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5) >
2006년 11월 28일.
허룽시 남측 48km 지점.
길림성, 중국.
엄주현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석양도 거의 사라져 미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들판에 쌓인 눈이 그나마 남아 있는 빛을 반사해 시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는 시골길을 달리는 차들이 뜨문뜨문 보였다. 많지는 않았지만 분명 차량이 움직이고 있었다.
개새끼들. 차량을 통제했다고?
눈이 많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쌓인 눈 때문에 도로가 마비되었다는 이야기도,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부 거짓임이 확인되었다.
짱깨 이 죽일 놈들.
엄주현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그럴 것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중국 정부가 진도 팀 구출을 방해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자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어떻게든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여차하면 허룽시의 위장 포스트 지하 사무실에서 손도 써 보지 못하고 진도 팀이 위험에 처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뻔했다.
몇십 분 전, 허룽시 시립 축구장에 착륙한 헬리콥터에는 ‘연변장백국제여행사유한공사(延边长白国际旅行社有限公司)’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중국이 장백산이라고 부르는 백두산 VIP 관광용 헬기라고 했다.
마작방에서 불법 사채놀이나 하는 양아치인 줄 알았는데, 짧은 시간 안에 헬리콥터를 마련한 것을 보면 단순한 찌꺼기는 아닌 듯싶었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돈 되는 일은 다 한다고 했는데 그 규모가 작지는 않은 것 같았다.
엄주현은 슬쩍 김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특유의 팔짱을 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한 것일까?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일까?
엄주현은 김훈을 비행기에서만 봤을 때도 그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차라리 실무를 담당하는 2급 단장이나, 3급 팀장이라면 몰라도, 차관급인 차장은 정치인에 더 가깝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국정원 1차장이라면 다음 국장 후보 중 한 명이었다. 현장보다는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직책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왕 노사라는 사람을 알았을까? 사람 잡아먹는 궁기라는 괴물의 별명을 가진 범죄자와 어떠한 인연을 가지고 있기에, 전화 한 통으로 헬리콥터를 동원할 수 있었을까?
-착륙 10분 전.
헤드셋에서 기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주현은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국정원 1차장이 사채꾼을 알든, 약장사를 알든, 그딴 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헬리콥터가 비행 계획을 어떻게 제출했는지, 중국 민용항공총국이 어떻게 반응을 할지 등등 그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진도 팀을 구출해 내는 것이다.
진도 팀 네 명이 달려오고 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사항은 그들을 구출해 내는 것이었다.
***
2008년 11월 28일.
함경북도 무산군.
백금산역 북북동 153km 지점.
방아쇠를 당긴 박철 상사는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이 조준한 목표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쓰러지는 것을 보았지만, 그가 쓰러진 것이 자신의 총알 때문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표적이 먼저 움직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거의 동시인 것처럼 보였지만, 방아쇠를 당신 장본인인 박철 상사는 알 수 있었다.
목표가 몸을 돌리고, 두 팔을 벌려 그 주위에 있던 두 사람을 덮쳐 가는 행동이, 자신의 사격보다 빨랐다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맞았을까?
박철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자신의 총알에 그가 죽었거나, 적어도 전투 불능에 빠졌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박철은 같이 사격한 두 명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손짓으로 결과를 보고했다.
한 명은 명중, 한 명은 확인되지 않음.
그 순간 뒤에서 제압사격이 시작되었다. 총알 날아가는 소리가 그들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첫 번째 사격에 세 명을 처리하고, 생포할 한 명은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제압사격을 한다는 계획이 실행된 것이다.
젠장.
박철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다시 사격하기 위해 조준선을 정렬했다.
후방에서 하는 제압사격은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사격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생존자를 한 명만 남겨야 하는 임무는 앞에 나와 있는 이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박철은 쉽사리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누가 살아남았고, 누가 죽었는지를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혹시나 생존자를 남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그의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았다.
무엇보다 적들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짧은 시간, 첫 번째 사격을 진행한 지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적들은 빠른 속도로 몸을 숨긴 것이다.
침착해. 어차피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저들 중 한 명만이 살아남느냐, 아니면 다 죽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박철은 옆에 있던 두 명에게 손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조준 사격. 움직이는 놈이 있으면 죽인다.
그렇게 지시를 내리는 그의 눈에, 가장 오른쪽에 있던 부하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
한규호는 몸을 날리기 전 두 팔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오른손에 박종연 중사의 몸이 걸렸다.
한규호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중심이 무너질 수 있도록, 그래서 넘어질 수 있도록, 총알을 피할 수 있도록 그의 손에 힘을 주어 거칠게 끌어당겼다.
그 순간 총소리가 들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발사한 총소리가 그의 귀를 자극했다.
총소리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한규호는 넘어지는 상황에서도 몸을 움츠렸다.
그 약간의 움직임 때문에, 그의 왼손에 잡혔어야 할 이규철 대위의 몸이 그의 손에 닿지 않았다.
넘어진 한규호는 단단해진 눈 위에 넘어지자마자 몸을 굴렸다. 그리고 몸을 숨길 만한 곳으로 그의 몸을 던졌다.
생각하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몸을 날리고, 팔을 뻗고, 잡아끌고, 몸을 숨길 만한 곳을 포착하고, 몸을 굴린 것까지 전부 본능에 의한 움직임이었다.
그가 몸을 숨기자 엄청난 총소리가 쏟아졌다.
처음 들렸던 첫발이 사격 개시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다수의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총소리는 방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온 천지를 울리고 있었지만, 한규호는 자세를 잡자마자 바로 총구를 남쪽으로 겨누었다. 그리고 단발로 끊어서 세 발을 발사했다.
조준하고 사격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쪽에서도 응사하고 있음을 보여 주려는 의도로 발사한 사격이었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막 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총알은 제한되어 있었고, 적이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었으니까.
한규호는 세 발을 발사하고 나서야 고개를 돌려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남쪽을 향해 저격용 총을 겨누고 있는 박종연 중사를 보았다.
한규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어딘가에 쓰러져 있을 이규철 대위와 윤재운 중사를 찾았다.
그들은 서 있던 자리에서 십여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쓰러져 있었다.
한규호는 그들이 쓰러진 것인지, 아니면 몸을 피하고자 자세를 낮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박종연 중사가 한 발을 발사했다. 저격용 총 특유의 묵직한 소리가 한규호의 청각에 포착되었다.
한규호는 다시 시선을 남쪽으로 향했다.
적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혹시라도 다가오는 적들에게 사격하기 위해 조준선을 정렬했다.
“하나 잡았어!”
박종연 중사가 소리쳤다.
몇 명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박종연 중사가 방금 쏜 한 발로 적을 처리했다고 말했다.
“몇 명입니까?”
“몰라! 한 명밖에 안 보였어! 1시 방향. 약 200m!”
한규호는 총구를 약간 오른쪽으로 틀면서 전방을 살폈다. 그러자 배어 나온 핏물이 눈에 스며드는 곳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규호는 그쪽으로 다시 세 발을 발사했다.
총알이 닿은 자리에 눈이 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누군가 맞았다는 징후는 보이질 않았다.
“300m에 적 다수 발견!”
박종연 중사가 다시 외쳤다.
한규호는 총구를 위로 살짝 움직여 조준거리를 조정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이는 총구의 화염을 확인했다. 대충 봐도 십여 개는 되는 것 같았다.
“씨발.”
한규호는 그렇게 소리치며 전방에 보이는 화염 중 하나에 다시 조준을 재정렬했다.
지금 한규호가 들고 있는 M4E2의 유효사거리가 500m였으니 총알이 도달할 수는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명중은 자신할 수 없었다.
조준선과 탄도, 탄환의 비행에 영향을 주는 기온, 습도, 바람 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 한규호가 300m 밖에 있는 적에게 총을 발사한다고 해도 맞을 가능성은 그리 높질 않았다.
씨발, 맞아라! 제발.
하지만 한규호는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는 짧게 두 번 총을 발사했다.
두 번의 진동이 그의 어깨를 치는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한규호!”
이규철 대위의 목소리였다.
***
쌍안경을 들고 있는 서용석은 100m 전방에 나아가 있는 박철 상사가 사격을 개시하는 순간 적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적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위화감이 그를 감쌌다.
바로 이어서 서용석 주위에서 우레와 같은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박철 상사 팀이 첫 발을 발사하고 그다음에 본진에서 제압사격을 시행한 것이다.
그러나 서용석은 여전히 쌍안경을 눈에서 떼지 않고 있었다. 확실히 처리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는 여전히 쌍안경을 통해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둠이 짙어져 바닥에 납작 엎드린 그들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질 않고 있었다. 거기에 있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어떤 자세로 있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약한 불빛이 반짝였다. 발사하는 총구에서 보이는 화염이 세 번 깜빡였다.
“우선은 한 명.”
서용석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전부 죽지는 않았군. 한 명은 살아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계획대로 되고 있다. 계획대로 되고 있는데, 알 수 없는 위화감이 그의 곁을 맴돌았다.
여전히 시선을 적들에게 둔 채로 위화감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하던 서용석은 두 번째 화염을 보았다. 단 한 번뿐인 화염이었지만, 첫 번째 화염과는 확연히 차이를 알 수 있는 화염이었다.
저격용 총일까? 저격수도 있었던 것일까? 두 명이 살아남은 것인가? 그래서 위화감이 들었던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신빙성 있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서용석은 그 결론에 수긍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뭐지? 이 알 수 없는 기분은?
서용석은 다시 세 번 반짝이는 불꽃을 확인했다. 조금 전 한 번 터져 나온 불꽃과는 다른 불꽃이었다.
확실히 두 명이군.
두 명이 살아남았다.
박철이 무언가 실수를 했다. 200m까지 접근해 사격했는데도 실수를 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지금 그 문제를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서용석은 쌍안경에서 눈을 뗐다. 그리고 옆에서 사격하는 부대원 중 몇 명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너, 너, 너 그리고 너. 박철이 있는 곳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나머지는…….”
서용석은 말을 끝내질 못했다. 지목을 받고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던 부하의 머리가 터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