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4 : 츠바키 (33) >
이스라엘 국내 첩보기관 신 베트의 대외협력사업국 다비드 바이츠만 국장은 팔짱을 낀 채로 이스라엘 대사관 지하 상황실에 앉아 있었다.
계획에 따라 카멜리아는 후쿠오카에서 올라오던 마리아 개트너의 자리에 숨어 들었다. 그녀는 마리아 개트너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바이츠만 국장은 그녀가 역할을 잘 수행해 낼 것이라고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바이츠만 국장을, 신 베트를, 조국 이스라엘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얼마 전 미국인 무기 브로커 제임스 붐을 처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 베트는 제임스 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그가 어떤 상황에서 여자를 부르는지, 여자를 부를 때 주로 어디를 이용하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도청을 통해서 그가 여자를 부른다는 것을 파악했고, 제임스 붐을 가장해 예약을 취소했고, 대신 카멜리아 그녀를 들여보냈다.
그리고 제임스 붐은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되었다.
비아그라의 주성분인 실데나필은 cGMP의 분해를 억제해 혈관을 확장시킨다.
확장된 혈관을 통해 혈류가 증가고, 해면체에 혈류가 공급됨으로써 발기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제임스 붐은 비만이었고, 고혈압이었으며, 당료가 있었다. 당연히 발기부전이었다.
그래서 그는 관계를 맺을 때마다 실데나필을 사용했고, 당연히 알콜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몸에 부담을 주었다.
이미 그의 혈관에 과부하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예루살렘에서 만들어진 특제 약, 실데나필을 주 원료료 약간의 부가원료가 첨가된 소량의 약이 추가된다면, 그의 혈관과 심근은 버텨 내질 못한다.
카멜리아는 그에게 접근해 그 약을 먹였고, 그의 죽음을 확인한 후에 방을 나왔다.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는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쪽 끈을 잡고 있는 누군가가 미국의 우방인 이스라엘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의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제임스 붐, 일명 짐빔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의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냉전이 끝나고, 국제 무기 거래가 침체에 빠져들면서 수많은 무기 브로커들이 불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상황이 어려워 진 것은 짐빔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짐빔은 파산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비빌 언덕이 있었으니까.
일본을 구역으로 가진 몇 안 되는 브로커 중 하나였기에, 짐빔은 조금 덜 버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짐빔은 욕심을 부렸다. 위기를 기회로 삼고 싶어 했다.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무기상들의 영역을 침범했고, 그중 하나가 레바논이었다.
2006년 발발한 2차 레바논 전쟁,
레바논 헤즈볼라 세력이 이스라엘 군인 두 명을 납치했고, 이스라엘은 납치를 명분으로 레바논 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헤즈볼라의 게릴라전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백린탄을 사용한 것 때문에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결국, 두 명의 군인 구출은커녕, 150여 명의 전사자만 기록한 채 다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역사에 몇 없는 굴욕적인 패배였다.
중동 최강이라는 이스라엘의 패배에 예루살렘은 충격을 받았다. 패배의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에 들어갔고, 분석 과정에서 헤즈볼라에 무기를 공급한 브로커 중 짐빔이 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짐빔은 직접적으로 헤즈볼라에 무기를 공급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몇 개의 유령 회사와 자신의 지배력이 작용하는 몇몇 무기상을 끼워 넣어 명목상으로는 헤즈볼라에 ‘직접’ 무기를 공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상관하지 않았다. 결국 그가 판매한 무기가 이스라엘의 적에게 넘겨졌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모사드의 리스트에 적혔다. 이스라엘의 적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적이 되었다고 해도 그를 바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이스라엘이라고 해도 그는 미국인이었고, 미국 국방성의 인정을 받은 무기 브로커였다. 그런 그를 함부로 죽일 수는 없었다.
그런 와중에 그를 노리는 또 다른 세력이 추가되었다.
중국이었다.
짐빔 입장에서는 억울할 노릇이었겠지만, 중국은 짐빔에게 직접적인 원한이 없었음에도 그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미국이 리팡웨이에게 현상금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중국 요녕성 대련에 위치한 무역상사를 운영하는 젊은 사업가인 리팡웨이는 북한에서 만들어진 IRBM을 이란에 수출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데이빗 리, 칼 리, 패트릭 리 등의 가명을 쓰는 리팡웨이는 당연히 미국 정부의 감시 대상이었고, 그가 이란 핵 개발에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판명되자 FBI는 대량 살상 무기 판매 혐의로 그에게 5백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물론 CIA는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을 현상금으로 걸었다.
리팡웨이에 대한 정보가 전 세계에 퍼졌다. 그가 어디에 사는지, 누구와 사는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
그러나 그 누구도 그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리팡웨이는 단순한 무기상이 아니었다. 중국 정부의 지시를 받는 요원이었다.
고작 천만 달러를 위해서 중국 정부를 상대로 싸우고 싶어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미국이 리팡웨이에게 현상금을 걸자, 중국 정부는 제임스 붐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제임스 붐은 리팡웨이보다 더 많은 정보를 노출했다. 그럼에도 그는 안전했다. 그의 뒤에 미국 정부가 있었으니까.
그런 제임스 붐이 미국에게 버림을 받은 것은 얼마 전 일이었다.
신 베트 대외협력국에 비공식 채널로 제임스 붐은 더 이상 미국의 비호를 받지 못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신 베트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일본이 도입하려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서 일본 측에 유리한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이스라엘이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제임스 붐은 애초에 이스라엘의 리스트에 올라 있던 목표였다. MSS의 현상금도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원하는 세력에 미국도 추가된 것이다.
제임스 붐에 대한 작전 권한이 모사드에서 신 베트로 이관되었다.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모사드가 제임스 붐을 처리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반면에 신 베트라면, 신 베트에서도 대외협력국이 타 국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 강대국과의 협력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의 죽음을 이끌어 낸다는 그림은 나쁘지 낳았다.
양국에서 묵인, 또는 승인이 있었고, 신 베트는 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위해 카멜리아가 일본으로 왔고, 제임스 붐은 죽었다.
***
시마다는 의원실 자신의 방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마다는 거의 자정이 다 될 때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를 고민하게 한 문제는 결국 하나였다.
비행기에서 만난 그 여자. MD시스템즈의 에이전트이자 코시자와중공업의 귀한 손님인 그 여자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어떻게 해야 볼 수 있을 것인가.
시마다는 최근 10년 동안 이토록 무언가를 원해 본 적이 없었다. 이토록 무언가에 집착해 본 일이 없었다. 시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그녀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시마다도 알고 있다. 안 된다는 것을.
그녀는 코시자와 회장의 손님이다. 그리고 코시자와 회장은 일본을 지배하는 보수의 심장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과도 같다.
코시자와 회장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은 카스미가세키(霞が関, 일본 정계) 전체를 적으로 둔다는 이야기다. 그 누구도 코시자와 회장에 맞서 그의 편에 서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일본공산당 등 좌파 정당이라면 코시자와와 싸워 줄 것이다.
웃기는 이야기다. 코시자와와 싸우겠다고 지금까지 척을 지고 있던 좌파 정당과 손을 잡는다? 그것도 여자 하나 때문에?
시마다는 조금씩 세력을 키우고, 여당 제일의 계파가 되고, 총리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코시자와의 세력과 척을 진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한편 문제는 코시자와 회장만도 아니었다.
미국인이다. 그냥 미국인도 아니고, 방위산업에 종사하는 에이전트이다.
단순히 미국인 하나를 건드렸다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외교적인 부분까지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것을 종합할 때, 시마다는 그 여자를 포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를 지배하는 집착.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고통에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그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젯밤 시마다는 니시야마구치구미(西山口組)에 전화를 걸고야 말았다.
결국 전화를 걸어, 인원을 준비해 줄 것을 지시했다.
시마다의 지시를 받은 니시야마구치구미는 겁 없고, 몇 년은 감옥에 다녀와도 괜찮을 어린아이들을 준비할 것이다.
시마다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준비된 인원을 쓸 것인지, 쓴다면 어떻게 쓸 것인지, 아니면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참을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계속 생각하고 생각했지만, 그는 결정하지 못했다.
시마다는 강하게 이빨을 악물었다. 그리고는 호출 버튼을 눌러 비서관을 불렀다.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은 기분이었다.
***
“시마다가 어젯밤 니시야마구치구미에 전화를 했습니다.”
코시자와중공업의 시게노 상무가 말했다.
“니시야마구치?”
코시자와 회장이 되물었다.
“네. 고베야마구치구미에서 새롭게 분파된 조직입니다. 아무래도 시마다가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시자와 회장도 그 조직에 대한 보고를 받은 바 있었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시대에 뒤떨어진 야쿠자 항쟁에 신경 쓸 정도로 코시자와 회장은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마다가 지금 상황에서 야쿠자를 동원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작은 과도야 그리 위험할 일이 없다. 하지만 철없는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진다면 신경을 써야 한다.
작아도 날붙이는 날붙이니까.
“왜라고 생각하나?”
코시자와 회장이 물었다.
“제 주제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제를 모른다?”
“회장님에게 마에하라가 있는 것처럼 자신도 무언가 무기 하나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시마다도 몇몇 세력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이 선대에서부터 이어진 지역 건설업자들이고,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는 전국구 세력은 아닙니다. 시마다는 새로운 무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터이고, 그래서 새롭게 분파된 니시야마구치구미와 손을 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시게노 상무가 말했다.
코시자와 회장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제도 모르는 놈. 그에게 딱 어울리는 단어이다.
“어쩔 것 같나?”
“저라면 아마도.”
“아니, 시마다라면.”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가장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다면, 결국 그 여자를 노릴 것입니다.”
“여자가 목적이다.”
“네. 시마다가 움직이겠다면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그자가 복잡한 정치 공학적 계산 아래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가 움직인다면 그 목적은 권력, 돈, 그리고 여자뿐입니다. 그리고 마에하라의 보고에 따르면 시마다는 에블린 길먼에 대해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시자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남편과 떨어진다는 것을 시마다는 알고 있고, 기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다면, 어떠한 방법을 써서든 여자를 확보해서 욕정을 풀려고 할 것입니다. 회장님이나 외교적인 파장에 대한 생각은 나중으로 미뤄 두고.”
“1박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가?”
“알고 있습니다.”
마에하라를 통해서 시마다에게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경고하면서 일정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그럼 내일 밤을 기회로 보겠군.”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코시자와 회장은 손을 턱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가볍게 문지르며 생각했다.
시마다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를 모임에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정치적 감각이 있고, 그가 가진 야망을 잘 통제만 한다면 쓰임새가 있겠다는 판단이었는데, 생각보다 무능했고, 예상보다 욕심이 많았다.
“최악의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시게노 상무가 다시 말했다.
“이유는?”
“아무리 생각이 없다고 해도, 회장님을 거역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짐승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적어도 죽을 자리는 피해 갈 정도의 감각은 있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자신의 무덤을 파는 행동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안심해도 된다?”
“물론 최악의 경우에 대한 대비는 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코시자와 회장은 시게노 상무가 그의 기분을 위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불러들일까요?”
시게노 상무가 물었다.
마에하라를 통한 경고가 먹히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거나, 이해했어도 따르지 않을 정도로 욕심을 부리고 있다면 직접 불러서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 최선이다.
몽둥이를 들어 위협했어도 계속 짖는 개에게는 몽둥이의 무서움을 가르쳐 줘야 한다.
코시자와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붙일까요?”
“히사키 군에게 전달하게.”
코시자와 회장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시게노 상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초 정보집약센터의 히사키 소마 반장에게 그에 대한 감시를 붙이는 것이 가장 최선이다.
됨됨이와는 별개로 시마다는 중의원이이고, 중의원에게 감시를 붙인다면 민간기업인 코시자와중공업보다는 나이초에서 사람을 붙이는 것이 모양새가 좋다.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츠네타카는 내일 행동에 들어갑니다.”
시게노 상무가 말했다.
코시자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보고를 받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남편은 예정에 없던 1박을 하게 되고, 기분이 상한 애블린을 츠네타카가 상대한다.
꼭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저 그녀를 흔들어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언가가 이루어지면 그보다 좋을 수 없고.
“욕심을 부리지 않도록 잘 지시하게.”
코시자와 회장이 말했다.
츠네타카가 공을 세울 욕심으로 필요 이상의 무언가를 하지 말도록 지시하라는 이야기였다.
예를 들어 약을 쓴다든가.
“다시 한번 더 말해 놓겠습니다.”
시게노 상무가 말했다.
< MISSION 04 : 츠바키 (3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