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217화 (218/386)

< MISSION 04 : 츠바키 (45) >

츠네타카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곤란하다’는 감정이 담긴 그런 미소를 지어 주면서 말했다.

“사진요?”

“네, 뭐.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달까.”

그러시겠지.

츠네타카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진, 당연히 가지고 있었다.

“그게, 부하 직원이니까, 단순히 업무적인 관계라 사진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데…….”

츠네타카는 그렇게 말을 흐렸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여 줄 수는 있다는 의미를 담고서.

“안 되나요?”

트레이시가 다시 물었다.

“뭐, 감추고 그러면 더 이상해지겠죠?”

츠네타카는 그렇게 말하고는 라인 메신저 어플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오늘을 위해 만들어 놓은 가짜 계정을 찾은 다음 프로필을 눌러 사진을 확대했다.

그리고 잠깐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 다음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 건넸다.

“메신저 프로필 사진 정도뿐이네요.”

트레이시는 휴대전화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화면을 가득 메운 여자의 사진을 보았다.

질투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코시자와중공업에서 여자를 붙이리라는 것도,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리라는 것도 이미 한규호와의 대화를 통해서 전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지금 그녀가 츠네타카에게 보여 주는 모습은 질투하는 아내로 위장하기 위한 연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도 궁금했다. 어떤 여자일지.

정말 한규호의 예측대로 금발의 백인일지.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예쁘네요.”

사진을 본 트레이시의 첫 번째 감상이었다.

사진 속 여자는 한규호의 예상처럼 금발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동양인도 아니었다.

동양과 서양이 조화를 이룬 이국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트레이시는 이국적인 그녀의 사진을 보고, 또 다른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미녀를 떠올렸다.

시애틀에 있는 여자가 떠올랐다.

비슷한 외모가 아님에도, 그녀가 떠올랐다.

“예쁘네요.”

트레이시가 전화기를 다시 츠네타카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츠네타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 전화를 돌려받으며, 속으로는 웃음을 지었다.

***

한규호는 거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바로 일본풍으로 만들어진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정원이라고 해도 그리 크기가 크지는 않았다.

대략 가로 4미터, 세로 3미터 정도의 공간에 하얀색 모래와 바위, 그리고 나무가 배치되어 있는 일본식 정원이었다.

한규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정원 한쪽에 마련된 노천탕 욕조였다.

자연석을 연마해 만든 것 같은 노천탕 욕조가 뜨거운 온천수를 담고 있었다.

한규호는 그쪽으로 걸어가 일본식 욕의(浴衣)인 유카타를 벗었다.

옷을 벗자, 대학 연구소 박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탄탄한 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규호는 그 상태로 발끝부터 천천히 노천탕에 담갔다.

일반 목욕탕의 온탕보다는 조금 더 뜨거운 온천수가 느껴졌다.

한규호는 온천수의 온기가 몸에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가슴팍까지 몸을 담근 한규호가 욕조에 몸을 기대자, 자연석을 깎은 것 같은 욕조는 애초에 그렇게 의도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한규호의 몸을 받쳤다.

명치가 있는 위치까지 온천수가 차올랐고, 팔로 지탱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반 눕는 자세가 만들어졌다.

좋군.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명치 아래로는 뜨거운 온천수가 그의 몸을 덥혔고, 명치 위로는 시원한 바람이 그의 머리를 식혀 주었다.

이 조화가 얼마나 절묘한지, 한규호는 이 료칸이 왜 아키타에서 제일 고급이라는 이야기를 듣는지, 한규호가 체크인한 이 방이 왜 제일 비싼지 이해가 되었다.

한규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도시에서는 별로 보기 힘든 별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흔한 표현처럼 쏟아질 것처럼 많은 별들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오랜만에 별구경을 하기에는 충분한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한규호는 별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당연히 비행기 표는 구하지 못했다. 누가 의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좌석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했다.

원하면 차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는 했다. 7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밤새도록 차를 달려야 하지만, 원한다면 그리해 줄 수 있다고 그 여자가 말했다.

훗.

한규호는 웃었다.

하루 종일 그를 모시고 다닌 장년의 운전기사가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규호가 그러자고 하면 바로 차에 탈 얼굴을 하고서.

일부러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양반을 골랐을까?

당연히 한규호는 사양했다. 나 하나를 위해서 다른 분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다고 이유를 붙여서.

한규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레나라고 불러 달라는 여자는 숙소에 묵었다가 내일 아침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 왔다.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을 표했다. 물론, 곤란하다는 표정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레나라는 여자가 회사와 통화를 했고, 코시자와중공업에서는 아키타 시내의 호텔 대신, 근교에 있는 료칸(旅館)에 묵어 보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제안했다.

일본 고유의 숙박 시설인 료칸에서 일본 전통문화를 체험해 보라는 이야기였다.

코시자와중공업과 계약을 맺은 료칸이 있고, 그곳이라면 예약 없이도 바로 숙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시겠지.

한규호는 당연히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장년의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세단을 타고 아키타 시내에서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이 료칸으로 온 것이다.

료칸은 훌륭했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일본 특유의 밀착 접객, 아키타 특산물로만 구성되었다는 가이세키(会席) 저녁 식사 까지 뭐 하나 흠 잡을 곳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 노천탕이 마음에 들었다.

아키타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고 하는 고급 온천 료칸에서 가장 좋은 객실이라고 들었을 때만 해도 한규호는 별 특색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노천탕에 들어오고 나서야 왜 이 객실이 가장 좋은 객실이라고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슬슬 그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맥주를 가지고 올 것을 그랬나.

한규호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거실과 정원을 구분한 문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오셨군.

다음 스테이지가 시작되는 소리였다.

한규호의 대답이 없었음에도 장지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그리고 한 사람이 쟁반을 들고 정원으로 들어왔다.

오늘 하루 종일 그와 함께한, 레나라고 불러 달라는 여자였다.

저녁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오늘 종일 입고 있었던 투피스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 그녀는 여성용 유카타 차림이었다.

코카소이드의 분위기를 풍기는 미인이 일본 전통 욕의인 유카타를 입고 있는 모습은 뭔가 부조화스러웠다.

그래서 더 매혹적인 이미지를 풍겼다.

“마실 것을 좀 가지고 왔습니다.”

레나라고 불러 달라는 여자는 한규호가 나체로 노천탕 안에 들어가 있음에도 상관없다는 듯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욕조 옆에 자신이 들고 온 쟁반을 내려놓았다.

쟁반 위에는 일본주가 담긴 도쿠리와 오초코라고 부르는 작은 잔, 안주인 야채 무침, 그리고 캔 맥주와 맥주잔, 얼음통이 놓여 있었다.

“일본에서는 온천욕을 즐기면서 따뜻하게 데운 술을 마시고는 합니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체험해 보시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작은 도자기 잔을 한규호에게 건넸다.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잔을 받아 들었다.

여자는 도쿠리를 들어 한규호가 들고 있는 잔에 술을 따랐다.

“아키타 양조 발효에서 만든 잇테키킨센료(一滴金千両)입니다. 한 방울에 금 천 냥의 가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 방울에 금 천 냥이라. 호사스러운 술이군요.”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며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일본주 특유의 절제된 풍미가 그의 입 안에서 맴돌았다.

“좋군요.”

한규호가 말했다.

“한 잔 더 드시겠습니까?”

여자가 잔을 따랐다.

“아니요. 두 잔을 마시면 세 잔을 마실 것 같군요. 취할 것 같으니, 조금 있다가.”

한규호가 말하며, 여자에게 잔을 건넸다.

이미 가이세키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일본주와 맥주를 마셨더랬다.

술기운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뜨거운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 급하게 술을 마신다면, 만취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알겠습니다.”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도쿠리와 잔을 다른 쟁반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그 쟁반을 온천탕 위에 살포시 놓았다.

쟁반은 작은 파문을 만들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온천탕 수면 위에 자리를 잡았다.

한규호의 시선이 쟁반을 향했다. 쟁반은 천천히 물 위에서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 부유하고 있었다.

물 위에서 부평초처럼 부유하는 쟁반 아래로, 그의 나신이 보였다.

물이 맑아, 그의 하체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맥주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시원한 음료가 필요하시면 이 맥주를 드시면 됩니다.”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맥주와 얼음 통을 한규호의 손이 닿는 곳에 내려놓았다.

한규호의 시선이 여자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시선은 한규호의 얼굴을 향해 있었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여자가 말했다.

“아니요. 충분합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여자는 그렇게 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스테이지.

한규호가 속으로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여자는 빈 쟁반을 들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 거실과 정원을 연결하는 장지문을 열고, 나갔고,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고, 한규호는 시선을 온천탕 위에 떠 있는 쟁반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손을 뻗어 잔을 잡은 다음, 한 방울에 금 천 냥이라는 엄청난 이름을 가진 술을 직접 한 잔 더 따랐다.

실망하지 않았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녀가 오늘 그를 유혹하든, 유혹하지 않는, 무조건 그녀는 자리를 비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둘, 셋, 넷…….

한규호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천천히 시간을 카운트했다.

원자시계만큼 정확한 그의 생체 시계가 300 언저리에 다다르는 순간에,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리도 조금 전과 동일하게 대답도 듣지 않고 장지문이 열렸고, 여자가 들어왔다.

조금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녀의 손에는 쟁반 대신, 목욕용 타월 두 개가 들려 있다는 것이었다.

한규호는 여자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부끄러움이 살포시 떠 있었다.

한규호는 다시 시선을 쟁반으로 향했다. 그러나 시야는 여전히 그녀를 담고 있었다.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다시 한규호에게 다가온 여자는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추고는,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들고 온 수건을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머리를 올려 묶기 위해서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이 마치 전통 무용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한규호는 시선을 움직였다. 그녀를 바라보기 위해서.

고개를 돌리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그녀의 발목이었다.

높이 차이 때문에 그녀의 작은 발과 가느다란 발목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규호는 시선을 조금 위로 향했다.

그녀가 팔을 들어 올렸기에, 유카타 아랫단이 살짝 벌어졌고, 그 틈 사이로, 그녀의 다리가,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허벅지로 이어지는 그녀의 하얀 다리가 노출되었다.

한규호의 시선은 그곳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천천히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리를 올리려 두 팔을 들어 올렸기에, 유카타 너머로도 느껴지는 그녀의 봉긋한 가슴이 조금 더 윤곽을 드러냈다.

옷 안에 감추어져 있음에도, 팔의 움직임에 맞춰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가슴을 지나친 그의 시선이 결국에는 그녀의 얼굴에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얼굴에서 더 진한 부끄러움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한규호는 여전히 그녀의 눈을 보고 있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금세 올림머리를 완성한 여자는 잠시 뭐라고 말하려는 듯 머뭇거리다, 아무 말 없이 몸을 뒤로 돌렸다.

한규호는 그녀가 손을 허리로 가져가 허리끈을 풀어 내는 것을 보았다.

허리끈이 풀리면서 유카타가 자연스럽게 펴졌고, 유카타 너머로 느낄 수 있던 그녀의 몸의 윤곽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몸매를 드러내지 못하는 유카타가 어깨에서부터 천천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이 드러났고, 이어서 날개 뼈라고 부르는 그녀의 견갑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카타는 천천히, 그녀의 등을 따라 흘렀다.

만져 보지 않아도 부드럽고 매끄럽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녀의 등과, 대리석으로 조각한 것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그녀의 허리를 지난 유카타는 둔부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처음으로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한규호는 그 곡선을 바라보았다. 오목한 허리의 곡선과, 볼록한 둔부의 곡선을 연결하는 변곡점, 바로 그 위치에서 유카타는 더 이상 움직이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유카타를 잡고 있던 그녀의 손가락이 벌어졌다. 그리고 움직이기를 거부했던 유카타는 참아 왔던 욕망을 한꺼번에 터트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단 한 번에, 자신의 존재를 소멸해 버렸다.

그녀가 손을 놓아 버리자 유카타는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그 순간, 그녀의 목 뒤에서 발목까지, 유카타에 감쳐져 있던 모든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완벽한 곡선이었다.

여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곡선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여자는 살짝 몸을 비틀었다. 그녀의 나신을 이루고 있던 완벽한 좌우대칭이 깨어졌다.

“실례……하겠습니다.”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 MISSION 04 : 츠바키 (45)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