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90화 (191/386)

< SSION 04 : 츠바키 (18) >

다섯 번째 따귀를 맞았을 때, 코야노는 완전히 무장해제 되어 있었다.

숨이 막힌다. 숨이 막히니 정신이 아득해지려 한다.

그럴 때마다 그의 뺨에 작렬하는 충격이 놓치려는 정신을 억지로 잡아 깨운다.

숨 막히고 아프다. 고통스럽고 울고싶다.

1분이나 되었을까? 고작 따귀 몇 대를 맞았을 뿐인데, 코야노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장해제되어 있었다.

“자, 변호사 선생님 보러 가자고!”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형사의 외침이 들렸다.

이제 또 다른 충격이 그의 뺨에 작렬할 것을 알고 있는 코야노는 그의 온 신경을 타고 흐르는 공포를 느꼈다. 이제 곧 고통으로 바뀔 공포였다.

“카게야 상, 그쯤 하시죠. 그러다 부검할 때 얼굴 못 알아보겠어요.”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코야노의 귀에 들려왔다.

코야노에게는 그의 목소리가 부처님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쯤 하시죠. 그렇게 말했다.

뒤에 부검 어쩌구 한 것 같지만, 어찌되었건 그 목소리에 자신에게 가해지던 고통이 멈추려 했다.

그 사실이 중요했다.

그의 목을 잡고 있던 손이 풀렸다. 코야노는 격하게 기침을 토해 냈다.

격한 기침 때문인지, 그의 입과 코 그리고 눈에서 체액이 줄줄 흘렀다.

“눈 떠.”

코야노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던 형사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재빨리 눈을 떴다. 그러나 그의 각막을 덮은 눈물 때문에, 그의 시야는 그저 뿌옇게 보일 뿐이었다.

“코야노 상.”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부처님의 목소리였다.

“제 말 들리죠?”

코야노는 목소리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코야노의 목숨을 살려 준 부처님, 토도로키 이와미(舎利仏厳未) 경시(警視)는 눈살을 살짝 찡그렸다.

코야노가 너무 격하게 고개를 흔드는 바람에 그의 침과 콧물이 튀었기 때문이다.

“좋아요. 코야노 상, 우리 쉽게 갑시다.”

토도로키는 그에 옷이 튄 체액을 용서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자, 절 보세요. 사람은 눈을 보고 이야기해야지.”

그 말에 코야노는 고개를 돌렸다.

부처님의 목소리는 왼쪽에서 들려왔고, 부어오르기 시작한 얼굴 때문에 왼쪽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부처님을 시야에 담았다.

“지금 코야노 상은 뭔가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게 있어요. 그게 뭔지 아시겠어요?”

코야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는 몰랐지만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토도로키는 피식 웃었다. 좋은 분위기다.

“그러면 뭔지 말해 볼까요? 코야노 상의 라스트 앤서(Last Ansewr)?”

“제, 제가.”

입이 열리고 쇳소리가 튀어나왔다. 목이 잡혀 있느라 성대에 압박이 있었고, 얻어맞은 충력으로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말해야 했다.

“제가 거짓말을 해서.”

코야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말했다.

제발 정답이길!

“잔넨(残念, ざんねん)! 아깝습니다! 거의 다 왔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토도로키는 마지막 단계의 문제를 틀린 도전자에게 외치는 퀴즈쇼의 진행자처럼 소리쳤다.

“자, 안타깝습니다. 이로써 상금은 몰수되고 참가자께서는 벌칙 게임을 받겠습니다. 벌칙 게임은 삔따(ビンタ, 따귀)!”

토도로키의 외침에 코야노의 몸이 크게 떨렸다.

“하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자, 진정하시고.”

코야노가 살려 달라고 외치기 전에 먼저 토도로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좋아요. 자, 코야노 상, 아니 쿠로쿠라고 불러 줄까요? 참 누가 지었는지 이름 잘 지었어. 크랙코카인 판매자니까 쿠로쿠. 직관적이고 좋아요. 브랜드 네이밍이라는 것은 이래야지, 그럼.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코야노 상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뭐냐 하면 말이죠.”

코야노의 고개가 크게 움직였다. 이미 예상한 토도로키는 몸을 살짝 뒤로 빼면서 분비물을 피해냈다.

“코야노 상이 잡혀 온 이곳은 바로 특명수사계라는 것이죠. 알아요? 특명?”

코야노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또 그러네. 잘 모르면서 고개 끄덕이는 거 그거. 아아주 나쁜 습관이에요. 상대방에게 오해를 살 수도 있고, 특히 배울 때는 진짜 안 좋아. 배움에는 최악의 습관이야. 알아요? 진짜? 확실히?”

코야노는 고개를 저었다.

“좋아요. 그렇게 나오셔야지. 특명은 모르는 게 당연하지. 쿠라쿠 상이야 기껏해야 마약대책실이나 풍속(風俗)계 애들이나 만나 보셨겠지. 수사1과도 처음이겠네. 맞죠?”

코야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사1과는 알아도 특명수사계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래요. 알려 드리죠. 특명수사대책실은 간단히 말해서 수사1과 중에서도 아주아주아주아주 어려운 사건만 담당하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어요. 미국으로 치면 FBI쯤 되려나? 아무튼 약 팔고 여자나 팔면서 선량하게 살아온 코야노씨가 왜 이곳에 오게 된 것일까? 궁금하죠?”

코야노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거참 예의가 없네. 사람이 말하는데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아주 나쁜 버릇이 있네.”

“구! 궁금합니다!”

코야노가 소리쳤다.

“좋아요. 소리는 치지 말고. 간단히 말해서 쿠라쿠 상이 보낸 여자가 죽인 미국 남자가 꽤나 중요한 남자였다는 이야깁니다. 이해되나요? 아, 맞아요. 그 여자가 죽인 건 아니죠. 뭐 그 뚱보 미국인이 안 서는 물건을 세우겠다고 약 먹고 골로 간 것은 맞는데, 뭐랄까, 그렇게 끝낼 이야기가 아니라서.”

“제가 아닙니다!”

코야노가 외쳤다. 그리고 그 말을 토도로키의 얼굴이 굳어졌다.

완전히 다 만들어 놓은 밥인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설익어 있었다.

토도로키는 한발 물러났다.

“이 자식 진짜 안 되겠군,”

반대로 한발 물러나 있던 카게야 경부가 그렇게 말하며 한발 앞으로 나왔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저 맞습니다! 전화 받았고! 여자 보냈는데! 제가 보낸 여자는 그냥 돌아왔어요! 돌아가신 아버지를 걸고 정말입니다!”

코야노가 눈물, 콧물, 침을 튀기며 있는 힘껏 소리쳤다.

***

일본 정부는 2012년에 국가공무원 1종 시험의 명칭을 총합직(総合職) 시험으로 바꾸었다.

이름이 바뀌었지만, 다른 것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국가공무원시험이건 총합직시험이건 이름과 상관없이 그 시험에 붙은 사람은 캐리어 구미(組)라고 불렀고, 경부보(한국경찰계급 경위)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경부보로 경찰 생활을 시작한 캐리어 구미는 1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경부로 승진하고, 스물아홉 살이 되면 경시(警視)로 승진한다.

지난해에 경시가 된 토도로키 이와미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왼쪽 얼굴이 퉁퉁 부운 남자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그가 몇 번씩 했던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 미국인 남자는, 단골이라고는 못 해도, 그래도 나름 이쪽에서는 유명 인사여서, 그, 팁도 후하게 주고. 그, 그래서 전화가 왔을 때, 바로 여자를 보내질 못했습니다. 취향에 맞는 여자를 찾는다고, 그, 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뭐 또 뭐냐, 그,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진짜 최선을 다해서 여자를 구한다고 했는데, 크흑.”

거기까지 말한 코야노는 뭐가 억울한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토도로키는 그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자 어깨를 으쓱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것은 약쟁이들의 특징어서 이해가 되긴 했지만, 이해가 되는 것과는 별개로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가 진짜 억울한 게, 우리 애가 가서 그랬으면 진짜 이런 말 안 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찾아서 보냈더니 갑자기 캔슬 전화가 왔습니다. 이미 택시 태워서 호텔로 보냈는데. 진짜, 내가 미치고 억울하고 팔짝 뛰고 싶은 것이, 택시비에 여자에 기본 수당 해서 오히려 손해를 봤습니다.”

코야노가 가슴을 탕탕 치면서 말했다.

“단골이라면 이해하겠는데, 단골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차라리 뜨내기라면 어차피 볼 일 없으니 거마비라도 뜯어내거나 하겠는데, 그게 또 어정쩡한 상황이라, 씨발 똥 밟았다 하면서 넘어갔단 말입니다. 그게 벌써 몇 주가 지났는데…… 크흐흡.”

가만히 듣고만 있던 토도로키는 그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래, 억울하지. 참 억울하겠지.”

“진짜, 이 씨, 제일 억울한 게,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벌써 3주나 지난 일로 끌려와서 뚜들겨 맞고, 막. 진짜, 돈도 그렇고, 막. 그게, 진짜, 억울하고, 아 씨, 어어엉.”

코야노는 그렇게 말하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

토도로키는 그런 그의 등을 두드리며 카게야 경부를 바라보았다.

카게야 경부는 고개를 좌우로 작게 흔들었다.

매가 부족해서 그렇다. 그게 카게야 경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열다섯 살이나 적은 토도로키는 그의 상관이었고, 캐리어구미였다. 그러니 그가 하고 싶은 데로 둘 수밖에.

“자, 자, 코야노. 그만 울고. 그만 좀 울어. 다 큰 남자가, 진짜.”

토도로키는 그렇게 말하고 크리넥스 몇 장을 뽑아 그에게 건넸다.

코야노는 그가 건네준 휴지로 눈물을 닦고 코를 풀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보낸 여자는 객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네, 진짜입니다. 당장 불러올 수 있습니다!”

코야노가 말했다.

토도로키는 뒤로 걸어가 인화된 사진 몇 장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제임스 붐의 객실에서 나온 여자가 찍혀있는 CCTV 영상을 인화한 사진이었다.

“이 여자 아니야? 확실히?”

사진 속 여자는 밤임에도 선글라스를 꼈고, 머리와 얼굴에는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야시시해 보이는 그녀의 복장이 그녀가 창부임을, 그녀의 팔에 걸린 비싼 가방이 그녀가 고급 창부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우리 애 아닙니다. 우리 애들은 얼굴 까고 다녀요. 제가 그렇게 시킵니다. 걸어 다니는 간판인데, 얼굴 가리고 다니면 안 된다고. 그리고 옷도 달라요. 저렇게 천박하게 안 입힙니다. 제가 보낸 그년 당장! 당장 불러올 수 있어요! 있어요!”

토도로키는 다시 카게야를 바라보았다.

카게야 경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신호였다.

토도로키는 고개를 돌려 약쟁이이자 포주인 코야노를 바라보았다.

여자를 불러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자를 불러와 대질심문을 하든가, 아니면 윽박을 지르든지 해서 진실을 파악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여자야 매춘방지법으로 처벌을 받겠지만 토도로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문제는 코야노의 말이 진짜라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호텔에서 제임스 붐은 코야노의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여자를 요청했다.

그것이 제임스 붐이 객실에서 건 유일한 전화였다.

호텔에서 걸려온 유일한 전화를 받은 코야노는 여자를 보냈다. 그리고 오지 말아야 할 캔슬 전화를 받았다. 캔슬 전화를 받은 코야노는 여자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런데도 여자가 들어갔다. 그리고 제임스 붐이 죽었다.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그것도 아주 복잡해진다.

토도로키는 다시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사진 속의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지? 너는?

***

교토에 있는 스타벅스 니넨자카야사카차카야(二寧坂ヤサカ茶屋)점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벅스 중 하나였다.

1백 년 된 목조 고택을 개조해 만들어진 이곳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다다미가 깔려 있는 스타벅스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폐점 시간이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점내에는 고객들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고객 중, 차분해 보이는 모습으로 커피를 마시는 한 여자가 있었다.

특색 없는 SPA 브랜드의 반팔 흰색 티셔츠에 약간 짧은 듯한 데님 미니스커트와, 스커트와 어울리는 스니커는 스포티한 느낌을 주었다.

교토를 방문한 관광객이라기보다, 주변에 사는 여대생 같은 패션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주된 분위기는 그런 스포티함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아름다움이었다.

하나로 질끈 올려 묶은 머리, 기초화장만 살짝 한 얼굴. 어찌 보면 일본인 같기고 하고, 어찌 보면 서양인 같기도 한 다국적인 아름다움은 매력을 넘어 마력 같은 오라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 오라에 이끌리듯, 주변의 사람들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그녀를 힐끗힐끗 훔쳐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러한 시선을 눈치 못 챘다는 듯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컵을 잡았다.

온기가 남아 있는 플랫 화이트가 립밤이 옅게 발린 그녀의 입술을 타고 넘어 들어갔다.

여자를 몰래 훔쳐보던 남자 직원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말 그대로 숨 막히는 모습이었다.

여자는 잔을 내려놓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폐점 시간까지 약 20분가량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교토의 골목에는 어두움과 정적이 천천히 쌓여 가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교토는 특히 어둠과 정적이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과는 대척점에 있는 이곳에 있을 때마다, 그녀는 지구를 떠나 외계 행성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그래서 이곳을 좋아했다.

폐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스타벅스 니넨자카야사카차카야점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키가 크고 수트가 잘 어울리는, 밀라노 패션쇼의 남자 모델 같은 라틴계 남자였다.

남자가 들어오자 여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녀를 훔쳐보던 점원의 마음에 실망감이 확 번졌다.

그러면 그렇지.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에게 남자가 없을 리가 없다.

어차피 말을 걸 용기는 없었지만, 여자에게 어울릴 정도로 잘생긴 남자여서 더욱 그의 실망감은 커졌다.

“עֶרֶב טוֹב.”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며 인사했다.

그 둘을 훔쳐보던 남자 직원은 그게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 들어 보는 언어였다.

< SSION 04 : 츠바키 (1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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