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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198화 (199/386)

< MISSION 04 : 츠바키 (26) >

시게노 상무는 츠네타카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마에하라에게 물었다.

“말해 보게.”

말없이 기다리던 마에하라는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 봉투를 시게노 상무가 집어 들어 열고, 안에 들어 있는 사진을 꺼내어 제일 먼저 코시자와 회장에게 건네주었다.

코시자와 회장은 사진을 보았다. 여자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서양인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미인의 사진이었다.

“마리아 개트너(Maria Gärtner). 스물한 살입니다.”

“독일?”

시게노 상무가 물었다.

“독일계 폴란드인입니다. 카토비체(Katowice) 출신으로 가고시마추오(鹿児島中央)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습니다.”

시게노 상무가 말없이 마에하라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영어와 일본어가 능통한 고급 창부였다.

사진 속에 이 여자가 그들이 원하는 그 여자가 맞는지를 묻는 시선이었다.

“후쿠오카의 모델 에이전시 소속입니다.”

마에하라가 말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삼류 연예인이나 그라비아 모델의 소속사 역할을 하는 모델에이전시는 돈 있는 자들에게 고품질의 여자를 제공하는 일종의 포주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모델 에이전시 소속이라는 이야기는 그녀가 가고시마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후쿠오카에서는 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이야기다.

“어학 능력은?”

“문제없습니다.”

마에하라가 단언했다.

“조건은?”

시게노 상무가 물었다.

“1박 2일, 하룻밤을 보낸다는 조건으로 250만 엔입니다.”

코시자와 회장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룻밤으로는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러나 비밀을 지키는 가격을 포함하면 적당한 가격이다.

“지금 어디에 있나?”

사와베 국장이 물었다.

“신칸센을 타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카타역에서 17시 50분 출발하는 열차를 탔습니다. 22시 53분 도쿄역 도착 예정입니다.”

“신칸센?”

방위성의 사와베 국장이 물었다.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1,100km.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열차라는 신칸센으로도 5시간이 걸린다.

그 거리를 기차로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1시간 40분밖에 안 걸리는 비행편이 하루에 60편 넘게 다니는데, 일부러 2배 이상 걸리는 신칸센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오히려 신칸센이 더 비싸다.

“기록을 남길 필요는 없으니까요.”

마에하라가 정중하게 말했다.

사와베는 그제야 이해했다.

비행기를 이용하려면 신분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신칸센은 다르다. 다른 이가 구입한 티켓을 이용할 수도 있다.

마에하라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와베를 보면서 관료 놈들의 머리가 얼마나 딱딱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하긴, 그래서 자신이 필요한 것이었겠지만.

“도쿄역에 도착하면 저희 직원이 직접 픽업해서 준비된 곳으로 데려갈 계획입니다. 그곳에서 준비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준비하는 데 하루면 충분하겠는가?”

시게노 상무가 물었다.

“그 친구가 자료만 빨리 보내 준다면 반나절로 충분합니다.”

마에하라가 이 방을 떠난 츠네타카를 언급하면서 말했다.

일정과 제반 사항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그 정보가 있어야 후쿠오카에서 올라오는 여자에게 교육을 진행할 수 있으니.

“바로 보내 주겠네.”

코시자와 회장의 눈짓을 받은 시게노 상무가 말했다.

“문제없겠지?”

시게노 상무가 매서운 눈으로 물었다.

“문제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를 것이고, 알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설사 알게 되었다고 해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마에하라가 자신감 있는 말투로 말했다.

“그래야 할 것이야.”

사와베 국장이 말했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요건은, 절대로 자신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알지 못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조건만 지켜진다면, 그녀는 안전하게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시마다가 없어서 다행이군.

시게노 상무는 생각했다.

2일 후, 아키타에서 일정을 끝으로 그녀의 이름은 두 번 다시 언급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상시 발정 상태인 시마다라면 분명 군침을 흘렸을 것이 분명하다.

분명히 후쿠오카로 가서 그녀를 찾을 것이다.

“진행하도록.”

코시자와 회장이 사진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마에하라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

하카타역에서 17시 50분에 출발한 노조미 58호 열차 그린샤(특실)에 앉아 있는 마리아 개트너는 불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괜찮아?”

옆자리에 앉은 여자, 모델 에이전시 매니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네.”

마리아 개트너는 그녀에게 차가운 표정으로 짧게 말했다.

마리아는 걱정하는 척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역겹게 느껴졌다.

2일 전 사장이 직접 가고시마까지 내려와서 말했다.

도쿄에 가서 한 남자를 모셔야 한다. 페이는 하룻밤에 1백만 엔. 수수료 10%를 때고, 90만 엔을 현찰로 주겠다고 했다.

마리아는 내키지 않았다.

단 하룻밤에 90만 엔. 물론 많은 돈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불안함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마리아는 거절하려 했다.

그런 그녀에게 사장은 놓치기 힘든 좋은 기회라고 회유했다.

도쿄에서 높은 사람을 모시게 되면 인맥도 쌓을 수 있고, 나중에 방송에도 출연할 수 있는 기회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최고 인기 연예인들의 이름을 몇 개 들먹이면서, 그녀들도 데뷔 이전에 귀한 분들을 모시는 일을 했었다고 말했다.

마리아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회유가 아니었다. 협박이었다.

사장은 야쿠자 쪽 사람이었고, 그가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의 매니저인 이 여자가 여러 번 강조했었다.

지금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지만, 이 여자도 사장과 마찬가지로 포주나 다름없었다.

마리아가 몸을 팔아 번 돈을 빨아먹는 또 다른 기생충이었다.

-오카야마. 오카야마. 이 열차는 오카아먀 역에 정차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카야마, 신코베, 신오사카, 교토, 다고야, 신요코하마, 시나가와, 도쿄.

아직 지나가야 할 역이 한참 남았다.

마리아는 눈을 감았다.

그래, 차라리 잘되었어. 이번 기회에 제대로 기회를 잡도록 하겠어.

하룻밤에 1백만 엔을 지불할 정도의 남자라면 분명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그 남자를 휘어잡을 테다.

방송국은 외국인을 좋아했다. 일본을 사랑하고,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들을 좋아했다. 특히, 마리아처럼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은 언제나 시청률의 보증수표였다.

마리아는 젊고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일본어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녀가 지금 방송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기회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마리아는 눈을 감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세계 최고의 정시성을 자랑하는 일본의 신칸센답게 19시 32분에 오카야마 역에 도착한 노조미 58호는 정확히 1분간 정차한 후에 다시 출발했다.

눈을 감은 마리아는 열차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린샤의 문이 열리며 승객이 들어오는 소리도 들었다.

마리아는 그 소리에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눈을 감은 채로 자신의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강해져야 해. 약해지지 마.

그렇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마리아 개트너?”

그런 그녀의 주문이 누군가의 목소리에 의해 깨어졌다.

마리아는 눈을 떴다. 지금, 도쿄로 가는 신칸센 안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릴 이유가 없었다.

마리아는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양복 입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마리아 개트너?”

남자가 다시 물었다.

마리아는 본능적으로 이 남자들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고개를 젓고 싶었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척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를 잠식한 공포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남자는 씨익 웃었다.

마리아는 그 웃음이 먹이를 찾은 짐승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누, 누구시죠?”

옆자리에 앉은 매니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내밀었다.

“경시청.”

남자가 벚꽃 문양이 들어간 경찰 수첩을 보여 주면서 말했다.

“다음 역에서 내려 주셔야 되겠는데.”

다른 남자가 말했다.

“무,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매니저가 약하게 반항했다.

매니저의 말에 경찰 수첩을 보여준 남자가 동료로 보이는 남자를 돌아보며 웃었다.

마리아 개트너는 그 웃음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어.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웃음이었다.

남자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마리아 개트너와 매니저 두 사람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리아 개트너 그리고 카와다 미코토. 두 사람을 매춘방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합니다.”

매니저는 깜짝 놀랐다.

경찰로 보이는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알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조용히 가자고. 여기서 큰 소리로 ‘매춘방지법’ 위반이라고 소리치고 수갑 채우면 수치스럽지 않겠어? 안 그래, 포주아가씨?”

매니저 카와다 미코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미칠 듯이 뛰는 심장을 어떻게라도 진정하기 위해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리아의 손을 맞잡을 수밖에 없었다.

마리아의 손도 자신만큼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다음 역에서 내린다. 이해되나?”

두 사람은 남자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착한 아이군.”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노조미 58호는 정확히 20시 5분에 신코베역에 멈추었다.

열차가 완전히 멈추고, 문이 열리자, 일본인과 서양인으로 구성된 두 명의 여자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열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를 따라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런 네 사람에게 특별한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서양인 여자의 날씬한 몸매에 잠깐 시선을 주기도 했지만, 승객들은 그저 1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열차를 타기 위해 바쁘게 움직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가운데,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일본인으로 보이는 동양인 한 명, 그리고 동양인과 서양인의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젊은 여자 한 명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열차에 올랐다.

열차에 오른 그들은 그린샤 객차로 들어가, 조금 전 마리아 개트너와 그녀의 매니저가 앉아 있던 자리, 주인이 중간에 내려 도쿄까지 비워져 있어야 하는 그 좌석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

-탑승했습니다.

도쿄 치요다구 니반초에 위치한 주일 이스라엘 대사관 지하 상황실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는 이어셋으로 들어오는 보고를 받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상황판으로 걸어가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 붙어 있던 사진 중 두 장에 엑스 표시를 그었다.

조금 전 신칸센에서 체포당한 두 여자의 사진에 빨간색 엑스 표시가 그어졌다.

그의 시선이 옮겨졌다.

여러 장의 사진을 거쳐, 그의 시선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진에 머물렀다.

흑백으로 인화된 사진에는 한 남자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별 특색 없는 동양인의 얼굴이었다.

남자는 그 사진 속 남자를 바라보았다.

브랜든 허드슨, UC데이비스 산하 양조연구원 소속 연구원.

그리고 이번 작전의 목표.

이스라엘 정부의 총리 직속 국내 첩보 기관(Israel Security Agency), 일명 신베트(Shin-Bet) 대외협력사업국의 다비드 바이츠만 국장은 팔짱을 낀 채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MISSION 04 : 츠바키 (2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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