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46화 (147/386)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9) >

2006년 11월 23일.

함경북도 단전군 백금산역.

임시 지휘소.

서용석은 시계를 보았다. 18시 10분이 막 지나고 있었다.

현재 수색에 참여한 병력에는 매시 정각에 각자의 부대와 교신을 주고받도록 지시가 내려져 있었다.

매시 정각에 위치와 수색 결과에 대한 보고를 올리면, 보고를 받은 각 부대는 보고를 취합해 평양의 호위사령부로 전달했다.

백금산은 평양에서 검토 후에 내려보낸 정보를 받았다.

서용석은 지금 평양에서 내려올 정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분노하고 있었다.

직접 보고 대신 평양을 통해 돌아오는 이 멍청한 방식 때문에 쓸데없는 시간이 소모되었다.

긴급을 필요로 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런 바보 같은 절차라니.

그러나 서용석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평양에서 이 방식을 원하고 있었다. 호위사령부가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 했다.

호위사령부, 평양에서 좋은 출신 성분으로 태어나고,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나온 핵심 계층 중에서도 극소수만으로 이루어진 그들만의 철옹성.

현재 호위사령부의 핵심 요직은 전부 ‘룡남산 줄기(김정일의 대학 동문과 그들의 직계 가족)’가 차지하고 있었다.

‘백두산 줄기’(김일성 항일투쟁 동료 중 숙청되지 않은 인물 및 후손), ‘낙동강 줄기’(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 전사자 유가족과 후손)에 이어 공화국의 핵심 중 핵심 세력으로 성장한 룡남산 줄기가 장악하고 있는 호위사령부의 결정은 아무리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은 서용석이라 해도 넘어설 수 없는 철벽이었다.

공화국 영웅 서용석은 최고 존엄의 신뢰받는 도구였지만 룡남산 줄기는 최고 존엄의 동문이자 친구들이었다.

기본적으로 서용석은 군관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해방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인민군 군관들과 지금 군 수뇌부를 구성하는 군관들은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었다.

거기에 룡남산 줄기에 대한 마음은 증오에 가까웠다.

실제로 항일 투쟁을 한 백두산 줄기나 조국 해방전쟁에서 산화한 낙동강 줄기와 비교해 룡남산 줄기들은 조국에 공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좋은 출신 성분으로 운 좋게 최고 존엄과 같이 대학을 다녔다. 그뿐이었다.

호위사령부에는 아마 커다란 작전지도가 걸려 있을 것이다.

그 쓸모없는 지도에 보고된 수색대의 위치를 표시하고, 이동 경로를 그리고, 작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세부 사항들을 적어 놓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구의 아들이 지휘하는 부대라든가, 누구와 관계 있는 부대라든가.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라 정작 누구보다 빨리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서용석에게 정확한 정보의 전달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용석이 원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병력이 얼마나 넓은 지역을 얼마나 열심히 수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정보는 어디에서 보고가 끊겼느냐였다.

적을 발견했다거나, 교전을 진행 중이라거나, 적을 포획했다거나 사살했다는 보고 같은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호위사령부는 그런 정보들을 원할 것이다. 어디에서 발견했고, 몇 명이고, 어디로 도주했다는. 그런 정보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서용석이 원하는 것은 보고가 끊기는 지점이었다.

만약 도망가는 쥐새끼들이 정보사의 개들이라고 한다면 일반 병사들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보고가 끊기는 지점에 쥐새끼들이 있을 것이니까.

서용석은 다시 시계를 바라보았다.

분침이 ‘4’를 지나가고 있었다.

20분.

보고가 올라가고 20분이 지났는데, 정작 정보가 필요한 백금산에는 어떠한 정보도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개새끼들.

서용석은 이를 갈았다.

서용석이 핵심 계층을 미워하는 것은 그가 적대 계층 출신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핵심 계층이, 정확히 말하면 조국을 건설한 핵심 계층의 무능한 후손들이 조국을 좀먹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용석은 자신이 적대 계층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한 번도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대 계층인 그에게 조국이 베풀어 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적대 계층임에도 군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535에서 복무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공화국 영웅이라는 칭호와 평양 거주 자격을 얻었던 것도 전부 다 조국에 헌신하려는 그의 노력을 당과 조국이 인정해 준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노력 없이, 좋은 출신 성분이라는 이유만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핵심 계층이라는 벌레들이 공화국을 좀먹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그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팀장 중 하나가 들어오며 말했다.

“들어왔습니다. 나왔습니다. 소식이 끊긴 지점이.”

그 말에 서용석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

2006년 11월 24일.

합류 포스트 북서쪽 22km.

한규호는 조금씩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최대한 누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더 많은 산소를 요구하는 신체는 의지와는 반대로 계속 소리를 높여 가고 있었다.

몇 시간 전,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 한규호는 안성종 상사의 지시에 따라 북한군 수색조를 처리했다.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다섯 명의 북한군을 처리하고 바로 이동을 시작했다.

합류 포스트가 있는 동쪽이 아닌, 북쪽으로,

안 상사가 북쪽으로 이동을 지시하자 한규호는 단박에 그 의도를 알아차렸다.

미끼.

안 상사는 그가 말했던 것처럼 미끼가 될 생각이었다.

한규호는 당연한 결정이라고 수긍했다. 자신이 진도5의 자리에 있었다 하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은밀함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빠르게 북으로 이동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수색조를 만났다.

그리고 빠르게 처리했다.

두 번째 수색조를 처리하자 안 상사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점과 점.

두 개의 점을 이으면 하나의 선이 생긴다.

두 번의 교전 지점을 연결하는 선이 그어짐으로써 안 상사팀의 이동 방향이 노출된 것이다.

그럼에도 안 상사는 진행 방향을 변경하지 않고 계속 북쪽으로 나아갔다.

미끼. 적의 이목을 끌기 위해 그들은 방향을 유지한 채로 계속 나아갔다.

그렇게 몇 시간을 휴식도 없이 계속 산을 타고, 계곡을 넘어 움직이고 또 움직인 한규호는 조금씩 거칠어지는 호흡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아무리 일반인들보다 체력적으로 뛰어나다고 해도 그는 사람이었고, 그동안 누적된 피로가 몇 시간 동안의 급속 행군과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발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앞으로, 계속 앞으로.

그들을 따라오는 추격조에게 흔적을 남기면서 앞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

선두에서 팀을 선도하던 안성종 상사는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를 느꼈다.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이 들었고, 그는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적과 조우한 진도 팀은 정신적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회수 팀을 만나 안전하게 탈출한다는 확신이 있기 전까지, 그들은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정신적 휴식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육체적 휴식은 필요했다.

정신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육체에 휴식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북한군과의 첫 번째 접촉 이후 약 5km를 이동했고, 두 번째 접촉에서도 여섯 명을 처리했다.

짧은 시간 동안 십여 명의 북한군을 처리하고, 더 속도를 높여 가며 쉬지 않고 16km를 이동했다.

교전과 이동, 그리고 재교전과 이동을 반복하면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긴장 상태를 몇 시간 동안 유지하면서 산을 거의 뛰다시피 움직이고 있었다.

휴식은 필요했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휴식은 필요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판단이었다.

평소보다 속도를 아주 조금 더 늦추는 것만으로도 신체는 쉰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울러 정신적으로도 피로감이 줄어든다는 것을 안 상사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속도를 늦춘 안 상사는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러나 주변을 경계하는 감각은 여전히 날카롭게 유지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이규철 대위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이규철 대위가 안 상사 팀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동해안 탈출 지점으로 이동한 경우이다.

작전 계획에 따르면 두 개로 나누어진 각각의 팀은 20일에 정찰을 개시한다.

이규철 대위가 백금산의 현황을 파악하고 바로 몸을 뺐다면, 그래서 어떠한 방해도 없이 그대로 동해안 탈출 지점까지 빠르게 이동했다면 22일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탈출 코드를 보내고 회수용 잠수함을 만났다면, 어쩌면 그들은 지금 복귀를 완료했을 수도 있다.

그들이 탈출을 완료했고, 안 상사 팀은 그 상황을 모른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적들을 유인하고 있다면? 그런 시나리오라면?

안 상사에게 있어서는 가장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안 상사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상황을 낙관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 외에도 마음에 걸리는 이유도 두 개 있었다.

마음에 걸리는 첫 번째 이유는 북한군과의 접촉이었다.

북한군이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들이 무언가 흔적을 발견했다는 의미였다.

그 흔적을 이규철 대위가 남긴 흔적인지, 팀이 나뉘기 전에 남긴 흔적인지, 팀을 나눈 후 안 상사가 남긴 흔적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과 위치, 적들이 수색해 오는 방향 등 여러 가지 정보를 분석하면 어디에서 흔적이 남았는지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런 분석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지금은 그저 상황에 맞춰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두 번째로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진도0 이규철 대위라는 것이었다.

대위 이규철,

일반 보병 부대 출신이면서도 진도 팀을 이끄는 흔치 않은 이력의 그가 과연 작전 완수를 최우선으로 생각했을까?

진도0은 그래야 하는 자리다. 팀원보다 작전을 더 중요시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이규철 대위는, 그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팀장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규철 대위는 작전 중 자신이 내린 결정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가 팀원들을 뒤로 한 채 빠르게 복귀를 선택하든, 아니면 팀원들과 합류하기 위해 보고를 늦추든 그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런 이규철 대위가 임무 보고를 위해서 빠른 복귀를 선택했을까?

그 부분에서 확신이 들지 않았다.

특이한 친구였다.

개인적인 대화를 많이 나눠본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승진에 목매는 일반적인 장교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장교들보다 어쩌면 부사관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안 상사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확인된 사항만 생각하자.

쓸데없는 가정은 지금 의미가 없다.

그는 다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지금 상황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무엇일까?

태양호에는 김정일이 타고 있다. 1호 열차가 맞다고 가정해보자.

김정일을 호위하기 위해 호위사령부의 특수부대 놈들이 같이 타고 있을 것이다.

어떠한 방식으로 흔적이 발견되었고, 김정일이 직접 명령을 내린다.

찾아내라. 1호 명령이다.

함경남북도 인근에서 가용한 인력과 장비가 전부 동원될 것이다.

평양에서도 움직일 것이다.

535 같은, 아니 535가 움직일 것이다.

분명히 서용석 그자가 움직인다.

일반 병사들을 동원해 수색을 진행하겠지.

발각되거나 또는 교전이 발생하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위치가 노출된다.

위치가 노출되면 535 같은 놈들이 헬기를 타고 찾아올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안성종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호흡도 가빠지고 있었다.

이 시나리오가 가장 최악일까?

아니. 아직 최악이 아니다.

그러면?

이보다 더 최악의 시나리오는?

그 상황에서 이규철 대위가 이끄는 팀과 합류하는 것.

그것이 가장 최악이었다.

안 상사는 맨 후미에 붙어 있는 한규호를 떠올렸다.

그 녀석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위험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더 움직여야 했다. 미끼가 되어야 했으니까.

미끼가 된 그들의 주위에 이규철 대위의 팀이 있다는 것이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잠시 쉬었다 가자.”

안 상사는 발걸음을 늦추면서 조용히 말했다.

뒤따르던 두 개의 발소리 템포가 천천히 느려졌다.

그렇게 몇 발을 더 걸어가 안 상사는 완전히 멈추었다.

기껏해야 10분 정도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잠깐이라도 숨을 고르면 컨디션은 많이 좋아진다는 것을 그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 숨을 고르는 안 상사의 눈에, 가슴팍에 달린 군장으로 손을 가져가는 박종연 중사의 모습이 보였다.

뭐 하려는 거지?

안 상사가 그렇게 묻기 전에 박종연 중사의 손이 그의 가슴팍에 결속된 무전기에 닿았다.

열여섯 개의 코드를 입력하면 보안이 강화된 디지털 신호로 짧은 거리 안에서만 통신이 가능한 모토로라의 무전기에 박종연 중사의 손이 닿았다.

“신호가 들어옵니다.”

박종연이 말했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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