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50화 (151/386)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23) >

2006년 11월 24일.

국군 정보사령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북쪽으로 향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엄주현은 그렇게 말하고 화면을 넘겼다.

북한 함경북도와 중국 국경 지역에 대한 지도가 화면에 떴다.

“여기가 백금산역입니다.”

엄주현이 레이저 포인터로 지도 가운데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리고 여기가 원래 계획상 탈출 루트입니다.”

레이저포인터의 빨간 점이 오른쪽으로 이동해 동해안 한 해변가를 가리켰다. 그곳은 진도 팀이 상륙한 지점이기도 했다.

“보시다시피, 동해안을 통해 탈출하는 루트가 거리와 시간 모든 부분에서 가장 효율적입니다.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북쪽 친구들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경로를 차단한다면 제일 먼저 동해안 루트를 차단할 것이 분명합니다.”

외교안보수석은 엄주현이 사용한 ‘북쪽 친구’라는 표현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는 그 부분은 넘어가기로 했다.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진도 팀이 잠수함이 철수한 것을 모르고 계속 동쪽으로 갔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없습니다.”

엄주현의 짧은 대답에 외교안보수석의 불쾌감이 더욱 짙어졌다.

그는 불쾌감이 잔뜩 담긴 눈으로 엄주현에게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물론 엄주현은 단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었다.

진도 팀은 당신처럼 멍청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개 중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젠장, 개도 주인을 보고 짖는다고 했단 말이지.

“최근 원유 및 정제유 수입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이 동해안에 상어급 잠수함을 잔뜩 풀었다는 이야기는 둘 중의 하나를 의미합니다. 해역을 확보할 급박한 이유가 있든가, 아니면 전쟁을 시작하든가.”

설명하고 있는 엄주현을 국정원 김훈 1차장은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엄주현 중령이 브리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두 번째였다.

엄주현의 브리핑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었다.

“물론 전쟁은 아닙니다. 그러니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 쪽 잠수함을 몰아내기 위한 기동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거기에 육상에는 기름을 넣을 필요가 없는 병력이 가득합니다. 그들이 육상에서 경계를 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바로 저런 특징이다. 사람을 은근히 기분 나쁘게 하는 그런 특징 말이다.

“진도 팀은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북한 놈들이 수색 정찰을 시작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진도 팀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동해 루트를 포기할 것입니다. 그들은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도박?”

엄주현은 순간적으로 짜증이 났다. 이 멍청이에게 어디까지 설명해 줘야 하지?

“괜찮은 패가 들어올지도 몰라. 다음에 뒷장이 붙을지도 몰라. 블러핑에 상대방이 쫄지도 몰라. 동해안 루트가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몰라 하는 그런 도박 말입니다.”

엄주현의 대답에 외교안보수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좀 닥쳐 줘. 어서 빨리 이 브리핑을 끝내고, 담배를 피운 다음 애들을 구하러 가야 하니까.

엄주현은 대통령의 아바타에게 한 방 먹였다는 흡족함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어서 설명을 계속하겠습니다. 진도 팀이 북쪽으로 탈출 루트를 잡았다면 국경에 도착하기까지 최소 3일, 최대 5일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22일 출발했다고 가정하면 빠르면 내일입니다.”

다시 스크린에 투영된 화면이 바뀌었다. 길림성 허룽시 인근 지도가 모습을 보였다.

“허룽시에서 북-중 국경까지의 최단 거리는 50km 정도입니다. 허룽 포스트에는 정보사와 국정원이 회수를 위한 팀을 구성해 대기하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회수에 중국 측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다면 헬기를 운용할 수도 있습니다만, 헬기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는 필수적입니다.”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헬리콥터는 관제를 받아야 한다. 묵인 가지고는 부족하다. 능동적인 협조가 있어야 한다.

“뭐라고 하던가?”

정보사 참모부의 준장이 물었다.

“자국 영토 내에서 우리 장비의 운용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육상 탈출로는 열어 주겠다는 이야기인가?”

헬기 운용이 안 된다면 육상운송은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조건이 붙습니다.”

엄주현이 그렇게 급하게 중국에 간 이유가 이것이었다. 침투 팀을 구출해 오기 위한 발판을 구축함과 동시에, 중국에서 요구하는 것이 무언지를 알아오기 위한 전령의 역할을 한 것이다.

“6자회담을 베이징에서 개최하고, 북핵 차단을 위한 에너지 지원 사업에 시노페트로(국영 석유 기업)가 주도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동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미친 소리!”

엄주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외교안보수석이 책상을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자원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엘도라도(El Dorado)였다.

철광석, 석탄, 구리 등 전통적인 지하자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북한이라는 엘도라도의 황금은 희토류라는 이름의 자원이었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석유, 천연가스와 더불어 21세기의 자원 무기라고 불리는 희토류의 최대 수출국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조절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계속 확대시켜 오고 있었다. 중국이 희토류의 수출을 제한하면 가격은 폭등했고, 국제사회는 중국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에서 발견된 희토류의 존재는 자신들의 패권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눈을 피해 북한 정부와 비밀 협상을 벌였고, 희토류 개발 및 가공을 위한 합작회사를 설립한다. 그 합작회사의 중국 측 파트너가 시노페트로였다. 석유 지원 및 화력발전용 연료유 판매로 위장한 것이다.

당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한국은 중국에 강하게 항의했다. 중국의 성장을 탐탁지 않아 하는 미국과 함께 중국의 그런 움직임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90년대 수교가 이루어진 이후 한국과 중국, 양국은 계속 거리를 좁혀 왔지만, 정치적으로 북-중, 한-미의 협력과 대립 구도는 계속되고 있었다.

북한에 대한 금수조치가 강화되면서 시노페트로의 진출이 좌절되는가 싶었는데, 이런 카드를 꺼낸 것이다.

첫 번째 실무진 만남에서 그놈들이 가진 강한 패를 꺼내 버린 것이었다.

고작 군인 여섯 명의 목숨값으로 지불하기에는 너무나도 비싼 대가였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외교안보수석은 자신을 바라보는 엄주현의 눈을 마주 보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2006년 11월 26일.

대련골산 북측 사면, 함경북도 연사군.

백금산역 기점 북북동 113km 지점.

-대기.

진도5 안성종 상사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준경을 바라보고 있는 진도 팀은 안 상사의 지시에 따라 각자에게 지정된 목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덟 명의 북한군 수색대원들아 진도 팀 전방 500여 m 앞에서 주변을 정찰하면서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을 발견한 것은 20분 전이었다. 20분 전, 그들이 진도 팀을 발견하기 전, 진도 팀이 먼저 그들을 발견하고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진도 팀은 여기까지 오면서 적 수색대와 네 번 접촉했고, 한 번 교전을 진행했다.

이번이 다섯 번째 적 수색 병력과의 접촉이었다고, 두 번째 교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규호는 감각을 두 개로 나누었다. 눈으로는 자신에게 지정된 적을 살피면서, 귀로는 안 상사의 교전 개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동과 정지의 판단은 이규철이, 교전 개시에 대한 결정은 안 상사가 내렸다. 합류 이후 이규철 대위는 진도 팀의 체계를 그렇게 변경했다.

한규호는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이규철 대위의 전투력은 적을 상대하기에 충분했지만, 경험에서는 안 상사가 압도적이었다.

무엇보다 교전 상황에 대한 판단을 안 상사가 함으로서 이규철 대위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효과도 있었다.

북한군 병력은 자신들에게 총구가 겨누어진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움직이고 있었지만 진도 팀은 잔뜩 긴장한, 기형적인 대치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대략 450m까지 접근했던 적 수색병력이 계속 동쪽으로 나아가며 조금씩 멀어져 가자, 안 상사는 총구를 거둘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바로 이규철 대위의 이동을 명령이 떨어졌다.

그들은 긴장을 풀 새도 없이 바로 몸을 움직였다.

다시 전술 대형으로 선 한규호는 숨을 크게 들이쉬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 하늘이 들어왔다.

11월의 우울한 하늘은 태양을 가리고 있었지만, 태양은 구름 너머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조만간 서쪽으로 자취를 감출 것이었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밤이 찾아오면 조금 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하고 기운을 내기로 했다.

백금산역으로 향할 때는 낮에 자고, 밤에 움직였다. 그러나 탈출하는 지금은 밤보다 해가 떠 있는 낮 시간에 더 많은 거리를 움직였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북한군은 낮에 수색을 하고 밤에 매복을 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규철은 수색 병력을 피해 가는 것이 매복을 피하는 것 보다 더 쉽다는 판단을 내렸다.

실제로도 그랬다. 주간이라고 해도 계곡을 타고 움직이는 진도 팀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으니까.

또 다른 이유는 보급의 문제였다. 야시경에 들어가는 연료전지를 아낄 필요가 있었다.

진도 팀이 사용하는 2안(眼) 야시경 AN/PVS-21 LPNVG는 AA건전지 하나를 사용하면 24시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온이 내려가면서 전력 소모율이 높아졌고, 최근에는 하루에 인원당 하나씩 다섯 개가 소모되고 있었다.

전자 장비를 관리하는 진도1 윤재운 중사가 가지고 있는 건전지의 양은 한정되어 있었고, 탈출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야 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안성종 상사가 착용하는 4안(眼) 야시경 GPNVG-18이었다. CR123A 배터리 네 개가 들어갔고, 배터리 여분은 단 하나뿐이었다. 시간으로 치면 대략 10시간 사용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을 소모해 가며 야간 행군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규철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한규호도 거기에 동의했다. 마음속으로.

***

다섯 번째 접촉을 무사히 피해 간 진도 팀은 그로부터 거의 2시간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한규호도 주변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부지런히 앞 사람을 따라갔다.

어느새 해는 서쪽 산으로 넘어져 어둠이 조금씩 세상을 잠식하고 있었다.

계곡을 타고 어느 이름 모를 야산을 올라가는 진도 팀에게는 그보다 더 진한 어둠이 감싸고 있었다.

한규호는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군 시간이 늘어나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신체는 계속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젖산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지만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곳은 뇌였다. 감각을 날카롭게 하고 시각과 청각에서 받아들이는 정보를 분석하느라, 그의 뇌는 끊임없는 연산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상황이 피로를 더욱 가중시켰다.

그럼에도 알고 있었다.

이 상황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안전지대에 도착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전지대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의 육체도, 정신도 휴식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을.

한규호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그치면서 계속 자신을 몰아가고 있었다.

그때 그의 앞에서 걷던 박종연 중사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온몸에 잔뜩 힘을 주고 있던 한규호도 그 자리에서 멈추면서 자세를 낮췄다.

끊임없는 반복 훈련 덕분에 무의식적으로 경계 모드로 들어갔다.

맨 선두에 서 있던 안성종 상사가 후미에 손짓을 보냈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한규호는 용케 그 손짓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적 발견. 다수. 전방. 접근 중.

한규호는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고개를 들어 전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산 정상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오고 있는 다수의 북한군 병사들의 모습을 포착했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은 진도 팀이 숨어 있는 장소를 향해 있었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2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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