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70화 (171/386)

< INTERMISSIOM : Memento Mori (1) >

안성종 상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특수전학교의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특수전사령부 직할 특수전학교의 선임 교관 중 한 명인 안성종 상사는 학교 내에서 여러모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최고 중의 최고가 모였다는 707 출신이라는 것도,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을 것 같은 체력과 전투 기술로도 유명했지만, 교육생들 사이에서는 그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제일 유명했다.

특수전학교는 일반 신병 훈련소와는 달랐다. 사회로 치면 일종의 서울대 같은 곳이었다.

공부로는 어디 꿀리지 않는 학생들이 모이는 서울대처럼, 체력과 싸움 등 몸으로 하는 일에는 난다 긴다 하는 놈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 바로 특수전학교였다.

체력 좋고, 젊고, 패기 넘치고, 자신감으로 가득 찬 핏덩어리들을 통제해야 하는 교관들은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그들의 에너지를 찍어 눌렀다.

목소리를 낮게 깔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법이 가장 많이 쓰였고, 소리를 지르거나 때로는 물리적인 고통을 가함으로써 교육생들을 압박하고 통제했다.

보통 이 방법으로 충분했다. 대부분의 교육생들은 금세 기가 꺾이고 교관들의 통제를 따랐다.

그러나 개중에는 그 방법이 먹히지 않는 놈들이 있었다. 곡괭이 자루로 엉덩이가 터져 나갈 때까지 맞으면서도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 미친개들이 적어도 기수당 한둘은 꼭 있었다.

그런 놈들은 안성종 상사에게 보내졌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얼차려를 주고, 두드려 패도 미친놈처럼 날뛰던 놈들이 신기하게도 안 상사 앞에만 가면 꼬리를 감은 얌전한 강아지가 되었다.

안 상사가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얌전해졌다.

엉덩이가 터질 때까지 두드려 맞으면서도 ‘어디 때려 봐라. 기껏해야 니들이 날 죽이는 것밖에 더 하겠냐!’는 생각을 가진 미친개 교육생들이 안 상사를 만났을 때는 ‘진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에 잠긴다고 했다.

야성을 아직 벗지 못한 미친개들이 야성의 정점에 서 있는 진짜 맹수를 만나고서야 공포를 느낀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교관들 사이에서 안 상사의 별명은 ‘개장수’였다.

세 음절의 그 단어에는 안 상사에 대한 경의가 담겨져 있었다.

다들 안 상사를 좋아했고, 존경했다. 그의 다른 별명인 ‘안 선비’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

안 상사는 절대로 짬밥과 계급을 내세우지 않았고, 자신의 업무를 후임자에게도 미루지 않았다.

유대 관계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계급과 기수에 따른 억압과 차별이 심한 부사관 세계에서 안 상사는 선비처럼 고고했다.

개장수와 선비라는 어울리지 않는 별명을 가진 그는 복도를 계속 걸어가서 문 앞에 섰다.

문에는 ‘주임원사실’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안 상사는 문을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던 두 사람에게 손을 들어 경례를 했다.

“여, 안성종이.”

소파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안 상사를 보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가와 경례를 하고 있던 그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가볍게 때렸다.

“안성종이, 얼굴 좋아졌네. 하긴 여기서 애새끼들이나 굴리면서 꿀 빨고 있으니까 얼마나 좋겠어. 얼굴에 기름 낀 거 봐라.”

원사 계급장을 단 그가 그렇게 웃으면서 안 상사의 가슴팍을 계속 주먹으로 쳤다.

“오랜만입니다.”

손을 내린 안 상사가 자신의 주먹을 치고 있는 남자에게 인사했다.

“오랜만? 오랜만은 개뿔, X발. 정 없는 새끼. 아주 부대 떠나니까 전화도 한번 안 하고. X바 아주 꿀 빤다고 정신없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예 복싱 자세를 취한 다음, 두 주먹으로 안 상사에 가슴근육에 계속 잽을 넣었다.

안 상사는 그런 그의, 707특수임무대대 백호부대의 원경제 원사의 가볍게 날아오는 주먹을 가슴근육으로 계속 받아 내고 있었다.

“저 녀석이 언제 전화하는 거 봤습니까? 형님, 그만하시고 앉으시죠. 성종이, 너도 앉아라.”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던 특수전학교 주임원사 최창식은 손을 저으며 두 사람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와. 저 새끼 저거, 가슴근육에 힘주는 거 봐 봐. X발 상관이고 형님이고 없다니까, 무자비한 새끼.”

707 원경제 원사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안성종 상사도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쩐 일이십니까?”

안 상사가 원 원사에게 물었다.

“안 반갑냐?”

원 원사가 되물었다.

“반갑습니다.”

“반갑다는 놈의 표정이 그래?”

원 원사가 다시 몸을 일으키며 때릴 듯한 포즈를 취했다.

안성종 상사는 오랜만에 보는 옛 상관의 그런 장난기 어린 행동과 말투가 반가웠다.

마치 어린 시절, 707에 근무하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안 상사는 반가운 마음을 담아, 평소와 다름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허, 저 자식, 안 하던 말을 다 하네?”

원 원사는 그런 안 상사의 말에 놀란 눈을 뜨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형님, 제가 그랬지 않습니까? 성종이도 변했다고. 성종아, 형님이 오늘 일 때문에 오셨다고 너 보고 싶다고 해서 일부러 부른 거다.”

최 원사가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습니까?”

안 상사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변한 거 같은데? 저 저 싸가지 없는 목소리 그대론데? 안 변한 것 같은데? 여전히 사람 아닌 것 같은데?”

원 원사가 그렇게 투덜거렸다.

“하하, 형님이 오랜만에 성종이 보셔서 그래요. 제법 사람 구실 한다니까요? 요즘에는?”

“사람 구실 하는지 안 하는지는 지켜보면 알겠지. 그나저나 오늘 뭐 일정 있어? 없으면 오랜만에 술이나 먹자. 있으면 취소하고 술 마시고. 최 원사도 시간 되지?”

두 사람의 시선이 안 상사에게 모였다.

“오늘은 안 됩니다.”

안 상사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극명하게 갈렸다.

술자리를 제안한 원 원사는 죽일 듯한 눈으로 안 상사를 노려보았고, 최 원사는 얼굴 가득 웃음을 담은 채 두 손을 들어 만세를 불렀다.

“거봐요. 제 말이 맞죠? 안 간다고 했죠? 자, 얼른 돈 주십쇼, 돈. 빨리요.”

최 원사의 재촉에 원 원사는 씹어 먹을 듯 안 상사를 노려보면서 지갑에서 10만 원을 꺼내 최 원사에게 내밀었다.

최 원사는 거보십쇼 하고 말하면서 그 돈을 받아 손가락에 침을 묻혀 가며 돈을 세었다.

안성종 상사는 어떤 상황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원 원사가 술을 먹자고 했을 테고, 자신도 부르자고 했을 터이고, 최 원사는 아마 같이 가지 않을 곳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원 원사는 설마, 자신이 가자는데 안 간다고 하겠냐고 반박했을 것이고, 두 사람의 의견의 차이에서 10만 원의 내기가 성립된 것이다.

안성종 상사는 웃었다. 오랜만에 속으로 웃음 지었다.

50이 넘은 나이임에도 저렇게 친구처럼 장난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안 상사는 마음 붙일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형님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너 진짜 안 갈 거야?”

원 원사가 여전히 안 상사를 노려보며 다시 물었다.

감사한 것은 감사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오늘은 어렵습니다.”

안 상사가 답했다.

“그렇게 좋냐?”

원 원사가 질문이 훅 들어왔다. 주어가 생략된 그 문장이 안 상사의 가슴에 푹 하고 박혔다.

“…….”

안 상사는 순간적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짧은 순간에 그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잠시 스쳐갔다.

“어, 저 자식 저거. 최 원사, 방금 봤어? 저 자식 저거 놀란 거?”

“……놀랐습니까? 평소와 다름없는 것 같은데?”

“최 원사는 아직 멀었어. 방금 저 철판 같은 상판대기에 당혹감이 스쳐 갔다니까. 와, 내가 진짜 살다 살다 안성종이 놀라는 모습을 다 보네. 야, 그렇게 좋냐? 제수씨가 그렇게 잘해 주냐?”

안 상사는 대답 없이 손을 들어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진짜네요.”

최 원사도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안성종의 모습에 놀라워하면서 말했다.

부끄러워하고 있다. 저 안성종이가 지금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오신다고 미리 알려 주셨으면.”

안 성종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원 원사는 더욱 놀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와, 지금 너 변명한 거야? 안성종이가 지금 변명한 거야? 진짜 사람 된 거야? 안성종이 드디어 사람 된 거야?”

원 원사가 놀란 눈으로 최 원사를 보면서 말했다.

“제가 그랬잖습니까.”

원 원사는 놀란 눈으로 안성종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 눈에 사람 좋은 웃음이 담겼다.

“알았다, 임마. 내 드러워서 너랑 술 안 먹는다. 얼른 사라져. 꺼져, 임마.”

안 상사는 오랜 상관이자, 전우이자, 형님의 눈에 담겨 있는 미소를 보았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깊은 정을 느꼈다.

“다음에 오시게 되면 저희 집으로 오시죠. 오시는 날을 알려 주시면 아내에게 미리 이야기 해 놓겠습니다.”

원 원사는 웃었다.

오랫동안 안성종을 봐 왔지만 그가 이렇게 긴 문장을 말한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 상황이 어쩐지 기뻐서 그도 모르게 웃었다.

“싫어, 임마. 얼른 꺼져. 제수씨에게로 꺼져 버려.”

원 원사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안성종 상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경례를 붙였다. 그의 얼굴은 다시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야, 성종아.”

안성종 상사가 막 문을 열고 나가려던 찰나, 원 원사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제수씨에게 안부 전해 주고.”

뒤를 돌아본 안 상사는 원 원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잔상에 미소가 남아 있었다.

문이 닫히고 안 상사가 나가자 최 원사가 담배를 건넸다.

“행복해 보이는군.”

담배를 받아 들고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 원 원사가 그렇게 말했다.

“그나저나 좀 아깝기는 합니다. 저 녀석만 한 인물이 없는데 말이죠.”

최 원사도 담배의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그건 그렇지.”

새롭게 창설되는 대북 침투 팀의 팀원들을 물색하기 위해 특수전학교를 찾은 원 원사는 시선을 먼 곳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가 지금까지 만난 군인 중 최고를 뽑으라면 주저 없이 안성종을 뽑을 것이다.

신체적 능력은 둘째 치고서라도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을 지닌 그만한 재목을 또 어디서 찾겠는가?

“그래도 한번 이야기해 볼까요?”

최 원사가 물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특수전학교에서 교관으로 쓰기에 안성종은 아까운 인재이기는 했다. 닭 잡는 데 용 잡는 칼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최 원사의 말에 원 원사는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그리고 담뱃불이 거의 필터에 가까워졌을 때가 되어서야 싸구려 믹스커피가 담긴 종이컵에 담배를 비벼 끄면서 말했다.

“아니, 그냥 두자고. 하겠다고 할 것 같지도 않고. 또…… 그렇잖아? 행복하게 사는데.”

최 원사는 원 원사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담뱃갑을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오늘 좀 멋지신데요?”

“나야 항상 멋있지.”

원 원사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담배를 한 대 뽑아 들었다.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모르겠어.”

원 원사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말입니까?”

원 원사의 말에 살짝 긴장한 최 원사가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안성종이 저 자식이 어떻게 결혼이란 걸 할 수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

원 원사의 그 말에 최 원사는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애들 사이에서는 안성종이 저놈이 전생에 나라를 구했든가, 제수씨가 나라를 팔아먹었든가 둘 중 하나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제수씨는 도대체 얼마나 큰 나라를 팔아먹은 거지?”

원 원사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

오래된 상관의 술자리 권유를 거절한 안성종은 차를 관사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시켰다.

문을 열고 나온 그는 고개를 들어 4층 창문을 바라보았다.

건축된 지 오래된 5층짜리 군인 관사용 아파트는 낡아서 외벽이 노인의 피부처럼 여기저기 얼룩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저분한 외벽에 붙어 있는 창문 하나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안성종에게는 새로운 습관이 몇 가지 생겼다.

그중 하나가 차를 주차시키면 고개를 들어 불 켜진 창문을 바라보는 습관이었다.

부엌과 바로 연결되는 그 창문에는 언제나처럼 불이 켜져 있었다. 그 창문 너머로,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운전해 오면서 안성종은 원 원사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었다.

그러나 불 켜진 부엌 창문을 바라보면서 거절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발을 앞으로 뻗었다.

그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언제나처럼 그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아내에게 가기 위해서.

그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

식탁에 앉은 안성종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오늘 저녁에도 여전히 푸짐한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계란이 몇 개나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거대한 계란말이. 한 바가지는 될 것 같은 꼬막무침, 족히 반 근은 되어 보이는 제육볶음, 네 명은 먹고도 남을 된장찌개, 비벼 먹을 용도로 총총 썰어 놓은 열무김치.

그리고 그의 앞에 놓인, 산처럼 쌓인 고봉밥.

안성종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고 숟가락을 들었다.

“억지로 다 먹지 마요.”

맞은편에 앉은 아내가 생글생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안성종은 고개를 끄덕이고 밥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갓 지은 밥의 향긋한 밥 냄새가 그의 후각을 자극했다.

“오늘 시장 갔는데 꼬막이 싸게 들어 왔더라구요. 그래서 가져와 무쳤는데, 한번 먹어 봐요. 여기.”

아내는 꼬막을 하나 집어 들어 발라 낸 후 안성종에게 내밀었다.

안성종이 그 꼬막을 받아 들기 위해 젓가락을 가져가자, 아내는 손을 뒤로 빼내면서 거부했다. 어린아이를 혼내는 유치원 선생님 같은 얼굴을 하고서.

안성종은 알고 있었다. 이 싸움에서 절대로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포기한 안성종은 젓가락을 거둬들이고 대신 얼굴을 내밀었다. 그제야 아내는 웃으면서 꼬막을 입에 집어넣어 주었다.

안성종은 꼬막 안에 남아 있는 향긋한 바다 내음이 아내가 정성들여 배합한 양념 간장과 입안에서 이루는 조화를 느꼈다.

애초에 음식을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였다.

그런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언제나 푸짐한 저녁상을 차렸다. 그리고 안성종은 그 음식들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아내는 억지로 다 먹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안성종은 아내가 만든 음식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양을 줄여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아내는 남는 게 부족한 것보다 낫다며 항상 엄청난 양의 음식들을 준비했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했지.

안성종은 아내가 건네준 제육볶음을 입으로 받으면서 원 원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얼굴이 좋아졌을까? 아내가 이렇게 잘 먹여 줘서?

얼굴을 좋게 만드는 것은 매일 저녁 이렇게 배가 터질 것 같은 저녁밥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성종은 알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잘 알고 있었기에, 안 상사는 아내가 만들어 준 음식을 절대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오늘도 힘들겠군.

안 상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가 입을 열었다.

“오늘 병원에 다녀왔어요.”

아내의 말에 안성종의 숟가락이 순간 멈추었다. 그러나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움직였다.

“한 번만 더 해 보고 싶어요.”

“…….”

안성종은 말없이 된장찌개를 떠서 입안에 넣었다. 그러나 전혀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내는 두 번의 인공수정에서 착상에 모두 실패했다.

차선으로 선택한 시험관아기는 착상이 되었지만, 초기에 유산되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아내는 건강을 망쳤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가 여자에게 얼마나 부담을 주는지, 안성종은 경험을 통해서 잘 알게 되었다.

세 번의 실패 후, 아내는 다시 시험관아기를 시도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안성종은 그런 아내를 막았다. 결혼하고 단 한 번도 아내에게 안 된다는 말을 해 본 적 없던 그가 처음으로 아내의 생각에 반대를 표시했다.

아내는 아이를 좋아했다.

하지만 아내가 임신을 고집하는 이유는 좋아하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남편을, 안성종을 꼭 닮은 아이를 낳고 싶었고, 아빠에게 안겨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안성종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물론 그도 아이가 있었으면, 아내를 꼭 닮은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아내의 건강을 망쳐 가면서까지 아이를 갖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처음으로 아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흘렀고, 아내가 다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병원에서 그랬는데, 체력도 많이 좋아졌대요. 아가 집도 많이 안정되었고……. 한 번만 더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래도 안 되면…….”

아내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남편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해 주는지, 왜 자신의 임신을 그렇게 반대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기에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자신이 더욱 나쁜 사람처럼 느껴졌다.

안성종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내를 뒤에서 꼭 안아 주었다.

“나는 당신만 있으면 아무것도, 그 누구도 필요 없어.”

안성종이 그렇게 속삭였다. 아내의 눈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눈물이 보였다.

“약속해 줘. 조금이라도 무리가 간다면 포기할 거라고. 나를 위해 아이를 포기할 것이라고 약속해 줘.”

안 상사가 그렇게 말했다.

아내의 고개가 돌아갔다.

눈물이 그렁그렁 담긴 그녀의 눈에, 자상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남편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약속할게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당신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

안성종이 그녀를 꼭 안아 주면서 다시 속삭였다.

< INTERMISSIOM : Memento Mori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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