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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16화 (217/386)

< MISSION 04 : 츠바키 (44) >

도쿄 외곽 하가시쿠루메(東久留米)에 위치한 요정 아카츠카(紅塚)의 한 별실에는 네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일명 나이초라 불리는 내각정보조사실 내각정보집약센터 히사키 소마 반장, 일본 방위성 내부부국 사와베 노리히데 국장, 전 방위성 사무차관 출신인 코시자와중공업의 시게노 이오 상무 그리고 코시자와 콘체른의 주인이자, 일본 최대의 우익 단체인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 2대 회장이었던 코시자와 카네모토였다.

코시자와 회장은 언제나처럼 방 한쪽에 걸려 있는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육필 우키요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도시대의 니혼바시의 풍경이 그려져 있는 저 우키요에는 언제나 그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다.

코시자와 회장의 시선은 우키요에를 향해 있었지만, 그의 생각은 아키타를 향하고 있었다.

작은 숨소리만 가득한 방에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려 퍼졌다.

코시자와중공업의 시게노 상무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자신의 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여보세요.’ 하는 인사도 없이 그저 듣고만 있었다.

“알겠다.”

그것이 시게노 상무가 통화에서 한 유일한 말이었다.

“입실했습니다.”

시게노 상무는 다시 전화기를 원래 있던 자리, 테이블 앞에 소리 안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금 전화는 코시자와중공업의 직원으로 위장하고 있는 마리아 개트너, 가고시마에서 온 고급 창부가 에이전트와 미리 준비해 둔 고급 료칸에 입실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코시자와 회장의 시선이 우키요에에서 천천히 움직여 그의 손목시계를 향했다.

시간은 오후 8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계획대로 에이전트 남편의 발목을 아키타에 묶어 놓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도쿄 쪽은?”

코시자와 회장이 물었다.

“지금은 저녁을 먹고 있을 것입니다.”

시게노 상무가 말했다.

코시자와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아키타와 도쿄 두 곳에서 전투가 막 시작된 것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꼭 최전선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해야 할 적이 있고, 명령을 받아 적을 상대할 병사가 있다며 그곳이 어디이든 전선이 된다.

그리고 이번 전투에서 사용하는 전술은 미인계였다. 남편과 아내에게 각각 매력 있는 이성을 붙인다.

코시자와의 병사들이 각각 유혹에 성공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꼭 그런 결과가 아니어도 괜찮다.

두 사람의 사이에 작은 분란의 씨앗을 심어 넣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코시자와 회장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시게노 상무에게서 나이초의 히사키 반장에게로 옮겨졌다.

“시마다는?”

코시자와 회장이 물었다.

국회 중의원 시마다 아리히로. 그의 위치에 대해서 물었다.

코시자와 회장은 시마다의 감시를 나이초에게 맡겼다. 그가 여자 에이전트에게 흑심을 품고 있음을 알았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려는 의도로 니시야마구치구미와 손을 잡은 사실도 알았다.

생각이라고는 돈과 권력, 여자뿐인 그가 대업을 망치지 않도록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마다는 조금 전 17시 06분 기차를 타고 자신의 지역구로 향했습니다.”

히사키 반장은 현직 중의원인 시마다에게 존칭도 붙이지 않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현직 중의원인 만큼 시마다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만, 코시자와의 눈 밖에 난 그의 이름에서 ‘선생’ 자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역구?”

코시자와 회장을 대신해 시게노 상무가 물었다.

만약 그가 움직인다면 오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자리를 비운 유부녀는 매력적인 먹잇감이니까.

그런데 그가 아예 도쿄에서 자리를 비웠다는 이야기다.

“그렇습니다. 지역 당협위원회와 간담회 겸 만찬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선친으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은 시마다에게 지역 당협위원회라는 것은 일종의 가신(家臣)과도 같았다.

코시자와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시마다 같은 소인배가 자신을 거스르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천의 하나, 만의 하나 변수를 줄이기 위해 그에게 감시를 붙여놓은 것이다.

그런데 도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면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

부엌에서 나온 츠네타카는 거실 식탁에 앉아 전화를 받고 있는 애블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샐러드 볼이 들려 있었다.

“그러면 오늘은 못 돌아오는 건가요?”

그녀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 기차는 끊겼고, 비행기는 매진이라고 하고. 아. 물론 밤새 차를 타고 가면 돌아갈 수 있기는 한데.

전화기 너머에서 그녀 남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요? 얼마나 걸리는데요?”

-오늘 나 태워 주신 기사님 이야기로는 최소 7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던데.

츠네타카는 애블린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 ‘정말로?’ 하는 의문이 띄워져 있었다.

츠네타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려 확인시켜 주었다.

-꼭 가겠다고 하면 데려다는 주겠다는데. 아무래도 그게 좀. 실례잖아, 오늘 하루 종일 운전한다고 고생한 양반에게.

“그건 그렇죠. 그럼 자고 오겠네요?”

-어. 아마도 그래야 할 것 같아.

“숙소는요? 갑자기 잡을 수 있나?”

-여기는 뭐 엄청나게 좋은 호텔은 없다고 하더라고. 내가 뭐 상관없다고 그랬는데도 아무 데나 묵을 수는 없다면서, 여기 근교에 무슨 료칸이라는 데로 왔어.

“료칸요? 그거 온천 있고 그런 곳 아닌가요?”

-그런 것 같은데. 나도 막 들어와서 지금은 잘 모르겠네.

“저녁은요?”

-어. 지금 먹을라고. 저녁 먹기 전에 먼저 보고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애교 섞인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요. 알았어요. 나도 지금 저녁 먹고 있으니까. 저녁 먹고 통화해요.”

츠네타카는 애블린의 목소리에서 그녀가 지금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그래, 미안해.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

“그래요. 저녁 꼭 챙겨 먹고요.”

그렇게 말하고 애블린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오늘 못 온대요?”

츠네타카가 샐러드 보울을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 기차를 놓쳤대요. 비행기는 매진이고.”

그녀의 불만 섞인 목소리에 츠네타카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저런. 우리 직원이 실수를 했나 보네요.”

그런 마음과는 달리, 츠네타카는 미안함을 가득 담은 어투로 말했다.

“아니에요. 보나마나 브랜든이 일정을 딜레이시켰을 거예요. 그이는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니까.”

“누가 들으면 알코올중독자인줄 알겠어요.”

츠네타가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츠네타카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는 것을 보았다.

남편이 있는 여자에게 접근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남편 때문에 우는 얼굴을 그가 웃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미안해요. 괜히 시간을 끌어서. 이렇게 직접 요리까지 해 주었는데.”

“아니에요. 어차피 시간이 필요한 요리라서.”

츠네타카는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고개를 저었다.

츠네타카가 준비한 비장의 한 수는 그의 집으로 직접 초대하는 것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필살기였다.

시나가와구(品川区)에 위치한 그의 맨션에 초대해 직접 요리를 해 주었다.

29층에 위치한 그의 방에서는 멀리서나마 레인보우 브릿지와 오다이바의 야경을 감상하기 좋았다.

저녁을 먹고, 와인 한 잔씩을 들고 그 야경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몸과 마음을 열었던가.

츠네타카는 오늘 전장을 자신의 홈그라운드로 정했다.

말 그대로 홈그라운드였다.

부엌에서 오븐이 요리를 끝냈다는 차임이 들려왔다.

“굿 타이밍. 잠시만 기다려요, 기대하면서.”

츠네타카는 살짝 윙크를 해 주고는 부엌으로 가서 오븐을 열었다.

이미 몇 번이나 만들어 봤지만, 오늘의 로스트비프는 평소보다 더 완벽하게 나온 것 같았다.

요리는 완벽하다. 와인 셀러에는 괜찮은 와인이 준비되어 있다. 야경을 감상하기에 그 어느 때보다 좋은 날씨다.

남편은 오늘 들어가지 못한다는 전화를 했고, 아내는 그 전화에 화가 났다.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조건이다.

츠네타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오븐용 장갑을 손에 꼈다.

***

“어머. 너무 훌륭해요!”

트레이시는 츠네타카가 요리한 로스트비프를 한 입 먹고서는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놀랐다는 듯 말했다.

트레이시는 실제로도 놀랐다. 너무나도 훌륭한 요리였다.

고급 버터 풍미가 가득한 표면의 바삭한 식감과, 육질 사이사이에 녹아든 지방층의 부드러움의 조화가 너무나도 훌륭했다.

그녀가 지금까지 먹어본 로스트비프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훌륭한 요리였다.

“제가 기대해도 좋다고 했죠?”

츠네타카가 어깨를 피면서 말했다.

“기대 이상이에요. 미슐렝 레스토랑 같아요.”

트레이시가 놀란 눈으로 말하면서 고기 한 점을 다시 포크로 집어서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츠네타카가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거 레시피 좀 알려 주세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시나리오대로였다.

“이거, 레시피 비싼데요.”

츠네타카는 준비된 답변 중 하나를 골랐다.

바보같이 ‘브랜든에게 만들어 주려고요?’ 같은 답을 고르지는 않았다.

“브랜든에게 청구하세요.”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달리 여자는 결국 남편의 이름을 꺼냈다.

“브랜든에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츠네타카는 준비된 답변 중 가장 자연스러운 답을 꺼냈다.

“아니요. 브랜든이 만들어야 하니까요.”

트레이시는 그렇게 말하고 귀엽게 웃어 보였다.

츠네타카는 오늘 처음으로 가능성이 조금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그녀가 남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으니까.

츠네타카는 미소를 머금으면서, 그녀의 와인 잔에 와인을 따랐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츠네타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남편에 대해서 계속 생각한다면 그렇게 두어야 한다. 억지로 다른 곳으로 생각의 방향을 끌고 가는 방법은 하수나 쓰는 방법이다.

남편에 대한 생각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것이 고수의 방법이다.

“그나저나 우리 직원이 실수를 해서 두 사람에게 미안하네요. 가이드를 잘못 붙인 것 같아요.”

츠네타카가 와인 잔을 들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분명히 브랜든이 술 만드시는 분들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본다고 시간 끌었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안 봐도 알 수 있어요.”

트레이시도 와인 잔을 들면서 말했다.

“그럴 수 있죠. 브랜든이야 손님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시간을 잘 조율하는 것이 가이드의 역할인데, 그걸 제대로 못 한 거죠, 그녀는.”

“그녀요?”

트레이시가 물었다.

걸려들었군.

“아, 애블린은 오늘 아침에 못 봤군요. 오늘 브랜든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은 직원은 제 부하 직원 중 한 명입니다.”

“여자…… 직원인가 보네요.”

“그……렇죠.”

츠네타카가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을 살짝 얼버무렸다.

마치 비밀을 실수로 누설한 느낌으로.

“흐음, 브랜든은 그런 이야기는 안 했는데.”

트레이시는 와인 잔을 다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뭐, 중요한 게 아니라서 그런 거겠죠. 단순히 그냥 가이드 역할일 뿐이니까.”

츠네타카가 친구를 위해 대신 변명했다.

“하긴, 그건 그렇죠.”

트레이시가 다시 포크를 로스트비프로 가져가며 아무렇지 않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런 그녀의 말과 달리, 츠네타카는 그녀가 기분이 조금 상했다는 것을 느꼈다.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 제가.”

“아니에요. 신경 쓰실 것 없어요.”

“그래요. 브랜든 뭐, 그런 사람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츠네타카는 살짝 웃었다.

트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시선을 눈앞에 접시로 향했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는 츠네타카를 보면서 말했다.

“다른 뜻은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그 여자 사진 있어요?”

< MISSION 04 : 츠바키 (4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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