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4 : 츠바키 (17) >
츠네타카가 MD시스템즈의 에이전트인 애블린을 담당하게 된 이유는 한규호의 생각처럼 그가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규호의 생각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능력은 단지 얼굴과 목소리만은 아니었다.
그는 게이오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学)을 졸업한 게이오보이(귀족적이고 부유한 이미지의 게이오대학 남학생의 별명)였고, 졸업 후 코시자와 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에서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고 일본으로 돌아온 츠네타카가 코시자와중공업에 입사했고, 단 한 번의 승진 누락도 없이 지금 자리까지 올라간 그는 향후 코시자와중공업을 이끌어 갈 임원 후보생이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츠네타카도 편한 밤 되세요.
전화기 너머 애블린의 인사를 끝으로 통화가 끝이 났다. 그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전화를 들어 자신의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이상입니다.”
츠네타카가 회의실에 둘러앉은 남자들에게 말했다.
“호텔에서 9시, 회사에 도착해서 차 한잔 마시고, 회의 준비 한다고 하면 10시. 결국 오전에 회의는 대략 1시간 반 정도밖에 못 하겠군.”
회의실 한쪽에 앉아 있는 부장이 살짝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츠네타카는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도쿄대를 나와 코시자와중공업에 입사해 부장의 자리에 오른 그 남자는 아직까지는 츠네타카의 상사였다. 그래서 향후 자신보다 위로 올라설 츠네타카에게 불만을 표시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준비는?”
그런 그의 투덜거림에 담한 것은 시게노 이오(重野懿王) 상무였다.
시게노 상무는 회의 준비와 관련해 투덜거렸던 부장에게 물었다.
“문제없습니다.”
부장이 말했다. 아직 불만이 묻어 있었다.
“……확실히?”
시게노 상무가 다시 물었다. 그 말투가 얼음처럼 날카로웠다.
“네? 넷.”
그제서야 자신이 누구와 대화하는지를 인지한 부장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그런 그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또는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시게노 상무는 후자의 시선으로 부장을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츠네타카와 눈이 맞추졌다.
츠네타카는 그의 눈빛에서 그의 의중을 읽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시게노 상무의 시선을 받은 츠네타카는 자세를 다시 한번 바로 했다.
시게노 이오 상무.
도쿄대를 나와 국가공무원1종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한 후 공직 생활의 시작과 끝을 방위성에서 보낸 전 관료.
관료 출신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 직위인 방위성사무차관을 마지막으로 공직 생활을 끝냈고, 퇴직 후 코시자와중공업의 상무가 되었다.
낙하산으로 내려와 그저 정부 부처와의 징검다리 역할이나 하는 다른 관료들과는 달리, 시게노 이오 상무는 코시자와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지금 회의실에서 가장 높은 직위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하는 말은 코시자와 회장의 말이었고, 그에게 하는 말은 코시자와 회장에게 하는 말이었다.
“기본적으로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남편과 같이 있을 때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만, 업무와 관련된 장소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정보를 드러내거나 하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선을 긋는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츠네타카가 보고를 시작하자 시게노 상무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음으로써 긍정을 표시했다.
“오후에 서류 검토를 하고…….”
츠네타카는 말을 멈추었다. 시게노 상무가 손을 드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시게노 상무는 손을 들어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킨 다음, 그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말했다.
“추가로 보고할 사항이 있나? 없으면 이만 물러들 가도록.”
시게노 상무의 말에 사람들은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츠네타카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상무는 독대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 의중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가고, 문이 닫히고, 두 사람만이 남았다는 확신이 들자 시게노 상무가 입을 열었다.
“가능성이 있나?”
츠네타카는 시게노 상무의 질문에 숨어 있는 의도를 알아챘다.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답했다.
“이유는?”
“남편과의 관계가 돈독해 보였습니다.”
시게노 상무는 조금 전에 받은 보고서 내용을 떠올렸다.
몇 시간 전 그 여자 남편, 브랜든 허드슨에 대한 1차 보고서가 들어왔다. UC 데이비스에서 학위를 받고 대학 부설 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보고서였다.
아내는 동부에, 남편은 서부에.
자주 만나지 못하겠지. 그래서 더 돈독할는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아예 없다?”
시게노 상무가 다시 물었다.
“제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츠네타카가 말했다.
시게노 상무는 츠네타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여자에게 츠네타카를 붙인 이유는 그가 영어를 할 줄 알아서가 아니었다. 그가 발탁된 가장 큰 이유는 저 자식이 반반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회사가 츠네타카에게 부여한 임무는 세 가지였다.
MD시스템즈의 에이전트로 온 여자를 모시고 다닐 것. 그녀에게서 정보를 얻어 낼 것. 협상에 유리한 판을 만들 것.
마지막 임무, ‘협상에 유리한 판을 만들 것’에는 다양한 세부 임무가 포함되어 있었고, 그중 하나가 그녀의 마음을 얻는 것, 가능하다면 육체관계를 맺으라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게 츠네타카가 선택된 가장 큰 이유였다.
시게노 상무는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라고 말하는 츠네타카의 반반한 얼굴을 계속 바라보았다.
“남편이 있는데도?”
시게노 상무가 다시 물었다.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이 있군.
시게노 상무는 그가 남편 있는 여자와 관계를 가져 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로는 아니지만 쉽지는 않다.”
“그렇습니다.”
“생각해 놓은 방법이 있나?”
“대부분의 시나리오는 폐기했고, 하나만 남았습니다.”
“말해 봐.”
“저는 회의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습니다. 일정 조정 이외에는 업무적인 대화는 배제합니다. 최대한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면서 곁에 있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킬 겁니다. 업무적으로가 아닌 개인적으로.”
“원론이군.”
시게노 상무가 말했다.
“어느 정도 기반이 다져지면, 남편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겁니다.”
“어떻게?”
“남편은 양조장 견학을 가게 됩니다. 거기서 의도치 않게 1박을 하게 될 겁니다.”
“의도치 않게라…….”
“남편에게 여자를 붙일 겁니다.”
“그 남자가 넘어갈까?”
“넘어가고 넘어가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합니다.”
“흠…….”
시게노 상무는 손으로 턱을 문질렀다.
너무 뻔하다. 그렇기에 잘 먹힐 이야기이기도 하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습니다.”
시게노 상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조달 가능합니다.”
츠네타카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많은 여자들을 알고 있었고, 그녀들 중에서는 그의 부탁으로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낼 여자도 많았다.
시게노 상무는 조달 가능하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츠네타카에 대한 세밀한 검증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시자와중공업의 미래에 그가 필요할지, 아니면 현재에만 필요한 것인지를 검증할 시기.
물론 이번 프로젝트가 끝난 다음의 일이겠지만.
“어떤 여자지?”
시게노 상무가 물었다.
츠네타카는 생각해 두었던 몇몇 후보들을 떠올렸다.
그는 많은 여자들을 알고 있었고, 그 여자들은 츠네타카를 좋아했다.
그의 얼굴 때문에, 그의 돈 때문에, 또는 스스로들 사랑받고 있다고 믿고 있는 착각 때문에.
그렇게 그를 좋아하는 여자들 중에서, 그의 돈에, 부탁에, 또는 명령에 다른 남자와 주저 없이 잠을 잘 여자들도 있었다.
“아직 확정은 안 되었습니다만, 몇몇 후보군이 있습니다. 통역이 가능할 정도의 영어 실력을 보유하고 있고,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비밀을 지킬 정도의 지능을 가진 여자입니다.”
시마다가 들었다면 군침을 흘렸겠군.
츠네타카의 말을 들은 시게노 상무는 그렇게 생각했다.
“백인, 또는 백인 혼혈은?”
시게노 상무가 물었다.
그 질문을 받은 츠네타카는 빠르게 여자 데이터베이스를 스캔했다.
백인 혼혈이 두어 명 있기는 하지만 그녀들이 적합한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 무엇보다 잠자리에서 적극적인 여자들이었지만, 그녀들이 지능이 뛰어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남편에게 붙일 여자는 따로 준비하도록 하지. 자네는 에이전트에 집중하도록.”
시게노 상무가 답을 못 하는 츠네타카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츠네타카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생각했다.
그 생각을 못 했다.
브랜든 허드슨은 백인 여자와 결혼했다. 결혼을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명히 성적 취향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런 브랜든 허드슨이 하룻밤에 불장난을 치고 싶다면, 그런 쪽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일본에 왔으니 매일 가던 맥도날드 대신 미슐랭 스타 스시 장인이 잡아 주는 초밥을 먹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쪽에서는 아직 모른다. 그가 날생선을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안전하게 캘리포니아 롤 정도가 적당하다.
생각이 짧았군.
츠네타카는 반성했다. 자신의 통제에 잘 따를 여자들만 생각했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늙은 생강이 맵군.
츠네타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평생을 방위성 관료로 살아온 시게노 상무를 바라보았다.
“들어가 보게.”
시게노 상무가 츠네타카에 손짓했다.
츠네타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시게노 상무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마 괜찮은 여자를 조달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에게 공적을 더 쌓게 하고 싶지 않았다.
코시자와중공업이 츠네타카를 키우는 이유는 그를 도구로 쓰기 위험이다.
쇼군(將軍)을 보필할 하타모토(旗本, 녹봉 1만 석 미만의 상위 무사 계급, 다이묘 바로 아래 등급)로 키워야지, 다이묘(녹봉 1만 석 이상)가 되면 상락(上洛, 전국시대 당시 지방 다이묘가 수도로 군대를 이끌고 가 막부를 교체하는 일종의 쿠데타)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시게노는 츠네타카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에게 부탁해야 되겠군.
시게노는 활동우익단체 타이코우카이(大行会)를 이끄는 마에하라 키이지를 떠올렸다.
야쿠자인 그는 잘 해낼 것이다. 적합한 여자를 찾아낼 것이다.
***
“거짓말하지 마!”
일본경시청(警視庁, Metropolitan Police Department) 형사부 수사1과 특명수사 6계 계장 카게야 후미사다(掛谷史節) 경부(警部)는 앞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그렇게 소리치며 책상을 내리쳤다.
카게야 경부의 외침에 책상 너머에 앉아 있는 남자는 화들짝 놀라 몸을 잔뜩 움츠렸다.
카게야 경부는 놀란 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면서 소리쳤다.
“증거가 다 있어! 아카사카 프린스에 숙박한 미국인이 여자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어. 그리고 그 전화가 네놈 사무소로 연결된 기록이 다 남아 있다고 이 자식아! 네놈은 여자를 보냈고, 그 여자와 떡을 치다 미국인이 죽었어. 그 여자가 객실에서 나오는 장면이 CCTV에 전부 다 찍혔어!”
“형사님! 저는 모르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저 작은 연예 기획 사무소를 운영하는 그냥 일반인일 뿐이란 말입니…….”
남자는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자신의 어깨의 카게야 경부가 손이 올려졌다.
“쿠라쿠(クラク).”
쿠라쿠라로 불린 남자는 카게야 경부가 자신의 별명을 부르자 몸을 작게 떨었다.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경부의 손은 그의 어깨에 그저 올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래. 그저 작은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는 코야노는 그냥 일반인이지. 아사쿠사 전역에 고급 창부도 공급하고, 망할 놈의 코카인도 뿌려 대는 쿠라쿠는 선량한 시민이고!”
그렇게 말하며 카케야 경부가 남자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으아아, 아파요! 아파요! 형사님! 형사님!”
어깨가 부서지는 고통에 쿠라쿠, 여자도 팔고 크랙코카인도 파는 남자 코야노 유카는 비명을 질렀다.
그의 다른 팔로 카게야 경부의 손을 쳐 내려 했지만, 그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고통은 몇 초 동안 이어졌다. 코야노에게는 몇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벼! 변호사 불러 줘요! 씨발!”
어깨뼈가 부서지는 고통이 끝나자 쿠라쿠는 외쳤다.
“……아직 정신 못 차렸구먼.”
순사(한국 경찰 계급으로 순경)로 경찰 생활을 시작해 경부(한국 경찰 계급으로 경감)까지 올라온 카게야 경부는 손목의 시계를 풀며 말했다.
그는 나름 경찰 세계에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단순히 경부 자리에 오른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역 파출소 오마와리상(お巡りさん, 지역 경찰을 친근하게 부르는 애칭)에서 경찰의 꽃이라는 경시청 수사1과 계장이 되기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수사에 실패한 적 없었고, 단 한 번도 체포하지 못한 범인이 없었다.
카게야는 당연히 경부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최소 경시(警視), 어떠면 일본 경찰 역사상 몇 명 없었던 논캐리어(1종공무원 시험을 보지 않고 순사부터 시작) 출신 경시정(警視正), 수사1과장이 그의 최종 목표였다.
그리고 그는 경력이 이런 약쟁이 포주 놈 때문에 끝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래. 변호사 불러 주지. 네놈 시체를 부검할 때 참관할 수 있도록 말이지.”
카게야 경부는 그렇게 말하며 한 손으로 앉아 있는 코야노의 목을 잡아 그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크고 두툼한 오른손으로 그의 왼뺨을 후려쳤다.
코야노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을 덮쳐 올 폭력에 저항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힘만으로 저항하기에, 밀려오는 폭력의 파도는 너무나도 거셌다.
퍽 하는 소리가 좁은 취조실 안에 울려 퍼졌다.
코야노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의 목을 움켜쥔 카게야 경부의 손 때문에 소리는커녕 숨도 쉴 수 없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숨통을 틔운 것은 카게야 경부의 두 번째 폭력이었다.
두 번째 장(掌)이 그의 뺨에 작렬했다.
그 강도가 얼마나 강한지, 순간적으로 코야노는 숨을 뱉어냈다.
여전히 그의 목은 꽉 잡혀 있는데도, 뺨을 얻어맞은 충격에 놀라 반응한 몸 근육이 그의 숨통을 틔운 것이다.
그는 소리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목을 움켜쥔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감으로써 그의 숨이 또 막혀 버렸다.
그리고 세 번째 충격이 그의 뺨에 찾아왔다.
< MISSION 04 : 츠바키 (17)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