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65화 (166/386)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8) >

2008년 11월 28일.

함경북도 무산군.

백금산역 북북동 153km 지점.

서용석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정면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좌우로 산개하는 병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제압사격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그리고 지금 자신의 머리가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그저 얼어붙은 채로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세한 미동도 없는 몸과는 달리 그의 두뇌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막아야 한다. 남조선 놈들이 알아채기 전에 그를 막아야 한다. 저 미친놈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저 미친놈을 막을 수 있지?

그러나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하더라도 그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200m 떨어져 있는 서용석으로서는 그를 강제할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미쳐 버린 1호 손님은 계속 남조선의 군인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씨발 새끼!”

서용석은 다시 고함을 질렀다.

쌍안경 너머로 그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가 몸을 돌리는 모습이, 그리고 총구에서 총알이 발사되는 화염이 그의 눈에 보였다.

탕. 타앙.

화염보다 조금 더 늦게 총소리가 그의 감각에 잡혔다.

그리고 1호 손님이, 저 미친 개새끼가 총에 맞아 휘청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씨발!”

서용석의 욕설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불꽃이 터져나갔다.

찰나의 불꽃, 뇌관에 의해 점화된 장약이 총열을 타고 터져나가는 아주 짧은 생명력을 가진 불꽃이 또다시 그의 눈에 잡혔다.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전부 명중시킬 수 있는 몇 미터 안에서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네 발이 발사되었다.

늦었다.

이제는 더이상 돌이킬 수 없다고 서용석 생각했다.

네 개의 불꽃, 네 개의 총성에서,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던 가능성이 0으로 수렴되어 버렸다.

서용석은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하지만 있는 힘껏 그 욕망을 참아 내며 계속 시선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

네 발의 총알을 맞고 휘청이던 1호 손님이.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

여전히 누워 있는 상태로 총을 겨누고 있는 한규호는 추가로 두 발의 총알을 더 발사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분명히 처음에 발사한 두 발의 총알이 그를 관통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그의 등에서 핏줄기가 터져 나가는 것을 보았음에도, 뇌에서 그를 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음에도, 현재 그의 신경계를 지배하고 있는 본능의 명령에 따라 두 발을 더 발사했다.

추가로 총에서 발사된 두 발의 총알이 그의 셔츠에 구멍을 내고 들어가 등을 뚫고 나오는 모습이 다시 슬로모션으로 그의 시각 정보에 잡혔다.

그리고 또 두 번의 핏물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이고 나서야 한규호의 시간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의 흐름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청각이 기능을 회복했다. 왜곡되어 들리던 소리가 다시 제대로 들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곤충의 겹눈처럼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시야가 정상 범위로 축소되기 시작했다.

시야가 좁아지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박종연 중사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모든 시신경이 눈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집중되었다.

남자는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한규호는 남자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가, 왜곡된 시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초가 몇십 분처럼 느껴지던 그 시간의 왜곡 때문에, 그가 아직 쓰러지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정상으로 돌아왔음에도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쓰러지기는커녕 뒤로 휘청였던 그의 몸이 다시 천천히 움직여 정상적인 자세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한규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근거리에서 네 발의 총알이 그의 몸을 관통했는데, 쓰러지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자세를 바로잡는 그의 모습에서 현실성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발이 다시 움직였다.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환각? 환각이 아니라면 일종의 귀신?

한규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몇 발을 쏘았는지 세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총을 발사했다. 계속 방아쇠를 당겨 단발 모드임에도 연발처럼 그의 몸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그러나 한규호의 사격은 그를 쓰러트리지 못했다. 노리쇠뭉치가 뒤로 고정된 채로 멈추어 버렸다. 탄창이 비어 버린 것이다.

한규호는 왼손으로 재빨리 탄창 배출 단추를 누르면서 탄창을 꺼내려 오른손을 가슴에 결속된 군장에 가져갔다.

그러나 평소였다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을 절차가, 오른손으로 탄창을 꺼내 소총에 결합하는, 그가 수백 번 이상 해 온 그 동작이 어긋나 버렸다.

한규호의 몸을 지배하는 공포와 초조함과 비이성적인 상황에 대한 당황 때문에, 교체할 탄창은 그의 손가락을 빠져나와 가슴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규호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탄창을 어서 빨리 집어 들어야 함에도 여전히 시선을 그 정체불명의 괴인에게서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을 뻗어 바닥을 더듬어 탄창을 집어 들었다.

빨리. 빨리 탄창을 껴야 해. 어서 빨리. 조금이라도 빨리.

한규호가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이에 그 남자는 또다시 한 발자국 다가왔다.

한규호의 사격 때문에 너덜너덜해진 셔츠와 그의 상체가 보였다.

머리. 머리를 쏴야 해, 머리를.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허둥거리다, 결합하려던 탄창을 또 놓쳐 버렸다.

그가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개 씨이바알!”

한규호는 욕설을 참을 수가 없었다.

***

여전히 얼어붙어 있는 서용석의 귀에 몇 발인지 알 수 없는 총소리가 들려왔다.

단발 상태에서 최대 발사 속도로 총알이 발사되었을 때나 가능한 총소리였다.

서용석은 네 발의 총알을 맞았음에도 쓰러지지 않고, 쓰러지기는커녕 다시 자세를 잡고 한 발자국 더 걸어간 남자에게 몇 발인지도 모를 총알이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다시 또 자세를 바로 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보았다.

거기까지 본 서용석은 쌍안경을 집어 던지고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그리고 바닥에 있던 자신의 소총도 그대로 두고, 발끝에 힘을 주어 앞으로 힘차게 뛰어나겠다.

“사격 중지!”

서용석을 보고 있는 박철 상사는 자신이 상관이 적을 향해 호랑이처럼 튀어 나가는 모습을 보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혹시나 아군의 사격 때문에 서용석이 피해를 보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는 온 힘을 기울여 소리쳤다.

1호 손님이라는 미친놈이 아군의 눈먼 총알에 맞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서용석에게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힘껏 소리쳐 아군의 사격을 막은 박철은 일어나는 탄력을 이용해 앞으로 몸을 던졌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에 벌써 저 앞까지 내달려 나가고 있는 서용석을 따라가기 위해서 그도 발끝에 힘을 주어 힘차게 땅을 밀어 냈다.

박철의 눈은 오로지 서용석의 등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 본진에 있었던 5팀장이 서용석의 소총을 집어 들고 뒤따라오는 모습을, 좌우로 산개하던 병력이 몸을 일으켜 적들을 향해 돌격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상관, 전방의 적을 향해 전력으로 내달리는 그를 따라잡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한규호가 후방을 향해 총을 발사하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린 박종연은 한규호가 두 번째 사격을 하고 나서야 후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네 발의 총알이 관통했음에도 쓰러지지 않고 다시 자세를 바로잡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무광처리 된 검은색의 전투용 대검이 보였다.

환각? 귀신?

박종연은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도 본능적으로 그에게 사격을 가하기 위해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의 얼굴을, 정확히 그의 눈을 본 그 순간 박종연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통제를 잃어버렸다.

공포.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가, 조금 전 한규호의 몸을 잠식했던 공포가 이제야 그의 신체를 옭매어 버린 것이다.

마치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다가오는 뱀을 보면서도 움직이지 못하는 개구리처럼, 박종연의 신체는 몸을 돌리려던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몸을 돌리지도, 그렇다고 다시 되돌리지도 못하는 자세 그대로, 박종연은 한규호가 난사한 총알이 그의 몸에 빠르게 박히는 것을, 뚫고 지나가는 것을, 그의 상의에 수없이 많은 총알구멍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한 발자국을 더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절망이 그의 정신과 신체를 완전하게 잠식해 버렸다.

공포와 절망이 그의 몸 안에서 뒤섞이면서 그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을 자극했다.

눈을 감고 싶었다. 눈을 감고, 지금 그에게 찾아온 이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그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해서 이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처음으로, 박종연은 도망을 가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다.

“개 씨이바알!”

그 순간 한규호가 외치는 고함이 그의 고막을 날카롭게 찔러왔다.

청각에서 시작된 자극이 신경계를 타고 그의 몸 전체를 빠르게 돌았다. 그 순간 움직이지 않던 몸의 통제를 찾았다.

박종연은 자신의 저격 총을 들어 총구를 그의 머리를 향해 돌렸다.

그때 정체불명인 남자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말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아주 작은 소리였음에도, 박종연은 그 작은 소리가 온 천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고막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온몸을 통해 들어와 영혼에 스며드는 강력한 주술처럼 그의 신체를 다시 속박했다.

손가락만, 손가락 하나만, 많이도 아니고, 1cm만 움직이면 되는데, 그 작은 움직임만 있으면 되는데, 그 손가락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박종연은 그렇게 온몸이 굳어 버린 채로.

정체불명의 괴한이 천천히 한규호에게 다가가.

한규호의 가슴에.

명치에.

대검을 찔러 넣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

탄창을 다시 떨어트린 한규호는 다가오는 남자에게, 그리고 정신 차리지 못한 자신에게 분노하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르는 과정에서 그의 몸이 조금 정신을 차렸고, 조금 더 정확해진 손으로 다시 바닥을 더듬었다.

여전히 시선은 다가오는 남자에게 고정한 채로 그의 손가락에 닿은 탄창을 집어 들려고 막 하던 그 순간.

“가만히.”

그의 입이 열리며 나직이 들려온 세 음절을 그의 귀가 받아들였다.

그리고 크게 고함을 지름으로써 조금 정신을 차렸던 그의 신체가, 다시 굳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포가, 겨우 떨쳐 낸 공포가 다시 한규호의 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포는 한규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물처럼, 행동을 제약해 들어갔다.

한규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려 했다.

다시 몸을 깨우기 위해서, 소리를 지르기 위해서, 있는 힘껏 공기를 들이마시려 했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공포의 잠긴 그의 내부 장기는 그저 한 줌의 공기를 받아들이는 데 그칠 뿐이었다.

겨우 한 줌의 공기를 받아들인 그 상태로,

한규호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다가와,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자신의 명치에 찔러 넣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

명치에 대검이 닿았다.

제일 먼저 근육 단련으로는 보완하기 힘든 명치의 부드러운 피부가 갈라지고, 그 밑에 숨어 있던 근육이 갈라지고, 내장을 감싸고 있는 복막이 찢어졌다.

한규호는 몸이 굳은 상태로 자신의 몸을 뚫고 들어오는 대검을 바라보면서, 그 대검이 지니고 있던 냉기가 몸 안으로 퍼져 가는 것을 느꼈다.

피부가 찢어지고, 근육이 갈라지고, 내장이 끊어지는 고통보다, 대검에서 타고 들어오는 냉기가 먼저 느껴졌다.

그다음으로 답답함이 느껴졌다.

강제로 호흡이 막혀 버리면서, 온몸을 짓누르는 답답함이 그의 뇌를 잠식했다.

그러고 나서야 고통이 찾아왔다.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강도의 고통이, 전신의 신경계를 불태우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호흡도 할 수 없었지만, 호흡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소리조차 지르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그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그 고통이 한규호의 눈을 부릅뜨게 했다. 더 커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대로 확대했다.

그러나 한규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세상 모든 빛을 받아들이려는 듯 크게 떠진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한규호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가슴에 대검을 찔러 넣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박종연 중사의 얼굴을 옮겨지고 있음을,

보이지 않았지만, 볼 수 없었지만, 보였고, 알 수 있었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한규호의 의식은 화면이 꺼지듯 꺼져 버렸다.

***

한규호는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을 읽고 있었다.

분명히 자신의 의식이 예전 브라운관 TV의 화면처럼 꺼지는 것을 인식했는데, 의식이 날아가는 것을 ‘인식’한 한규호는,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을 읽고 있었다.

-‘시전자’에 의해 ‘죽음’을 ‘선물’받았을 때, 신체에 대한 완벽한 통제력을 획득한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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