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40) >
한규호는 눈앞에 있는 남자의 등허리에 대검을 찔러 넣었다.
신장이 위치한 곳에 정확히 칼자루까지 깊숙이 찔러 넣으면서 손을 통해 전달되는 저항감이 느껴졌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한규호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바로 칼을 빼내면서 그 반동을 이용해 뒤구르기로 한 바퀴 굴러서 몸을 일으켰다.
상체를 일으키고, 팔을 뻗어 사람을 찌르고, 뒤구르기로 몸을 굴리고, 반동으로 일어서는 연결 동작이 과도했는지, 흉부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통각이 차단되어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임시로 봉합한 상처가 다시 찢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조심해야겠군.
한규호는 재빨리 자신의 몸이, 상처가 견뎌 낼 수 있는 부하를 계산했다.
그리고 그 계산값에 거의 육박할 정도의 힘을 발끝에 주어 앞으로 몸을 날렸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몸에 가속도가 붙는 것을 확인한 한규호는 대검을 들고 있던 오른팔을 뻗었다.
그 칼끝은 이미 등허리를 한 번 찔린 남자의 목덜미 한가운데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칼은 한규호의 예상과는 달리 목표의 목덜미를 찌르지 못했다.
목표의 몸이 휘청이면서 고개가 움직였고, 대검은 뒷목 판상근과 목뼈와 그 목뼈에 의해 보호받는 신경을 끊어 내지 못하고 그의 목을 비껴 갔다.
그러나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칼이 신체에 닿았을 때 느껴지는 저항감이 한규호의 손에서 느껴졌다.
칼끝에 남자의 왼쪽 귀가 뜯겨 날아가는 모습이 한규호에 시야에 들어왔다.
목표의 귀를 잘라 냈음에도 칼끝은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한규호의 손에 들린 칼끝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한규호가 남자에게 칼을 휘두른 이유는 그가 개자식의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자식의 몸에 칼을 밀어 넣으려면 먼저 이 남자를 치워 버려야 했고, 그 의도로 그를 찔러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무너져 버리면서 한규호와 개자식 사이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차피 신장을 찔렸다. 살아남지 못한다.
그렇게 판단한 한규호는 무너져 버리는 남자에게서 관심을 거두었다. 그리고 거두어진 관심을 대검에 담아서 개자식을 찔러 갔다.
한규호는 한발 더 나아가며 찔러 들어가는 칼에 속도를 넣었다.
몸에 걸리는 부하가 계산값을 넘어서며, 피부가 다시 찢어지려 했지만, 한규호는 힘을 줄이지 않았다.
얀 베르그만은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한규호의 칼을 받았다.
한규호는 칼이 손바닥을 뚫어 가며 손바닥의 피부와 얼마 없는 근육과 신경과 뼈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짜릿한 느낌이 한규호의 온몸을 관통했다.
이거다. 이거였구나.
하지만 한규호는 방심하지 않았다.
이 괴물은 십여 발이 넘는 총알을 맞고도 살아남았다.
고작 칼질 한 번에, 그것도 손바닥을 뚫었다고 해서 무력화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규호는 관성에 의해 앞으로 나아가는 몸을 틀면서 그의 상체에 어깨로 차징을 했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오른손에 박혀 있던 대검을 뽑아냈다.
“크아악!”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돌격 소총에서 발사된 총알을 근거리에서 맞으면서도 단 한 번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보이지 않던 그가 처음으로 고통을 표현한 것이다.
그 고통에 찬 소리가 한규호의 몸에서 도파민 분비를 자극했다.
그렇게 분비된 도파민은 빠르게 노르에피네프린, 아드레날린으로 전환되면서 한규호의 중추신경을 자극하고 신체 능력을 향상시켰다.
한규호는 왼손을 뻗었다. 그리고 어깨 차징으로 인해 뒤로 튕겨 나가는 그의 오른손을 향해 뻗었다.
튕겨 나가는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인 한규호의 왼손이 그의 오른손에 닿았다.
한규호가 손을 뻗은 이유는 튕겨져 나가는 그를 잡아채기 위해서, 그와의 거리가 늘어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한규호는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손을 잡는 대신, 왼손 검지를 뻗어, 그의 오른손에 나 있는 상처, 한규호가 찔러 넣은 대검에 의해 생긴 상처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대검에 의해 만들어진 작은 틈을 억지로 벌리고 들어가면서 느껴지는 피부와 근육과 뼈의 감각이 손가락을 통해 한규호에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한규호는 손바닥을 뚫고 들어간 손가락을 꺾어 그의 왼팔을 봉인함과 동시에, 그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를 붙잡아 놓는 효과를 얻었다.
고통을 주는 것과 더불어.
그렇게 그의 몸을 고정한 다음, 오른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비틀어 그의 왼쪽 옆구리에,
신장이 있는 곳에 찔러 넣었다.
“크악!”
조금 전보다 더 큰 비명이 터져나 왔다.
한규호는 그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칼을 비틀어서 꺼내서 흉부, 간이 있는 위치에 다시 한번 찔러 넣었다.
괴인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크게 떠졌다.
그 얼굴에서 고통이 그의 온몸을 불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한규호는 알 수 있었다.
한규호는 그의 목에, 뇌로 향하는 대동맥이 있는 곳에 칼을 찔러 넣기 위해서 다시 칼을 빼냈다.
그 순간 직감이 그를 찾아왔다.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등에 칼을 찔러 넣고 있다는 경고가 그에게 찾아왔다.
***
서용석보다 조금 뒤처친 채로 달려가던 535의 박철 상사는 자신의 상관이 1호 손님의 이마에 총을 겨누고 소리치는 모습을 보았다.
박철은 그 모습에 놀랐고, 서용석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유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서용석이 그를, 당에서 관리하는 1호 손님을 해한다면 박철 그 자신을 포함해 535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서용석의 저런 행동에 분명히 이유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용석이 그를 처치한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상관의 행동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 결과가 죽음이라고 해도.
박철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조금 늦추었다.
흥분해 있는 그의 상관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막 달려가는 속도를 줄인 그 순간 박철의 눈에 보여서는 안 되는 모습이 보였다.
가슴에 칼이 꽂힌 채로 확실히 죽어 있던 시체가 오른손을 움직이는 모습이. 움직인 오른손으로 칼 손잡이를 움켜쥐고 뽑아내는 모습이, 뽑아낸 칼을 들고 상체를 일으키며 자신의 상사의 등허리를 찔러 가는 모습이 박철의 시야에 들어왔다.
상관의 몸에 직면한 위험을 감지한 박철은 본능적으로 다시 다리에 힘을 주었다.
막 속도를 늦추던 차에 다시 다리에 힘이 들어가자 그의 몸에 균형이 깨졌다.
박철은 크게 휘청거리면서, 자신이 저 부활한 시체를 저지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총을 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총을 쏘기에 서용석이 너무 가까이 있었다.
그의 존경해 마지않는 상관이 너무 가까이 있었고, 전력으로 달려온 박철의 호흡 또한 너무 거칠었다.
사격은 안 돼.
사격을 포기한 박철은 휘청거리는 몸을 바로 잡으며 소총을 던져 버렸다.
그리고 대검을 빼 들면서 있는 힘껏 발을 굴렀다.
박철은 온몸의 힘을 짜내어 달려 나갔지만, 자신의 상관이 옆구리를 찔리고, 귀가 잘려 나가고, 옆으로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상관을 쓰러트린 시체가 1호 손님의 손을 찌르고, 어깨로 밀치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손을 부여잡은 다음 옆구리와 가슴에 각각 한 방씩 칼을 찌르는 모습도 보았다.
박철은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상식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애초에 적의 뒤에서 나타난 1호 손님의 모습에서부터 왜곡된 이 세계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1호 손님,
그가 살해한 남조선 병사,
그리고 다시 살아나 가슴에 꽂혀 있던 칼로 다시 상관을 찌르는 이 기이한 모습을 그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눈앞에 상황에 대처한다.
그런 결정을 내린 박철은 그저 저 살아 있는 시체를 처리하고, 어서 빨리 상관을 치료할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상관이 처치하려고 했던 1호 손님을 처치할지 말지는 그 후에 생각해 볼 문제였다.
전력을 다해 달려왔던 덕에, 살아 있는 시체와의 거리가 몇 미터 남지 않았다.
박철은 빠르게 손에 들린 대검을 뒤로 뺐다가 가속도를 붙여 앞으로 찔러 갔다.
***
한규호는 욕망을 느꼈다.
뒤에서 찔러 오는 칼을 무시한 채로,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정체불명의 개자식을 찌르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신장과 간을 찔렀다. 사람이라면 진즉에 죽고도 남았을 만한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이 개자식은 아직 살아 있다. 엄청난 고통에 소리 지르고 몸부림치면서도 그는 아직 살아 있다.
그다음은 목이다.
목의 대동맥을 찌르고, 그다음에는 심장을 찌른 다음, 다시 들어 올려 눈을 찌르고, 마지막에는 관자놀이를 찔러 뇌를 파괴한다.
그렇게 해서도 죽지 않으면 다른 곳을 찾아서, 찌르고 또 찌른다.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찌르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그러나 한규호의 몸은 그런 욕망을 거부했다.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했던 전투훈련에 의해 단련된 한규호의 몸은 뒤에서 날아오는 위협을 감지하고 피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규호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자신의 몸을 통제하려다 마음을 바꿔 먹었다.
방해하는 놈도 죽인다. 열이든, 백이든, 다 죽여 버리겠다고 결심했다.
한규호는 어깨를 살짝 비틀었다.
사람 많은 거리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 살짝 몸을 비트는 정도로 어깨를 살짝 비틀었다.
그 간단한 동작 하나로 한규호는 자신의 등으로 날아오던 칼날을 피해 냈다.
칼날을 피해 낸 한규호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감각만으로 자신에 손에 들린 칼을 뒤로 내밀었다.
그렇게 내민 칼끝이 무언가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한규호는 여전히 앞을 보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달려든 누군가의 전완, 손목과 팔꿈치 사이의 있는 팔 근육이 그 칼끝에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규호는 팔은 고정한 채로, 손목만을 돌려서 칼끝을 지그시 눌렀다.
“크아아악!”
한규호를 향해 덮쳐 오던 북한군이 고통에 가득 차 외치는 비명이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한규호가 들이 밀은 칼에 그의 팔이 닿았고, 스스로 달려오던 관성에 따라 그의 팔 근육이 갈라지면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지르는 비명이었다.
그러나 그 비명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뒤에서 덮쳐 온 남자의 팔근육을 가른 한규호 칼이 미묘한 곡선을 그리며 그의 목을 그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비명은 끊어지고, 대신 거품 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있는 한규호는 뒤에서 달려오던 사람이 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동맥이 잘리면 살아남지 못한다.
어디, 이 개자식은 대동맥이 끊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지만 살아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다시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죽을 때까지 죽여 벼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한규호는 뒤로 향했던 든 팔을 앞으로 가져왔다. 칼끝이 개자식의 목을 향할 수 있도록.
긋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별 대우를 해 줘야 한다.
대동맥과 뼈와 신경 모두를 전부 끊어 버리기 위해서는 깊숙이 찔러 넣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결심한 한규호는 우측에 완만한 호를 그리며 그의 목을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한규호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었다.
무기력하게 죽음을 앞에 두었다고 생각한 괴인이 칼을 받아 낸 것이다.
고개를 꺾어 목을 보호하면서 그의 얼굴을 내밀어, 뺨으로 대검을 받아 낸 것이다.
부드러운 뺨을 뚫고 들어간 대검은 단단한 턱뼈에 막혀 목에 닿지 못했다.
고통의 찬 얼굴이 한규호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 봤자다. 그래 봤자 마지막 발악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한규호는 다시 칼을 빼내려 했다.
그때 또다시 직감이 찾아왔다.
뒤에서 위험이 찾아왔다는 직감이 그를 찾았다.
이번에 한규호는 고민하지 않았다.
지체 없이 눈앞에 있던 괴인을 발로 차서 날려 버렸다. 그의 뺨이 찢어지면서 칼이 빠져나왔다.
한규호는 몸을 돌리며 그에게 가장 접근해 있는 북한군의 복부에 칼을 찔러 넣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달려오는 적의 모습을 헤아렸다.
여덟 명이, 지금 막 처리한 북한군을 포함해 여덟 명이 남아 있었다.
***
박종연은 누워 있는 자세 그대로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던 마비는 이미 예전에 풀려 있었지만, 그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한규호가 칼 한 자루를 가지고 적들을 살육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의 손바닥, 옆구리, 가슴을 찔렀고, 그사이에 한규호에게 기습해 온 북한군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 두 번의 칼질에 절명시켰다.
칼을 빼내자마자 바로 괴인의 얼굴을 찔렀고, 발로 차 떨군 다음 몸을 돌려 또 한 명의 복부에 칼을 찔러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박종연은 악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지?
지금 저기서 칼을 들고 움직이는 저 사람은 누구지?
한규호의 탈을 쓰고 있는 저 악마는 누구지?
박종연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피를 뒤집어쓴 채로 칼을 휘두르는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여러 명이 동시에 한규호를 포위했다. 그러나 한규호는 그 포위망 속에서 머리카락 하나 차이로 적들의 칼을 피해 가면서, 빈틈에 칼을 찔러 넣었다.
한규호의 칼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적들의 목숨 하나가 사라져 갔다.
악마다.
저 모습은 악마 그 자체였다.
박종연은 악마 같은 한규호의 모습을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악마라도 상관없었다.
지금 여기서 적들을 다 죽여 버릴 수 있다면,
피에 취한 악마가 자신의 목숨을 취하러 온다 할지라도.
“전부 다…… 죽여 버려.”
박종연이 작게 읊조렸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40)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