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22) >
2006년 11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인민위원회.
모남도는 눈앞에 있는 서용석이 육식동물이라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물론 모남도도 육식동물이었다. 그가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좋은 핏줄을 타고난 덕분만은 아니었다.
그 또한 수많은 경쟁자와 싸우고 잡아먹으며 이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그래도 모남도는 스캐빈저(Scavenger)였다. 하이에나처럼 직접 사냥하는 대신 다른 동물의 사체를 주워 먹는 청소부였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있는, 감정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육식동물은 프레데터(Predator)였다.
프레데터는 오직 사냥을 통해서만 먹이를 확보한다.
야생에서 먹이를 가장 쉽게 얻는 방법은 이미 죽어 있는 사체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레데터는 누군가 사냥한 먹이를 빼앗는 대신 자신의 힘으로 직접 초원을 달려 사냥감을 잡았다.
그 누구에게도 정복당하지 않은 먹이에 첫 번째 이빨을 박아 넣는 프레데터가 서용석이었다.
스캐빈저인 모남도가 프레데터인 서용석 앞에서 움츠러드는 것은 본능이었다.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본능이었다.
그러나 모남도는 아직 본능에 완전히 굴복하지는 않았다.
프레데터의 압도적인 기세 앞에서도 본능에 따라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무리를 짓고 있기 때문이었다. 호위사령부라는 하이에나 무리가 그의 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위사령부의 의지인가?”
“당의 명령이오!”
모남도가 소리쳤다.
“당의 명령이라.”
모남도는 그의 목소리에서 짐승의 으르렁거림을 느꼈다.
“지금! 당의 명령에…….”
“필요한 게 있다.”
서용석이 모남도의 말을 끊었다.
“필요한? 지금 당의 명령에 조건을 걸겠다는…….”
“실패하길 바라나?”
서용석이 다시 모남도의 말을 끊었다.
실패하길 바라냐고?
그랬다. 호위사령부는 서용석이, 535가, 정찰총국이, 인민무력부가 실패하길 바랐다.
실패해서 책임을 지고, 모든 권력이 호위사령부에 집중되기를 원했다.
“공화국의 비밀이 유출될 위기에 처했다. 실패하길 바라나?”
서용석이 다시 물었다.
모남도의 목젖이 위아래로 한번 움직였다.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위대한 당의 명령에 실패는 없소!”
모남도가 소리쳤다.
조금씩 구석에 몰릴수록 그의 목소리는 조금씩 더 커졌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준비를 해 주도록.”
“준비……라면?”
서용석이 자신에게 완전히 말을 놓고 있음을 모남도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그 기세에 고개를 숙이지 않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 자신을 지탱하고 있었다.
“수색은 호위사령부가 해 줘야 하겠어.”
“수색을?”
“그래. 그놈들을 ‘생포’하라면서, 수색까지 하라고 하는 건 무리가 있지. 또 우리는 ‘귀빈’을 지키고 있어야 하니까.”
“귀빈을 지키는 건 우리 4호위부가 할 일…….”
“팔아먹어야 하지 않나?”
모남도는 순간적으로 서용석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서용석은 모남도의 멍청함에 속으로 혀를 찼다.
실권을 두고 싸움을 벌이는 호위사령부의 다음 세대가 멍청하다는 것은 정찰총국이나 인민무력부에게는 호재일 수도 있겠지만 정치투쟁에 관심 없는 서용석에게는 딱히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저 멍청한 놈이 공화국의 미래를 짊어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를 팔아먹어야 하지 않겠나? 그 1호 귀빈이라는 양놈에게 말이지.”
“상사!”
“소리 지르지 마.”
서용석이 다시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모남도는 멈추지 않았다.
“상사! 지금 그 말은 절대 넘어가지 못하오! 해당 행위요!”
기세 싸움이다. 지금 밀리면 앞으로 영원히 기세를 찾아오지 못한다.
서용석은 모남도에게 시선을 맞춘 채로 자세를 낮췄다. 그 모습이 마치 사냥 직전 잔뜩 몸을 웅크린 야수 같은 모습이었다.
“조용히. 소리 지르지 말고.”
서용석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나는 어찌 되어도 관심 없어. 호위사령부가 군권을 전부 장악하거나, 네놈이 별을 달지 말지에 대해서 나는 전혀 관심이 없단 말이지.”
모남도는 서용석의 더 낮아진 목소리에서 더 강한 기운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을 ‘네놈’이라고 표현했음에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 공화국의 비밀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쥐새끼들을 잡아서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그 생각뿐이다. 평양에서, 호위사령부에서 정보들 틀어쥐고, 쓸데없이 시간만 허비하는 그런 병신 같은 짓만 하지 않았어도, 지금이면 그 쥐새끼들을 잡았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 별을 달고 싶어서 개지랄 발광을 하는 네놈의 헛소리를 들어 줄 시간에 움직였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좋았을 거란 말이다.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거기까지 말한 서용석은 몸을 뒤로 펴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상좌, 간단히 말하지.”
잔뜩 낮아졌던 서용석의 목소리가 평소의 감정 없는 목소리 톤으로 돌아왔다.
“호위사령부가 적을 수색하고 위치를 찾아낸다. 우리는 대기하고 있다가 호위사령부가 원하는 대로 쥐새끼들을 생포한다. 그래 뭐, 귀빈께서 그 모습을 보고 흡족해하시면 좋겠군. 그리고 이 모든 공적은 호위사령부가 가져간다. 그리고 현장에서 이 모든 작전을 지휘한 모남도 상좌께서는 대좌가 되신다. 이 정도면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 아니겠는가?”
모남도는 서용석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호위사령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모남도에게는 최고의 결과였다.
대좌, 소장, 나아가 권력 서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것. 그 원대한 꿈을 위한 또 다른 한 발자국이었다.
그래!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거야!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저열한 욕망을 차마 감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사, 상사, 나는 그, 그런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대좌를 달게 해 주지.”
서용석이 말을 끊었다.
“그러니 지금 당장 가용한 모든 병력을 투입해. 수색 방향은 북쪽, 대형은 방사형으로. 30분마다 위치 보고를 하고, 그 정보를 여기 있는 나에게 제일 먼저 가져와. 그러면 대좌를 달게 해 주지.”
서용석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남도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서용석을 보면서, 그와의 대화가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자는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프레데터가 잡아 올 사냥감을 얻어먹어야 하는 스캐빈저는 사냥을 떠나는 프레데터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2006년 11월 24일.
국군 정보사령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국광해운 엄주현 이사, 정확히는 국군 정보사령부 소속 엄주현 중령은 피곤이 잔뜩 묻어 있는 발걸음으로 정보사령부 본부의 한 회의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이 몇 시간이나 되었지?
22일 새벽 정보사가 운영하는 잠수함 SS-074 최준함과의 연락이 끊기면서 국광해운은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당초 부산에 가서 장관 간담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엄주현 이사는 급하게 일정을 조정해 국광해운 사무실로 가서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최준함과 연락이 다시 닿은 시간은 오전 11시가 넘어서였다.
심도 300에서 4노트의 속도로 몇 시간 동안 은밀하게 움직여 안전 해역으로 빠져나온 뒤에야 최준함은 통신을 열 수 있었다.
최준함에서 알려 온 상황은 좋지 않았다.
상어급 잠수함 최소 20척이 북한 해군 3, 4, 5전대 기지에서 출항했다는 것.
명백한 밀어내기였다. 북한 해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어선을 구축한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정보사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엄주현이 있었다.
엄주현이 김광용 사장의 지시를 받고 연길로 출발하는 중국남방항공 비행기를 탄 것이 22일 14시였고, 연길공항에 도착해서 정보사의 위장 포스트인 길림 연변 조선족 자치구 허룽(和龙) 광장대약방(廣場大藥房)에 도착한 시간이 17시 30분이었다.
그곳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중국 국가안전부(MSS) 관계자를 만나 협상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오늘 오전 09시 50분 에어차이나를 타고 인천에 내리자마자 바로 정보사령부로 달려온 것이다.
요 며칠 동안의 엄주현은 제대로 누워서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꾸벅꾸벅 졸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피로를 풀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회의실 문 앞에 도착한 엄주현은 문을 열기 전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엄가야, 정신 줄 바싹 잡아야 한다. 지금 비상 상황이다.
그렇게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그는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회의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엄주현에게 향했다.
그 눈빛에 불쾌감이 묻어 있었다.
가장 직급도, 권한도 낮은 엄주현이 가장 늦게 왔다는 사실이 그들을 불쾌하게 만든 것인지도 몰랐다.
인천공항에서 막 달려온 엄주현은 억울한 마음을 속으로 갈무리하면서 문을 닫고 자신에게 배정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앉으면서 재빠르게 배석한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정보사령부 위장기업 대표 김광용 대령을 비롯해 정보사 참모부 인원, 각종 신호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777사령부, 상급 부대인 국방정보본부의 실무자들이 전부 자리하고 있었다.
국방부 소속 이외에도 회의실 안에는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둘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은 며칠 전 당주동 국광해운 사무실에서 보았던 국가정보원 김훈 1차장이였다.
다른 양복쟁이도 엄주현이 아는 사람이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엄주현은 그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었으니까.
똥 밟았군.
엄주현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무진 회의인 줄 알았더니 각 단체의 최고 우두머리들의 아바타가 전부 다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아바타 중에서는 대통령의 아바타도 있었으니까.
“시작하겠습니다.”
엄주현이 자리에 앉자마자 김광용 대령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 말에 회의실에 불이 꺼지고, 전면 스크린에 화면이 떴다.
백금산역을 비추는 위성사진이었다.
***
김광용 대령이 작전의 대략적인 개요와 진행 상황, 그리고 최준함의 현재 상황을 브리핑했다. 이어서 국정원 김훈 차장이 CIA와의 정보 공조에 관해서 설명했다.
엄주현은 며칠 전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브리핑을 듣고 있던 김훈 차장이 브리핑하는 것을 불만스러운 얼굴로 보고 있었다.
청와대가 껴 있으니 국정원도 그냥 하청기업이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훈의 건방진 얼굴을 보고 있었다.
김훈에 이어 777사령부에서 며칠 동안 입수된 정보 동향에 대해서 보고를 진행하자 2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2시간이 넘는 동안 회의실에 있던 아바타들은 단 한순간도 쉬지 못한 채 계속 듣고 말하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지막 브리핑을 담당한 엄주현은 브리핑을 진행하기 전에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담배를 그리 즐기지 않는 그였지만, 담배라도 한 대 피우면 질식할 것 같은 이 공기를 조금은 버텨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잠시 쉬었다 하자고 말하기엔, 그의 계급이나 직급이 너무 보잘것없었다.
777사령부의 브리핑이 끝나고 이제 그가 브리핑할 차례였다.
엄주현이 일어나 회의실 전면으로 걸어갔다.
“2시간이 넘었군요. 잠시 쉬었다 하는 것은 어떠십니까?”
그런 그의 귀에 누군가의 제안이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제안한 국방정보본부 참모부 출신 준장은 자신에게 시선이 몰리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담배가 피우고 싶군.
엄주현은 그의 얼굴에서 그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었다.
“바로 하도록 하지요.”
청와대에서 나온 아바타가 그렇게 말하자 휴식 없이 계속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버렸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엄주현은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브리핑을 위해 스크린 옆에 섰다.
“우선 화면을 보시죠.”
전면 스크린에는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구 허룽(和龙)시의 위성사진이 떠 있었다.
“작전 계획상으로 동해 탈출 루트가 막히면 그다음 계획에 따른 여러 탈출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탈출 루트는 허룽에 있는 저희 측 사무소입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광장대약방(廣場大藥房)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의 모습이 들어왔다.
“국정원과 정보사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연변 사무실입니다. 이곳에 현장 지휘소를 구축하고 진도 팀 탈출에 관한 제반 사항을 준비할 계획입니다.”
“꼭 그쪽으로 간다는 보장이 있나요?”
외교안보수석이 물었다.
“지금으로서는 가장 가능성 있는 경로입니다.”
엄주현이 대통령 아바타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2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