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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12화 (213/386)

< MISSION 04 : 츠바키 (40) >

7시 36분에 도쿄역을 출발한 코마치 3호 열차는 빠른 속도로 아키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특실인 그린샤에 앉아 있는 한규호는 포크로 집어 든 참치 대뱃살을 간장에 찍은 다음 입으로 가져갔다.

두어 번 씹기도 전에 부드러운 대뱃살이 그의 입 안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한규호 좌석 테이블에 놓여 있는 상자는 에키벤(駅弁)이라는 도시락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 도시락을 먹고 있는 한규호는 자신이 먹는 이 음식을 도시락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양조장 견학 코스를 마련한 코시자와중공업에서는 아침 일찍 기차를 타야 하는 한규호를 위해서 도시락을 준비해 주었다.

‘특별히 귀한 분들에게만 주문받는 도요스 1번 에키벤’이라고 했다.

도요스 1번 에키벤이라는 웃기는 이름을 가진 이 도시락은 2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미슐렝 스리 스타 일식당 주방장이 직접 도요스 시장에 가서 참치를 낙찰받고, 그곳에서 바로 참치를 해체해 그 자리에서 도시락으로 만들어, 도쿄역 플랫폼에서 전달된다고 했다.

실제로 한규호는 도쿄역 플랫폼에서 하얀색의 조리복을 입고 있는 주방장으로부터 이 도시락을 직접 전달받았다.

한규호가 먹고 있는 참치 대뱃살(大トロ)는 말하는 배꼽살이라고 말하는 1번 도로라고 했다,

그것도 그냥 1번 도로가 아니라, 도요스시장(豊洲市場) 새벽 경매에서 가장 비싼 금액으로 낙찰된 혼마구로(참다랑어)의 오도로라고 했다.

어제만 해도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고,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던 참다랑어의 붉은 속살이었다.

맛은 있군.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번째 오도로를 집어 들어 입안에 넣었다.

역시 처음처럼, 대뱃살에 그믈처럼 펼쳐진 지방질이 혀 위에서 녹아내렸다.

붉은색의 1번 오도로 네 점, 그리고 2번 오도로로 만든 초밥이 두 피스, 초생강무침 약간이 들어 있는 이 단촐한 도시락이 얼마나 하는지 궁금해졌다.

“여기, 차 드세요.”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연하게 우린 일본차를 한규호의 테이블 위에 놓았다.

한규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선화 같은 청초한 미소를 띤 얼굴이 한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

한규호는 호텔 로비에서 츠네타카를 만났다.

그 시간이 6시 45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른 시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한규호가 츠네타카를 보면서 투덜거렸다.

츠네타카가 그런 한규호에게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무리 신칸센이라고 해도 4시간은 가야 한다고. 1박 하고 올 것 아니면 어쩔 수 없어.”

“찾아보니까 비행기도 있더만.”

“4시간의 벽이라고 들어봤나?”

츠네타카가 물었다.

“4시간의 벽?”

한규호가 고개를 저었다.

“4시간 이내라면 고속철도가 더 유리하다는 말이지. 솔직히 비행기로 1시간밖에 안 걸린다고 해도 공항 가고, 수속 밟고, 활주로에서 이동했다가 다시 착륙해서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서 시내까지 들어가는 거 생각하면 신칸센이 1백 퍼센트 유리하다고.”

츠네타카가 JR의 홍보 직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으쓱대면서 설명했다.

“그거, 일리 있는데?”

“그럼. 미국인인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철도대국 일본을 무시하지 말라고. 그리고 일본까지 왔는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신칸센을 안 타 봤다고 하면 사람들이 욕할 거야. 기대해 도 좋아. 신칸센에서 먹는 에키벤과 맥주.”

“아침부터 맥주는. 아무튼,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그건 그렇고, 뒤에 계신 분은 누구?”

한규호가 츠네타카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그 시선 끝에는 청초한 이미지의 여성이 서서 대화를 나누는 두 남자를 보고 있었다.

“아, 이번 여행에서 자네를 안내할 우리 직원이야. 마사키씨, 인사드려요.”

츠네타카가 여자를 소개하면서 옆으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러자 츠네타카의 어깨 뒤에 서 있던 여자가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오며 고개를 숙였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코시자와중공업에서 근무하는 마사키 레나(柾輝玲奈)입니다.”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두 손으로 공손히 명함을 내밀었다.

한규호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명함을 한 템포 늦게 받았다.

“통역 겸 안내를 할걸세.”

그렇게 말한 츠네타카는 한규호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작게 속삭였다.

“내가 특별히 신경 썼다고.”

츠네타카의 말에 한규호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 마사키라는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 브랜든, 실례잖아. 이름을 듣고도 자신의 소개를 안 하면.”

“아, 그렇지. 죄송합니다. 브랜든 허드슨입니다.”

한규호는 그제서야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한규호는 반쯤은 놀란 척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도 조금은 놀랐다.

금발 백인일 것이라는 그의 예상이 틀렸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얼굴이었는데, 꼭 따지자면, 동양적인 아름다움에 조금 더 무게가 실려 있는 모습이었다.

마사키라는 여자는 그런 한규호에게 변함없이 청초한 미소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봐, 아무리 미인이라도 그렇게 계속 쳐다보는 건 실례잖아.”

츠네타카가 한규호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한규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일본인이신가? 미스 마사키라고.”

한규호가 츠네타카에게 슬쩍 물었다.

“어머니가 터키분이십니다.”

대답은 마사키라는 여자가 했다.

여자의 눈은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랑 비슷한 케이스지.”

츠네타카가 옆에서 말을 보탰다.

한규호는 여자의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애블린은?”

츠네타카가 물었다.

“화장을 끝마치기 전에는 절대로 방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는군.”

한규호가 계속 여자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그래?”

“전화해서 내려오라고 할까?”

“그런 실례를 범할 수야 없지. 괜찮아, 기다리면 되니까.”

츠네타카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자, 늦기 전에 어서 출발하라고. 일본의 신칸센은 단 1초도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 마사키 씨, 내 친구를 부탁해요.”

“맡겨 주십시오. 다녀오겠습니다.”

마사키라고 불린 여자는 여전히 수선화 같은 미소를 유지 한 채로 츠네타카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츠네타카는 한규호가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애블린이 이 모습을 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

한규호는 차를 건넨 여자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미스 마사키.”

한규호는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아닙니다.”

여자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규호는 그녀의 미소를 보면서, 미인계에 아주 적합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양과 서양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한규호는 그런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를 한 명 더 알고 있었다.

중국 소수민족 출신의 그 여자도 굉장히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아름다움은 종류가 달랐다.

완이 북방계 아시아 인종인 몽골로이드와 인도 아리아계의 혼혈 같은 복합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한다면, 지금 한규호에게 차를 건네 주는 여자는 동양적인 아름다움에 코카소이드가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화장법에 따라 코카소이드에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첨가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런 얼굴이었다.

이런 여자를 어디에서 데려왔을까?

한규호는 그녀가 따라 준 일본 차를 홀짝이면서 생각했다.

“미스터 허드슨에 대해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그녀가 한규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뭐라고 말했는지 걱정되는데요.”

한규호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녀는 한규호의 질문에 살짝 장난스러운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얼굴을 한규호는 차를 홀짝이며 바라보았다.

너무 자연스러워,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약간의 장난기를 담고, 거기에 상대방에게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동시에 이성적인 매력을 내포한 미소를 지으시오.’라는 문제의 정답 같은 미소였다.

한규호는 오늘 하루 동안 그녀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녀가 유혹한다면 거기에 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도록 행동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계획한 한규호는 그녀의 미소를 보고, 조금 더 조심히 연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았을 것이다.

그것이 육욕이든 순애든, 아니면 숭배의 감정이든, 그녀는 그러한 감정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한규호의 연기가 어설프다면, 그녀에 대한 호감이, 열망이, 욕망이 거짓이라는 태가 난다면, 그녀가 알아차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어디 한번 놀아 보자고.

한규호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가 준 차를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

츠네타카는 호텔 로비에서 애블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피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부터 강행군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제 트레이시를 배웅한 츠네타카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마에하라가 조달한 여자가 있는 호텔로 가서 그녀를 만났다.

가고시마에서 조달해 왔다는 그 여자는 많은 여자를 만나 봤다고 자부하는 츠네타카에게도 놀라움을 안겨 줄 정도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와 대본을 맞추면서 츠네타카는 그녀가 단순히 외형적인 아름다움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말할 때 목소리와 어조, 그리고 그때그때 변하는 표정이 그녀를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어학 능력이 출중했다.

일본어와 영어를 거의 원어민처럼, 아니 얼굴을 보지 않았다면 일본어를 할 때는 일본인이라고, 영어를 할 때는 미국인이라고 믿을 정도로 대단한 언어 구사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하룻밤 사용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인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아 개트너라고 했다.

츠네타카는 그녀와 개인적인 인연을 계속 이어 가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남자로서의 정복 욕구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츠네타카의 시선은 단지 그 여자의 나신(裸身)만을 향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츠네타카의 성공을 위해 활용도가 아주 높은 여자라고 확신했다.

밤늦게 시작한 시나리오 점검은 자정을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상사와 부하라는 각각의 역할을 설정하고, 아주 작은 부분까지 디테일을 점검했다.

츠네타카는 그 정도까지 섬세하게 진행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의 미모와 매력이라면, 사실 그냥 웃고만 있어도 넘어가지 않을 남자가 없을 테니까.

그러나 마에하라의 생각은 달랐다. 마에하라는 집요하게 설정을 점검하고, 비교하고, 혹시 있을지 모를 모순점을 찾기 위해 반복적으로 점검하고 또 점검을 진행했다.

그런 작업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났고, 츠네타카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호텔에서 몇 시간 쪽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마에하라의 부하가 츠네타카의 집에서 새 양복을 가져왔고, 6시에 일어난 츠네타카는 그 양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마사키 레나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여자와 함께 브랜든이 머물고 있는 호텔로 온 것이다.

호텔에서 브랜든을 만나 여자를 소개시켰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브랜든은 그 여자에게 홀딱 넘어간 눈치였다.

어느 남자가 그러하지 않겠는가?

오늘 밤 그녀는 브랜든을 품을 것이다.

두 사람을 보낸 츠네타카는 호텔 로비에서 애블린을 기다렸다.

그도 오늘 애블린을 품어야 했다.

츠네타카는 그 가능성을 30% 정도로 생각했다.

그리 낮지 않은 수치이다.

어제 아침만 해도 10% 미만이라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다.

그런데 애블린이 어제 회의를 취소했고, 두 사람은 같이 점심을 먹었고, 오후의 여유로운 데이트를 즐겼다.

그 덕분에 확률이 30%까지 올라간 것이다.

오늘, 그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확률이 더 올라갈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몇 장의 카드를 준비해 놓았다. 상황에 맞춰 그 카드를 사용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츠네타카의 눈에, 애블린 길먼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츠네타카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허벅지를 타고 하복부에 전달되었다.

츠네타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다가오는 트레이시에게 미소를 지어 주면서 말했다.

“애블린, 좋은 아침입니다.”

< MISSION 04 : 츠바키 (4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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