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MISSIOM : Memento Mori (2) >
“야, 안성종이!”
특수전학교 주임원사 최창식이 교관실의 문을 거의 발로 차듯 열고 들어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몰렸다. 그리고 주임원사임을 발견한 교관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경례를 했다.
그러나 최 원사는 그런 그들의 경례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안 상사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야, 이 새끼야!”
멱살을 틀어쥐는 그 서슬이 너무도 날카로워 다른 이들은 차마 말리지 못하고 두 사람을 보고만 있었다.
“이 개자식아, 제수씨 임신했다는 소식을 꼭 내가 다른 데서 들어야 했냐?”
멱살을 틀어 잡힌 안 상사의 얼굴에 무표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옅은 미소가 그 입술에 걸렸다.
“웃지 마, 이 새끼야! 임마 그 기쁜 소식을 내가 마누라에게 들어야 하냐?”
안 상사의 아내가 최 원사의 아내에게 이야기했고, 그 소식을 들은 최 원사의 아내가 바로 최 원사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다.
문자를 받은 최 원사는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 안성종의 멱살을 잡기 위해 달려온 것이고.
“축하드립니다!”
“와! 축하드립니다! 경사네요!”
다른 교관들이 멱살을 잡힌 안 상사에게 축하를 보내면서 박수를 쳤다.
그 박수 소리에 안 상사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암튼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최 원사는 멱살은 놓으면서 그렇게 투덜거렸다.
“안정기가 지나면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안 상사가 상의를 정돈하면서 말했다.
“맞네. 안정기 이전에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고 했습니다.”
옆에 있던 상사 하나가 말했다.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중사 하나가 물었다.
안성종은 그 질문에 다시 미소가 짙어졌다. 그리고는 최 원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딸입니다.”
안성종의 말에, 주변에서 또 다시 박수가 터졌다.
말없이 안성종을 노려보던 최 원사도 다행이네, 제수씨 닮은 딸이라니 하면서 작게 투덜거렸다.
안성종은 그 투덜거림을 들으면서, 자신도 같은 생각이라고 속으로 말했다.
“암튼 이 새끼야, 오늘 뭐야, 마누라가 음식 해 간다고 하니까, 제수씨에게 저녁 준비하지 말라고 얼렁 전화해.”
최 원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돌렸다.
그렇게 화난 얼굴로 몇 발자국 걸어가던 그가 몸을 돌리면서 다시 안 상사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너, 그나저나 형님에게는 이야기했냐?”
형님이 707의 원 원사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안 상사의 얼굴에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아직 말씀 안 드렸습니다.”
“얼렁 말씀드려라, 맞아 죽기 전에. 아니지, 죽지는 않겠네. 아무튼 네가 말씀드려, 이 자식아.”
그 말을 들은 최 원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교관실을 나갔다.
안 상사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행복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그렇게 생각했다.
***
안 상사의 좁디좁은 아파트에, 몇 사람 앉지도 못할 정도로 좁은 거실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갑작스럽게 열린 임신 축하 파티에 최 원사 부부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안성종과 그의 아내는 소파에 앉아 행복한 미소로 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띵동.
그때 초인종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성종의 아내는 문을 열어 주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 그녀를 사람들이 말렸다.
특히 최 원사의 아내가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손을 잡아 소파에 고정하면서 말했다.
“자기는 이제 앞으로 반년 동안 절대로 일 같은 거 하면 안 된다니까. 이건 임산부의 권리이자 의무야. 뭐 해요, 성종 씨. 얼른 나가서 문 안 열고.”
그 말에 사람들이 모두 안성종에게 빨리 움직이라느니, 개념이 없다느니, 빠졌다느니 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안성종은 최 원사는 물론 그보다 후임들이 그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도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사람보다 더 큰 비닐봉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자식아, 이거부터 좀 받아라.”
비닐봉지 뒤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성종은 얼떨결에 비닐봉지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땀을 흘리고 있는 707의 원 원사가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원 원사 뒤에서 한 짐씩 들고 있는 다른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예전 707의 전우들이 원 원사 뒤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안성종은 그들에 손에 들린 물건 중 기저귀가 있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짐은 둘째 치고, 그들이 다 들어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동안 살면서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행복한 걱정이 들었다.
***
안성종은 초조한 기분에 분만실 앞을 왔다 갔다 했다.
평생 피워 본 적 없는 담배라도 피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내가 분만실에 들어간 지 몇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나 안성종에게는 몇 년이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발, 제발 아무 일 없기를.
안성종은 그동안 단 한 번도 믿어 보지 않은 신에게 기도했다.
어떤 신이라도 상관없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서라도 아내가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만약 지금 악마가 그에게 영혼을 대가로 순산을, 아니 순산이 아니어도 아내에게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약속한다면, 안성종은 주저 없이 영혼을 내어 줄 수 있었다.
안성종은 고개를 들어 다시 시계를 보았다.
3시간, 거의 3시간이 지나 있었다.
안성종은 다시 눈을 감고 누구인지 모를 신에게 기도했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감은 두 눈 너머로, 분만실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얼굴을 쓸어 주던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24시간이 넘는 진통을 겪어 낸 아내는, 옅은 미소를 띠고, 걱정이 가득한 안성종의 얼굴을 쓸어 주면서 말했다.
“다녀올게요.”
다녀온다고 했다. 온다고 했다. 올 것이다. 아내는 다시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안성종은 온몸을 진동하는 심장 박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때 그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려다.
안성종은 눈을 떴다.
그리고 분만실을 향해 달려오는, 수술복을 입은 의사의 모습이 보였다.
“비키세요!”
달려오던 의사가 소리쳤다.
안성종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뒷걸음쳤다.
거침없이 달려온 의사는 거침없이 분만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성종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을 뻗었다.
닫히는 문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문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 아내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아내의 옆에 있어 주고 싶었다.
그런 그의 손을 누군가가 잡았다.
아내의 임신 기간 동안 때로는 언니처럼, 때로는 친정 엄마처럼 산모 도우미 역할을 해 주었던 최 원사의 아내였다.
그녀의 손이 안성종의 손을 잡았다.
안성종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동생은 열심히 싸우고 있으니, 성종 씨도 여기서 같이 싸워 줘. 그게 성종 씨의 임무야.”
그 말을 들은 안성종은 이빨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참기 위해서 그는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입술을 깨물었다.
최 원사의 아내의 조언 덕에 조금은 정신을 차린 안성종은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기다렸다.
그녀가 출산을 마치고 나왔을 때, 어떤 얼굴로 맞이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잠시 앉아 있었다.
그때 분만실에 문이 열리고, 녹색 옷을 입은 의사가 나왔다.
안성종은 의사가 보이자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의사에게 달려 나가려는 그의 손을 최 원사의 아내가 잡았다.
그런 안성종에게 걸어온 의사는 귀에 걸린 마스크를 풀고는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그제야 안성종의 눈에 그의 모습이 전부 들어왔다.
그의 녹색 가운 여기저기 묻어 있는 붉은 피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산모와 아기, 모두 다…….”
안성종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다리가 풀려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를 부르는 최 원사의 아내의 외침도, 그에게 고개를 숙이는 의사의 모습도, 그에게 달려오는 병원 직원의 움직임도 그에게는 다른 세계의 모습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저.
이제는.
다시.
아내를 볼 수 없다는.
그 생각만이.
그리고.
세상이
멸망했다는 그 느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안 상사는 특수전학교 연병장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담배가 들려 있었다.
그는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면서 그저 끝도 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누가 옆에 앉는 소리가 들렸다.
“밥은 먹었냐.”
최 원사는 안 상사 옆에 앉으며 그의 옆에 놓인 담뱃갑을 집어 들었다.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담뱃갑에서 그는 담배를 한 대 꺼내들어 불을 붙였다.
3개월이 넘었다.
안 상사가 아내를 떠나보낸 지 3개월이 넘었지만, 안성종은 여전히 그 분만실 앞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 원사는 그런 안성종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밥 안 먹었으면 우리 집에 가서 밥 먹자. 산 사람은 살아야지.”
최 원사는 하늘로 담배 연기를 뿜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안성종의 머리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리고 시선이 최 원사에게 향했다.
“오늘이.”
최 원사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안 상사의 목소리에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시작한다는 것은 좋은 징조였으니까.
“오늘이. 딱 백 일째 되는 날입니다.”
안 상사의 말을 들은 최 원사의 가슴이 순간 무너졌다.
그날, 안 상사의 아내가 무사히 아내를 출산했다면, 오늘이 아이의 백일을 맞이하는 날이었다.
“집에 가서 차를 주차하면,”
안 상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일 먼저 고개를 들어 4층을 바라봅니다.”
최 원사는 다시 담배를 꺼내들어 불을 붙였다.
“4층 우리 집, 부엌 창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 집으로 들어갑니다. 문을 열면 제일 먼저 음식 냄새가 저를 반기고, 그다음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내는 언제나처럼 내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갓 지은 밥을 풉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식사하세요.”
최 원사는 불붙인 담배를 안 상사에게 건넸다. 그리고 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깊게 빨아들였다.
“아내가…… 떠나고. 다시 그 집에 가질 못했습니다. 불 꺼진 창문을 보게 될까 봐. 불 꺼진 창문을 보고…….”
최 원사는 시선을 돌려 안성종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남아 있던 담배를 전부 피울 때까지 두 사람은 말없이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안 상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최 원사는 걸어가는 안 상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의 주머니에는 안 상사가 제출한 전출 신청서가 들어 있었다.
***
최 원사는 방문을 열었다.
불 꺼진 방에는 빨간색 담배 불빛만이 보였다.
최 원사는 불을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켰다.
그러자 담배를 피우고 있는 원 원사의 모습이 보였다.
“왔냐.”
원 원사가 들어오는 최 원사를 보면서 말했다.
“네.”
최 원사는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원 원사가 그 맞은편에 앉으며 담뱃갑을 내밀었다.
최 원사는 담배를 한 개비 꺼내들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깊게 빨아들인 다음 폐 속에 모든 공기를 뱉어 내듯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확인됐습니까?”
최 원사가 말했다.
“그래.”
원 원사가 손에 든 담배를 비벼 끄고, 새 담배를 꺼내면서 말했다.
“두 명만 살아 돌아왔어. 11챠리를 발동했다는군.”
원 원사가 말했다.
진도 팀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살아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온 두 사람이 진도5 안성종 상사의 마지막 모습을 전달했다.
“그렇군요.”
최 원사는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그래.”
원 원사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말했다.
“제수씨 만났겠군요.”
최 원사가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그래, 만났겠지.”
“좋아하겠군요.”
“그래, 좋아할 거야.”
“다행이군요.”
“그래, 다행이지.”
그렇게 말한 원 원사는 다시 담배를 최 원사에게 건넸다.
담배를 받아 든 최 원사는 불을 붙이고는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밖에 내린 짙은 어둠 때문에, 주임원사실의 창문은 마치 거울처럼 담배를 피우는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최 원사는 그 창문 너머로 다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양손으로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은 서너 살 여자아이와, 그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이 그의 눈에 보였다.
“이제는…… 행복해라, 이 자식아.”
최 원사가 작게 읊조렸다.
< INTERMISSIOM : Memento Mori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