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2) >
2006년 11월 28일.
국군 정보사령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정보사령부의 위장 기업 국광해운의 사장을 맡고 있는 김광용 대령은 서초동 사령부에 임시로 마련된 진도 팀 구출 작전 상황실 구석에 앉아서 양손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있었다.
한참을 공들여 관자놀이를 문지르니 깨질 것 같던 머리가 조금은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당주동에 있는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한게 벌써 며칠인지 알 수 없었다.
결재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겠지만 지금 같은 비상 상황에서 국광해운이 망한다 하더라도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사직을 수행하는 엄주현 중령이라도 있었으면 그가 대신해서 일을 처리하련만은, 엄주현은 지금 연변에 가 있으니 지금 회사의 모든 업무를 최인석 부장이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인석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의 직함이었다.
사장과 이사가 처리하던 일을 부장이 하려고 하니, 원활하게 일이 잘 풀리질 않았다.
안 그래도 독일 H선사가 국광해운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한국에 직접 지사를 설치한다는 소문이 업계에서 돌고 있는데, 지금처럼 사장이나 이사가 갑작스럽게 휴가를 내고 연락을 안 받아 버리면 이성적인 독일 놈들은 이성적으로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지금 국광해운의 매출 대부분을 책임지는 H선사와의 계약이 해지된다면 국광해운은 타격을 입는다. 그리고 국광해운의 사장인 그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준장 승진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젠장, 그딴 건 관계 없지. 지금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있는데 그까짓 승진 따위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 회사야 씨발 망하든 말든.
김광용 대령은 엄지손가락으로 천천히, 그러나 공들여 관자놀이를 문지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청와대에서 직접 관여하는 작전이다. 북핵 관련 사안이고, 정보 팀의 최정예 요원을 구출하는 작전이다. 그깟 대리점 계약 따위에 신경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진도 팀은 어디에 있을까? 아직 무사할까?
본부는 진도 팀이 아직은 무사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각종 신호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777사령부에서 평양과 함경북도 간의 통신량이 평소 대비 증가한 사실을 포착했다.
정보사의 상급 부대인 국방정보본부에서도 함경북도에서 헬리콥터의 비정기적인 운항이 수차례 포착되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진도 팀이 아직 움직이고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그런 진도 팀을 북한놈들이 추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괴물 중에 괴물이 모인 진도 팀이라고 해도, 지금쯤이면 보급에 분명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분명히 보급에 문제가 생겼다.
총알이야 어찌 저찌 한다고 해도, 먹질 못하면 움직이질 못한다.
김광용 사장은 고개를 들어 상황판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함경북도 예령의 기온이 적혀 있었다.
최고 온도 영하 1도, 최저 온도 영하 12도.
내일은 서울도 11월 들어 처음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기상 예보가 있었다.
서울도 이런데, 지금 개마고원의 추위는 얼마나 끔찍할까?
그런 추위 속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태로 추격대를 피해 눈 쌓인 산을 넘고 또 넘어가는 그들을 생각했다.
김광용 대령은 다시 관자놀이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구조 요청 신호 들어옵니다!”
상황실에서 위성 신호를 담당하는 하사가 외쳤다.
김광용 사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하사에게 달려갔다.
진도 팀이 북한에서 보내온 위성 신호가 스크린에 뜨고 있었다.
“씨발.”
김광용 대령은 욕설을 퍼부었다.
***
2006년 11월 28일.
광장대약방.
허룽시, 길림성, 중국.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정보사와 국정원이 허룽시에 설치한 위장 포스트 광장대약방의 지하 상황실에서 엄주현 중령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씨발, 안 된다는 소리 하지 말고 뭔가 방법을 찾으라고!”
엄 중령이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소리쳤지만 그의 분노를 받고 있는 상대방은 그저 곤란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엄주현은 그 어느 때보다 분노해 있었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조선족 현지 코디네이터가 정보사 소속이었다면 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에 주먹질을 했을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조선족 협력자는 그저 곤란한 표정으로 바닥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 안 된다는 말뿐이었다.
서울에서 전문이 들어왔다. 탈출하고 있는 진도 팀과 조우할 좌표를 받았다. 그런데 접근할 수가 없다.
코디네이터는 좌표로의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폭설이 내려 도로가 마비된 상황이고, 길림성 정부에서 안전의 이유로 일부 간선도로를 제외하고는 도로를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차량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엄주현도 상황이 어떤지는 알고 있었다. 2일 전부터 내린 폭설 때문에 도로 상황이 엉망진창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리는 눈을 보면서 사륜구동 차량에 체인을 둘둘 감고 가면 접근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길림성 정부에서 도로 통제를 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중국 정부가 의도한 조직적인 방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차량을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 같은 의심을 증명했다.
평소보다 배 이상의 돈을 지불하겠다고 하는데도 차량을 확보할 수 없다면 무언가의 힘이 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엄주현은 협력자의 곤란한 얼굴을 보면서 그 또한 중국 정부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만족할 만큼의 비용만 지불하면 중국인민해방군이 현재 사용하는 군용 트럭까지 구해 오던 실력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둘 중 하나를 의미했다. 정말 손이 꽁꽁 묶였든가, 아니면 그 스스로 손을 묶었든가.
지금 북경에서는 대통령 특사가 중국 정부 관계자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중국 측에서 요구해 온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조율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어쨌든 아쉬운 것은 한국 측이었고, 상황은 잘 풀리지 않고 있었다.
“2배.”
엄주현이 입을 열자 코디네이터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차만 마련해 주면. 책정 예산에서 2배 지급하지. 차만 마련해 줘. 그 이후에 당신은 빠져도 괜찮아.”
엄주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고민의 빛이 서리는 것을 보았다.
찰나였지만, 분명한 감정 변화가 그의 눈에서 비쳤다.
“……죄송합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말해, 얼마면 되는지.”
엄주현이 씹어뱉듯 말했다.
“……얼마를 주셔도 안 되는 것은 안 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아야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요.”
코디네이터가 말했다. 그는 우회적으로 커다란 힘이 지금 상황에 개입하고 있음을 밝혔다.
“앞으로 우리와 척을 지고 싶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괜찮겠지?”
엄주현은 눈앞에 코디네이터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엄주현의 말에 위장 포스트에서 근무하는 요원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엄주현의 그 말은 금기였다.
타국 영토에서 행동의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 위장 포스트 입장에서 신뢰할 만한 코디네이터는 가치가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실력 있는 코디네이터였다. 단순히 고용하고, 고용되고의 관계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엄주현의 말은 가치 있는 코디네이터와의 신뢰관계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코디네이터는 황당하다는 웃음으로 같은 사무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와 오랜 시간을 보낸 다른 요원들에게 이건 좀 과한 것 아니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엄주현도 알고 있었다. 왜 다른 요원들이 그를 바라보는지, 코디네이터가 그런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전부 다 동원해야 했다.
지금 이 한겨울의 추위를 뚫고, 북한군 특수부대의 추격을 받으면서 달려오고 있는 진도 팀을 구하러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안 된다고, 할 수 없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협박이든, 간청이든, 애원이든,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할 생각이었다.
코디네이터는 너무하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엄주현의 말에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막 서울에서 넘어와 똥인지 된장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놈이 말을 막 하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지금 아쉬운 게 누군데, 자신이 손 한 번만 쓰면 이까짓 위장 포스트 하나 날려 버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중령님, 그 말에 책임지실 수…….”
“책임져! 책임진다고! 차만 가져다줘! 그럼 원하는 거 다 해 줄게. 돈? 국적? 뭐든지 다 만들어 줄게. 안 되면, 만약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하면.”
엄주현은 그렇게 말하고 코디네이터를 비롯해, 사무실 안에 있는 다른 요원들 전부를 다 바라보았다.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씨발 그 좆같은 상황에서 북한 땅을 관통해 온 사람들을 이대로 죽게 둘 수는 없어!”
엄주현이 소리쳤다.
코디네이터는 엄주현의 눈을 보았다. 자신을 노려보는 그 눈을 보았다.
그 눈을 보자 코디네이터는 화가 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은 지금 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구나. 작전, 성공과 실패, 책임 같은 것은 이 사람의 안중에 없구나.
그저 진짜로 그들을 구하고 싶어 하는 것뿐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엄주현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엄주현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들을 구하고 싶었다.
작전에 성공하고, 임무를 완수하고, 승진 고과에 반영되고, 이런 것들은 전혀 상관없었다.
전문에 적혀 있던 ‘4 or 2’ 라는 숫자를 보지 않았다면 이처럼 흥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4 or 2, 네 명 아니면 두 명.
여섯 명이 한 편제인 진도 팀에서 네 명, 또는 두 명만이 조우 포스트에 도착한다는 이야기는 11챠리가 발동되었다는 의미였다.
진도5가 11챠리를 발동했고, 진도4와 같이 미끼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남은 네 명이 국경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네 명, 또는 두 명. 아직은 네 명이지만, 두 명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다시 누군가가 미끼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팀원들을 희생해 가며 그들이 국경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맞이하지 못한다면?
탈진한 상태로, 어쩌면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르는 상태로, 국경에만 도착한다면 회수 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그들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48시간. 전문에 적힌 48시간은 48시간 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48시간 이내라는 의미다.
그들이 도착하는 시간이 48시간이 될지, 36시간이 될지, 24시간이 될지, 아니면 6시간 후가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차량에 응급처치 도구와 의약품을 잔뜩 싣고 출발해야 했다.
엄주현은 그렇게 힘들게 도착할 그들을 맞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대비하지 못한 그 자신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다면, 조금만 더 빨리 대비했다면,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코디네이터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중령님…… 저는 방법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코디네이터의 답은 변하지 않았다.
엄주현의 마음을 이해했다고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도와주려고 해도 도와줄 수가 없었다.
엄주현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그들을 구하지 못하는 것일까?
엄주현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어 코디네이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았다.
갑자기 어깨를 잡힌 코디네이터는 흠칫 놀라 몸을 움츠렸다.
격양된 그가 폭력을 쓸까봐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려 했다.
그러나 엄주현의 입에서 나온 말은 폭언도, 욕설도, 협박도 아니었다.
“제발, 선생님! 제발! 무슨 방법이든 강구해 주십시오. 돈이 얼마가 들든, 시도라도 해 볼 수 있게! 제발!”
코디네이터는 엄주현의 마지막 외침이 거의 울부짖음처럼 들린다고 느꼈다.
아는 사람일까? 지금 북한에서 탈출하고 있는 그들이 서울에서 왔다는 이 남자의 가족이라도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 이토록 간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코디네이터는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잡고 있는 엄주현의 손을 덮었다.
“죄송합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지금 상황에서는 왕 노사(老師)라도…….”
코디네이터가 그렇게 말했다.
“왕 노사라면, 궁기(窮奇) 말인가?”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대화를 나누던 엄주현과 코디네이터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코디네이터의 고개가 목소리가 흘러나온 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팔짱을 낀 채로 뒤에서 말없이 비스듬히 벽에 기대 있는 남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코디네이터는 팔짱을 낀 그가 엄주현과 같이 서울에서 온 사람인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럼 내가 할 일이 조금 있겠군.”
김훈 국정원 1차장이 팔짱을 풀면서 말했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