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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184화 (185/386)

< MISSION 04 : 츠바키 (12) >

활동우익(活動右翼), 또는 임협계 우익단체라고 불리는 야쿠자 집단 중 하나인 타이코우카이(大行会) 수장 마에하라키이지(前原希一)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마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눈인사를 건넸다.

그와 시마다의 공통점이라면 둘 다 가업을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시마다는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이, 마에하라는 조직을 물려받아 구미쵸(두목)가 되었다.

쓰레기 같은 자식.

선친에 이어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마에하라구미(前原組)를 이끌고 있는 마에하라 키이지가 내린 시마다에 대한 평가는 냉혹했다.

욕심이 많고 욕망에 충실하다. 그것이 시마다에 대한 주변의 평가였다.

어린 시마다는 부친의 후광을 뒤에 업고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녔다. 그렇게 성장한 시마다는 어른이 되어서도 더 위험한 사고를 치고 다녔다.

시마다 가문의 지역구에서 가신 역할을 하는 지역 당협위원회에서도 그를 다음 후계자로 미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주저할 정도였다.

그런 것치고는 정치 감각은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몫을 챙기는 데에는 재능이 있었다.

지역구 승계 과정에서 불리할 때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호소했고, 유리할 때는 자신의 이름을 내새웠다. 그리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었다.

지역구를 물려받자 그 재능이 빛을 발했다.

어려서부터 사고를 치던 경험이 잘못을 감추고, 변명을 하고, 논점을 흐리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그의 재능이 가장 빛을 발한 것은 얼마 전의 신당 창당이었다.

당내에서 입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시마다는 자신처럼 공격적이고, 책임 회피에 능숙한 쓰레기들을 모아 신당을 창당했다.

말이 좋아 신당이지, 보수여당의 시마다 계파를 만든 것이다.

그가 만든 신당은 인기가 좋았다. 특히 새로운 표밭으로 부상하고 있던 젊은 우익들에게서 지지를 받았다.

넷우익들은 그의 과격한 발언을 좋아했다. 그가 한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인터넷에서 시작된 그의 인기 덕에 시마다의 신당은 중의원 선거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를 이뤄 냈고, 여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그 결과 시마다는 다음 총리 예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시마다의 신당은 조만간 여당과 합당할 것이다. 어쩌면 다음 간사장이 될 수도 있었다.

쓰레기 같은 자식.

마에하라는 조만간 여당의 간사장이 될지도 모르는 시마다의 얼굴을 보면서 다시 한번 그렇게 생각했다.

“마저 이야기하지.”

코시자와 회장이 입을 열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방위성의 사와베 국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제임스 붐을 통해 진행한 협의들이 변질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와베의 말에 사람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시마다는 지금 논의되는 내용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우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번에 새로 온 에이전트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편이 될 것인지, 최소한 적이 되지는 않을는지, 아니면 적이 될 것인지.”

코시자와중공업의 시게노 상무가 말을 덧붙였다.

사와베 국장은 자신의 대학 선배이자, 방위성 관료 선배이기도 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여자의 역할과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그 이후에 움직여야 합니다.”

그 여자?

여자라는 단어에 시마다의 작은 눈이 조금 더 커졌다.

***

그 여자, 트레이시 테일러는 코시자와중공업의 한 사무실에서 코시자와중공업이 건네준 서류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 장, 한 장 서류를 확인하면서 일이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MD시스템즈와 코시자와중공업은 내년에 본계약 체결을 목표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해 온 사람이 제임스 붐이었고, 그가 죽었고, 그래서 그녀가 온 것이다.

그런데 서류를 확인하면 할수록 상황은 그녀가 알고 있던 사실과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제임스 붐, 당신 대체 뭘 하려고 한 것이지?

트레이시는 서류를 넘기며 이미 고인이 된 무기 브로커에게 물었다.

애초에 무기 계약이라는 것은 기업과 기업이라는 플레이어들끼리의 협상 같아 보여도, 실질적으로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MD시스템즈와 코시자와중공업 간의 계약이 아니라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와의 계약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즉, 거래에서 손해가 발생하면 단순히 MD시스템즈의 손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가 피해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짐빔이 깔아 놓은 판이 그랬다. 미국이 손해를 보는 판이었다.

짐빔이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진행하던 사업은 일본의 차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 일명 F-3 개발 사업이었다.

일본 정부는 2000년 도입된 F-2 바이퍼제로를 대체하기 위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일본이 원하는 조건은 F-35의 스텔스성과 항속 거리에 F-22의 전투력을 가진 전투기를 원했다.

최대 속도 마하 2 이상에, 8발 이상의 공대공 미사일, 그리고 UAV 탑재가 가능해야 했다.

영국의 BA테크닉스가 끼어들기는 했지만 언제나처럼 일본은 차세대 전투기로 미국 기체를 선택할 것은 자명했다.

미국은 그저 얼마나 비싸게 전투기를 팔아먹을 것인지만 결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트레이시가 아는 사실은 그랬다. 그녀는 그저 이곳에 와서 제임스 붐이 깔아 놓은 판을 검토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러한 조건의 계약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이윤을 창출하는 사기업의 관점이라면 몰라도, 미국 정부는 절대로 이러한 조건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거기까지 생각한 트레이시는 순간적으로 등골에 전류가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무기 계약은 회사가 하지만 최종 인준은 미 상원의회가 한다. 그리고 짐빔은 상원의원들을 상대하는 로비스트 중 하나였다.

짐빔 이 개 같은 새끼.

트레이시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가능성이 아주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0%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없다.

트레이시는 자신이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저 한규호를 접대하기 위한 작전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 뒤에 더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레이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녀 한 명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이렇게 판을 키울 리가 없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그녀는 분명히 파멸을 맞이한다. 의도는 어떠하든 결과는 자명하다.

트레이시는 서류를 덮었다. 그리고 사무실 한쪽에 있는 호출 버튼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츠네타카가 모습을 나타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 미시즈 길먼?”

츠네타가 그 특유의 미소로 무장한 채 그녀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오후 회의는 연기해도 될까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츠네타카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여전한 미소로 그녀의 요청에 답했다.

“호텔로 돌아가고 싶은데, 차량을 준비해 주시겠어요?”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츠네타카가 준비된 대답처럼 말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츠네타카,”

트레이시는 그의 미소를 보면서, 이 남자가 보여 주는 미소가 절대로 선의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

“어이, 자네.”

회의를 마치고 몸을 돌려 나가던 타이코우카이(大行会) 회장 마에하라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잠시 시간이 괜찮나?”

중의원 시마다가 그를 불러 세웠다.

쓰레기 같은 자식.

그렇게 생각한 마에하라는 그런 생각 대신,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시미다 선생님.”

“괜찮으면 자네는 나와 이야기를 조금 더 하다 가지.”

그렇게 말하는 시마다의 표정이 마치 자신과 독대할 기회를 준다는 것처럼 거만했다.

마에하라는 거부하고 싶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쓰레기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하지만 마에하라는 거절하지 않았다. 시마다가 쓰레기인 것과는 별개로 마에하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합의를 이뤄 낸 두 사람은 다른 별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마에하라는 시마다가 늦은 점심을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기다려야 했다.

“뭐 별건 아니고.”

늦은 점심을 허겁지겁 먹어 치운 시마다는 상이 치워지기도 전에 본론을 꺼냈다.

“말씀 하시죠, 선생님.”

“그 뭐냐, 그니까 뭐, 그 뭐랄까.”

마에하라는 시마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조금 전 만남에서 논의되었던 이야기를 알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코시자와 회장이 있는 그 장소에서는 물을 수 없었고,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나서야 가장 만만한 자신을 붙잡은 것이다.

“내가 그 알고 있는 이야기랑 맞는지 좀 확인하고 싶어서.”

시마다가 그렇게 대충 얼버무렸다.

저 병신이 알고 있는 게 있기는 할까?

마에하라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하지만 마에하라는 여전히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니 뭐, 그, 내가 미국을 다녀온 사이에 상황이 좀 바뀐 것 같아서. 그 여자라는 것도 그렇고.”

마에하라는 자신이 시마다를 과대평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불러 세운 이유가 혹시 ‘여자’라는 단어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마다의 엽색 행각과 성적 취향을 생각하면 완전히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장님이 안 계신 지금 말씀드리기에는 좀 상황이…….”

마에하라는 코시자와 회장의 이름을 언급했다. 포석을 둔 것이다.

그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그는 두 개의 명분을 가지게 된다.

하나는 회장님을 핑계로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그런 상황임에도 시마다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시마다는 그렇게 섬세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자네는 내가 어디 가서 말을 흘리기라도 한다는 이야긴가?”

시마다의 눈빛이 갑자기 바뀌었다.

시마다의 주특기였다. 어떠한 상황이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상대방을 압박하고, 자신이 우위에 서는 기술을 본능적으로 사용했다.

물론 마에하라는 그런 눈빛에 쫄지 않았다. 호랑이가 고양이의 하악질에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조심하고자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시다시피, 중요한 사안이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시마다를 바라보았다.

시마다는 당황했다.

자신이 승기를 잡았을 때, 그에게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에하라도 그의 당황을 눈치챘다.

고작 저 정도의 인간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저 정도의 인간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사람이다.

마에하라는 입을 열었다.

“선생님께서도 익히 아시겠지만. 얼마 전에 사망한 제임스 붐은 브로커였습니다. 브로커는 어느 회사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봅니다. 가장 우선시합니다. 그러나 어제 입국한 그 여자의 경우 MD시스템즈의 에이전트입니다. 에이전트는 회사 소속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회사의 입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에하라의 눈빛에 찔끔했던 시마다는 설명이 시작되자 조금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께서 오랜 기간 준비해 오신 숙원 사업이 지금 상황에서…….”

“그, 그래. 카츠오도리(カツオドリ, 鰹鳥).”

시마다가 마에하라의 말을 끊었다.

마에하라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말을 끊겨서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말을 끊은 것이 아니라 맞장구를 친 것이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이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 단어는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마에하라가 날카롭게 말했다.

시마다는 고민했다.

자신은 그저 맞장구를 쳐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 자신의 호의를 무시한 저 남자에게 평소처럼 화를 낼 것인지, 아니면 본능이 시키는 대로 지금 입을 다물 것인지.

그러나 그런 그의 고민을 마에하라가 해결해 주었다.

“부탁드립니다. 시마다 선생님을 위한 저의 작은 충언입니다.”

마에하라는 옆으로 몸을 비켜 무릎을 꿇고, 시마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그런 모습에 시마다는 조금 마음이 풀렸다.

고작 양아치(チンピラ) 주제에.

시마다는 마에하라의 정수리를 보면서 자존심을 조금 회복했다.

고개를 숙인 후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은 마에하라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당초 계획처럼 제임스 붐이 자신의 일을 다 해 주었다면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가 죽음으로써 회장님이 오랜 기간 준비하신 숙원 사업에 변수가 생겼습니다. 우리 입장은 어떻게 변수를 최소화할 것이냐 하는 부분이고, 그렇기 위해서는 그 여자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깁니다. 미국에서 보내 온 에이전트를 말이죠.”

마에하라는 의문이 가득한 시마다의 얼굴을 보면서 나이초의 히사키 반장이 그에게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회가 없었는지, 아니면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에하라는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기왕 선심을 썼으니, 마무리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관련 인물들은 다 아는 정보였다. 거기에 시마다 한 명이 더 늘어난다 해도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았다.

시마다는 가방을 열고,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내밀었다.

“미국에서 온 에이전트의 사진입니다.”

시마다는 체신머리없이 급하게 손을 뻗어 봉투를 열고 사진을 꺼냈다.

사진을 본 그의 눈이 커졌다.

같이 비행기를 타고 온 여자, 당분간은 잊어버리지 않을 금발 미녀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 MISSION 04 : 츠바키 (1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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