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47화 (148/386)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20) >

2006년 11월 24일.

합류 포스트 북서쪽 15km.

“신호 들어옵니다.”

무전기를 잡고 있던 진도1 윤재운 중사가 말했다.

자정이 지나고 30분마다 통신 개시 신호를 보냈는데, 드디어 상대방에서 통신 가능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규철 대위는 윤재운에게 다가가 무전기를 건네받고 연결된 리시버를 귀에 꼈다.

“팀장이다. 통신 가능한가?”

이규철이 말했다.

그러나 답이 없었다.

“통신 가능한가?”

이규철이 다시 물었다.

-다섯.

응답이 들려왔다.

진도5 안성종 대위였다.

“위치 보고.”

이규철이 말했다.

-41.1371, 128.9798.

위치 좌표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이규철은 빠르게 자신의 위치 좌표와 비교했다.

지금 그들의 좌표는 41.0742, 129.0252.

안 상사의 팀은 북동쪽 근거리에 있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군.

이규철이 그렇게 생각하며 합류 좌표를 불러 주려는 순간,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색대로 보이는 목적 미상의 적과 2회 접촉. 2회에 걸쳐 열한 명 사살. 현재 북쪽으로 이동 중.

예상 밖의 보고였다.

두 번이나 접촉했다고?

“피해는?”

-전무.

이규철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적과 접촉했다? 수색대로 보이는?

안 상사 팀을 따라온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이 사살한 동초가 발단이었을까?

“좌표를 부르겠다. 바로 이동하도록.”

이규철은 지금 그들이 있는 위치의 좌표를 불렀다.

무전이 연결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5km 안쪽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다.

빠르게 움직이면 2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확인.

그 말을 끝으로 무전이 끊어졌다.

이규철은 귀에서 리시버를 빼면서 다른 팀원들에게 말했다.

“근거리에 있다. 북동에서 20분 안에 당도할 것으로 예상한다. 경계를 철저히 하되 오인 사격을 주의할 것.”

그렇게 말하고 그도 경계 자세를 취했다.

***

2006년 11월 24일.

합류 포스트 북서쪽 22km.

생각처럼 일이 안 풀리는군.

귀에서 리시버를 빼낸 안성종 상사는 방금 받은 좌표를 빠르게 손목 GPS에 입력하며 생각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15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처에 있다. 합류한다.”

한규호는 언제나처럼 감정 없이 말하고 앞장서 출발하는 안 상사의 뒷모습에 실망스러움이 배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느낌이었다. 근거 없이 그런 느낌이 들었다.

반면에 한규호는 통신이 연결되자 안도감을 느꼈다.

팀장, 전자 장비 및 통신 전문가, 저격수, 정찰병, 그리고 월등한 전투력을 가진 두 명의 베테랑으로 이루어진 여섯 명의 팀이 하나로 뭉쳐진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왜 안 상사는 실망스러움을 느꼈을까?

아니, 모른다. 실제로 안 상사가 실망스러움을 느꼈는지 아닌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저 한규호의 느낌일 뿐이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한규호는 그렇게 마음먹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번 작전이 끝나면 저 노인네를 꼭 은퇴시켜야 하겠다고 다시 마음먹었다.

***

2006년 11월 23일.

함경북도 단전군 백금산역.

임시 지휘소.

수색조 중 하나가 연락이 끊겼다는 정보를 받자마자, 헬리콥터를 타기 위해 이동하던 서용석의 발목을 잡은 것은 평양에서 내려온 전문 한 장이었다.

-따로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할 것.

헬리콥터를 타고 바로 보고가 끊긴 수색대가 있던 지점으로 출발하려고 했던 서용석은 그에게 내려온 전문 한 장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평양에 있는 쓰레기들은 지금 상황에서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문을 들고 있는 서용석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무표정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옆에서 지켜보는 박철 상사는 그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박철 상사 또한 분노를 느꼈다. 이게 다 그 망할 놈의 주도권 싸움 때문이었다.

최근 룡남산 줄기가 장악한 호위사령부의 입지가 커지면서, 조선인민군 최고 결정 기구인 총참모부와 주도권을 두고 알력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들에게 다 알려져 있었다.

북한군 최고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535가 총참모부 소속이라는 것이 호위사령부는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그들에게 535가 공적을 세우는 것 또한 원치 않는 결과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식으로 방해를 하는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들어갔다.

애초부터 총참모부의 권한으로 작전을 수행했으면 좋았으련만, 국빈의 경호 임무가 호위총국의 임무였고, 최고 존엄의 지시에 따라 서용석이 호위총국의 일을 도와주는 형식이 된 것이 잘못이었다.

이미 귀빈은 평양으로 떠나고 없음에도, 적을 찾아 섬멸하는 임무는 정찰총국의 영역임에도 호위총국 놈들이 손을 떼지 않고 있는 지금의 개 같은 상황이 다 첫 단추가 잘못 들어가서 그런 것이다.

서용석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전문을 박철에게 건넸다.

박철은 찢어 버리고 싶은 욕망을 참으면서 전문을 받았다.

“대기한다.”

서용석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임시 지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를 뒤따르던 박철 상사의 귀에, 헬기를 타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대원 중 하나가 나직이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박철 상사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욕설을 내뱉은 범인을 찾아낸 다음 그에게 걸어갔다.

그는 욕설을 내뱉은 대원의 마음을 전적으로 이해했다. 그도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용납할 수는 없었다.

서용석의 정찰대 팀장 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박철 상사가 방향을 바꿔 욕설을 내뱉은 대원에게 다가가자 당사자는 물론 도열해 있던 다른 대원들도 모두 몸에 힘을 주었다.

박철 상사는 그에게 다가가 아무런 말 없어 주먹으로 그의 왼쪽 가슴을 올려 쳤다.

갈비뼈가 흉강을 보호하는 부위에 박철 상사의 오른손 주먹이 강력하게 꽂혀 들어갔다.

주먹을 맞은 대원은 용케도 쓰러지지 않았다. 충격에 갈비뼈가 골절되었음에도 그는 버텨 냈다.

박철은 한 번의 주먹질에 쓰러트리지 못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주먹을 버텨 낸 대원에 대해 그 정도는 해 줘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복잡한 두 가지 마음을 모두 담아 박철은 대원의 턱을 후려쳤고, 턱을 맞은 대원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으며 허물어져 내렸다.

주먹 두 방으로 대원 하나를 쓰러트린 박철은 매서운 눈으로 도열해 있던 다른 정찰대원들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대기하고 있도록.”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상관을 따라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

임시 지휘소로 돌아온 서용석은 차분히 마음을 달래려 노력하고 있었다.

호위사령부의 명령이 부당하다고 해도, 호위사령부에 지휘권을 맡긴 결정은 당의 결정이었다.

당의 결정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당의 결정은 완전무결하다.

서용석은 속으로 그렇게 되뇌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럼에도 조바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각에도 쥐새끼들은 몸을 숨기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침착하자.

서용석은 마음을 다스렸다. 적당한 긴장은 필요했다. 그러나 조바심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잡을 수 있다. 퇴로는 이미 차단되었다.

쥐새끼들이 도주할 수 있는 방향은 한정적이었다.

북쪽. 그 방향이 유일했다.

***

문이 열리고 박철 상사가 들어왔다.

“대원들은?”

서용석이 물었다.

“대기 중입니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11월의 겨울밤, 부대원은 부동자세로 서서 그 추위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대기하고 있도록 했다는 내용을 담아 박철 상사가 말했다.

서용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오랜 시간은 안 되겠지만, 작전을 나가기 전 대원들의 예기를 조금 날카롭게 깎아 세워 놓을 필요는 있었다.

그는 대원들과 관련 추가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생각하나?”

서용석이 물었다.

박철은 질문의 생략된 목적어가, 이곳에 숨어든 쥐새끼들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상관은 윗선들의 정치 싸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조국과 조국의 적뿐이었다.

“교전을 치렀으니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할 것이고, 최대한 빠르게 움직일 것입니다.”

“어디로?”

“우선은 동쪽으로 갈 겁니다.”

“왜?”

“잠수함으로 탈출할 방법이 막혔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접촉은 이루어졌고, 흔적은 남겼지만, 그 방법이 남아 있다면 시도해 볼 것입니다.”

서용석은 말없이 박철을 보았다.

박철은 유능한 군인이었다.

나중에 서용석이 현역에서 물러난다면, 박철이 그의 뒤를 이어 535를 이끌 것이다.

“그렇게 할 텐가?”

서용석이 물었다.

박철은 서용석의 질문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알아챘다.

박철의 대답은 쥐새끼의 관점에서 설명된 것이다.

쥐새끼들은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반면에 서용석은 박철의 관점을 묻고 있다.

박철은 실력 있는 군인이었지만, 지휘관으로는 아직 머리가 딱딱한 부분이 있었다.

추격하는 자와 추격당하는 자 사이에는 절대로 매울 수 없는 생각의 차이가 있다.

그 생각의 차이가 추격과 도주 중 성공할 하나를 결정한다.

박철은 서용석의 의도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다시 생각했다.

추격할 때는 추격당하는 입장에서, 추격당할 때는 추격하는 입장에서 생각해야 했다.

박철은 스스로를 그 쥐새끼들에게 투영했다.

나라면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답을 찾아냈다.

“북으로 갈 겁니다.”

“왜?”

서용석이 물었다.

“접촉이 발생한 그 순간에 동쪽 잠수함 탈출 방법은 폐기할 것입니다. 남쪽으로 향해 휴전선을 돌파하는 것이 가장 짧은 방법이지만, 병력의 밀집도가 높습니다. 그렇기에 북으로, 압록강을 넘을 겁니다.”

“넘으면?”

“넘으면 추적이 끊깁니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합니다만….”

“국경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대한 노력을 다했다는 가정하에, 72시간 내로 가능합니다.”

서용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물론 변수는 많다.

인원이 몇 명인지, 보급 물품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부상은 없는지, 있다면 정도는 얼마나 되는지 등등 다양한 변수가 남아 있다.

그러나 서용석이 쥐새끼들의 관점에서 판단하면 자신도 그와 같은 방법을 쓸 것이라고 동의했다.

함경도의 11월은 가혹하다.

자연은 평등하게도 숨어든 쥐새끼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수색하는 공화국 병사들에게도 똑같이 가혹함을 안겨 줄 것이다.

동일하게 가혹한 상황에서 더 잘 버텨 낼 수 있는 이들이 누구일까?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서용석 휘하의 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전문 용지가 들려있었다.

용지를 받아든 서용석은 전문을 자세히 읽었다.

박철은 자신의 상관이 언제나처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전문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한번 전문을 읽는 모습을 보았다.

전문을 다 읽은 서용석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전문을 박철 상사에게 건넸다.

“읽어 봐.”

전문을 받아 든 박철은 명령에 따라 인쇄된 글자를 읽어 나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 나오려는 욕설을 힘주어 참아 냈다.

1. 24일 03시까지 길주군 인민위원회로 이동할 것.

2, 호위사령부 상좌 ***의 지시에 따라 추격 작전을 개시할 것.

3. 신원 미상의 적은 ‘생포’할 것.

4. 1호 귀빈에 대한 경호를 철저히 할 것.

5. 작전의 모든 사안은 호위사령부의 결정에 따를 것.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20)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