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4) >
2006년 11월 28일.
함경북도 무산군.
백금산역 북북동 153km 지점.
“조우했습니다. 총 네 명입니다.”
쌍안경으로 북쪽을 바라보고 있던 박철 상사가 말했다.
마찬가지로 쌍안경으로 진도 팀을 바라보던 서용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명이었군. 이두협이가 있던 쪽에 두 명이 있었으니, 최초에는 여섯 명이었겠군.
서용석은 드디어 이 지리한 추격전을 끝낼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휴식을 취하려는 것 같습니다. 뭔가를 깔고 있습니다.”
박철 상사가 다시 말했다.
서용석은 쌍안경을 내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정찰대원들이 그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m까지 접근한다.”
서용석이 말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박철 상사를 비롯해 세 명을 지목했다.
“너, 너 그리고 너. 접근하면 순번에 따라 처리한다. 사격 지시는 철이가 내리고.”
“알겠습니다.”
박철 상사가 대답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서용석은 고개를 돌려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크레디트 에우로파의 얀 베르그만 회장, 3백 년이 넘어가는 투자은행의 소유주, 세계 자본을 지배한다는 벌지브래킷의 지배자, 그리고 직승기에서 예술적인 강하 솜씨를 보여 주었으며, 조선말을 할 줄 아는 정체불명의 남자.
서용석은 시선을 다른 부대원들에게 돌리면서 말했다.
“나머지 인원은 첫 번째 사격 직후에 생존한 적에 대해 제압사격을 시행한다. 제압사격은 적의 총알을 마르게 하려는 의도라는 것을 잊지 마라. 효율적으로 사격하되, 절대 맞히지 말 것.”
정찰대원들의 고개가 끄덕였다.
“그리고 너는.”
서용석의 손가락이 정찰대원 중 가장 계급이 낮은 한 명에게 향했다.
“여기서 손님을 지킨다.”
지목당한 부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서용석은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위험한 상황에서, 의도치 않은 사고로 손님이 다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지킬 것.”
서용석은 그렇게 지시를 내리면서 시선은 얀 베르그만의 눈을 향해 있었다. 그런 그의 눈을 얀 베르그만도 마주 보고 있었다.
감정 없는 두 쌍의 눈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박철 상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똑같이 감정 없는 눈빛이었음에도, 그는 1호 손님의 눈빛에서 무엇인지 모를 서늘함을 느꼈다.
박철 상사는 그 서늘함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빛이지만 서용석보다 저 유럽인의 눈빛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단정하며,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말했다.
“가자.”
그가 자세를 낮추고, 포복으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에 지목받은 두 사람이 따랐다.
***
2006년 11월 28일.
함경북도 무산군.
백금산역 북북동 153km 지점.
“늦었습니다. 막 버리고 가려던 참인데.”
박종연 중사가 그들에게 다가오는 이규철 대위와 윤재운 중사를 보면서 말했다.
윤재운 중사는 이규철 대위의 부축을 받으면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한규호에게는 그 모습이 마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1시간을 먼저 갔는데 고작 여기까지밖에 못 왔다니. 실망인데.”
윤재운 중사가 씩 웃으며 말했다.
한규호는 그런 윤재운 중사를 보고 있었다.
이규철 대위에게 기대어 불안한 자세였지만, 그래도 확실히 두 발을 써서 걸어오고 있었다.
걸을 수 있다. 많이 힘들어 보였지만 윤 중사는 걸을 수 있다. 그 사실이 중요했다.
“뀨 저 새끼가 하도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바람에, 뭐 가려고 해도 갈 수가 있어야지.”
박종연이 한규호를 보며 말했다.
“진도2를 한 대 때려도 되겠습니까?”
한규호가 이규철 대위에게 물었다.
“나중에. 지금 뻗으면 골치 아프니까, 복귀하면 그때.”
이규철 대위가 옅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팀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한규호는 웃음을 지으며 박종연을 바라보았다. 박종연은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좀 쉬었다 가는 게 좋겠습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아니, 바로 출발한다.”
이규철 대위가 말했다.
“조금이라도 쉬었다 가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뀨 저 무식한 새끼가 선두에 서면 지 혼자 살겠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갈 텐데 말입니다.”
박종연이 그렇게 말했다.
한규호는 박종연의 말을 듣고는 이규철 대위에게 다시 물었다.
“뻗으면 업고 갈 수 있습니다. 지금 때려도 되겠습니까?”
한규호가 말했다.
다시 이규철의 얼굴에 웃음이 옅게 번졌다.
이규철은 두 사람의 농담에서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합류하면 한규호에게 선두를 맡길 생각으로 박종연이 이끌었나 보군.
그는 한규호를 보았다. 그나마 팀에서 가장 체력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가장 휴식이 필요 없는 한규호가 휴식을 제안한 것은 쉬고 싶어서가 아니라 쉬게 해 주고 싶어서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그렇게 하지.”
“빡쎄게 쉬고, 빡쎄게 가입시다.”
이규철의 허락이 떨어지자 박종연은 군장에서 방수포를 꺼내어 눈밭 위에 깔면서 말했다.
한규호는 총을 들어 남쪽 방향을 향해 경계 자세를 취했다.
어둠이 점점 짙어지는 시간이었다.
안성종 상사가 건네준 야시경을 꺼낼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휴식시간이 그렇게 길 것 같지도 않았고, 배터리를 가진 윤재운 중사를 귀찮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뭐, 어차피 북한놈들이 여기까지 왔다면 살아 돌아가기는 어렵겠지.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남쪽으로 총구를 겨누었다.
그런 한규호의 귀에 윤재운 중사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을지로 2가와 3가 사이에 말입니다. 괜찮은 식당이 있습니다.”
한규호는 고개를 살짝 돌려 윤재운 중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최대한 효율적인 체력 회복을 위해 바닥에 깐 위장포 위에 누운 자세로 말하고 있었다.
“냉면으로 유명한 평래옥 바로 근처에 있는 집인데, 원래는 숯불에 구운 생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지만, 김치전골이란 걸 팝니다, 뭐 전골이라고 해도 그냥 돼지고기랑 참치, 두부 넣고 끓이는 김치찌개지만, 아무튼 그게 끝내줍니다. 반주로 소주 한잔하면서 막 지은 흰 쌀밥에 비벼 먹으면 진짜 끝내줍니다.”
한규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팔팔 끓인 김치찌개에 갓 지은 밥 내음이 나는 흰 쌀밥을 생각하자 침샘이 요동치는 기분이었다.
웃기는군.
안 상사가 11챠리를 발동하고 떠났을 때는 배고프다는 생각 하는 것 자체가 죄악처럼 느껴졌다.
박종연 중사가 작전 끝나고 무엇을 먹을 거냐는 질문에 그냥 ‘만두’라고 아무거나 말했을 때만 해도 작전 끝나고 뭘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지금 윤재운 중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식욕이 거대한 파도처럼 그를 집어삼키는 기분이었다.
“팀장님.”
윤재운 중사가 이규철 대위에게 말했다.
“이번에 작전 끝나면 평소처럼 집에 바로 가시지 마시고, 거기서 다 같이 식사하고 가시죠. 소주도 한잔하면서.”
이규철 대위는 윤재운 중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작전이 끝나면, 지금 상황에서 복귀하게 된다면, 윤 중사는 바로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될 것이다.
동상에 의해 괴사한 부위, 적어도 발가락, 어쩌면 발목을 절단하기 위해서 그는 바로 병원으로 이송될 것이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박종연 중사와 한규호도, 그리고 그 자신도 당분간 병원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것이라는 것을 이규철은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모두 다 알고 있었다. 지금 제안을 꺼내는 윤재운 중사까지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규철 대위는 그 진실을 상기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지. 내가 사지.”
이규철 대위가 말했다.
윤재운 중사의 입사에 미소가 걸렸다.
“회식 강요는 병영 부조리의 대표적인 사례인데 말입니다.”
한규호와 더불어 남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박종연 중사가 말했다.
“불편하시면 빠지셔도 괜찮습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그래. 빠져도 괜찮아. 팀장님 돈 아끼고 좋지.”
윤재운 중사도 말했다.
“참 나, 무슨 말을 못 하게 하네. 직장 상사 지갑 축내는 데, 부하가 되어서 빠질 수는 없지. 그거 1인분에 얼마나 합니까?”
박종연 중사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한 7천~8천 원 했던 것 같은데, 올랐는지도 모르겠군.”
윤 중사가 말했다.
“그럼 8천 원 잡고. 6인분이면 4만 8천 원이군. 축내려면 소주를 많이 마셔야겠군요.”
박종연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잠시 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그래, 6인분……. 꼭 돌아가서, 6인분을 먹도록 하자.”
이규철 대위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
200m까지 접근한 박철 상사는 천천히 자신의 소총을 들었다. 그리고 적들을 살펴보았다.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던 적들은 다시 이동을 준비하려는 것 같았다.
잘되었군.
이동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면서 목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자신에게 할당된 표적에 총구를 겨누었다.
동시 사격은 적들의 후미에서, 또는 오른쪽에서부터 순번이 매겨진다. 목표가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전에 약속된 일종의 규칙이다.
박철 상사의 목표는 남쪽을 향해 경계를 하고 있던 두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포착.”
“포착”
박철 상사와 더불어 포복으로 접근한 다른 대원들도 각자의 목표를 포착했다고 보고했다.
이두협이가 죽었단 말이지.
박철 상사는 네 명을 전부 살려 두고 싶었다. 전부 생포해서 오랜 시간을 두고, 충분한 고통을 주고 싶었다.
감히 이 땅에 더러운 발을 디딘 죗값을, 공화국의 안위에 위협을 가한 죗값을, 그리고 전우의 목숨에 대한 죗값을 묻고 싶었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고통을 주어서.
한 명만 살린다. 대장님이 그렇게 지시했다. 한 명만 살려서, 그놈에게 죗값을 물으면 된다.
서용석은 그렇게 생각하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발사.”
그리고 명령을 내렸다.
***
다시 이동하기 위해 몸을 일으킨 한규호는 윤재운 중사가 이규철 대위에게 기대어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았다.
윤재운 중사는 힘겨워했지만 확실한 자세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두 발로 땅을 딛고 섰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한규호는 시선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할까?
한규호는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생각하지 말자. 가자. 그냥 가자.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착을 하면 회수 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규호는 갑자기 강력한 흡연 욕구를 느꼈다.
평소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그였다.
1년에 한두 번, 술 마실 때만 가끔 한 개비 정도를 얻어 피우기는 했지만 담배에 대한 욕구는 없는 한규호인데, 이상하게도 갑작스럽게 흡연 욕구가 일었다.
욕구의 크기로 따지면 식욕과 수면욕이 훨씬 큰데도, 지금은 담배 한 대의 생각이 간절했다.
회수 팀원 중에서 담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군.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선두에 서기 위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뀨, 혼자 살겠다고 졸라게 뛰어가지 마라.”
박종연 중사가 그렇게 말했다.
“못 따라오면 버리고 가는 거 안 배웠습니까?”
한규호가 그렇게 말하고 선두로 나가려는 순간, 강력한 직감이 그를 찔러 왔다.
그동안의 불안감이 그의 몸을 감싸는 안개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경고는 날카로운 칼처럼 강하게 그를 찔러 왔다.
한규호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몸을 날렸다.
그의 오른팔에 박종연 중사가 걸렸다.
그러나 왼팔에 걸려야 할 이규철 대위는 그의 손을 비켜 갔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