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69화 (170/386)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42, 完) >

살기를 품고 달려오는 세 명을 맨손으로 순식간에 처리한 한규호는 잠시 숨을 고르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한규호를 제외하고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도팀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한규호는 몸을 돌려 이규철 대위에게로 다가갔다.

모르핀 주사 두 방을 맡고 정신을 잃고 있던 그를 계속 방치해 두고 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규철 대위에게 다가간 한규호는 손가락을 한쪽 팔로 이규철 대위의 머리를 받치고, 손가락을 그의 코에 대었다.

그러나 미약한 온기라도 느껴지길 바랐던 그의 기대와는 달리, 한규호의 손가락은 11월의 추위를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호흡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한규호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이 시선이 이규철 대위의 얼굴에서 가슴으로 향했고, 가슴에, 명치 부위에 나 있는 출혈 부위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가슴에 상처와 같은 위치에 검상(劍傷)이 있었다.

한규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미 사망한 윤재운 중사의 등에도 대검으로 인한 상처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한규호는 손을 들어 이규철 대위의 얼굴을 만졌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생명력을 잃어버린 탓인지, 그의 얼굴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고통스럽지 않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모르핀의 강력한 진통 효과 덕분에 이규철 대위는 칼이 명치를 뚫고 들어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평화 속에서 잠들었을 것이라고 한규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그 자신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씨발! 죽었는데!

죽어 버렸는데! 더 돌아갈 수 없는데! 평화로운 죽음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이야!

한규호는 잠시 그렇게 자신에게 분노를 표출하면서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억지로 찍어 눌렀다.

그렇게 잠시 감정을 소모한 한규호는 조심스럽게 이규철 대위의 머리를 내려놓았다.

더 감정을 소모하기 위해 시간을 소모할 수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도 살리자.

그렇게 생각한 한규호는 박종연에게 다가가 그의 군장을 뒤져 모르핀 주사를 꺼냈다. 그리고 박종연의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 그의 몸이 잠시 움찔했지만, 주사약이 들어가자 이내 그의 얼굴에는 평온이 깃들기 시작했다.

진통 효과가 발휘된 것을 확인한 한규호는 군장에서 붕대를 꺼내 출혈 부위에 강하게 압박했다.

임시 응급조치가 끝나자 한규호는 박종연의 군장을 벗겨 버렸다.

이제 군장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사느냐 죽느냐는 아주 미묘한 차이에서 결정이 난다. 그리고 그 차이에서 군장은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한규호는 거의 정신을 잃어버린 박종연 중사를 어깨에 짊어 멨다.

멀리서 들려오던 헬리콥터의 로터 회전 소리는 짐승은 물론, 사람에게도 들릴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슬슬 이곳을 벗어나야 나야 했다.

모르핀 지속 시간이 얼마나 될까? 약효가 다 떨어지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고, 국경을 넘어 접선 지점까지, 회수 팀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향해야 했다.

한규호는 발을 움직이기 전에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와 박종연을 제외하면 숨이 붙어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귀가 날아가고 팔에 칼이 꽂힌 상태로 정신을 잃어버린 남자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그의 부하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남자. 무력화된 상황에서도 한 명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 몸을 움직였던 남자.

마지막까지 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규철 대위의 대척점에 서 있는 남자는 아직 살아 있었다.

박종연을 어깨에 짊어진 한규호는 잠시 고민했다. 확실히 숨통을 끊어 버릴까?

지금 상황에서 그의 목숨을 취하는 것은 병아리를 죽이는 것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규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미동도 없이 눈밭 위에 쓰러져 있는 백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한규호는 그의 모습을 보자 서용석을 바라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살심이 그의 가슴을 채우는 것을 느꼈다.

죽여 버리고 싶다. 저 개자식을 죽을 때까지 죽여서 영원히 죽여 버리고 싶다.

그러나 한규호는 그럴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은 저 개자식을 죽여 버릴 수 없었다.

한규호는 시선을 거두고 북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계속 저 개자식을 바라보다가는 정말로 죽여 버리게 될 것 같아서, 참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억지로 북쪽을 향해 발을 옮겼다.

점점 가까워져 오는 헬리콥터의 로터 소리를 들으면서 한규호는 발끝에 힘을 주었다.

***

2008년 11월 29일.

두만강 변 접선 포스트.

허룽, 길림성, 중국.

냉기로 가득한 헬리콥터 기내에서 온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던 엄주현은 초조한 눈으로 손목을 돌려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시침이 막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곳 접선 지점에 착륙한 지 9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 9시간 동안 엄주현은 언제 올지 모를 진도 팀을 기다리면서 추위에 떨고 있었다.

물론 그 혼자만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헬리콥터를 몰고 온 기장과 부기장, 정보사의 엄주현, 국정원의 김훈, 그리고 응급처치 담당 요원 두 명까지 차가운 11월 말의 압록강 변의 추위 속에서 9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9시간 동안 엄주현은 김훈이, 사람을 잡아먹는 궁기라는 괴물의 별명을 가진 왕 노사라는 인물이 어떻게 헬리콥터를 동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

허룽에 있는 VIP들이 백두산 관광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폭설 때문에 도로가 막혀 버렸다. 궁기라는 놈이 운영하는 이 여행사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꽌시를 동원해 VIP를 백두산으로 모시고 갈 헬리콥터의 비행 계획을 제출했다.

연변에서 출발한 헬리콥터가 허룽에서 귀빈들을 태웠고, 이동하던 중 갑작스러운 기체 고장으로 이곳에 급하게 착륙한다는 시나리오가 그 짧은 시간 동안 쓰이고 시행되었다는 사실을 기다림에 지친 부기장이 엄주현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개판이군.

이야기를 듣는 동안 엄주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개판이어서 다행이군.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나서 엄주현은 그렇게 결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에는 문제가 있었다. 진도 팀이 도착할 때까지 48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급조된 계획으로는 48시간을 버틸 수 없다는 것이 부기장의 이야기였다.

해가 뜨면 어떤 식으로든 다시 헬기를 띄워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엄주현은 걱정하지 않았다.

기장이 헬기의 시동을 걸겠다고 하면 막아 버리면 그만이다.

돈이든, 폭력이든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말이다.

엄주현은 다시 시계를 보았다.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에 둘러싸여 있었다.

만약 지금처럼 헬기를 흔들어 대는 강한 바람이 불어오지 않았다면,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검은 방에 갇혀 있다고 착각이 들 정도로 온 사위는 어둠뿐이었다.

11월 두만강의 냉기를 머금은 차가운 강바람이 헬기를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바람은 닫힌 문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지만, 그 냉기는 헬기 안에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잠도 깰 겸 담배를 피우려던 엄주현은 잠시 생각을 하고는 헬기 문을 열었다.

신선한 공기로 머릿속을 한번 비워 내고 싶은 마음에 문을 연 것이다.

문이 열리자 차가운 냉기가 기내로 무섭게 몰아쳤다. 부기장석에서 잔뜩 움츠리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부기장이 매서운 눈으로 엄주현을 돌아보았다.

엄주현은 너무도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후회되는 마음이 들었다. 그냥 피울 것을 그랬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민망해진 엄주현은 자신을 노려보는 부기장에게 미안하다는 손짓을 하고 재빨리 헬기에서 내려 문을 닫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바람이 더 강하게 불고 있었다. 추위가 더 날카롭게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엄주현은 잔뜩 몸을 웅크린 채로, 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힘들게 붙인 담배를 입에 물고 깊게 빨아들였다. 까끌까끌한 담배 연기가 날카로운 냉기와 뒤섞이면서 기관지를 긁고 지나갔다.

엄주현은 살짝 기침을 터트렸다. 큰기침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 내면서 한동안 계속 잔기침을 터트렸다. 그렇게 기침을 하고 나니 조금 진정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주현은 다시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씨발 끊어야지. 이번 작전 끝나면 진짜 끊어야지.

엄주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새 담배를 꺼낸 다음, 피고 있던 담배를 이용해 불을 붙였다.

새로 불붙인 담배를 입에 물고,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던져 짧은 불꽃을 만들어 낸 엄주현은 온몸을 얼게 만드는 냉기 속에서도 그의 몸을 잠식해 가는 피곤을 이겨 내기 위해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졸라게 춥네. 슬슬 들어가야 하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비빈 엄주현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엄주현은 재빨리 입에 문 담배를 빼내어 바닥에 던지고 발을 들어 밟아 끄려 했다.

그러나 두만강 변의 강한 바람은 그 담배꽁초를 그의 발밑에서 빼내어 빠른 속도로 다른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엄주현은 날아가 버린 담배꽁초는 머리에서 지워 버리고, 재빨리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나서 단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은 손전등을 꺼냄과 동시에 눈을 가늘게 뜨면서 초점을 잡았다.

자신이 본 것이 실제인지, 아니면 헛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 다가오는 것이 실제하는 무언가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씨발, 멈춰! Stop there!”

엄주현은 일단 소리쳤다.

거기 멈춰가 중국어로 뭐였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손전등으로 헬기의 문을 강하게 두드렸다.

“움직이지 마! 거기 멈춰!”

엄주현이 다시 소리쳤다.

그러나 그가 외치는 소리는 강한 강바람에 의해 산산이 흩어져 나갔다.

“경고한다. 거기 멈…….”

다시 한번 강하게 외치는 엄주현에게 두 개의 소리가 찾아왔다.

하나는 뒤에서 들리는 헬리콥터의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또 하나는 앞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진도!”

남자의 말소리는 방향성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새 찬 바람 소리를 뚫고 엄주현의 귀에 꽂혔다.

진도? 방금 진도라고 했지?

엄주현은 앞으로 뛰어갔다. 확인하기 위해서. 몇 명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씨발, 제발!

두 명 아니면 네 명이라고 했다.

여섯 명은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제발 네 명이었으면!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는 엄주현의 눈에, 한 사람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였다.

단 한 사람만 보이는 모습에 엄주현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한 명? 단 한 명뿐이라고?

그런 엄주현의 귀에,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발목에 총상, 심한 출혈, 신체 말단에 동상 징후, 저체온, 영양실조 상태니까 바른 조치가 필요하다!”

남자가 외쳤다.

저 남자는 지금 발목에 총상을 입고, 심한 출혈이 있었고, 손과 발에 동상을 입고 저체온 상태에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상태로 걸어오고 있다,

그렇게 이해한 엄주현은 그 남자를 부축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리고 흐릿한 윤곽이 확실한 모습으로 파악될 정도로 가까이 접근하고 나서야, 그의 어깨 위에 한 남자가 들려 있음을, 그 증상들이 그 남자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

한규호는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커피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천천히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유난히 커피 맛이 쓰다고 느껴졌다.

“그런 눈을 하면…….”

한규호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규호 씨가 그런 눈을 하면 난 더 물어볼 수가 없잖아요.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으면…….”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정지혜가, 진도0 이규철 대위의 부인이 슬픈 눈으로 한규호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한규호는 천천히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

한규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했고, 여전히 괴로웠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규호 씨, 밥 안 먹었죠? 저녁밥 먹고 가요.”

정지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차피 차려야 할 식탁에 밥 한 공기 더 푸는 거니까 싫다고 하지 말고요.”

막 거절의 의사를 밝히려던 한규호를 미리 선수 쳐 막아 낸 정지혜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에 종연 씨가 택배로 간장게장을 한 트럭을 보내왔어요. 이리저리 나눠 주고 했는데도 아직 반 트럭 남아 있으니까 규호 씨가 좀 처리하고 가요.”

그 말을 한규호는 평택지방해양항만청 뒷골목에 있는 간장게장 백반집을 떠올렸다.

거기 게장을 택배로 보냈나 보군.

“규호 씨 게장 먹어요? 안 먹는 거 아니죠?”

부엌에서 정지혜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한규호에게 물었다.

“……먹습니다. 껍질은 빼고.”

한규호의 말에 정지혜는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미소를 지어 주고는 부엌으로 다시 들어갔다.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고 생각한 한규호는 자책의 쓴웃음을 지은 후, 두 사람이 마셨던 커피 컵을 부엌으로 가져가기 위해 손을 뻗었다,

삐삐삐삑.

그때 현관 오토록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규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열린 문으로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어? 규호 삼촌!”

문을 열고 들어오던 남학생은 얼굴 가득 반가움을 담아서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한규호는 아버지의 얼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남학생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42, 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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