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0) >
2006년 11월 28일.
함경북도 무산군.
백금산역 북북동 141km 지점.
한규호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주저앉아 있는 윤재운 중사에게 다가갔다.
윤재운 중사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일어서기 위해 몸에 힘을 주고 있었다. 이규철 대위는 그 옆에 앉아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한규호는 윤재운 중사가 왜 주저앉아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한규호와 선두를 바꾼 윤재운 중사는 후미에서 행렬을 따라오다 점점 뒤처진 것이다.
윤재운 중사는 낙오하지 않기 위해서 무리했고, 그로 인해 걸리는 부하를 신체가 이겨 내지 못한 것이다.
정신력으로 이겨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정신력으로 버텨 낸다 하더라도 신체 메커니즘은 물리법칙을 거스를 수 없었다.
한규호는 이규철 대위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평상시와 같은 얼굴로 윤재운 중사를 바라보고 있는 그를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일단,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규철 대위가 말했다. 한규호는 박종연과 그 자리에서 몇 걸음 걸어가 경계 자세를 취했다.
이규철 대위가 잠시라고 했다.
그 ‘잠시’가 얼마나 될까? 얼마나 휴식을 취해야 윤재운 중사가 다시 움직일 수 있을까?
한규호는 머리를 작게 흔들었다.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진도0이 판단할 것이다. 그가 판단하고 결정을 할 것이다.
***
힘들겠군.
이규철은 윤재운 중사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윤재운의 신체는 반복해서 경고를 했을 것이다. 그만 멈춰야 한다고. 쉬어야 한다고. 더이상 무리하게 움직이면 안 된다고.
그러나 윤재운 중사는 그런 경고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몸을 움직였을 것이다. 정신력으로 신체를 억지로 통제했을 것이다.
반복해서 경고를 보냈음에도 계속 상태가 유지되자 뇌는 최후의 수단으로 의식을 끊어 버렸을 것이다.
중추신경에 의한 신경 감각 차단. 소위 ‘실신(Syncope)’ 상태로 강제했을 것이다.
감각이 차단되면서 윤재운 중사는 강제 수면 상태에 들어갔고, 그대로 쓰러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밤새도록 내린 눈이 쿠션 역할을 해 주었다는 것, 그리고 그 차가움에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는 것 정도였다.
윤재운 중사의 호흡이 어느 정도 안정된 기미를 찾아 가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 했다.
얼마나 더 쉬어야 할까?
“팀장님.”
몸에 힘을 주던 윤재운 중사가 그를 불렀다.
“조용히.”
이규철 대위가 말했다.
“팀장님.”
“조용히 해.”
이규철 대위가 낮고 강하게 명령했다.
그러나 윤재운 중사는 조용히 하라는 상관의 명령을 거부했다.
“저를 두고 가십시오.”
“조용히 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규철이 더 낮게, 하지만 더 강한 기운을 담아 말했다.
“몸에 힘 빼고 최대한 회복에 집중해. 오래 쉴 수 없어. 조만간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집중해.”
이규철은 그렇게 말하며 군장으로 손을 뻗었다. 칼리로바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할 수 있는 것은 뭐라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그런 그의 손을 윤 중사가 잡았다.
“팀장님, 냉철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윤재운 중사의 말에 이규철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언제나 가슴속에 품어 왔던 그의 신조였다.
분석은 정확하게, 판단은 냉철하게, 행동은 신속하게.
그러나 지금 이규철은 냉철하게 판단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냉철’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규철은 윤재운 중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윤 중사는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이규철도 알고 있었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생각하자. 생각을 멈추지 마. 생각하자.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습니다.”
“조용히 해.”
“이대로 다 죽을 수는 없습니다.”
“그만.”
“제가 막고 있겠습니다.”
“닥쳐!”
이규철이 소리쳤다.
“닥치라고 했다. 판단은 내가 한다. 그러니 그냥 닥치고 있어.”
윤재운은 강하게 말하는 이규철을 바라보았다. 몇 년을 그와 함께 보냈지만, 그가 소리를 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안 상사님처럼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윤재운 중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라면, 제가 진도5였다면, 절대로 11챠리를 발동하지 않았을 겁니다. 살 방도가 있다면, 살 수만 있다면, 살아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았을 겁니다.”
다시 닥치라고 소리 지르려던 이규철 대위는 윤 중사의 차분한 목소리를 끊을 수 없었다.
“팀장님, 저는 더 이상 못 움직입니다. 세 사람이 희생한다고 해도 저는 못 갑니다. 그러니…… 냉철하게 판단하십시오. 그리고…….”
윤재운의 시선이 이규철 대위에게서 다른 방향으로 옮겨졌다.
이규철도 고개를 들려 그 시선을 따라갔다.
남쪽을 향해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는 두 사람의 등이 보였다.
두 사람은 이규철 대위와 윤재운 중사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여전히 남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이규철은 그들의 등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규철에게는 세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가장 현실적인, 이대로 윤재운 중사를 두고 가는 방법과 그를 포기하지 않고 추적대와 교전을 준비하는 방법.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이 있었다.
안 상사가 목숨을 걸고 벌어 준 피 같은 시간이다. 오래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이규철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한규호.”
이규철 대위가 한규호를 불렀다.
“네.”
한규호는 여전히 경계 자세를 풀지 않고서 말했다.
***
한규호는 총구와 시선을 남쪽 방향에 고정하고 있었지만, 이규철 대위와 윤재운 중사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한규호는 최대한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는 그의 머리를, 그의 마음을 마구 분탕질했다.
진도0이라는 자리가, 결정권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만약 나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진도0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한규호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방법은 세 가지. 두고 가든가, 같이 있든가, 아니면 둘만 보내든가.
한규호가 진도0이었다면 마지막 방법을 선택할 것 같았다.
움직일 수 있는 팀원을 먼저 보낸다. 그리고 자신은 움직이지 못하는 팀원과 함께 이곳에서 마지막 교전을 준비한다. 추적해 오는 적들의 발목을 잡아서, 먼저 떠난 팀원들의 탈출을 돕는다.
그 방법을 택할 것 같았다.
조국에 대한 충성? 고귀한 희생? 목숨을 걸고서라도 완수해야 하는 임무? 그런 것이 아니었다.
팀원을 혼자 두고 갈 수 없고, 다른 팀원까지 죽게 두고 싶지 않을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무엇보다 진도0과 진도1 사이에는 MIA(작전 중 실종)는 없다. KIA(작전 중 전사)만이 있을 뿐이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아니, 두렵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두렵기는 하다. 하지만 혼자 두고 갈 수도 없다.
문제는 지금 그의 위치가 남는 사람이 아니라 떠날 사람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지시를 내릴 위치가 아니라, 지시를 받을 위치에 있다는 것이었다.
씨발, 집중해.
한규호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눈에 힘을 주었다.
“한규호.”
그때 이규철 대위가 그를 불렀다. 불안감이 그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야. 안 돼.
“네.”
한규호는 경계 상태를 풀지 않고 대답했다.
“진도2와 함께 지금 출발한다. 목표 좌표는 42.0934, 128.9851.”
이규철의 명령에 한규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팀장님!”
한규호 대신 윤재운 중사가 이규철 대위에게 반발했다.
“박종연.”
이규철은 윤재운의 부름을 무시하고 박종연을 호출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빠르게 말했다.
“백금산역에는 고고도 정찰기나, 위성을 통한 정찰을 피하기 위한 의도로 의심되는 대규모의 위장 설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위장 설비는 백금산역과 인근 탄광 시설은 물론, 관련 주요 시설과 이동 경로를 따라 설치되어 있었고, 곳곳에 설치된 콘크리트 기둥에 결속되어 있었다. 정찰하는 30분 동안 약 1백여 명 정도의 인원이 관찰됐고, 구성원은 군인뿐만 아니라 인부나 연구원으로 의심되는 인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저조도 조명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야간에 주로 활동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규철 대위의 말이 끝났음에도 박종연 중사는 한규호와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대답하지도, 경계 자세를 풀지도 않았다.
“바로 이동한다, 지금 당장. 명령이다.”
이규철 대위가 다시 말했다.
그러나 한규호와 박종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규호는 부당한 명령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이대로 남쪽으로 가서 추적대가 접근할 수 없도록 시간을 끌라고 말하면 군말 없이 몸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는 군인이었고, 목숨은 최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명령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두 사람만 두고 갈 수는 없었다.
“팀장님!”
윤재운 중사가 다시 이규철 대위에게 말했다.
“1시간 후에 따라간다.”
이규철 대위는 다시 윤재운 중사의 부름을 무시하고 말했다.
한규호는 그 목소리에 작은 한숨이 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죽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1시간 동안 체력을 회복하고 따라간다. 여기서 회복할 시간 동안 최대한 길을 뚫어라.”
한규호는 이규철 대위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박종연을 바라보는 이규철 대위와, 무서운 얼굴로 그런 이규철 대위를 바라보는 윤재운 중사를 바라보았다.
“만약 체력을 회복하는 동안에 추적대가 따라 붙는다면 우리가 여기서 발목을 잡는다. 그 정도까지 따라와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는 큰 차이가 없겠지. 그 부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감안하지 않는다. 적들이 1시간 이내의 거리까지 접근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이게 가장 최선이다. 모두 다 살기 위해서는.”
한규호는 척추를 타고 전류가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규철 대위가 모두 다 살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규호는 누가 죽어야 하는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규철 대위는 어떻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먼저 이동하면서 길을 뚫는다. 출발하고 1시간 안에 교전의 징후를 포착했다면, 최대한 빠르게 탈출한다. 그때 지휘권은 한규호가 가진다.”
이규철 대위의 눈은 한규호를 향했다. 한규호는 대답 없이 그 눈을 마주 보고 있었다.
이규철 대위의 시선이 천천히 윤재운 중사에게로 향했다.
“약속하지. 1시간이 지나도 움직이지 못하면…… 두고 가겠다. 약속한다.”
그 말을 들은 윤재운 중사는 그제야 얼굴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끝으로 네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이규철 대위와 윤재운 중사 그리고 그런 그 둘을 바라보는 한규호와 여전히 남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박종연 중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박종연 중사였다. 경계 자세를 풀고 이규철 대위에게 몸을 돌렸다.
“길을 만들어 두겠습니다. 좌표를 다시 불러 주십시오.”
“42.0934, 128.9851.”
이규철 대위가 좌표를 다시 불러 주었다.
박종연 중사는 손목에 달린 GPS에 좌표를 입력한 후 먼저 북쪽을 향해 걸어 나가며 한규호에게 말했다.
“가자.”
한규호는 앞서 걸어가는 박종연을 잠시 바라본 후, 다시 시선을 이규철에게 돌렸다.
“늦지 않게 오십시오.”
그렇게 말하고는 박종연을 따라 발을 옮겼다.
이규철 대위와 윤재운은 그렇게 먼저 떠나가는 두 사람의 등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지자 이규철 대위는 자신의 군장에서 그와 윤재운 중사의 위장포를 꺼내 한 장을 깔고 그 위로 윤재운 중사를 옮긴 다음 남은 한 장을 덮었다.
“죄송합니다.”
윤재운 중사가 말했다.
“회복에 집중해라.”
이규철 대위가 윤재운 중사의 군장을 열면서 무심한 어투로 말했다.
잠시 동안 전자 장비로 가득한 윤재운 중사의 군장을 뒤진 이규철 대위는 결국 자신이 원하던 물건을 찾아 냈다.
그의 손에는 모토로라의 로고가 새겨진 위성용 신호 발신 장비가 들려 있었다.
이규철은 잠시 그 장비를 바라보았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동해에서 작전사 잠수함을 호출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을 물건이었다.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군.
이규철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장비의 전원을 켜고, 약속된 코드를 입력했다.
-48h, 4 or 2, 허룽(和龙), 42.0934, 128.9851.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30)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