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26) >
2006년 11월 27일.
연사 소학교 운동장.
함경북도 연사읍.
서용석은 스스로 사냥감이 되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포위망은 계속 좁혀 온다. 방향을 읽히고 있다. 이대로 계속 좁혀지면 더이상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빠르게 방향을 바꾸자.
방향을 바꿔 동쪽으로 간다. 동쪽으로 가면 어떻게든 조국이 나를 구출하러 올 것이다. 동해로 간다.
여기까지 생각한 서용석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
그런 근거 없는 기대에 목숨을 걸었다면 애초에 북쪽으로 방향을 잡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멍청했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몇 명일까? 많아도 대여섯 명 정도. 좋다. 대여섯 명이라면?
팀을 나눈다. 팀을 나눠 한쪽을 미끼로 보낸다.
어느 쪽? 동쪽으로 이동하는 팀이 미끼다.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이목을 끈다.
그동안 쥐죽은 듯 숨어 있다가 갑자기 네 번이나 교전을 벌였다. 마치 여기 있다는 듯. 동쪽으로 가고 있으니 나를 잡으러 오라는 듯.
“모남도에게 연락을 넣어라.”
서용석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535 정찰대 박철 상사에게 말했다.
“차단진을 친다. 마지막 교전 지점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부채꼴. 교전은 최대한 피하고, 위치만 확보, 쓸데없이 하전사만 죽이지 말라고. 두협이를 보내. 무리하지 말라고.”
서용석이 535정찰대 팀장 중 한 명인 이두협 상사를 그곳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무리하지 않습니까?”
박철이 물었다.
생포의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내려 달라고. 절대로 생포해야 하는지, 아니면 가능하면 생포하라는 의미인지 구체적인 지시를 내려 달라는 질문이었다.
“독기가 잔뜩 올랐을 때, 미리 손 집어넣을 필요가 없지.”
서용석이 말했다.
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독안에 갇힌 쥐는 그냥 두면 알아서 굶어 죽는다. 괜히 산 채로 잡겠다고 손을 집어넣었다가 물릴 수 있다.
서용석과 오랜 시간을 보낸 박철은 그와의 짧은 대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렇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에 따르면 아직 지시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저 귀찮은 놈도 같이 보내 버리지. 사냥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괜찮은 볼거리가 되겠지.”
서용석의 시선은 복도 너머, 급하게 만들어진 응접실 어딘가에 앉아 있을 1호 손님을 향해 있었다.
***
“안 간다?”
서용석은 특유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박철을 보았다.
그러나 박철은 서용석의 무표정 속에 담겨있는 불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네. 대장님과 같이 움직이겠다고 합니다.”
박철의 대답을 들은 서용석은 고개를 돌려 복도 쪽을 바라보았다.
동쪽으로 이동하는 미끼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부대원 중 일부를 보내면서 그에게 달린 혹을 같이 보내 버리려 했다.
서용석에게 내려진 또 다른 임무, 복도 너머에 있을 늙은 양놈에게 사람을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 임무를 위해서.
그런데 그가 안 가겠다고 한다.
왜일까? 왜 그는 안 간다고 한 것일까?
사냥.
맹수는 먹이가 필요할 때만 사냥을 한다.
먹이가 없으면 굶어 죽는 상황에서야 맹수는 몸을 일으키고, 사냥감을 탐색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사냥감을 잡는다.
맹수는 절대로 재미를 위해 사냥을 하지 않는다. 맹수의 사냥에는 확고부동한 목적성이 있다.
반면에 사냥꾼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사냥을 하지 않는다. 재미라는 이유를 위해서 살아 숨쉬는 생물의 목숨을 거둘 뿐이다.
서용석은 맹수였다.
그에게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만의 목적이 있었다. 공화국의 안위라는 최고의 가치를 위해서 이번 사냥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저 복도 너머의 양놈에게도 그런 숭고한 목적이 있을까?
그저 재미를 위해, 일상에서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자극을 위해 서용석의 이 숭고한 사냥의 끼어든 것이다.
사냥개. 저 자본주의 양놈은 서용석을 사냥개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최고의 사냥개가 선보이는 최고의 사냥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서용석과 오랜 시간을 보낸 박철 상사는 상관의 변함없는 표정 속에서 변화하는 감정을 읽었다.
불쾌감에서 분노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준비는?”
서용석은 여전히 시선을 복도에 고정한 채로 말했다.
“준비는 전부 끝났습니다. 지금 바로 출동 가능합니다.”
박철 상사가 답했다.
대답을 들은 서용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른 모든 이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서용석은 천천히 전면에 걸린 지도로 걸어갔다. 그리고 펜을 들어 지도에 꾸불꾸불한 선을 네 개 그었다.
“예상 탈출 경로다.”
서용석이 쥐새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선별해서 찾아낸 경로였다.
그리고 그 밑에 숫자를 썼다.
“왼쪽부터 2, 3, 4, 5팀, 경로를 따라 수색. 1팀은 대기. 발견 즉시 보고. 교전은 비상 상황 아니면 금지. 쥐새끼들은 생포한다. 최소 한 명.”
서용석의 말이 끝나자 각 팀장들은 바로 몸을 교실 밖을 나갔다.
서용석을 맞이했고, 브리핑을 진행했던 대위는 서용석의 부하들이 경례도 없이 바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저들은 일반적인 인민군과는 다른 종류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지휘하는 서용석을 단순히 계급만으로 판단해 응대하지 않은 자신이 정말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어떻게 할까요?”
박철 상사가 물었다.
목적어가 삭제되었지만 서용석은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보여 드려야지. 따라올 수 있다면 말이지.”
서용석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운동장에 멈춰 있는 헬리콥터를 향해 있었다.
***
2006년 11월 27일.
함경북도 부령군.
백금산역 북동 134km 지점.
진도4 정의성 상사는 고개를 들어 이미 해가 자취를 감춘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정비 도구로 총기를 점검하고 있는 안성종 상사를 바라보았다.
안 상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말도, 행동도, 그 표정도.
어젯밤, 11챠리가 발동된 후, 정의성 상사는 안 상사의 지시하에 동쪽으로 전진하며 의도적으로 네 번의 교전을 시행했다.
교전이라고 해도, 적을 살상하기 위한 목적의 교전은 아니었다. 적을 발견하면, 총을 발사하고, 위치를 노출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짧은 시간에 네 번의 교전을 시행한 것이다.
정 상사는 안 상사의 지시에 따라 총을 쏘고, 움직이고, 숨고, 뛰고, 다시 총을 쏘고를 반복했다.
일출 1시간 전 마지막 교전을 시행한 후, 동북동 방향으로 2시간 동안 15km를 이동해 지금 이곳에 숨었고, 하루 낮을 보낸 후 다시 이동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 상사는 11챠리의 발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살아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군인이라는 직업은 목숨을 담보로 밥을 먹고 사는 직업이다. 그 사실을 정의성 상사는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군인을 선택한 이유는 그저 직업으로서,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가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진도 팀에 배속된 이후부터였다.
진도 팀에 배속되고, 진도4를 달고, 적들이 가득한 북한 땅을 밟고, 적들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니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직접 그의 손으로 몇 명의 북한 군인들의 목숨을 거두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그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도4라는 위치는 11챠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실제로 11챠리가 발동되었을 때를 상상하곤 했다.
멋지게 죽자. 11챠리가 발동되면 정말 멋있게 죽자.
남자로 태어나서 가 볼 만한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특전부사관을 선택했고,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라고 믿었기에 정보사 침투 팀원이 되었다.
목숨을 걸고 팀원들을 보호하는 11챠리야말로 남자가 맞이할 수 있는 최고의 죽음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몇 번에 걸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런 그에게 지금 눈 앞에서 평소의 모습으로 총기를 정비하고 있는 안 상사의 모습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 그 자체였다.
죽음이 눈앞까지 다가와 있는 상황에서도 평소와 같은 얼굴로 평소와 같은 행동을 하는 상관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스며 있는 살고 싶다는 생각을 억지로 눌렀다.
지워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있는 힘껏 찍어 눌렀다.
“탄약은?”
총기를 닦고 있던 안 상사가 여전히 시선을 총기에 고정한 채 말했다.
“두 탄창 정도 남았습니다.”
정 상사가 답했다. 어제 서른 발이 들어가는 스타나그(STANAG, STANdardization AGreement) 4179 규격의 탄창 두 개를 소모했다. 그러나 대략 예순 발 하고 몇 발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군……. 노획은 무리가 있겠지, 그렇다면…….”
여전히 총기를 점검하는 안 상사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다.
“탄약을 최대한 아껴서 전부 소모하기 전에 국경을 넘도록 하지.”
정 상사의 귀에 들리는 안 상사의 말투는 너무 차분했다.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도록 하지. 그런 문장으로 대치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처럼 차분한 목소리였다.
“국경을…… 넘습니까?”
그러나 그 차분한 목소리가 정 상사의 마음에 파문을 던졌다.
“넘어야지, 집에 가려면.”
정 상사는 안성종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조금씩 짙어지는 어둠이 내려, 안 상사의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은 보이질 않았다.
“집에 갈 수 있습니까?”
정 상사가 다시 물었다. 갈 수 있습니까? 살 수 있습니까?
“모르겠군.”
안 상사는 정비 도구를 군장에 갈무리하면서 말했다.
“대략 02시 정도까지만 이목을 끌고 그 시간이 지나 급속 행군으로 빠르게 움직이면, 포위망이 만들어지기 전에 몸을 빼낼 수 있겠지. 기왕이면 몸을 빼내기 전에 장교를 하나나 둘 정도 잡을 수 있으면 좋겠군. 병사들이 죽어 나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겠지만, 자기들이 총을 맞으면 장교들은 신중해질 수도 있으니 그걸 기대해 보자고..”
안성종 상사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포위진을 일종의 원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좋은 것은 원이 만들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 원이 만들어지려면 중심이 있어야 하고, 중심이 원을 만들지 못하도록 빠르게 움직인다면? 여섯 명이 있으나 두 명이 있으나 포위당하면 살아남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 그럴 바엔 두 명이 오히려 좋아.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으니까. 중심이 움직이면 원이 찌그러진다. 더 빨리 움직이면 구멍이 생긴다. 구멍이 생기면 더 이상 원이라고 할 수 없고. 그 구멍으로 나간다.”
안 상사의 추가적인 설명에 정의성 상사는 이제 그의 마음속에서 눌려 있던 살고 싶다는 마음을 더 이상 제어할 수 없음을 알았다.
죽겠다는 생각은 나만 하고 있었구나. 안 상사는 단 한 번도 죽을 생각이 없었구나.
“목숨을 바쳐 전우를 지키고 임무를 완수한다. 60년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에는 너무 고루하군. 죽게 되면 죽어야겠지만, 죽기도 전에 죽을 생각부터 하면 안 되겠지. 생각해 보면 11챠리라는 이름도 시대착오적이야.”
정의성 상사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2시까지 동쪽으로 천천히 이동한다. 매복 팀이 보이면 기습하고, 흔적을 남긴다. 교전은 최대 두 번 이내로. 02시가 지나면 북쪽으로 이동한다, 최대한 빠르게 국경. 중국 놈들이 지키고 있겠지만, 서울에서 뭔가 해 놓았겠지. 그때까지 총알은 최대한 아낀다.”
“알겠습니다.”
정 상사는 그렇게 말하며 군장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해어지기 전 박종연 중사가 건넨 칼로리바였다.
“박종연이가 후회하겠군.”
안성종 상사가 그 칼로리바를 받아 들면서 말했다.
“한규호 걸 뺏어 먹을 테니 그렇게 후회하지는 않을 겁니다.”
정의성 상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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