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64화 (165/386)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7) >

2008년 11월 28일.

함경북도 무산군.

백금산역 북북동 153km 지점.

“마지막으로 확인된 총구 화염은 한 개입니다.”

박철이 자신이 있는 곳까지 낮은 포복으로 접근해 온 서용석에게 보고했다.

두 개였던 발사 화염이 어느 순간부터 하나로 줄어 있었다. 마지막에 확인된 화염은 저격용 총으로 의심되는 총구 발사 화염이었다.

보고를 들은 서용석은 생각을 정리했다.

하나만 남았다고 생각하지 말자. 확인되기 전까지 그 어느 것도 속단하지 말자.

이미 그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부대원을 잃었다.

미끼가 된 두 명을 따라간 이두협 상사를 비롯해 여기에서만 벌써 몇 명의 부대원을 잃어버렸다.

서용석은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그의 손에 만져지는 상처를 느꼈다.

이미 다 아물어 버린 상처에서 후끈한 통증이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용석은 얼굴에 손을 댄 채로 지시를 내렸다.

“좌우로 산개한다. 산개 이후 좌우에서 제압사격을 가한다.”

서용석의 지시를 들은 다른 부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석이다. 포위하고 있는 적을 처리하는 가장 고전적이고 정석적인 방법이다.

본진에서 제압사격을 하는 동안 다른 병력들은 좌우로 산개한다. 산개한 병력이 제압사격을 시작하면 본진에서 적에게 접근한다.

“위협사격은 없다. 전부 조준 사격이다. 상대는 네 명. 확실히 처리했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박철 상사가 강한 어조로 명령했다. 부대원들의 고개가 더 힘차게 끄덕였다.

서용석은 그런 박철 상사를 보면서, 이제 자신은 물러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잘되었군,

서용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이번 작전이 끝나면 그는 책임을 져야 했으니까.

“이동.”

박철 상사의 지시에, 다른 부대원들은 낮은 포복으로 좌우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본진에는 서용석과 박철, 그리고 5팀장만이 남아 있었다.

535의 지휘관은 절대로 돌격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직접 선두에 서서 등으로써 돌격을 명령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적의 목을 찌르는 창의 역할은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이 세 사람이 될 것이었다.

부대원들이 흩어지는 모습을 본 서용석은 다시 한번 쌍안경을 들어 올렸다.

어둠이 짙어졌지만 100m를 더 접근해 온 것만으로도 정찰이 월등히 쉬웠다.

쌍안경 너머로 흘깃흘깃 보이는 적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뭉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더 이상의 희생은 없다. 어떻게 해서든 저 쥐새끼들의 멱을 따 버릴 것이다.

서용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제압사격을 하기 위해 쌍안경을 갈무리하려고 했다.

막 눈에서 쌍안경을 떼려던 그 순간 그의 시야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잡혔다.

눈에서 떼어졌던 쌍안경이 다시 그의 얼굴에 닿았다.

그리고 잠시 초점을 맞추기 위해 바라보았던 그의 시야에, 거기 있어서는 안 될 무언가가 보였다.

“미친…….”

얀 베르그만. 북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방문한 1호 손님, 전 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벌지 브래킷을 지배하는 크레디트 에우로파의 소유주.

그가 적의 후방에서 적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미친 새끼가!”

서용석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

박철은 그의 상관이 외치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쌍안경을 들고 있는 그의 상관이 경악에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박철은 서용석이 소리 지르는 것을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는지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를 모신 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지만, 그의 상관이 저렇게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던 적이 있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실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상관이 저런 표정을, 경악에 찬 얼굴을 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떠한 순간에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와 얼굴로 말하는 그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의 앞에서는 절대 큰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그가.

그가 저런 표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니.

그 이질적인 모습에 박철 상사는 순간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미친 새끼!”

다시 한번 서용석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큰 소리가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이나 터져 나온 것이다.

박철은 재빨리 쌍안경을 들어 전방을 살펴보았다.

이미 짙어진 어둠 때문에 거의 보이는 것이 없었다. 특히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는 남한 놈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질 않았다.

다른 것이다. 대장님은 다른 것을 보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박철은 쌍안경을 움직여 서용석을 경악케 한 무언가를 찾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거의 없었다. 특별한 무언가가 보이지는 않았다.

박철은 마지막으로 적들을 중심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상황을 확인했다. 이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을 찾지 못하면, 직접 그의 상관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상관은 분명 무언가를 보았다. 그는 헛것을 보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 확신을 가지고 주변을 탐색하던 박철의 시야에도 상관을 놀라게 한 원흉이 포착되었다.

“이런…… 미친!”

박철도 소리를 질렀다.

후방에 있어야 할 1호 손님이 적의 후방에 있었다.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걸음으로 적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

별거 없군.

30여 m 북쪽에서 북한군과 대치 중인 한국군 특수부대를 본 얀 베르그만의 첫 번째 감상은 그것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관객석에 앉아 있고 싶지 않던 그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감시하고 있는 북한군을 직접 처리하고 일부러 빙 돌아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보이는 것이라고는 시체 한 구, 이제 곧 시체가 될 한 명, 그리고 이미 가망 없는 그 사람을 살리겠다고 애쓰고 있는, 살아있는 시체 둘뿐이었다.

이번에도 별 소득이 없었군.

얀 베르그만은 그렇게 생각하며,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한국 군인들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장면이었다.

한때는 매일매일 보던 일상이었지만, 최근 들어 저렇게 누군가를 살리겠다고 감정을 소모하는 모습은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이번 북한 방문이 완전히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대착오적인 일당독재 국가를 방문해 그 지도자를 만나고, 생각 없이 그를 추종하는 개들을 본 것은 오랜만이었으니까.

마치 시간을 역행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몇십 년 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다.

스탈린이 막 죽고, 말렌코프가 각료평의회 주석을 맡았던 시기였던가? 아니, 니콜라이 불가닌이었던가?

그 시기에 경직화되어있던 당시의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사실 지금의 평양을 그 당시에 모스크바와 비교하는 것은 모스크바에 모욕이 될는지도 모르겠군.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공산주의가 좀비로 살아남아 썩고 있는 것처럼, 썩은 내가 풀풀 나는 이 나라에 비하면 그 당시의 모스크바는 그래도 낭만이라는 것이 있었다.

반면에 평양에는 그런 낭만이 느껴지지를 않았다. 국가의 수도라기보다 종교 집단의 본산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잃어버리게 될까 전전긍긍하면서도, 이미 망할 대로 망해 버린 이 나라를 어떻게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서 그저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종교 집단의 지도자 계급과 종교에 세뇌되어 감히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는 신도들로 가득한 거대한 종교 집단.

일부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주체사상을 일종의 국교(國敎)로 분류했다고 했는데, 얀 베르그만은 만수대언덕의 거대한 동상을 보면서 그들이 제대로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 방문에서 그가 얻은 유일한 수확이라면, 오랜만에 독특한 경험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 경험에서 철의 장막 시절 소비에트연방의 모스크바를 떠올릴 수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 정도의 수확으로는 그의 따분한 삶에 자극이라는 파문을 주기는 부족했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는군.

얀 베르그만은 자극을 받기 위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의 손에 들린, 그를 지키던 북한군이 가지고 있던 전투용 대검을 천천히 앞뒤로 흔들면서,

그는 눈앞에 있는 한국군 특수부대원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

“봤습니까?”

한규호가 말했다.

“봤다, 씨발.”

박종연 중사가 답했다.

두 사람은 약 200m 앞에서 대치하고 있던 북한군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좌우로 산개하고 있었다. 좌우로 산개하는 그들의 움직임이 어떤 의미인지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사격이 멈추고 잠시 유지되었던 소강상태가 끝난다는 것을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우선 보이는 족족 처리합니다. 총알 아끼지 말고.”

한규호가 지시를 내렸다.

탕!

“확인.”

박종연 중사는 우측으로 움직이는 북한군 한 명에게 저격 총을 발사한 후에야 한규호의 지시에 답했다.

한규호도 시야를 넓게 확장했다.

왼쪽으로 이동하는 적과 정면에서 혹시라도 다가올지 모를 적을 한눈에 담기 위해서 초점을 조금 멀리 두고 총 손잡이를 힘차게 움켜쥐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무언가가 잡혔다.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가 잡혔다.

산개하는 병력이 아닌, 정면에 있는 북한군의 머리가 살짝 보였다.

한규호는 총구를 그쪽으로 빠르게 돌렸다. 그리고 조준선을 정렬했다.

한 명씩, 한 명씩 처리하다 보면 분명 답이 보일 것이다. 탈출구가 열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막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 순간.

한규호의 온몸에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공포가 흘렀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눈앞에 적이 있음에도, 그의 머리가 보임에도, 손가락만 까딱하면 그 머리를 날려 버릴 수 있음에도, 뒤에서 느껴지는 공포가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잡고 있었다.

뒤돌아.

본능이 한규호에게 명령을 내렸다.

빨리 뒤돌아봐.

언제나 그를 살려 온 직감이 그에게 강하게 지시했다.

그러나 한규호는 바로 그 명령에 따를 수 없었다.

온몸을 관통하는 공포 때문에 그의 목은 뻣뻣하게 굳어 버렸고, 뻣뻣하게 굳어 버린 그의 목은 머리가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씨발.

한규호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 대신, 어깨에 힘을 주어 힘차게 돌렸다. 그 반동에 따라 그의 온몸이 180도 회전했다. 엎드려 있는 자세에서 누워 있는 자세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의 등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그의 시야에 약 5m 정도 뒤에서 무감정한 얼굴로 다가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한규호는 빠르게 두 번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총이 발사되는 그 순간, 한규호는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간의 변화를 느꼈다.

마치 자신의 주변에만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 마치 슬로모션처럼 주변에 있는 모든 상황을 감각이 받아들이는 느낌이 그에게 찾아왔다.

한규호는 자신을 중심으로 시간이 거의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지금 상황이,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위기감을 느낀 신체가 신경전달물질을 과도하게 분비하면서 발생하는 신경 가속 현상임을 알지 못했다.

극도의 공포 상태를 이겨 내고 그가 몸을 움직이면서, 공포에 의해 억눌려 있던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음을 한규호는 알지 못했다.

그저, 그가 발사한 총소리에 놀란 박종연 중사가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이, 그리고 자신이 쏜 총알에 가슴을 맞은 남자가 은발 머리의 백인이라는 사실이, 모직 코트 안에 타이 없는 셔츠를 입고, 정장 바지의 말단에 짙은 갈색이 도는 구두를 신었다는 사실이 시각 정보의 형태로 밀물처럼 그의 머리에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발사된 총알이 그의 가슴 부분으로 들어가 몸을 관통한 다음, 그의 등을 뚫고 날아가는 모습이 슬로모션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그의 등, 총알이 뚫고 나온 그 지점에서 핏물이 터져 나가는 모습이 이어졌다.

그 정보를 받아들인 한규호의 뇌는 빠르게 연산 과정을 통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어떻게 접근했는지 알 수 없는 저 남자를 완전히 처리했으며, 이제 다시 몸을 앞으로 돌려 위협이 될 수 있는 북한군들을 처리하라는 결과를 도출했다.

정체불명의 남자의 등에서 터져 나가는 핏물이, 마치 진공상태에서 떠 있는 방울처럼 천천히 퍼져 나가는 그 핏물이, 저 남자는 더는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증거라고, 그러니 어서 몸을 돌리라고 한규호에게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한규호는 그 명령에 따르지 못했다.

그의 신경계를 지배하는 본능이, 뇌에서 합리적으로 도출한 명령을 거부해 버렸다.

대신 본능은 한규호에 신체에 다른 명령을 하달했다.

한규호는 다시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총구를 떠난 총알이, 총에 맞아 휘청거리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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