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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13화 (214/386)

< MISSION 04 : 츠바키 (41) >

철도대국 일본답게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이 자랑이라는 아키타 신칸센 코마치는 정확히 정해진 시간에 아키타역에 정차했다.

11시 반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었다.

열차가 멈추고, 한규호가 내리자, 플랫폼에는 두 명의 남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무원 복장을 한 중년 남자와, 단정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또 다른 중년 남자였다.

역무원 복장을 한 남자는 아키타 역장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는 명함을 한규호에게 주었다.

한규호는 그 명함을 공손하게 받으면서, 코시자와중공업이 필요 이상으로 공을 많이 들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처럼 공을 들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만약 CIA가 이런 준비를 했다면 이해가 된다. CIA는 한규호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할 테니까. 그러나 코시자와중공업에 있어서 브랜든 허드슨은 제3자에 불과했다.

양조장 견학 코스를 제공해 줄 수는 있어도, 의전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필요 이상의 과도한 의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는 아키타에 머무는 동안 한규호가 타고 다닐 차량을 운전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또한 필요 이상의 정중함으로 한규호를 모셨고, 한규호는 그를 따라 대기하고 있던 고급 세단에 몸을 실었다.

“허드슨 박사님, 아키타까지 오신다고 고생하셨습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지만 이동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점심은 가는 중간에 가볍게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허기가 느껴지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차량이 출발하자 마사키라는 여자가 한규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될 것 같은데요.”

한규호는 여자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도쿄역 플랫폼에서 받아 든 1번 어쩌구 도시락은 맛은 훌륭할지 몰라도, 양은 말도 안 되게 적었다.

참치 대뱃살 네 점, 그리고 초밥 두 피스.

그런데도 한규호는 배가 불렀다.

도시락이 거기서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키타로 오는 내내 두 번의 도시락이 더 추가되었다. 모두 다 특별한 주문이 필요하다는 초고가의 도시락이라고 했다.

아무리 적은 양의 도시락이라고 해도, 맛을 본다는 기분으로 오는 내내 계속 집어 먹었더니 배가 충분히 찼다.

“저는 그렇다 치고, 미스 마사키는 뭘 좀 드셔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요.”

한규호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도 도시락을 먹었다. 그러나 그녀가 먹은 도시락은 도쿄역에서 받은 첫 번째 도시락뿐이었다.

“레나라고 불러 주세요.”

여자가 그렇게 말했다.

“허드슨입니다.”

한규호가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레나라고 불러 달라는 여자는 더 활짝 웃으며 한규호의 오른손을 가볍게 잡았다.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신경 안 쓸 수는 없지요.”

“자상하시네요. 감사합니다.”

한규호는 그녀의 손이 엄청나게 부드럽다고 느꼈다. 여자의 손이라기보다, 아기의 손을 만지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신체를 가꾸는 데 엄청난 노력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규호의 손을 놓은 레나라는 여자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첫 번째로 방문할 양조장은 히노마루주조(日の丸酒造)입니다. 도착까지 대략 1시간 15분 정도 예상됩니다. 히노마루주조는 준마이다이긴조슈(純米大吟醸酒)인 만사쿠노히(まんさくの日)를 조주하고 있습니다. 3년 전 전일본양조품평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레나라는 여자는 시선을 서류로 돌리면서 말했다.

한규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가 손에든 서류를 향했는데, 그 시야에 곱게 뻗어 있는 그녀의 다리가 들어왔다.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준마이긴조에 대해서 잠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준마이긴조의 준마이는 순수한 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조용 알코올의 첨가 없이 쌀만으로 양조하는 술에만 붙일 수 있는 이름입니다.”

아름다운 다리였다.

조신하게 모으고 있는 두 다리는 마치 순도 높은 백운석이 변성되어 만들어진 화이트 대리석 같은 느낌을 주었다.

“도정이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레나라는 여자가 한규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규호는 여전히 시야에 그녀의 다리를 넣어 둔 채로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2004년까지 도정률 70%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현미(Brown Rice)를 기준으로 30%를 깎아 내야지만 준마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기준이 폐지된 지금도 많은 양조장에서도 그러한 기준을 지키고 있고요.”

“미국에서는 준마이가 고급 사케라는 인식이 있어요.”

“미국에서 생각하는 만큼 최고급 술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즐길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준마이라는 이름은 ‘쌀’만을 사용한다는 의미이니까요. 이어서 긴조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긴조는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일본 술은 기본적으로 차가운 맛이라고 부르는 깔끔함을 자랑으로 여겼는데, 서양 문물과 함께 와인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재미있군요.”

한규호는 여자의 시선이 손에 든 서류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공부를 열심히 시켰군.

“긴조는 음미하면서 양조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정한 쌀을 극저온에서 천천히 발효해서 과일 향과 비슷한 향, 일본에서는 이를 긴조 향이라고 부릅니다. 준마이와는 다르게, 우마미라고 부르는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도정률은 60% 이하가 기준이지만, 50% 이상 도정한 술은 다이긴조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 어디라고 했죠?”

“히노마루 주조입니다.”

“일본어는 익숙하질 않아서. 미안하군요. 그 히노마루 주조는 얼마나 쌀을 깎아 내나요?”

한규호가 물었다.

그 말에 레나라고 불러 달라는 여자의 눈가에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

“술 장인께 여쭈어 보시는게 좋을 거예요. 분명 그 질문을 좋아할 테니.”

레나라는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쭉 뻗은 다리만큼 아름다운 미소였다.

***

똑똑.

츠네타카는 자신의 사무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문 너머에서 애블린이 장난스러운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츠네타카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애블린, 어쩐 일이이에요?”

츠네타카는 약간 놀란 어투로 말했다.

“점심 먹어야죠.”

“점심?”

트레이시의 말에 츠네타카는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11시 30분이 조금 넘어 있었다.

“혹시 선약 있어요?”

트레이시가 물었다.

“없어요. 있어도 없어요. 우선 안으로 들어오세요. 5분만, 아니 3분만 기다려 줘요.”

츠네타카는 그렇게 그녀를 사무실 안으로 들이면서 재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안 그래도 점심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오늘 밤을 위해서 그녀와 최대한 시간을 많이 보내 둘 필요가 있었는데, 문제는 어제 같이 점심을 먹었다는 것이다.

2일 연속으로 그녀에게 점심을 먹자고 권유하는 것이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여자는 자고로 고양이와 같아서, 품에 안으려 들면 도망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먼저 점심을 먹자고 찾아온 것이다.

오늘 일이 잘 풀리는군.

츠네타카는 자신의 책상에 앉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어제 먹었던 음식이 너무 맛있었어요. 뭐였죠? 치즈…….”

트레이시는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치즈 닭갈비.”

츠네타카가 그런 그녀를, 정확히는 소파에 앉으면서 자연스럽게 말려 올라가는 스커트를 보면서 말했다.

“맞아요. 그런 생소한 이름의 음식이었죠. 그거 맛있었어요. 오늘은 또 어떤 맛있는 집에 데려가 주실까 궁금해서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회의 마무리하자고 했어요.”

트레이시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웃었다.

그러나 츠테나카의 모든 신경은 예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이 아니라, 스커트와 두 다리 사이의 역삼각형의 틈으로 향했다.

저곳이 오늘의 목표다.

“와, 부담되는데요? 오늘은 더 맛있는 걸 대접해 드려야 하는데.”

츠네타카는 그렇게 말하며 책상을 정리하는 척을 했다.

“어머, 부담되시나요? 그럼 저 갈까요?”

트레이시가 그렇게 말하며 소파에서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

“거기 딱 앉아 계세요!”

츠네타카의 말에, 트레이시는 살짝 웃으며 다시 엉덩이를 소파에 붙였다.

츠네타카는 의미 없이 책상 위의 서류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생각했다.

확률이 조금 더 올랐다.

츠네타카는 트레이시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판단했다.

***

미타역 인근 아케이드(상가 거리)에 위치한 미즈구치(水口)식당은 겉보기에는 그저 일본에 널리고 널린 흔한 정식(定食)집처럼 보였다.

일반적인 정식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점심시간임을 감안해도, 대기 줄이 상당히 길게 늘어서 있다는 것이었다.

츠네타카가 트레이시를 데려온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두 사람은 대략 20여 분 정도 기다린 다음에야 식당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어머?”

들어서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던 중년 여성이 츠네타카의 얼굴을 보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츠네타카가 그런 중년 여성에게 웃어주며 인사했다.

“히로시 군, 이게 얼마만이야. 우선 앉아요, 앉아.”

중년 여성은 정말 반가운 표정으로 츠네타카를 맞이했다.

츠네타카는 그 모습을 보고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주방 쪽으로 돌렸다.

“저 왔습니다. 잘 지내셨죠?”

그리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장년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 손으로 열심히 웍을 움직이던 장년 남자는 츠네타카의 얼굴을 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으로 인사를 받았다.

츠네타카는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다는 듯,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찾아온 거야. 얼굴 잊어 먹겠네.”

중년 여성이 시원한 차를 테이블에 올리면서 츠네타카에게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있어야죠. 줄이 얼마나 긴지. 직장인 점심시간 뻔한데.”

츠네타카가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오랜만이다. 다음부터는 그냥 몰래 들어와, 줄 서지 말고.”

중년 여성이 다른 테이블에서는 듣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하하, 아저씨가 허락 안 하실 것 같은데요?”

츠네타카의 시선이 주방으로 향했다.

트레이시도 그 시선을 따라 주방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

무뚝뚝하고 고집 있어 보이는 장년 남자가 열심히 웍에다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저씨 몰래. 매번 먹는 그거 먹을 거지?”

중년 여자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네, 매번 먹는 그거.”

츠네타카는 그렇게 자신의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트레이시에게는 쇼가야키 정식을 추천해 주었다.

“의왼데요?”

주문을 받은 중년 여성이 떠나자 트레이시가 츠네타카에게 말했다.

“실망하셨나요?”

츠네타카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평상시 이미지랑은 달라서.”

“제 이미지가 어떤데요?”

“뭔가…… 부잣집 도련님?”

“그거 좋은 의미죠?”

“아마도요?”

트레이시가 웃음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라니……. 아무튼, 여기는 정말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어요. 제가 10년 넘도록 최고로 뽑는 집 중 하나이니까요.”

츠네타카가 자신 있다는 듯 가슴을 살짝 내밀면서 말했다.

“10년요?”

“네. 대학생 때부터 다녔으니까요. 제 모교가 이 근처에 있거든요.”

“아, 그래서 저분들이 저렇게 살갑게 맞아 주신 거군요.”

미즈구치 식당은 츠네타카가 가지고 있는 카드 중 하나였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데, 이 식당만큼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곳은 없다.

물론 이 식당의 음식은 싸고 맛있었다. 하지만 츠네타카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부잣집 도련님 같은 얼굴을 한 그가, 서민적인 식당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서 그의 매력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었다.

츠네타카의 기대처럼,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애블린은 자신을 좀 다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츠네타카는 확률이 조금 더 올랐다고 판단했다.

< MISSION 04 : 츠바키 (4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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