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9) >
2008년 11월 28일.
함경북도 무산군.
백금산역 북북동 153km 지점.
한규호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시전자는 뭐고, 죽음을 선물받는 것은 뭐고, 신체에 대한 통제는 또 뭐란 말인가.
시전자나 선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지만, 신체에 대한 통제라는 부분은 알 수 있었다.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신체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신체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 스스로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한규호는 제일 먼저 멈춰 있던 심장을 뛰게 하는 대신, 뇌로 향하는 혈류를 빠르게 돌렸다.
CPR, 심폐 소생술의 기본은 심장을 뛰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뇌에 산소 공급을 하기 위한 것이다.
전투 의료의 기본 과정을 이수한 한규호도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고, 그래서 한규호는 심장보다 혈류를 우선적으로 돌렸다.
뇌에 산소가 들어가자 감각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브라운관처럼 팍 하고 꺼졌던 의식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한규호는 혈류를 돌림과 동시에 명치를 뚫고 들어온 칼에 의해 발생한 출혈 부위에 지혈을 시도했다.
신체에 대해 완벽한 이해와 통제를 확보한 한규호는 지혈이 완료되기 이전에 심장이 박동하면 박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압력에 의해 지혈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칼은 대동맥을 비켜 갔다.
그러나 대동맥에 연결된 다른 동맥이 끊어졌다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고, 출혈을 막기 위해 임시로 그 이름 모를 동맥을 차단했다.
한규호가 이름도 모르고 차단한 복강동맥(Celiac artery)는 총간동맥, 비장동맥, 좌우동맥 등에 연결되는 주요 동맥이었기에 빨리 연결할 필요가 있었지만, 연결하고 싶어도 칼에 막혀서 지금 당장은 연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선은 차단하는 것으로 임시 조치를 취했다.
복강동맥을 시작으로 주요 부위에 지혈을 완료한 한규호는 그제야 심장박동을 다시 시작했다.
천천히, 부상 입은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심장을 가동했다.
심정지 이후 첫 번째 심박의 진동이 몸 전체에 전달되자, 그에 맞춰 신경도 깨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경이 깨어나면서 온몸을 지배했던 고통이 다시 찾아왔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죽기 전과 똑같이 느껴지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처음 고통이 신경을 모두 태워 버릴 정도로 괴로운 고통이었다면, 이번 고통은 죽었던 신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증거였기에 괴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운 기분까지 들었다.
그러나 한규호는 그 고통을 만끽할 여유는 없었다.
지금 당장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고통 때문에 행동에 제약이 있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고, 통각을 차단하면서 온몸에 퍼져 나가던 고통을 차단했다.
한규호는 마지막 작업에 들어갔다. 폐가 아닌 피부로 산소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했고, 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세포호흡을 해야 했다. 세포호흡의 마지막 열쇠인 산화적 인산화를 위해서는 산소가 필요했다.
한규호는 폐가 아닌 전신의 피부를 통해 산소를 받아들임으로써 해당 과정-TCA회로-산화적 인산화로 이어지는 세포호흡 사이클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포에서 ADP가 ATP로, 즉 우리 몸에서 직접 사용하는 에너지로 전환되었다.
한규호에게는 이 과정이 진행되는 시간이 끝도 없는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의식이 끊어지고,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을 잃고, 문장의 의미를 탐구하면서 동시에 신체에 대한 완벽한 통제력을 확보하고, 혈류를 돌리고, 혈관을 차단하고, 심장을 뛰게 하고, 돌아오는 감각과 신경을 느끼고, 통각을 차단하고, 산소를 받아들여 세포호흡을 재가동해 에너지를 얻기까지 적어도 수십만 년은 지나간 것처럼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동시에, 그의 생체 시계는 그 시간이 불과 몇 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 왔다.
죽음에서 돌아오고,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얻으면서 원자시계처럼 정확해진 그의 생체 시계가, 그 시간이 불과 몇 초밖에 안 된다는 정보를 그에게 전달했다.
한규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그리고 이제 움직일 준비가 끝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명치에 칼이 박혀 있는 지금 상태에서, 여전히 피부와 근육과 복막이 갈라진 그 상태임에도 이제는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규호는 눈을 떴다.
그리고 그의 눈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정체불명의 남자, 자신의 명치에 칼을 밀어 넣은 개자식의 눈이.
경악에 가득 찬 눈이 보였다.
***
박종연은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한 상태로, 정체불명의 남자가 한규호의 명치에 전투용 대검을 꽂아 넣는 것을 보고 있었다.
총구는 여전히 전방을 향해서, 정체불명의 남자가 서 있던 곳으로 향해 있었다,
이 총구를 오른쪽으로 90도 돌려서, 지금 전우를 해치려고 하는 저 남자의 머리를 날려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의 몸은 마치 무형의 사슬에라도 꽁꽁 묶여 있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꼼짝도 못 하는 상태로 칼날이 한규호의 몸 안으로 조금씩 파고드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박종연은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우를 살해하는 저 개자식에게, 명치에 칼을 꽂으면서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는 그의 얼굴에,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자기 자신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 분노가 그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의 몸은 여전히 그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있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의식은 분명한데,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박종연은 그 상황에 더욱 분노했고, 그렇게 생성된 분노의 농도가 그의 몸을 옭아매고 있는 공포를 넘어서는 순간 제일 먼저 그의 입이 열렸다.
“이 씨이이이바아아알!”
박종연은 폐 안에 있는 모든 공기를 뱉어 내듯 소리쳤다.
숨이 한번 트이자 그의 흉곽이 다시 움직였고, 흉곽을 시작으로 상체가 마비에서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박종연은 팔을 움직였다.
총구를 그에게 향하기 위해서, 그의 머리를 날려 버리기 위해서.
그 순간 괴인이 얼굴을 돌렸다. 그의 감정 없는 시선이 한규호에게서 자신의 얼굴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박종연은 다시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공포가 다시 그의 몸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박종연은 그 공포에 저항했다.
“씨바알 놈아!”
다시 제압되지 않았다.
마치 천근의 무쇠를 달고 있는 것처럼, 만근의 사슬에 묶여 있는 것처럼 팔이 무거웠지만, 박종연은 여전히 팔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달리 팔은 총을 지탱해 내지 못했다. 머리를 향해야 할 총구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박종연은 포기하지 않았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마치 자신에 몸에 팔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통제할 수 없는 다른 무엇인가가 달려 있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개애애애쌔끼야!”
다시 한번 배에 힘을 주고, 소리를 토해 내어 기합을 넣었다.
어서 팔을 들어 올려. 빨리 총을 들어. 그리고 저 무표정한 얼굴에 총알을 박아 버려!
그렇게 힘주던 박종연의 시선에, 괴인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변화가 포착됐다.
그의 얼굴에서 주름이 생겼다.
그리고 얼굴에 생긴 주름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얼굴에 근육을 움직이고 있었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감정이 나타나고 있었다.
박종연은 그 감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놀라움. 경악.
그런 감정을 나타낸 얼굴이 다시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박종연에게서 한규호로 옮겨 가고 있었다.
고개가 돌아가는 그 짧은 순간에, 그 개자식의 얼굴에 만가지 감정이 피어올랐다.
박종연은 그 얼굴에 집중하느라, 그 얼굴에 총알을 박아 넣을 생각에 집중하느라,
한규호의 눈이 다시 뜨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
전력으로 전방을 향해 달려간 서용석은 1호 손님이 누군가의 몸 위에 올라타고 칼로 가슴을 쑤시는 모습을 보았다.
서용석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달려가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아.
눈이 쌓인 200m를 전력으로 달려온 서용석은 숨이 턱까지 찼지만, 발끝에 들어간 힘을 줄이지 않았다. 줄이기는커녕 더 힘을 주어 땅을 박찼다.
그렇게 달려간 서용석은 그토록 찾아다닌 남쪽 군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도, 그의 손도, 그의 마음도, 누군가의 몸 위에 걸터앉아 있는 얀 베르그만에게 향해 있었다.
서용석은 1호 손님의 멱살을 잡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허리에 찬 권총을 꺼내어 그의 이마에 겨누었다.
“정체가 뭐냐.”
서용석이 힘주어 그의 멱살을 움켜쥐며 말했다. 그의 손아귀에서 이미 너덜너덜해진 셔츠가 조금 더 찢어져 나갔다.
“정체가 뭐냐, 이 개새끼야!”
서용석이 그의 이마에 대고 있는 권총을 힘주어 찍어 누르며 다시 외쳤다.
죽인다. 이 남자를 오늘 죽인다.
공화국의 은혜를 배풀었고, 최고 존엄이 직접 초청한 손님이고, 이자가 죽으면 서용석도, 서용석뿐만 아니라 535의 모든 부대원들이, 적어도 그의 지휘를 받은 부대원들 전부 다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서용석에게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이자는 위험하다. 이자와 계속 연결되어 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공화국에 위험을 가할 것이다.
공화국의 존망이 걸린 상황에서 서용석에게는 자신이나 535부대원들의 목숨 같은 것은 가치가 없다.
공화국을 위해 이자를 죽인다.
오늘 이 자리에서 서용석 그의 손으로 직접 죽여 버릴 것이다
“대답해, 이 개새끼야!”
서용석이 다시 소리쳤다.
그 순간 서용석은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그 이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감정.
단 한 번도 드러내지 않던 감정이 그의 얼굴에 진하게 드러나 있었다.
놀라움.
이마에서부터, 눈썹, 눈, 미간, 인중, 살짝 벌린 입, 그리고 그 모든 요소와, 각 요소간 조화가 그의 얼굴에서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질감의 원천이 단순히 표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선.
이마에 서용석의 권총 총구가 붙어 있음에도, 경악으로 가득찬 그의 시선은 서용석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서용석을 비켜 나가, 밑을 향하고 있었다.
***
한규호는 눈을 떴다.
그 순간 경악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체불명의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어디선가 갑자기 달려온 누군가가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아 넣은 괴인의 멱살을 움켜쥐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정체가 뭐냐. 정체가 뭐냐, 이 개새끼야! 대답해, 이 개새끼야!”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괴인의 멱살을 움켜쥐고, 이마에 권총 총구를 붙인 채로 소리 지르는 모습이, 그리고 그런 와중에서도 여전히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남자의 경악에 가득 찬 표정이 한규호의 시선에 잡혔다.
한규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른손으로 자신의 명치에 박혀 있는 대검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빼냈다.
통각을 차단했지만, 칼이 빠지면서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에서 그는 자신이 다시 살아났다는 확신이 들었다.
칼을 빼냄과 동시에 끊어져 있던 복강동맥을 세포 융합을 통해서 임시로 연결하고, 연결된 동맥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갈라진 복막 사이로 뛰어나오려는 장기들을 다시 집어넣고, 복막을 붙이고, 손상된 근육을 재배치하면서, 피부를 봉합해 출혈을 막았다.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라는 것을 한규호도 알고 있었다. 그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었고,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한규호에게는 지금 몸이 움직인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칼을 빼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칼을 완전히 빼낸 한규호는 상체를 살짝 일으켰다.
그리고 팔을 뻗어 들고 있던 대검을 앞에 선 남자, 정체불명의 괴인의 멱살을 틀어쥐고 있는 남자의 등허리에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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