 그녀에게 어떠한 일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게 될까?
오늘 밤 무언가를 꾸몄을 마에하라? 아니면, 도쿄에서 수 백 킬로미터 떨어진 본가에서 잠을 자고 있던 시마다?
그 누구도 오늘 밤 벌어질 사건에서 시마다와의 연관성을 찾지 못할 것이다.
의심은 할지언정 확신은 하지 못할 것이다.
시마다는 사타구니가 움찔움찔하는 기분을 느꼈다.
누군가를 품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시마다는 다른 곳으로 차를 돌리라고 명하지 않았다.
오늘은 본가에서 얌전히 잠들어야 하는 밤이니까.
***
“뭐야, 네놈들은!”
츠네타카가 소리쳤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주먹이었다.
괴한 중 한 명이 주먹을 뻗었고, 그 주먹은 츠네타카의 명치에 직격했다.
명치를 맞은 츠네타카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단순히 숨을 쉴 수 없는 것뿐만 아니라 순간적으로 몸에 통제력을 잃었다.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고통에 여자를 감싸고 있던 팔이 풀렸고, 그대로 쓰러지듯 몸을 앞으로 굽혔다.
그러나 츠네타카는 쓰러지지 않았다. 어느새 그에게 접근한 괴한들이 그를 부축했기 때문이다.
“이 아저씨, 청소년 무서운 거 모르네.”
괴한이 말했다.
몸을 굽힌 그의 시야에 괴한의 신발이 보였다. 애들이나 신는 화려한 스니커즈였다.
“조용한 데로 가서, 일단 좀 맞자고.”
괴한 중 하나가 츠네타카의 귀에 그렇게 속삭이고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츠네타카와 정신을 차리지 못한 트레이시를 으슥한 골목으로 이끌었다.
< MISSION 04 : 츠바키 (49)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