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6) >
2008년 11월 28일.
함경북도 무산군.
백금산역 북북동 153km 지점.
“한규호!”
300m 앞, 적의 발사 화염이 보이는 곳으로 두 발을 발사한 한규호는 뒤에서 이규철이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한규호는 바로 몸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다른 발사 화염에 또 두 발을 발사하고 나서야 몸을 뒤로 돌렸다.
대략 10여 m를 포복으로 이동한 한규호의 시선에는 이규철 대위와 그의 몸 아래 깔려 있는 윤재운 중사의 모습이 보였다.
윤재운 중사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윤재운 중사의 몸을 덮고 있는 이규철 대위의 상체는 어둠 속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한규호는 그 피가 이규철 대위의 피인지, 아니면 윤재운 중사의 피인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윤재운 중사가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감지 못한 그의 두 눈에 초점이 없었다.
“팀장님!”
한규호가 다가가서 그에게 손을 뻗으며 외쳤다.
“괜찮으십니까?”
한규호는 재빨리 이규철 대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선 윤재운 중사로부터 그를 떼어 내려는 의도였다.
한규호의 심장은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그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윤재운 중사는 죽었다. 이규철 대위는 살아 있다.
죽은 사람은 두고 산 사람은 구출한다. 그를 데려가기 위해 우선 둘을 떼어 낼 필요가 있다.
그런 사고 과정을 거친 한규호는 이규철 대위를 떼어 내기 위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나 그런 한규호의 손을 이규철 대위는 뿌리쳤다.
“팀장님, 가만히 계십쇼!”
한규호가 소리치며 다시 이규철의 어깨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런 그의 손목을 이규철이 다시 잡았다.
“한규호! 지금부터 명령을 하달한다. 너는 지금 당장 여기에서 몸을 빼낸다. 그리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목표를 향해…….”
“조용히 해!”
한규호가 강하게 소리쳤다.
이규철은 한규호의 명령조 외침에 순간적으로 말을 멈추었다.
“헛소리하지 마! 이대로 나 혼자 도망가라고? 나 혼자 살아남으라고? 팀장이고 나발이고 또 그런 개소리하면 참지 않을 거야!”
한규호는 있는 힘껏 소리치면서 이규철의 어깨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규철의 몸을 감고 있는 윤재운 중사의 팔을 풀어냈다.
“헛소리할 힘 있으면 씨발 총이나 좀 쏴 봐요! 저 개새끼들 다 죽여 버리고 도망치게!”
“한규호!”
이규철 대위가 외쳤다. 그 목소리가 쥐어짜는 듯 들려왔다.
씨발, 맞았구나.
한규호는 이규철 대위의 쥐어짜는 목소리에서, 그가 총에 맞았음을, 그 피의 주인이 이규철 대위임을 알았다.
그러나 한규호는 이규철 대위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기어코 이규철 대위를 윤재운 중사에게서 뗐다. 그리고는 한쪽 장갑을 벗은 다음 그 손을 뻗어 이규철 대위의 몸을 더듬었다.
그러자 한규호가 원하는 곳, 축축한 느낌과 온기가 손에 느껴졌다. 한규호는 그곳을 강하게 압박했다.
“크흑.”
소총이 관통한 부위에 직접적인 자극을 받은 이규철은 자신도 모르게 입이 열리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여기로!”
그러나 한규호는 이규철 대위의 고통에 찬 비명을 무시하면서 여전히 남쪽을 향해 총을 발사하고 있는 박종연 중사에게 소리쳤다.
지금 상황에서는 박종연 중사가, 탐색구조비행전대에서 TCCC(Tactical Combat Casualty Care, 전투 의무) 특기를 받은 그가 한규호 자신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그를 불렀다.
한규호의 외침을 들은 박종연 중사는 여전히 총구를 남쪽으로 겨눈 채, 몸의 움직임만을 이용해 뒤로 포복해 다가왔다.
“진도1은?”
다가온 박종연 중사가 물었다.
“KIA(작전 중 사망). 우선 팀장님부터.”
한규호가 빠르게 답했다. 그의 손안에서 울컥울컥하는 박동이 느껴졌다.
“비켜 봐.”
한규호는 손을 떼어 내고, 박종연 중사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러고는 박종연 중사가 내려놓은 저격 총을 집어 들어 앞으로 몇 미터 나아간 다음 다시 남쪽으로 겨누었다.
스코프에 눈을 가져간 한규호는 잠시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적응한 눈이 초점을 맞추자 총구를 돌려 적이 있을 만한 곳을 탐색했다.
그리고 스코프 너머로 낮은 포복으로 접근하는 북한군 한 명의 모습을 포착했다.
한규호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몇 발 남았어요?”
적이 무력화되는 것을 확인하면서 한규호가 소리쳤다.
“몰라! 한 네다섯 발 남았을 거야!”
뒤에서 이규철을 치료하고 있는 박종연 중사가 소리쳤다.
방금 한규호가 한 발을 쏘았으니 많아봤자 네 발 정도가 남았을 것이다.
한규호는 총을 받치고 있던 왼손을 뒤로 뻗어 자신을 총을 앞으로 끌고 왔다.
벽(壁). 한규호는 벽이 되어야 했다.
박종연 중사가 이규철 대위를 치료하는 동안 다가오는 적들에게 총을 발사하면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날아오는 총알이 두 사람에게 닫지 않도록, 그의 몸으로 막아 내는 벽이 되어 줘야 했다.
그의 시야에 또 한 명의 북한군의 모습이 잡혔다.
한규호는 다시 한 발을 발사했다.
“와 봐, 이 개새끼들아.”
한규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
서용석은 솔직히 놀라고 있었다.
자신의 명령을 듣던 부하의 머리가 터져 나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놀란 이유는 적들이 보여 주는 기세가 단 두 명에게서, 그것도 기습을 당한 두 명에게서 보일 수 있는 기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서용석 주변에서만 벌써 두 명이 총에 맞았다.
한 명은 머리가 터져 즉사했고, 한 명은 어깨를 맞아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명줄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100m 앞에서 사격을 진행한 세 명 중 한 명도 총에 맞아 전사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서용석은 한 명을 살려 두기로 했던, 그래서 위협사격만을 하기로 했던 자신의 선택이 부하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부터 전부 다 처리한다는 생각으로 진행했어야 했는데, 전부 다 처리하는 과정에서 운이 좋으면 적을 생포한다는 생각으로 진행했어야 했는데!
서용석은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피어올랐다.
생포하라는 당의 명령이 있었으니까. 1호 손님이 있었으니까!
그런 변명 따위는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는 책임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한 원칙을 가진 사람이었고, 이번 전투를 계획한 것도, 실행을 명령한 것도 그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협이를 그곳에 보낸 것도 나 자신이었더랬지.
거기까지 생각한 서용석은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작게 말했다.
“사격 중지.”
근처에 있던 부대원 몇은 그가 작은 소리로 말한 명령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즉각적으로 사격을 중지하고 옆으로 명령을 전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사격이 멈추었고, 한동안 천지를 울리던 총소리는 작은 잔향으로 남아 조금씩 옅어져 갔다.
“앞으로.”
그렇게 명령한 서용석은 박철이 있는 곳까지 진출하기 위해 낮은 포복을 시작했다.
다 죽여 버려야겠다. 우선 다 죽여 버리고, 그다음에 자신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힘차게 팔을 뻗었다.
***
한규호는 적에게서 들리는 사격 소리가 천천히 잦아드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여전히 전방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사격 소리가 잦아드는 것이, 적이 물러나거나 총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한규호는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한규호가 여전히 전방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나 뒤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설마?
한규호는 뒤를 돌아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전방에서 무엇을 꾸미고 있을지 모를 북한군에게서 눈을 뗄 수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그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끔찍한 상상이 현실로 확인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한규호를 비켜 지나간 총알에 의해 이미 전사해 버린 두 사람의 모습이 현실이 되었을까 봐,
“힘들겠군.”
한규호가 뒤돌아보려는 욕망을 억지로 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박종연 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규호는 순간 안도감이 자신의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박종연 중사의 목소리에,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확인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그의 온몸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한규호도 알고 있었다. 박종연 중사가 말한 ‘힘들겠군’이라는 말의 의미를,
그리고 설사 이규철 대위의 상태가 호전된다 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음에도 한규호는 뒤에서 들려온 박종연 중사의 절망을 전하는 목소리에서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안도감을 느꼈다.
살아 있다. 아직 우리는 살아 있다.
그 사실이 중요했다.
씨발 아직 살아 있다.
11챠리가 발동되고, 지금 기습을 당하기 전까지 한규호는 계속 좋지 않은 방향으로만 생각을 진행했었다.
살아 나갈 수 있을까? 도망칠 수 있을까?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랬던 그가 지금은, 이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박종연이 아직은 안전하다고 알려 온 그 목소리에 안도감을 느꼈다.
한규호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총알이 날아온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들을 보고 싶었다.
아직! 살아있는 전우들을 보고 싶었다.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한규호가 고개를 돌리자 이규철 대위의 허벅지에 모르핀 주사를 꽂고 있는 박종연 중사의 모습이 들어왔다.
신중한 모습으로 주사를 놓은 박종연 중사는 주사를 빼내고는 바늘을 꺾어 옆으로 던져 버렸다. 그곳에는 이미 바늘이 꺾인 주사가 한 대 더 버려져 있었다.
“어떻습니까?”
한규호는 이규철 대위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약 기운이 돌았는지, 막 잠이라도 들 것처럼 세상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출혈이 너무 심해. 장기도 다쳤을 테고. 이대로 있다가는 동사 이전에 과다출혈로…….”
잠시 말을 멈춘 박종연 중사는 다시 몸을 낮추고 한규호에게로 다가왔다.
그가 다가오자 한규호는 자신이 들고 있던 저격 총을 그에게 건넸다.
“몇 발 쐈냐?”
“세 발.”
한규호가 말했다.
박종연 중사는 군장에서 새 탄창을 꺼내 총에 결합했다.
“어떻게 할 거야?”
이규철 팀장이 그랬다. 상황이 바뀌면, 둘만 남게 되면 지휘권을 한규호가 가진다고.
박종연은 팀장의 말을 기억해 냈고, 그래서 그에게 지시를 내려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뭐…… 뻔하죠. 앞에 있는 저 새끼들 몽땅 죽여 버리고, 팀장님 들쳐 메고 목표로 갑니다.”
한규호는 박종연 중사가 교체한 탄창에서도 남아 있는 탄환 두 개를 꺼내어 주머니에 넣는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이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있어.
나처럼.
“하긴, 그 방법뿐이군.”
“그 방법뿐입니다.”
“그나저나 걱정이군.”
“뭐가 말입니까?”
“저 양반 은근히 무거운데, 어떻게 들고 갈지가.”
한규호는 박종연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나는 앞에서 끌어야 하니까. 당연히……. ”
한규호는 농담을 전부 할 수 없었다. 박종연 중사가 말을 끊어 버렸다.
“온다!”
한규호는 재빨리 총구에 눈을 가져갔다. 그리고 자신들의 모든 신경을 전방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20여 m 뒤에서.
전방을 향해 총을 겨눈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두꺼운 모직 코트를 입은 남자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