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24) >
2006년 11월 26일.
함경북도 연사군.
백금산역 기점 북북동 121km 지점.
북한군들의 진행 방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진도 팀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진도 팀을 눈치채고 그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수색 작업을 하다 정해진 매복지로 이동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어깨에 대충 둘러 멘 소총, 조심성 없는 움직임, 그리고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이 진도 팀을 발견하고 접근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안성종 상사는 빠르게 손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그 지시를 알아본 진도 팀원들은 조용히, 그러나 신속하게 야시경을 착용했다.
지금은 배터리 잔량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야시경을 쓰자 한규호는 접근하는 북한군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다섯 명이었다. 소총을 어깨에 둘러 멘 다섯 명의 북한군들이 조심성 없는 발걸음으로 계곡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안 상사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교전 준비. 표적은 언제나처럼.
한규호는 무광 처리된 자신의 소총을 들어 자신의 표적을 겨냥했다. 다가오는 북한군 중 왼쪽에서 네 번째가 그의 표적이었다.
북한군이 조금 더 다가오자 그들의 모습도, 그들의 소리도 더욱 가까워졌다.
내려오던 북한군 중 한 명이 미끄러져 넘어지고, 다른 이들이 넘어진 사람을 타박하는 모습이 보였다.
교전에서 적을 먼저 발견했다는 것은 승기를 잡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위치상으로는 불리할지 몰라도, 지금 상황은 절대적으로 진도 팀에게 유리했다.
그러나 한규호는 안 상사의 발사 명령이 평소보다 더 짧은 거리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총알 한 발당 한 명,
만약 첫 시도에 완전 무력화를 이루어 내지 못하면 적이 위치상의 이점을 활용할 것이다.
그렇기에 안 상사는 접근하는 북한군이 최대한 지근거리 까지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격을 지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250m?
한규호는 자신이 안 상사의 역할이었다면, 전방 250m 범위 안에 들어왔을 때, 발사 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
200m.
안성종 상사는 접근하는 북한군들을 보면서 200m 안에 적이 들어왔을 때 사격을 지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200m쯤에 가상의 선을 그어 놓고, 북한군이 그 선을 넘어서는 순간 사격 지시를 내릴 생각이었다.
그들의 이동속도라면 대략 3분에서 5분 사이에 그 선을 넘어설 것 같았다.
안 상사 그렇게 마음을 정한 후, 눈으로는 계속 그들을 주시하면서도 온전히 그들에게 집중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동과정 내내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생각들이 계속 이어 가고 있었다.
선두에 서서 팀을 이끌 때 이동속도를 평소보다 더욱 높였다.
안 상사의 예상대로라면 이미 수색 범위를 빠져나오고도 남을 만큼의 속도였는데, 수색 병력과의 접촉이 계속되고 있다.
다시 말해 포위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안 상사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수색을 지휘하는 북한군의 인물은 의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침투했고, 백금산의 비밀을 파악했고, 그리고 북쪽으로 탈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계속 포위망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군이 조금 더 다가왔다. 그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춥다는 내용이었다.
안 상사는 숨을 들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 안을 가득 채우자 그의 몸 안에 한기가 퍼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몸 안에서 느껴지는 그 신선함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 신선함이 가슴과 머리에 스며들어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정하자. 지금 상황은 좋지 않다.
상황이 좋지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머리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자.
적들은 포위망을 계속 좁혀 오고 있다. 접촉이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이 그 가설을 증명한다.
지금 산 정상에서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저놈들을 처리한다면 범위는 더욱 좁혀질 것이다.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침착하게,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포위망이라는 원이 만들어지기 전에 피해 나갈 수 있을까?
힘들다.
포위망이 형성된 이후에 힘으로 뚫고 갈 수 있을까?
더욱 어렵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포위망을 옮겨 버리는 것이다.
새로운 중심을 만든다. 그러면 그 중심에 따라 새로운 원이 형성될 것이다.
포위망을 형성하는 것도, 뚫어 버리는 것도 지금 안 상사에게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새로운 중심을 만드는 것은 가능했다.
오직 진도5만이 가진 권한으로.
안 상사는 결정을 내렸다.
그게 가장 좋겠군.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 계곡을 타고 내려오던 북한군은 안 상사가 그어 놓은 최후 접근선을 넘었다.
“발사.”
안 상사는 발사 명령을 내렸다.
어쩐지 후련한 기분이었다.
***
2006년 11월 24일.
국군 정보사령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제안한 것이 확실합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엄주현에게 재차 물었다.
시노페트로의 북한 진출을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라고?
언젠가 우리의 것이 될 한반도의 지하자원을 중국 놈들에게 넘겨준다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한반도 내에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고착화될 수 있는 기반을 한국이 인정한다는 이야기다. 구한말, 자원 개발이라는 이름의 경제적 침탈이 다시 재현된다는 이야기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이 지하자원을 무기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면 할수록, 미국과의 대립이 격화되면 될수록, 그 기반 구축을 동의한 한국을 미국은 더욱 강하게 압박할 것이다.
한국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나도 컸다. 여섯 명의 목숨값으로 지불하기에 너무나도 큰 대가였다.
외교안보수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엄주현을 바라보았다.
“진정하시죠.”
회의실에 있던 준장 하나가 외교안보수석에게 말했다.
“북한에 고립되어 있는 진도 팀 구출을 위한 회의입니다. 감안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엄주현을 바라보던 외교안보수석은 그 말에 준장을 돌아보았다. 정보사 참모부에서 나온 준장이었다.
엄주현은 준장에게 중국이 요구한 그 조건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조건인지 설명하기 위해 그를 바라보았다.
준장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그 눈에서 초조함이라는 감정을 보았다.
초조함? 준장이? 고작 여섯 명의 부대원들을 구출하는 사안에서 초조함을 느낀다고?
외교안보수석은 엄주현을 다시 바라보았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그의 눈에도 초조함이 보였다. 그 옆의 사람도, 그 옆의 사람도 모두 같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외교안보수석은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잘못 생각했는지 알아차렸다.
이 자리는 국가의 명령에 따라 목숨을 걸고 적지 한가운데 침투했다 고립된 진도 팀을 어떻게 구출해 낼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나만 정치를 하려고 했구나.
“사과드립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외교안보수석은 바로 고개 숙여 사과했다.
천천히 자리에 앉은 그는 엄주현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다른 제안은 없었습니까?”
엄주현은 솔직하게 사과하는 외교안보수석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일반적인 정치인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없었습니다. 오직 그 제안뿐이었습니다.”
엄주현의 대답에 수석은 잠시 생각하는 듯 책상을 바라보다 다시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그 제안을 거절한다고 했을 때,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최소한 중국의 묵인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진도 팀을 구하려면 중국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고 있고, 그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들을 구할 수 없다.
조건을 바꾸기 위해 협상을 해야 한다면?
“다른 분들은 의견이 없으십니까?”
외교안보수석이 회의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다들 말이 없었다. 의견도, 뾰족한 수도, 그리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할 시간도 없었다.
“중령, 추가적으로 보고할 사항이 있나?”
정보사 참모부의 준장이 엄주현에게 물었다. 이만 브리핑을 마무리하라는 신호였다.
엄주현은 고민했다.
높은 분들 앞에서 혀를 함부로 놀리면 목이 달아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는 높은 분들이 많았다.
지금 그에게 가장 좋은 처신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여섯 명의 목숨에 대한 결정과 책임을 그들에게 미루는 것이었다. 죄책감까지도.
고민은 높은 분들에게 미루고, 우선 잠부터 자러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이라고 엄주현의 이성이 그렇게 말했다.
“한 말씀 덧붙이자면…….”
하지만 엄주현은 입을 열었다.
“그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탈출하려고 할 것입니다. 어쩌면 11챠리를 발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11챠리가 뭡니까?”
처음 들어 보는 단어에 외교안보수석이 질문을 던졌다.
“11챠리는 팀을 나누는 작전명령입니다. 한국전쟁 초기 3사단 철수 작전 당시 마지막까지 화력을 지원했던 11포병연대 챠리(C)포대의 이름을 땄습니다.”
“팀을 나눈다? 그 말은…….”
“한 팀이 미끼가 되는 동안 다른 한 팀이 탈출한다는 의미입니다.”
11챠리의 실체를 안 외교안보수석은 충격을 받은 시선으로 엄주현을 바라보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임무를 성공시키려 할 것입니다. 군인이 된 이상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하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그들을 데려오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그들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면 그들이 수용할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엄주현의 말이 끝나자 짧은 침묵이 흘렀다.
엄주현은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러면서도 다시 선택을 해야 한다면 또 입을 놀렸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알겠습니다.”
외교안보수석이 서류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바로 위에 보고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례를 범했다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고 엄주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
2006년 11월 26일.
함경북도 연사군.
백금산역 기점 북북동 121km 지점.
“발사.”
안 상사의 지시에 팀원들은 각자가 조준하고 있던 표적들을 향해 각각 각자의 소총을 발사했다.
계곡 밑에서 고지대를 향해 발사하는 고난이도의 사격이었지만, 적들은 진도 팀의 동시 사격에 그 자리에서 다들 쓰러져 버렸다.
적들이 쓰러진 것을 본 한규호는 진도4 정의성 상사와 같이 빠르게 적들이 있던 위치로 몸을 움직였다.
적이 완전히 제압되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수행하기 위해 한규호는 전력을 다해 산을 올랐다. 두 팔로는 지향 사격 자세를 취하고, 허리를 굽혀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200m 가량을 빠르게 뛰어 올라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최대한 참아 내며 200m를 단숨에 올라간 두 사람은 쓰러져 있는 북한군 병력들을 향해 두세 발씩 확인 사살을 진행했다.
확인 사살을 마치고 나서야 한규호는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리 죽기 직전까지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원이라고 해도 그동안 누적된 피로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상황에서 경사도고 높은 계곡을 전력 질주로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규호는 산소 부족으로 흩어지려는 집중력을 다시 다잡으며, 아래에 있던 팀원들에게 완료 신호를 보내고는 진도4 정의성 상사를 바라보았다.
정의성 상사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한규호는 정 상사가 숨을 몰아쉬는 것을 처음 보았다.
좋지 않다. 정말로 좋지 않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적을 처리함으로써 또다시 위치가 노출되었다. 이 상황이 반복된다면 결국 진도 팀은 국경을 넘기 전 적들의 포위망에 갇혀 버릴 것이다.
적들은 진도 팀의 방향을 알고 있는 것일까? 추적을 피하기 위해 우회해야 하는 것일까?
우회해서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거리가 멀어지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문제가 되는 것은 보급이다.
이미 예상보다 작전이 길어지면서 맛없다고 불평하던 칼로리바는 거의 남지 않았다.
먹는 것도 그렇지만 탄약 부족도 문제가 된다.
아직 여유분이 남아 있지만, 계속 접촉이 발생한다면? 접촉이 교전으로 확대된다면?
방법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한규호는 생각하고 결정할 위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들을 멈출 수 없었다.
팀원들이 다가왔다. 한규호는 팀원들의 거친 숨소리를 들었다.
그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전부 처리했습니…….”
정의성 상사가 거친 숨을 참아 가며 이규철 대위에게 보고했다.
“바로 이동한다.”
진도 팀에서 생각하고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이규철 대위는 정의성 상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이어 말했다.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리는 이규철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으려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
이규철의 움직임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그대로 이동합니다.”
이규철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다시 말했다.
“팀장님.”
진도5 안성종 상사의 말이 그를 불렀다.
“이동합니다!”
이규철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팀장님, 11챠리를 발동합니다.”
안 상사가 뒤돌아보지 않는 이규철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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