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95화 (196/386)

< MISSION 04 : 츠바키 (23) >

코시자와 회장, 사와베 국장, 그리고 시게노 상무는 한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10억 엔은 적은 돈이 아니지.”

시게노 상무가 말했다.

“평생을 정보기관에서 일한 만큼, 가치는 분명히 있다고 평가됩니다. 다만 10억은 좀 많은 것 같습니다.”

사와베 국장도 거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군용 차량이 무엇인지 아는가?”

코시자와 회장이 나이초의 사와베 국장에게 물었다.

“M54입니다.”

사와베 국장이 답했다.

인터네셔널하베스터가 디자인하고 다이아몬드T, 인터네셔널하베스터, 카이저지프, 맥 네 개 사가 1951년부터 1965년까지 제작한 5톤 트럭,

카코, 덤프, 트랙터, 레카, 밴, 또는 장갑차 상부를 얹어 경장갑차로 전환이 가능한 이 트럭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냉전 시기를 통해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미국의 우방 국가는 물론 적성 국가에서도 폐기 예정인 트럭을 서류 조작해 도입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사랑받은 군용 트럭이었다.

코시자와 회장의 시선이 시게노 상무에게로 옮겨졌다.

사와베 국장은 시게노 상무로 옮겨진 코시자와 회장의 시선에서 자신의 답이 틀렸음을 눈치챘다.

“랜드크루저.”

시게노 상무가 사와베 국장을 보면서 토요타에서 제작한 4륜구동 SUV의 이름을 말했다.

코시자와 회장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1986년에 리비아와 차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지.”

시게노 상무가 사와베 국장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전력상으로는 소련에서 수입한 전차와 장갑차로 무장한 리비아군이 절대적으로 우세했지. 국제사회에서도 당연히 리비아가 압승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실제로는 리비아군이 대패했지. 그리고 그 중심에 랜드크루저가 있었고. 랜드크루저를 개조한 테크니컬로 리비아군을 박살 냈지. 분쟁 지역에서 몰아내는 것은 물론 리비아 본토로 들어가 공군기지를 점령하고 전투기를 탈취할 정도의 대승이었지. 그리고 해외 언론은 그 전쟁을 토요타 전쟁이라고 불렀지.”

“생각이 짧았습니다.”

사와베 국장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토요타가 제작한 랜드크루저는 군용차량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일반 군용차량보다 싸고, 정비도 쉬웠다. 많이 만들어지고, 많이 팔린 만큼 부품 수급도 용이했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용차량을 판매한 나라이지만, 사람들은 일본을 무기 수출국으로 생각하지 않지.”

시게노 상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주에서 잠수함을 팔려다가 프랑스에게 졌지. 아랍에미리트에는 수송기 판매에 실패했고, 영국에 수출하려던 해상 초계기는 미국에, 태국에 수출하려던 방공 레이더는 스페인에 빼앗겨 버렸지.”

사와베 국장은 코시자와 회장의 차분한 목소리에 분노가 스며들었다고 느꼈다.

“인도에, 뉴질랜드에, 필리핀에, 그리스에. 수많은 나라에 이 땅에서 우리의 손으로 만든 무기를 팔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좌절되었다. 반면에 우리의 이웃인 한국은 어떠한가,”

코시자와 회장의 목소리에 확실히 분노가 스며들었다.

“한국은 인도네시아에 전투기와 잠수함을 팔았다. 영국 로열네이비는 한국에 군함을 발주했고 터키, 폴란드, 인도, 핀란드, 에스토니아, 노르웨이가 한국에서 만든 자주포를 쓰고 있다!”

코시자와 회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두 사람은 말없이 있었다.

“70년도에 조선 놈들이 그 망할 놈의 하푼을 사겠다고 미국에 입찰을 넣었지! 우리 자랑스러운 일본계 로비스트들이 워싱턴에 돈을 뿌려 가면서 하푼 수출을 막았어! 이긴 줄 알았지! 이긴 줄 알았어!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 조선 놈들이 프랑스로 달려갔어. 그리고 엑조세를 팔아 주면 A300도 같이 사 주겠다고 딜을 쳤지. 프랑스는 만세를 불렀지. 미국은 부랴부랴 한국에 달려가 하푼을 팔겠다고 이야기했고, 망할 놈의 조선은 하푼과 엑조세를 동시에 운용하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지! 대한항공 회장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고, 우리는 엿을 먹었고!”

유명한 이야기다. 한국이 대함미사일을 도입하면서 일본이 방해를 했지만 실패했다. 오히려 한국의 전력만 강화해 준 이야기다.

일본도, 일본의 말을 들은 미국도, 그리고 보잉도 엿을 먹었다.

보잉과 더불어 상업용 항공기를 양분하고 있는 에어버스의 시작이 바로 그 사건 덕이었다.

대한항공 회장이 에어버스 본사가 있는 툴루즈에 갈 때마다 레드 카펫이 깔리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무기 수입에서도 마찬가지야. 일본은 매년 150억 달러가 넘는 무기를 사들이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지. 왜? 그 망할 놈의 FMS 때문에!”

코시자와 회장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FMS(Foreign Military Sales, 대외 군사 판매).

미국은 일본과의 무기 거래에서 자국이 주도권을 가진 FMS 방식을 고수한다.

즉 미국이 가격을 결정하고, 일본은 대금을 선납한다.

돈은 미리 주고도 언제 물건을 받을지, 어떻게 받을지 알 수 없고, 계약 내용이 바뀌어 거래 규모가 축소되어도 선납된 금액 중 초과분은 돌려받지 못한다.

“같은 FMS인데! 똑같이 FMS의 적용을 받는데! 왜 조선 놈들은 고객으로 대접을 받으며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우리는 왜 더 낮은 자세로 굽신굽신하면서 그들의 조건대로 무기를 사들이고 있는 거지! 왜!”

코시자와 회장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우리가 무기를 사면 그렇게들 말하지. 우경화다, 재무장이다! 반면에 한국이 무기를 사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신무기를 도입했다고 말하고! 이게 현실이야! 세계 최고의 무기 기술을 가졌지만 망할 놈의 군대가 없어서 이런 처참한 꼴을 당하고 있다고!”

부끄러운 이야기다. 무엇보다 조선 놈들보다 뒤처졌다는 사실에 그들은 더욱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코시자와 회장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이 이야기만 나오면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 그 병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코시자와 회장이 조금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와베 국장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눈치를 채지는 못했겠지?”

코시자와 회장이 물었다.

“그는 끝까지 나이초에서 자신을 영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와베 국장이 말했다.

“이름이 뭐였지?”

“모용진입니다. 해외정보실 실장을 역임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찾아봐. 국정원에 꼭 그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사와베가 답했다.

“다음으로 넘어가지.”

코시자와가 말했다.

“마에하라 군에게 여자를 요청해 두었습니다.”

코시자와는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흥분의 여파가 그의 신체에 남아 있었다.

에이전트의 남편에게 붙일 용도이다. 아름다워야 하고,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해야 한다. 기본적인 교양과 지식을 갖춰야 하고, 지시에 따라 남자에게 몸을 허락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과 어떠한 연관성도 찾아낼 수 없어야 한다.

그런 여자는 찾기 힘들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돈이 있다면.

“차질 없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또 내가 알아야 할 사항은?”

코시자와 회장이 말했다.

“시마다가 딴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게노 상무의 입에서 시마다의 이름이 나오자 코시자와 회장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딴생각이라면?”

“시마다가 에이전트에게 개인적인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에하라 군에게 따로 그녀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습니다.”

코시자와 회장은 그 남자를 떠올렸다.

현직 중의원 시마다 아리히로.

아버지에게 지역구를 물려받은 후계 정치인. 떠오르는 방위족(자주국방화를 주장하는 정치계파) 중의원이었기에 모임에 합류시킨 그가 다른 사람 모르게 모임의 잡일을 처리하는 활동 우익 마에하라에게 그 여자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는 이야기다.

“의도는?”

“개인적인 관심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에하라 군도 그렇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코시자와 회장의 이마에 잡힌 주름이 더욱 짙어졌다.

그를 이 모임에 참여시킨 것이 잘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고를 해 둘까요?”

사와베 국장이 물었다.

“아니, 우선 감시만 붙이도록.”

코시자와 회장은 그렇게 말했다.

***

시마다는 한 여자 위에 올라타 있었다.

여자 위에서 그는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밑에 깔려 있는 여자는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로 시마다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평소의 시마다였다면 그가 좋아하는 고통스러워하는 상대방의 얼굴에 진작에 일을 끝냈으련만은, 이날은 그렇지 않았다.

부족했다. 아무리 흥분하려고 해도 부족했다.

그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마치 사춘기 소년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비행기에서 그녀를 보고, 그리고 그녀가 자신과 연이 있음을 알게 된 그날 이후로 그녀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에 대한 생각을,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보고 싶은 욕망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시마다는 오늘도 회원제 비밀 클럽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거기 있는 여자 중에서 가장 그나마 그녀와 가장 흡사한 여자를 골라 대리 만족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족했다. 그녀는 충분히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보이고 있음에도, 시마다의 성에 차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시마다는 생각했다. 가지고 싶다. 가져야 한다.

그동안 그가 원해서 가지지 못한 것은 거의 없었다.

중의원이 되고 나서부터는 훨씬 더 수월했다. 돈과 권력,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한 수단을 양손에 들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애초에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미련을 가자지 않았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탐스러운 엉덩이를 가진 긴자의 요릿집 긴류의 여주인 처럼.

그녀도 가지고 싶다. 하지만 그녀의 주인은 코시자와 회장이다.

코시자와는 단순한 기업의 회장이 아니다. 일본의 정신을 이어 가는 뜻있는 지사들을 이끄는 정신적인 지도자이며, 일본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선친에 이어 대업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었다.

시마다가 총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의 여자를 건든다는 것은 단 하나의 결과로 귀결될 뿐이다.

파멸.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 종국에는 파멸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시마다는 그저 군침만 흘릴 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지기로 보면 그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시민, 남편이 있는 여자, 그리고 일본 정부와 방산 계약을 앞두고 있는 MD시스템즈의 에이전트.

그 어느 것 하나 그가 손댈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전부 제처 두고서라도 마지막 조건은 그의 영역을 넘어선다.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욕심이 난다. 포기할 수가 없었다.

밑에 깔려 있는 여자가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

시마다는 그녀를 힐긋 본 후 계속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이어 갔다.

마에하라에게 개인적으로 부탁을 했다. 그녀의 정보를 알아봐 달라고.

지금 생각하면 실수였다. 명백한 실수였다.

마에하라는 코시자와 회장의 개다. 그가 키우는 번견이지, 시마다에게 명령에 따르는 개가 아니다.

어쩌면 이미 보고를 했을는지도 모른다.

코시자와 회장은 그가 그녀와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마에하라에게 이야기함으로써 그나마 있는 가능성마저도 날려 버리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포기해야 하는데, 모든 화살표가 포기하라고, 그런 년은 잊어버리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포기가 안 된다.

포기가 안 되니까 그게 더 미칠 노릇이었다.

“제, 제발…….”

밑에서 여자의 간청이 들려온다.

시마다는 고개를 숙였다. 눈물범벅인 여자가 간청하고 있다.

마음은 차갑게 식어 있는데, 약 기운 덕분에 그의 것은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거기에 여자의 눈물이 보이자 시마다의 마음에 조금 불이 붙었다.

가지고 싶다. 가질 것이다. 그년이 밑에 깔려서 눈물 흘리며 간청하는 모습을 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가 필요하다. 시마다의 명령에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상대방의 목줄을 물어 줄 그런 개가 필요하다.

방법이 있을 것이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마다는 더욱 힘을 주었다.

***

“추운가?”

갑작스럽게 오한이라도 느꼈는지 몸을 떠는 트레이시를 보면서 한규호가 물었다.

“그게, 갑자기 느낌이…….”

트레이시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많이 마셨나 보군.”

한규호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웃었다.

츠네타카의 초대를 받아 저녁을 먹고 3차까지 술을 마신 두 사람은 츠네타카가 잡아 준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바로 방으로 돌아가려는 한규호를 트레이시가 오늘 회의 내용을 설명한다는 핑계로 잡았다. 그리고 거실 소파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보고 있었다.

한규호는 그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그녀가 설명하는 내용은 미국과 일본 양국에 있어서 기밀에 준하는 내용이었지만, 한규호는 거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한규호는 그녀가 왜 쓸데없는 설명을 하는지 이유를 알았다.

그녀는 둘만의 시간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냥 열심히 그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척을 하고 싶었다.

“아무튼 오늘은 그렇게 끝났어요.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어요.”

대략 20여 분간 이어진 트레이시의 브리핑이 이 말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었다.

“고생했군.”

대충 흘려 들은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눈빛에서 어떤 기대가 느껴졌다. 그리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오늘 수고 많았다고,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 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괜찮으면 가볍게 한잔 더 하겠냐고 말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아니면, 그저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눈은 많은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아름다운 여자였다. 단순히 미적인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강인함 같은 그런 것들을.

“포인세티아.”

한규호가 말했다.

“네?”

트레이시가 뜬금없는 그의 말에 되물었다.

“당신에게서는 포인세티아가 떠오르는군.”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길.”

한규호는 인사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트레이시는 바라만 보고 있었다.

< MISSION 04 : 츠바키 (2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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