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4 : 츠바키 (7) >
한규호와 트레이시, 아니 브랜든 허드슨과 애블린 길먼은 일본에서 맞이한 첫날 아침 첫 식사를 하고 있었다.
트레이시는 자신의 앞에 앉아 포크로 연어샐러드를 집어 드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침 일찍, 한규호는 트레이시의 방문을 노크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노크 소리에 급하게 가운을 걸쳐 입고 문을 연 그녀에게 한규호는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아침 먹읍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호텔 조식 뷔페를 먹기 위해 2층에 위치한 조식 레스토랑, ‘프렌치키친’으로 내려 온 것이다.
부부가 같이 아침을 먹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트레이시는 이 남자의 의도가 궁금했다.
트레이시가 의문을 느끼는 부분은 한규호가 일반 투숙객들이 조식을 먹기 위해 이용하는 이곳, 2층에 위치한 프렌치 키친을 지목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랜드 하얏트의 조식 뷔페는 훌륭했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일 뿐만 아니라, 그런 고급 호텔 체인 중에서도 도쿄에서 손꼽히는 고급 호텔인 롯뽄기 그랜드 하야트의 조식 뷔페는 웬만한 호텔의 정찬에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훌륭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객실에 머무르는 두 사람에게는 다른 선택이 있었다.
실제로 그들이 하룻밤을 보낸 VIP 객실에 투숙한 대부분의 투숙객들은 일반 투숙객들과 섞이는 조식 뷔페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룸서비스를 이용했는데, 특히 남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은밀하게 이 호텔을 찾는 연예인들은 100% 룸서비스를 이용했다.
그랜드 하야트의 이그제큐티브 라운지인 그랜드 클럽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10층에 위치한 그랜드 클럽의 조식 뷔페는 음식 가짓수는 더 적었지만 전망과 음식의 질에서 프렌치 키친과 비교를 불허했다.
무엇보다 이그제큐티브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투숙객들이 제한되어 있는 만큼 덜 혼잡하다는 것도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런데도 한규호는 2층에 있는 이 일반 조식 레스토랑을 고집했다.
트레이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트레이시는 반으로 갈라 버터를 바른 모닝롤에 연어샐러드를 끼워서 샌드위치 비슷한 것을 만들어 입에 물고 우물거리는 한규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가에 웃음이 번졌다.
약간은 장난꾸러기 같은, 그러면서도 다정한 애정이 가득 담긴 그런 웃음이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브랜든이었다.
문을 노크하고, 아침을 먹자는 이야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한규호였다.
성남에서 만난 한규호였다.
그런 그가 호텔 객실을 빠져나오면서 그는 브랜든이 되었다. 다정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브랜든이 되었다.
그녀에게 차갑고 무심한 시선을 보내는 한규호와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브랜든은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 같았다.
같은 얼굴, 같은 체형의 같은 사람이지만, 문 하나를 기준으로 바뀌는 두 사람에 다른 영혼이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트레이시는 무엇이라고 딱 규정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그 남자를, 자신의 남편인 브랜든 허드슨을 최대한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자신이 어떠한 눈으로 보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에 약간의 질투심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
창가 자리에 앉은 한규호는 다정한 눈으로 트레이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트레이시 또한 그런 그의 눈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무언가 불안한 눈빛이 섞여 있었다. 한규호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아주 미약한 감정이었다.
한규호는 그 시선에 대해 따로 주의를 줄 생각은 없었다.
트레이시는 자신의 동료도 부하 직원도 아니다. 그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그녀의 실수로 작전이 어그러진다 하더라도 한규호와는 상관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번 작전은 어그러지고 자시고 할 내용이 없었다.
한규호는 얇게 저민 햄에 나이프를 가져가 한입 크기로 썰었다.
그냥 포크를 가져가 적당히 돌돌 말은 후 푹 찍어서 한입에 먹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었지만, 브랜든은 주조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었고, 거기에 맞게 행동했다.
한규호는 작게 작은 햄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호텔 앞 택시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택시를 향했다.
이른 아침임에도 제복을 반듯하게 갖춰 입은 택시 기사들이 호텔 앞에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조금 더 움직였다.
도로에는 차량이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고 인도에는 출근을 위해, 등교를 위해 무거운 얼굴로 바쁘게 발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선이 조금 더 멀리 향했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건물, 롯폰기힐스케 케야키자카 테라스 건물 1층에 있는 휴고보스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시선은 휴고보스 매장을 시작으로 천천히 위로 향했다.
도쿄의 이른 아침 하늘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 그의 시선은 천천히 건물 외벽을 타고 하늘로 향했다.
마침내 그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역시 있었군.
한규호는 대도시답지 않게 맑은 도쿄 하늘을 보면서 생각했다.
건너편 건물에서 카메라 렌즈가 포착되었다.
지금 그들이 아침밥을 먹고 있는 창가 자리를 향하고 있는 대구경 카메라 렌즈는 커튼 사이에 교묘하게 가려져 있었지만 한규호의 감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한규호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이 식당을 고집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오늘도 그들의 사진을 찍으려는 시도가 있는지, 그런 시도가 있다면 이른 아침시간부터 움직일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이른 아침부터 그들을 향하고 있는 렌즈가 있었다.
한규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당신네들이야?
한규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내를 향해 다정한 웃음을 지어 주었다.
***
롯본키힐즈 케야키자카 플라자의 한 레지던스에서 길 건너편의 그랜드 하얏트 호텔 2층에 있는 식당을 향해 렌즈를 겨누고 있던 프리랜서 카메라맨 츠고 노리타츠(津郷憲辰)는 위화감을 느꼈다.
창밖을 바라보던 목표 중 하나가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로 25년 넘게 사진을 찍고 있는 츠고 노리타츠가 소위 파파라치 세계에 들어온 것은 그가 사진을 전공하는 대학교 4학년이던 시절 선배의 제안 덕분이었다.
미래가 없는 사진학도였던 그에게 선배 중 하나가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다는 제안을 했고, 그는 별생각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고 보니 그 알바라는 것이 파파라치 사진을 전문으로 다루는 황색 언론의 기획 취재였던 것이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전문으로 파헤치는 사진 전문 주간지는 한 여배우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고, 그 여배우의 사생활을 파헤치기 위한 팀을 꾸리고 있었다.
츠고 노리타츠가 그 팀에 아르바이트로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 그 세계에 들어간 츠고는 대박을 터트렸다.
선배들이 입수된 정보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때, 그는 반대로 행동했다.
흘러나오는 정보들이 위장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표인 여배우와 오랫동안 함께한 코디네이터를 추적했고, 그 덕분에 그는 두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도쿄 외곽의 한 맨션에서 다른 시간에 같은 문을 열고 나오는 여배우와 정치인의 사진이었다.
츠고는 그 사진 두 장으로 50만 엔을 받았다.
그게 한동안 이쪽 업계에서 최고라는 칭호를 받았던 츠고의 시작이었다.
본격적으로 업계에 뛰어든 츠고는 그 이후에도 여러 장의 특종 사진을 찍었다.
몇 명의 유명 스타들이 그의 카메라에 의해 ‘프라이데이 당하게(フライデーされる, 파파라치 사진이 찍혀 잡지에 실려 신세를 망쳤다는 관용구)’ 되었다.
그가 찍은 사진의 값은 계속 올라갔고, 그만큼 그의 명성도 올라갔다.
명성을 얻고, 얻은 명성만큼 일이 지겨워지던 그때, 그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 그리고 일을 제의했다.
전속이 되어서,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사람의 사진을 찍어 주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고정급은 30만 엔, 일이 생기면 착수금도 30만 엔, 사진을 찍으면 성공 보수 150만 엔 플러스알파.
츠고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일을 받아들였고, 몇 해 동안 그들의 전속으로 지시를 받아 사진을 찍었다.
일이 있건 없건 고정급으로 30만 엔이 나왔다. 일이 생기면 사진을 못 찍어도 30만 엔이 나왔다. 찍으면 사진 품질에 상관없이 150만 엔이 무조건 지급되었다.
돈보다 더 츠고의 마음에 드는 것은 시간이었다.
어디로 가서 누군가의 사진을 찍으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때, 시간이 지정되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보통 그리 길지 않았다. 길어 봤자 4~5시간이었다.
40시간 넘도록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목표를 기다리면서 차 안에서 페트병에 오줌을 받아 가던 연예계 파파라치 시절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좋은 조건이었다.
그들이 츠고에게 원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어디에서 누구의 사진을 찍었는지 절대로 발설하지 않을 것.
츠고는 발설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들과 일을 해 올 수 있었다.
츠고는 자신에게 일을 주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이런 좋은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로 그 정체를 알려 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어제 저녁 그는 새 지시를 받았다.
이메일에는 롯폰기힐즈 케야키자카 레지던스의 호수와 오전 5시부터 오전 9시까지라는 시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랜드 하얏트의 식당의 창문과 백인 여자와 황인종 남자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츠고는 지시에 따라 어젯밤 이곳 레지던스에 도착했고, 장비를 세팅하고, 각도를 잡았다.
그리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목표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행운의 여신이 그를 돕기라도 하는 듯 목표들은 창가에 자리를 잡았고, 덕분에 그는 질 좋은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 낼 수 있었다.
슬슬 그들의 식사가 끝나간다고 생각하던 그 찰나에, 그 남자가 시선을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위화감이 찾아 온 것이다.
목표 중 하나인 남자가 자신을, 정확히는 렌즈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럴 리 없다.
츠고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절대로 발각될 리가 없다.
130만 엔이나 하는 200-400 줌 렌즈의 최대 구경이 128mm나 되기는 하지만 목표와 렌즈 사이에는 도로가 놓여 있다.
더군다나 아주 잘 위장해 놓았다. 대구경 렌즈가 커튼 사이에 숨어 있다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망원 장비 없이 맨눈으로 렌즈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절대로.
츠고는 자신에게 느껴지는 위화감을 애써 무시했다.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츠고는 꽤 많은 돈을 모았다.
이제 이 일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작은 스튜디오 하나 정도는 차릴 수 있을 정도의 돈은 모아 두었다.
올해만 하고 그만두어야 되겠어.
츠고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주 보며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
“아침부터 쥐새끼가 붙었는데.”
그랜드 하얏트 호탤 한 객실, 정확히 프렌치 키친의 두 개 층 위에 있던 객실 감시용 망원렌드를 통해 밖을 감시하고 있던 백인 남자가 말했다.
“어디?”
침대 위에서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던 또 다른 백인 남자가 물었다.
“건너편 건물.”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먹던 샌드위치를 던져 버리고 창가로 다가와 감시용 망원경에 눈을 댔다.
그리고 커튼 사이로 아주 잘 숨겨 놓은 카메라 렌즈를 확인했다.
렌즈를 확인한 남자, CIA 극동아시아 지부의 제임스 필더는 쯧 하고 혀를 찼다.
“거, 자식들. 부지런하기도 하지.”
본부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미국인 부부가 일본을 찾을 것이고, 그들을 감시하는 사람을 감시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그리고 지금 첫 번째 먹잇감이 잡혔다.
제임스 필더는 미국인 부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왜 감시받는지도 모른다.
그저 그는 지시에 따라 그들을 감시하는 사람들을 찾는 자신의 임무만 수행할 뿐이었다.
그는 무전기를 들었다.
그리고 근처 어딘가에 구축되어 있을 상황실에 그가 발견한 렌즈와 위치에 대해서 보고했다.
이제 저 렌즈의 주인은 CIA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
“아침 밥값은 했네.”
제임스 필더, 트레이시와 한규호의 이번 일본 방문을 지원하기 위해 동원된 예순 명의 CIA 요원 중 한 명인 그는 무전기를 내려놓으며 혹시나 더 있을지 모를 밥값을 찾기 위해 조리개를 잡았다.
< MISSION 04 : 츠바키 (7)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