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25) >
2006년 11월 26일.
함경북도 연사군.
백금산역 기점 북북동 121km 지점.
“팀장님, 11챠리를 발동합니다.”
안 상사의 말에 이규철 대위는 천천히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11챠리를 발동한 안 상사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죠.”
이규철 대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는 동쪽으로 가겠습니다.”
안 상사가 ‘저희’라고 말했다.
이규철의 시선이 천천히 정의성 상사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을 받은 정의성 상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규철은 알고 있었다.
11챠리는 진도5의 고유 권한이고, 자신은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시간이 없습니다.”
안성종 상사가 말했다.
“어서 움직여야 합니다. 저희도 죽을 생각은 없습니다. 모두 살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가장 최선입니다.”
“…….”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보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한규호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한규호.”
이규철 대위가 시선을 계속 안 상사에게 고정한 채로 한규호를 불렀다.
“네.”
한규호가 답했다. 이규철 대위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안 상사님을 따라가라.”
“네.”
한규호가 바로 답했다.
“아니, 한규호는 데려가지 않습니다.”
한규호의 대답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안 상사가 바로 말했다.
마치 예상했던 것처럼, 한규호를 데려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안성종 상사는 이규철 대위가 왜 한규호를 딸려 보내려는지 알고 있었다.
한규호가 진도 팀에 발탁된 이유는 위험을 파악하는 직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규철은 한규호를 안 상사에게 붙여 생존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생각이었다.
당사자인 한규호도 그런 의도를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주저 없이 안 상사를 따라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한규호도 안 상사를 따라가고 싶었다.
안 상사를 은퇴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은퇴를 시키려면 데려가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저 늙은이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한규호.”
그런 한규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 상사가 한규호를 불렀다.
“네.”
한규호가 답했다.
“이제부터 네가 진도5다.”
“…….”
한규호는 답을 하지 못했다.
답을 하지 못하는 한규호에게 안 상사가 다가와 무언가를 건네주고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팀장님을 끝까지 모셔라.”
한규호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부드러운 어조로, 안 상사는 그렇게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해 주었다.
한규호는 그런 안 상사 대신, 자신의 손에 들린 야시경, 안 상사가 사용하던 4안(眼) 야시경을 바라보았다.
“부탁한다. 너라면 괜찮겠지.”
야시경을 바라보던 한규호의 시선이 천천히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안 상사에게로 향했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규호는 대답 대신 자신이 쓰고 있던 야시경을 벗어 안 상사에게 건넸다.
말없이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진도1 윤재운 중사가 안성종 상사에게 여분의 야시경용 AA 건전지 팩을 건넸다.
“이렇게 많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은데…….”
안 상사는 그렇게 말하며 건전지 팩을 받아 군장에 넣었다. 그리고 정의성 상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지.”
안 상사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다시 계곡을 내려갔다.
진도4 정의성 상사는 이규철 대위에게 소리 없는 경례를 하고는 안 상사를 따라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잠시만!”
그런 정의성 상사를 박종연 중사가 잡았다. 정의성 상사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이거나 마저 가지고 가십쇼,”
박종연 중사가 급하게 군장에서 자신의 칼로리바를 꺼내 그들에게 건넸다.
칼로리바를 받아 든 정의성 상사는 무언가 말을 할 듯하더니, 그냥 씩 웃고는 칼로리바를 받아 군장에 집어넣고는 안 상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렇게 그들은 계곡 아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남은 네 사람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 상사가 왜 한규호를 남겼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고 있는 이규철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안 상사에게 향해 있던 시선을 돌려 떠나가는 여전히 어둠을 보고 있는 한규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안 상사가 사용하던 4안(眼) 야시경이 가볍게 떨리는 모습을 보았다.
안 상사 말대로 시간이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최대한 빨리 탈출해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벌어 줄 시간을 최대한 아껴 가면서.
“이동한다.”
이규철 대위가 말했다. 그 말이 팀원들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
2006년 11월 27일.
서울공항(SSN).
경기도 성남시.
새벽 4시가 조금 지난 서울공항의 주기장에 대기하고 있는 VCN-235기의 GE CT7-9C3 터보프롭 엔진 2기는 새벽의 적막을 깨면서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공군기지인 서울공항 주기장에 있지만 국방색 위장 도색 대신 유로 화이트 바탕에 빨간색과 파란색 띠가 들어간 이 수송기는 대통령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공군 5호기였고, 공군 5호기는 대통령 명령에 따라 엔진 시동을 걸고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기장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차 한 대가 멈추고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정보사 본부에서 성남공항으로 달려온 엄주현 중령은 차에서 내리면서 본능적으로 몸을 떨었다.
11월 탄천변의 차가운 바람이 그의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엄주현은 온몸을 파고드는 한기가 괴로운 것인지, 아니면 그 차가운 공기가 신선하게 느껴졌는지 확신하지 못하며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2일 전, 중국에서 들어오자마자 작전사에서 브리핑을 진행했다. 그리고 2일, 정확히는 1일하고 반나절 동안 계속 상황을 파악하고, 중국과 접촉을 유지했다.
접촉을 유지하고 있었다 해도 사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중국에서 내건 조건은 최고 결정자들 사이에서 논의될 주제였으니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실무자급에서는 실무자급끼리의 줄다리기는 필요했다.
그렇게 1일 반을 보내고, 자정이 넘어간 시간에 드디어 명령이 내려왔다.
-허룽에서 국경까지 이동, 진도 팀을 회수해 올 것.
윗선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아니면 어떻게 설득을 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조건을 들어주기로 했는지, 그들이 받아들일 만한 또 다른 조건을 찾아냈는지, 아니면 아직 협상 중인지 고작 중령에 불과한 그로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사실 엄주현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저 명령을 받은 이상 최대한 빨리 가서 진도 팀을 구출해 오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공군 5호기에 다가간 엄주현은 안내를 받아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눈부터 감았다.
마지막으로 침대에 누워 제대로 잠을 잔 것이 언제였었지?
최준함과의 연락이 끊겼던 그날, 그날 이후부터 집에는커녕 단 한 번 침대에 누워 보지도 못했다. 피곤했다. 뇌에 과부하가 걸려 있었다.
그가 탔다고 해도 비행기가 바로 출발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갈 특사가 탑승한 뒤에야 이 비행기는 하늘로 뜰 것이다.
눈을 감는다. 시각을 차단시켜 뇌를 쉬게 한다. 특사가 올 때까지 최대한 뇌의 부하를 줄여 두자. 그런 생각을 하며 엄주현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비행기로 다가오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엄주현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정보사 회의실에서 보았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었다.
비행기에 오르는 외교안보수석의 얼굴 또한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엄 중령이시군요.”
엄주현을 알아본 외교안보수석이 손을 내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엄주현이 말했다.
피곤에 찌든 수석의 얼굴을 보면서, 불가능한 조건이라고 말했던 그가 청와대에 들어가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진도 팀이 다 죽을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그의 얼굴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꼭 데려옵시다.”
외교안보수석은 그렇게 말하며 엄주현의 손을 꽉 잡았다.
그렇게 힘 있는 악수를 하고 나서야 엄주현은 수석비서관을 따라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 또한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벌써 세 번째 만나는 사람이었다. 국가정보원 김훈 1차장.
김훈 차장은 엄주현을 보고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엄주현은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저 자식은 왜 따라왔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대북 작전에서 국정원이 톱티어임은 분명하지만, 지금 결정권은 청와대가 가지고 있고, 실무는 정보사가 진행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국정원은 위치가 애매했다. 위치가 애매한 것은 그렇다고 쳐도, 1차장이나 되는 사람이 꼭 갈 필요가 있을까?
-기장입니다. 출발하겠습니다. 벨트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장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발목이나 잡지 않았으면 좋겠군.
엄주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벨트를 허리에 둘렀다.
***
2006년 11월 27일.
연사 소학교 운동장.
함경북도 연사읍.
동쪽 하늘에 붉은빛이 살짝 비치는 아직 이른 새벽에 주민 1만여 명도 안 되는 함경북도 연사읍엔 평소에 들어 보지 못한 소음이 읍내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연사역에서 300여 m 떨어져 있는 연사 소학교 운동장에 착륙하는 헬리콥터가 새벽의 적막을 깨는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소학교 인근의 주민들은 익숙하지 못한 소음에 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었다가, 소학교를 가득 메우고 있는 군인들과 생전 보지도 못했던 헬리콥터의 모습에 놀라 다시 창문을 닫아 버렸다.
헬리콥터가 착륙하자 연사읍에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 재빨리 헬리콥터를 타고 오신 귀한 손님들을 영접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러나 그들이 채 다가가기도 전에 헬기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뛰어내렸다.
“상황은?”
헬기에 다가가던 북한군 대위는 문을 열고 뛰어내린 남자의 질문을 받았다.
아직 회전하는 헬기 로터의 소음이 온 천지를 울리고 있는 상황임에도, 이상하게 그의 목소리는 송곳처럼 날아와 대위의 귀에 꽂혔다.
일반 인민군과는 다른 검은색의 군복을 입은 남자의 옷에는 특무상사 계급장이 달려 있었다.
“밤새도록 교전이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위는 현명하게 대처했다.
특무상사건, 하전사건 헬기를 타고 뛰어내리며 반말로 상황을 묻는 사람은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리는?”
특무상사가 다시 말했다.
“차량으로 3~4시간 거리입니다. 학교에 임시 상황실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곳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답하던 대위는 자신에게 말하는 특무상사의 얼굴에 큰 상처를 보면서 반말을 하지 않은 스스로를 속으로 칭찬해 주었다.
“차량도 바로 대기시키도록.”
특무상사는 그렇게 말하고 상황실이 차려져 있다는 건물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대위는 급하게 그를 따라가느라, 뒤이어 헬리콥터에서 내리는 또 다른 사람을 보지 못했다.
양복을 입은 장년의 백인이 헬리콥터에서 내리는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
대위의 보고를 받은 서용석의 두뇌는 빠르게 회전하며 상황을 분석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방향이 이상하다.
대위의 보고에 따르면 어제 자정을 넘겨 첫 번째 수색조와의 연락이 끊겼다.
대위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듯싶었다.
전력과 장비의 열악함 때문에 보고가 늦어지는 일은 다반사였다고 변명했다. 수색을 마치고 잠복지로 이동하다 늦어졌을 수도 있다고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서용석이 듣기에도 일리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일리가 있다고 용납되는 것은 아니었다.
서용석은 비굴하게 변명하는 대위의 입에 총알을 박아 버리고 싶은 욕망을 참으면서 계속 보고를 들었다.
대위의 보고에 따르면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교전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대위는 빠르게 위에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동원 가능한 모든 병력을 동원해 교전 발생 지점을 중심으로 포위진을 구축했다,
이후 몇 시간 사이에 교전이 네 번 발생했다.
대위는 당장 현장으로 뛰어가는 욕심을 부리는 대신, 교전 발생 지점을 지도에 기록하고, 방향을 찾아내고, 병력을 활용해 포위진을 만들어 놓았다.
서용석은 대위가 기록한 교전 발생 지점 표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방향이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동쪽이라.
그동안 계속 북쪽을 향해 왔던 그 쥐새끼들이 갑자기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라.
“인원은?”
서용석이 주어가 불분명한 질문을 던졌다.
“적 인원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포위진을 구성하는 병력은 두 개 중대 병력이며, 계속 충원되고 있습니다.”
질문을 받은 대위는 현명하게 적과 수색 병력 양쪽의 인원을 보고했다.
서용석은 대위가 이런 촌구석에 처박혀 있기에는 아까운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상황판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은밀하게 계속 숨어 다니던 쥐새끼들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일부러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몇 시간 사이에 네 번이나 교전을 벌였다는 것은 마치 여기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북쪽으로 향하다 갑자기 동쪽이라.
“나는…….”
대위는 서용석이 입을 열자 몸에 힘을 잔뜩 주었다.
“나는 쥐새끼다. 나는 지금 추적을 피해 북으로 탈출하고 있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계속 적들을 만나고 있다. 나는 쥐새끼다…….”
그리고 지도를 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서용석을 바라보았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2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