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3) >
2006년 11월 28일.
함경북도 무산군.
백금산역 북북동 147km 지점.
“두 명입니다.”
쌍안경을 들고 있는 박철 상사가 말했다.
적들을 추적하던 서용석이 낙오한 것처럼 보이는 두 명을 발견한 것은 몇 시간 전이었다.
500m 밖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걸어가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한 서용석은 바로 목을 따 오라는 명령을 내리는 대신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서 있었다.
그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두협이 전사한 곳에서 발견된 적의 시체는 두 구였다. 낙오한 것처럼 보이는 저 둘을 포함하면 넷밖에 안 된다. 고작 네 명뿐일 리가 없다.
최소 다섯은 될 것이라고 서용석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 저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자. 팀원 중 한 명, 또는 두 명이 낙오했다. 행군을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저 쥐새끼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서용석이었다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낙오하는 부대원들을 챙기지 않을 것이다.
고통을 줄여 주기 위해 서용석이 그들의 목숨을 거두어 줄 수는 있어도, 그들을 끝까지 데려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하지만 저 남조선의 쥐새끼들은 서용석이 아니었다.
서용석은 다시 생각했다. 나는 남조선 군인이다. 나는 나약한 남조선 군인이다. 나라면 과연 전우들을 버리고 갔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결론이 나왔다.
서용석은 박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여전히 쌍안경으로 적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적들은 최소 네 명에서 다섯 명 정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 둘이 행군을 따라가지 못해 낙오했습니다. 저 둘 중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은 한 명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자를 데려가기 위해 남았습니다. 다른 두 명, 또는 세 명은 앞에서 길을 뚫고 있습니다. 그러나 버리고 가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멀리 가지는 못했습니다.”
박철은 여전히 쌍안경을 떼지 않은 상태로 말했다. 서용석의 생각과 거의 비슷했다.
“어떻게 할까?”
서용석이 다시 물었다.
박철 상사는 쌍안경에서 눈을 떼고 서용석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 둘은 지금 바로 잡아 버립니다. 적들은 아직 우리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고, 우리는 저들의 등을 잡고 있습니다. 저격을 활용해 둘 중 한 명만 살려 두고, 남아 있는 흔적을 따라 최대한 빠르게 적을 추적해 남아 있는 놈들은 전부 처리합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서용석이 원하는 방법은 아니었다.
앞서 길을 뚫고 있는 놈들이 몇이나 되는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놈들이 총소리를 듣고 도망가거나 대비를 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이두협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두협을 죽었을 정도면 지금까지 상대해 온 그저 그런 쥐새끼들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서용석은 손을 들어 얼굴에 난 상처를 만졌다.
절대로 적을, 사냥감을 얕보지 않는다.
그의 얼굴에 난 상처가 적을 얕보았기에 얻은 교훈이다.
“이대로 거리를 두고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서 추적을 계속한다. 저들이 앞서 나아간 놈들을 만나면 그때 한꺼번에 처리한다. 조우가 확인되면 200m까지 접근하고, 첫 사격에서 세 명을 잡는다. 그리고 남은 한 놈은 총알이 마를 때까지 사격하게 만든다. 탄통을 들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 많아 봤자 1백여 발 정도겠지.”
서용석의 말에 다른 부대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출발한다. 발각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
서용석은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 1호 손님이 무표정한 얼굴로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
2006년 11월 28일.
함경북도 무산군.
백금산역 북북동 153km 지점.
한규호는 앞에서 눈을 해치며 걸어가고 있는 박종연 중사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대략 1시간 반 전에 한규호와 자리를 바꾼 박종연 중사의 등은 두꺼운 방한복 너머로도 느껴질 정도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산소를 어떻게든 받아들이기 위해서 등근육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박종연 중사는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다.
한규호는 슬슬 선두를 바꿔 줄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직 바꾸기로 정한 2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슬슬 바꿔 줘야 할 것 같았다.
“바꿉시다.”
한규호가 박종연의 등에 대고 말했다.
그러나 박종연은 한규호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한규호는 발걸음을 빨리해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제야 박종연의 발이 멈추었다. 그리고 그의 고개가 천천히 돌았다.
“뒤로 가요.”
한규호가 피로가 잔뜩 묻어 있는 박종연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아니, 이대로 간다. 너는 체력을 비축해 둬.”
박종연이 말했다.
“지금 쓸데없는 고집 부릴 때가 아니에요. 이러다 퍼지게 되면…….”
“올 거야.”
박종연이 한규호의 말을 끊었다.
“……온다고?”
“팀장님이 윤 중사님 데리고 올 거야. 모두 합류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네가 끈다. 뛰어가야 하니까 지금은 체력을 비축해 둬.”
한규호는 박종연의 눈을 보았다.
그 눈빛에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보였다. 온다. 이규철 대위가 윤재운 중사를 데리고 올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보였다.
한규호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군장에서 칼로리바를 꺼냈다. 그가 가진 마지막 칼로리바였다.
“그럼 이거나 드슈. 힘들어서 숨 쉬는 것도 제대로 못 하면서 끝까지 가오 잡기는…….”
한규호가 퉁명스럽게 말하며 칼로리바를 건넸다.
박종연은 잠시 바라보더니 그 칼로리 바를 받아 껍질을 벗겼다.
“가오 살게 너나 먹어라 하고 싶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네.”
그렇게 말하고는 껍질을 벗긴 칼로리바를 반으로 뚝 잘라 한규호에게 내밀었다.
“큰 쪽 주는 거다.”
한규호는 그가 내미는 칼로리바 반쪽을 받아 들었다.
“졸라 가오 사네요. 조올라게 감동했습니다.”
한규호의 말에 박종연은 씩 웃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입안에 넣은 칼로리바를 씹으면서 다시 앞으로 발을 옮겼다.
한규호는 다시 그의 등을 보면서 생각했다.
온다. 올 것이다. 팀장님이 윤 중사님을 데리고 올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체력을 비축하자. 그들이 오면 내가 팀을 이끌어야 하니까.
***
고집을 부렸지만, 박종연이 계속 끌 수는 없었다.
결국 한규호와 박종연은 몇 차례 자리를 바꿔 가면서 계속 목표로 나아갔다.
한규호가 30분에서 1시간 동안 앞에서 이끌면, 그 동안 박종연 중사가 숨을 돌리고 다시 교대한 다음 2~3시간을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한규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았다. 어김없이 해가 지고 있었다.
오늘이 며칠이었지? 북한에 온 지 며칠이나 지났지? 며칠 전 초승달을 봤던가? 오늘은 반달이 뜨려나? 이러다 나중에 보름달이 뜰 때까지 이 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한규호는 고개를 돌려 남쪽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달의 모양이 어떤 모습인지를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돌아가려는 머리를 의식적으로 제어해 다시 박종연 중사의 등으로 눈을 돌렸다.
박종연 중사의 발 내딛는 속도는 확실히 느려져 있었다.
속도가 느려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한규호는 시선을 자신의 발끝으로 향했다.
어제 쌓인 눈이 낮 동안 햇빛에 녹았다가 기온이 떨어지면서 다시 얼어붙었다.
보들보들한 쌓인 눈에서 단단한 얼음으로 변해 가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 상황에서 걸음걸음마다 걸리는 부하 또한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부하가 증가하면서 체력 소모가 더 많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거의 쉬지 않고,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반 조각의 칼로리바가 전부인 상황에서, 박종연의 발걸음이 느려지는 것은 당연했다.
정신력으로 버텨 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박종연의 체력은 조금씩 조금씩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규호는 박종연의 발걸음이 느려지는 근본적인 이유가 앞서 두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걱정.
행군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 그래서 진도0과 진도1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는 것이다.
그 같은 걱정이 지금 행군 속도가 자꾸 늦어지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한규호도 알고 있었다.
한규호는 이것도 알고 있었다.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라면 버리고 가는 것이 정석이라는 것을.
교범뿐만 아니라,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최대한의 속도로 벗어나는 것이 맞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가 선두에 서 있었다면 그는 교범에 따라 빠르게 이동할 수 있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또한 발뒤꿈치를 잡아끄는 걱정과 미련 때문에 속도를 올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이럴 거면, 이럴 거였으면…….
애초에 억지로라도 데리고 왔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속도가 느려지고, 추격하는 놈들에게 뒤를 잡히고, 결국 그 누구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럴 거면 애초에 다 같이 있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규철 대위도, 체력을 비축하라는 박종연 중사도, 모두 다 살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한규호도 그 전제가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다른 생각을 지워 낼 수 없었다.
결국, 다 죽는 것이 아닐까. 부질없는 기대가 아닐까. 괜한 헛된 희망을 품다가 결국은 빠져나오지 못할 절망만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아니, 두렵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혼자 살아남는 것이다. 전우의 목숨을 도구로 삼아, 혼자서 살아남게 될까 봐,
그리고 그렇게라도 살고 싶어 할까 봐.
그것이 가장 두려웠다.
한규호는 다시 박종연의 등을 보았다.
교대해 줘야겠군.
한규호는 박종연의 어깨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박종연의 고개가 뒤를 향했다.
박종연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란 한규호는 뻗은 손을 회수하지도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자신을 향해 있지 않았다. 더 먼 곳을 향해 있었다.
“왔다.”
박종연이 말했다.
한규호는 천천히 몸을 뒤로 틀면서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총구를 남쪽방향으로, 그들이 걸어온 곳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런 그의 눈에 남쪽 하늘에 떠 있는 반달과, 반달 아래 서로를 의지해 걸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
2006년 11월 28일.
허룽시립축구장.
허룽시, 길림성, 중국.
허룽시 동쪽에 위치한 허룽시립축구장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어린아이들이라도 뛰어놀았는지 여기저기 하얀 눈 위에 작은 발자국이 나 있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의약품이 잔뜩 든 배낭을 짊어지고 있는 엄주현은 불안한 표정으로 운동장에 쌓인 눈 위를 걷고 있었다.
그가 걸을 때마다 그의 발밑에서 살짝 얼어붙은 눈이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부스러졌다.
엄주현은 자신의 모습이 안절부절못하는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어른답지도, 군인답지도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아무런 미동 없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국정원 김훈 1차장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처럼 진중하게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엄주현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발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불안한 지금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가 없었다.
진짜로 헬리콥터가 올까?
끝끝내 차량을 구하지 못한 조선족 코디네이터는 결국 손을 들었다. 지금 가진 카드는 김훈 차장이 마련한 단 한 장뿐이었다.
왕 노사라는 이름이 나왔고, 어떤 인연인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김훈은 통화를 마치고 헬기를 구했다고 말했다.
엄주현은 지금 이 곳에서 김훈이 구한 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엄주현은 초조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전화 한 통에 구해졌다는 헬리콥터가 진짜 올 것인지 걱정이 되어서 발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운동장을 걷고 있는 그의 눈에, 축구장으로 들어서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몇 시간 전, 차량을 구하지 못했다고 말하던 코디네이터였다.
코디네이터는 웃으면서 엄주현에게 다가와 그가 메고 있던 가방을 내밀었다.
“펜타닐입니다.”
엄주현은 그 가방을 바라보았다. 모르핀의 2백 배의 진통 효과를 가진 마약성 진통제를 구해 온 것이다.
끝내 차량을 구하지 못한 그가 뭐라도 해 보겠다고 했는데, 이걸 구해 온 것이다.
“고맙……습니다.”
엄주현은 가방을 받아 들며 말했다.
정식 의약품이라 해도, 마약에 관해서 만큼은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국 정부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아닙니다. 일이 잘 풀리길 바랍니다.”
코디네이터는 그렇게 말하고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왕 노사가 누굽니까?”
엄주현도 눈 내린 뒤 맑게 갠 초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람들은 그를 성공한 사업가, 또는 악독한 범죄자라고 부르죠. 물론 뒤에 말은 그에 앞에서는 하질 않지만.”
엄주현이 코디네이터를 바라보았다.
“마장팅(麻将厅, 마작을 하는 장소)에서 꽁지돈(도박장에서 급하게 빌려주는 불법 사채)을 빌려주면서 돈을 벌었죠. 알다시피 도박꾼들에게 빌려준 돈은 받기가 쉽지 않으니까 폭력이 필요했고, 폭력조직을 조직했고, 돈과 폭력, 두 개를 합쳐서 세력을 키웠죠. 길림성에서 돈 되는 건 다 하죠.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코디네이터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미동 없이 서 있는 김훈을 흘깃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궁기에 대해서 아십니까?”
엄주현은 고개를 저었다.
“중국 전설의 환상종의 이름입니다. 사흉(四凶)중 하나로 선한 사람을 잡아먹고, 악인에게는 짐승을 사냥해 선물한다는 전설의 짐승이면서 왕 노사라는 그 인간의 별명이죠. 사람 잡아먹는다는 거 생각하면 딱 맞는 별명이기도 하고. 그나저나 저 선생님이 그 괴물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군요. 아는 건 둘째 치고,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군요.”
엄주현도 김훈을 바라보았다. 현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국정원 차장인 줄로만 알았는데, 여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카드 한 장을 얻을 수 있었다.
“오네요.”
코디네이터가 말했다.
엄주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거의 없는 맑은 하늘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서 들리는 헬리콥터 로터의 회전 소리가 축구장 안에서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