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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199화 (200/386)

< MISSION 04 : 츠바키 (27) >

신 베트 또는 샤바크(שב"כ)로 불리는 이스라엘 국내 첩보기관(Israel Security Agency)에 대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오해는 모사드의 산하기관이라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신 베트는 모사드의 산하기관이 아니었다.

동등한 위치를 지닌 별개의 기관이었다.

해외 업무를 담당하는 모사드, 군사정보를 담당하는 아만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3대 첩보기관으로 이스라엘의 안보를 지키는 세 개의 기둥 중 하나였다.

총리 직할의 신 베트는 이스라엘 내부의 방첩 활동, 테러방지 활동, 테러 용의자 심문 이외에도 여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그 임무 중 하나가 전 세계에 위치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경호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그 말은 이스라엘 대사관이 설치된 모든 나라에 신 베트의 지부가 설치되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신 베트는 지부를 활용해 이스라엘의 안전을 지키고, 국익의 도움이 되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납치 및 암살 임무였다.

사람들은 모사드를 창, 신 베트를 방패에 비유하곤 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의지에 의해 수행된 납치와 암살은 모두 모사드가 수행한 것으로 오해하곤 했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납치와 암살 작전은 모사드가 수행했다.

특히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이해관계, 또는 은원을 가진 인물의 처리는 모사드가 담당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한 호텔에서 시체로 발견된 이라크 핵물리학자 야하 엘 메스하드, 시리아 연안 휴양지 별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다 바다에서 날아온 총알에 사망한 시리아군 무하마드 슐레이만 준장, 전화기에 설치된 부비트랩의 폭발로 사망한 마흐무드 함샤리 등 모사드가 수행한 암살 작전은 이루 셀 수 없었다.

이스라엘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인물에 대한 납치도 모사드의 전문 영역이었다.

40만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의 가스실로 보낸 아돌프 아이히만을 15년 동안 추적해 찾아내고, 국제법을 무시해가면서까지 아르헨티나에서 납치해와 교수대에 목을 걸어 버린 모사드의 업적은 첩보계에서는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암살과 납치를 모사드가 수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인물의 납치 및 암살은 모사드의 영역이 아니었다.

어떤 암살이, 납치가 간접적으로 이스라엘의 이익과 연결된다면 예루살렘은 지시를 내렸고, 그 지시는 신 베트가 수행했다.

얼마 전 사망한 미국인 무기 브로커 제임스 붐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

한참을 미동 없이 남자의 사진을 바라보던 바이츠만 국장은 몸을 돌려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신 베트의 핵심 기술은 정보 수집과 고문이다.

특히 정보 수집에서 신 베트는 모사드나 아만에 뒤지지 않는 기술을 획득하고 있었다.

신 베트가 추구하는 정부 수집 방법은 휴민트(인간 정보)였다.

이스라엘만큼 휴민트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내부의 배신자가 없기 때문이다.

서기 134년, 로마제국의 하두리아누스 황제는 반란을 일으킨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한다. 2000년간 이어진 디아스포라(Diaspora, διασπορά)의 시작이었다.

고향에서 쫓겨 서유럽에 정착한 유대인들, 특히 아슈케나짐(Ashkenazim, 유대인 혈통의 90%를 차지하는 주류 계파)은 2000년의 타향살이 중에도 유대교라는 종교와 이디시(ייִדיש) 언어를 매개로 민족의 혈통을 지켜 왔다.

19세기 시오니즘의 영향을 받은 유대인들은 자신의 땅을 찾길 원했고, 그래서 그들은 다시 팔레스타인을 찾았다.

그들이 되찾은 땅은 이슬람이 지배하는 땅이었고,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1948년부터 1973년까지 네 차례나 이어진 중동전쟁, 80년 이후 수도 없이 발생한 외부와의 분쟁은 이스라엘 내부를 더욱 결속시켰다.

이스라엘이 가진 힘은 전 세계 유대인들이 보내주는 자금이 아니라. 서로의 등을 맞대고, 주변 이슬람 국가와 싸워 온 결속력이었다.

절대로 깨어지지 않는 강인한 결속력을 가진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휴민트는 가장 적합한 정보수집 방법이었다.

강력한 결속력으로 내부 배신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스라엘은 적진에 사람을 심었고, 배신자를 만들었으며, 정보를 획득했다.

돈으로, 때로는 회유와 협박으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휴민트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스라엘의 가장 가까운 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하마스(حماس)에도 정보원을 심어 넣을 정도로, 신 베트의 휴민트 인프라는 강력하고 효율적이었다.

당연히 이스라엘 대사관이 있는 일본에도 신 베트의 지부가 있고, 신 베트는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람을 심었고, 정보를 모았다.

하마스에도 정보원을 심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신 베트가 일본의 정계, 재계, 그리고 암흑세계에서 흘러가는 대부분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코시자와 중공업이 여자를 찾을 때 그 정보는 바로 이스라엘 대사관 지하 상황실에 접수되었고, 뒤이어 어떤 여자가 선택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되었다.

주일 이스라엘 대사관 지하 상황실은 24시간 정보를 수집했고, 분석했다.

정보가 있다면 작전에 80% 이상이 완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공의 나머지 15%는 작전의 세부 사항을 수립하는 데 달려 있고, 4%가 작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준다.

빠르게 작전 세부 사항이 수립되었고, 동시에 요원들이 행동에 들어갔다.

계획에 따라 신코베 역에서 신 베트와 협력 관계에 있는 독립 요원들이 경찰인 척 위장하면서 선택된 여자 마리아 개트너와 그녀의 포주 매니저를 빼 냈고, 사람을 바꿔치기 했다.

이제 바뀐 여자, 카멜리아는 그대로 도쿄역으로 가서, 마리아 개트너로서 교육을 받고, 목표인 브랜든 허드슨을 모시고 아키타로 갈 것이다.

아키타로 가서 계획대로 그 남자와 잠자리를 할 것이고, 남자가 죽으면 준비된 차량을 타고 안개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얼마 전 제임스 붐을 처리했던 그 방식과 거의 흡사했다.

사람을 바꿔치기하고, 목표에 접근한 다음 처리한다. 그리고 사라진다.

바이츠만 국장은 눈을 감고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신경을 타고 니코틴이 빠르게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바이츠만 국장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남자를 떠올렸다.

아직 젊은 나이이다. 영문도 모르고 죽기에는 억울할 것이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무기 회사의 에이전트와 결혼을 한 것, 그리고 그녀를 따라 이곳으로 왔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면, 아니 이번 방문에 아내를 따라오지 않았다면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결정하고 신 베트가 움직였다면, 그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작전 성공을 위한 80%의 정보 수집이 완료되었다.

바이츠만 국장을 비롯해 예루살렘에서 직접 날아온 경험 많은 요원들이 작전 세부 사항을 수집했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신 베트의 요원들이, 오랜 기간 검증받고 신뢰를 쌓아온 실력 있는 독립 요원들이 움직였다.

작전 성공을 위한 99%의 준비가 끝났다.

정확한 정보, 치밀한 계획,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

이번에도 성공할 것이다.

1%의 불확실성은 신의 영역이다. 99%의 완벽한 준비와 시행이 어그러진다면 그것은 신의 의지이다.

그리고 절대로 신은 이스라엘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바이츠만 국장은 마지막으로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후, 아직 불이 붙어 있는 담배를 그대로 바닥에 던져 버렸다.

***

츠네타카와 통화를 마친 한규호는 트레이시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트레이시는 그런 한규호의 모습이 마치 장난을 치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전화를 받기 전에 그런 모습을 보았다면, 그녀는 웃음을 지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츠네타카와 통화를 하는 한규호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트레이시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을 수 없었다.

요 며칠간 그와 상당히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에 도착한 첫날, 그가 무심한 인사를 끝으로 등을 보인 그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밤 회의를 핑계로 그와 시간을 보냈다.

기본적으로는 일본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논의하고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맥주나 와인 등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분위기가 가벼운 술자리로 변하고는 했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데이트를 하듯 호텔 근처 식당에서 가볍게 저녁을 먹은 두 사람은 평소처럼 스위트룸 거실에서 가벼운 안주 몇 가지를 펼쳐놓고 맥주를 한 캔씩 하고 있었다.

그때 츠네타카에게 전화가 걸려 왔고, 한규호가 응대한 것이다.

트레이시는 한규호가 츠네타카를 히로 짱이라고 부르면서, 친숙하게 대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언제나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불안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고 있다.

그 연기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츠네타카는 브랜든 허드슨이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트레이시의 불안감은 자신 또한 그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부분이었다.

어쩌면 한규호는 츠네타카에게 대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또 다른 가면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요 며칠간 많이 가까워졌다는 그녀의 느낌이, 한규호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속아 넘어간 착각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장난스러운 그의 어깨 으쓱거림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그녀의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었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게 되지?”

한규호가 물었다.

“아직 모르죠. 당신 친구 히로 짱이 일정을 알려 주지 않았으니까.”

트레이시는 애써 불안감을 감추며 답했다.

“흐음.”

트레이시의 답에 한규호는 이상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맥주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설마, 천하의 CIA가 그걸 모르고 있을까.”

맥주캔을 내려놓으며 말하는 한규호의 얼굴에는 여전히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트레이시는 그 미소가 어제의 장난스러운 미소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천하의 CIA라고 해도…….”

“어디지?”

트레이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규호가 다시 물었다.

트레이시는 확신했다.

그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확실히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츠네타카가 아키타에 있는 양조장에 접근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트레이시는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잠식하는 여러 가지 감정에 방해를 받아 제대로 미소를 짓지 못했다.

아마 한규호의 눈에는 그녀의 얼굴에 걸린 어색한 미소가 비치고 있을 것이다.

“힘들게 쌓은 신뢰 관계에 금이 가겠는걸?”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맥주캔을 들어 올렸다.

농담기가 섞여 있는 말투였지만, 트레이시는 그 말 안에 담겨 있는 날카로움을 눈치챘다.

그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아키타라……. 멀겠는데? 당일로는 힘들겠군.”

한규호는 여전히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코시자와 중공업에서는 신칸센 왕복표를 예매했어요. 표면적으로는 하루 일정일 거예요.”

트레이시는 백기를 들었다.

나중에 그에게 거짓말을 해야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한발 물러서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하루로 끝내지는 않을 것 같군.”

트레이시는 잠시 고민했다.

백기를 들었지만, 아직 완전하게 두 손을 전부 든 것은 아니었다.

지금 그녀를 백업하기 위해 도쿄에서 가동되고 있는 팀이 그녀에게 전달해 준 정보를 어디까지 노출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여자를 찾고 있다고 들었어요.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젊은 외국 여자를. 자세한 정보는 랭리에서 파악하고 있을지 몰라도, 내가 아는 것은 그 정도.”

그러나 그녀는 두 손을 마저 들기로 결정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한규호의 눈이, 그의 얼굴과는 달리 미소를 담고 있지 않았다.

트레이시의 어투는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어 하는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조금 딱딱해졌다.

“예뻤으면 좋겠군.”

그런 트레이시의 목소리와 달리 한규호는 여전히 가벼운 어투로 말했다.

트레이시는 한규호의 그 말이 그저 농담인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진심이 담겨 있는지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

여자를 찾는다. 다시 말해, 밤 시중을 들 여자를 찾는다는 이야기다.

그는 기대를 하고 있을까? 자신의 밤 시중을 들어 줄 여자가 예뻤으면 하고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순간 그녀의 가슴에 또 다른 감정이 피어올랐다. 아주 미세한 감정이었지만, 그녀는 분명히 그 마음을 느꼈다.

트레이시는 맥주 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입으로 가져가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 그리고 마음을 다 잡기 위해서.

작전 중이다. 정신 차려! 트레이시 테일러.

트레이시는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맥주의 탄산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떤 여자가 취향이죠?”

맥주 캔을 내려놓은 트레이시는 억지 미소를 담아 물었다.

“취향이라……. 글쎄, 딱히 뭐 이거다 하는 그런 스타일은 없는데.”

한규호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그 모습이 트레이시에게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트레이시도 누군가를 떠올렸다.

“기왕이면 예쁘면 좋긴 하지.”

한규호가 다시 트레이시를 보며 말했다.

“기준이 모호하네요.”

트레이시가 그 시선을 받으며 말했다.

“뭐 그렇지.”

한규호가 대충 얼버무렸다.

그 모습이 트레이시의 감정을 자극했다.

“잘 건가요?”

트레이시가 물었다.

< MISSION 04 : 츠바키 (2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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