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45화 (146/386)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8) >

2006년 11월 23일.

합류 포스트 서쪽 15km.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산맥이 굽이굽이 병풍을 이루고 있는 함경북도의 한 계곡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지만, 서쪽 하늘에는 아직 빛이 남아 있었다.

한규호는 서쪽 하늘에 잔상처럼 남아 있는 그 붉은 빛이 거슬렸다.

그의 눈이 늦은 오후 먼지에 난반사되면서 붉게 물든 빛을 받아들이느라, 어둠이 짙게 깔린 지표면의 모습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규호는 어둠이 깔린 지표 위, 서쪽 구릉지에서 엄폐해 있는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이 이규철 대위가 이끄는 진도 팀이 아닐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22일 합류 포스트를 거쳐 이규철 대위 팀을 ‘마중’하기 위해 8시간을 서쪽으로 이동한 안 상사 팀은 백금산에서 합류 포스트를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최단 거리상의 한 점에서 엄폐하고 있었다.

계획은 모두 어그러졌다.

마중을 나간다.

이규철 대위 팀과 만나 합류한다.

만약 합류하지 못하면 22시에 다시 합류 포스트로 이동, 원래 계획대로 24일 일출시에 합류 포스트에서 합류한다는 당초 계획이 모두 어그러져 버렸다.

늦은 오후, 해가 지기 직전, 서쪽에서 나타난 북한군들의 모습에.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30분 전이였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계곡을 잠식하지 못한 시간에, 그들이 나타났다.

북한군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박종연 중사였다. 그가 경계하고 있는 저격용 스코프에 움직임이 잡혔다.

곧이어 안성종 상사에게, 그리고 한규호에게도 그들이 포착되었다.

한규호는 그들이 이규철 대위 팀이었으면 하고 잠시 바랐었다.

물론 이규철 대위의 진도 팀이었다면 1km 밖에서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무방비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런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규철 대위의 팀이었다면, 합류하고 이동하면 끝날 일이었으니까.

그들이 1km 안쪽으로 들어오고, 최소 다섯 명이 넘는 인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둠이 짙어지면서 그들이 손에 손전등이 들려 있다는 것도 확인되면서 안 상사 팀이 기다리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히 결정된 것이다.

한규호는 슬쩍 진도5 안성종 상사를 돌아보았다. 그들과의 거리는 대략 700~800m.

안 상사는 결정을 해야 했다.

교전할 것인지, 아니면 피해 갈 것인지.

한규호는 자신이 진도5였다면, 팀의 행동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지를 빠르게 생각해 보았다.

분석과 판단은 그의 임무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까지 막고 싶지는 않았다.

크게 세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우선 그들이 피해 갈 때까지 기다린다면?

악수(惡手)였다. 최악의 방법이었다.

저들이 수색조라고 한다면 그 뒤에 추격조가 따라올 것이다.

숨죽인 상태로 자신들을 피해 가기만을 바라는 것은 너무 수동적이었다.

상황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수색조와 추격조 앞뒤로 포위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저들을 처리하거나, 아니면 빠르게 몸을 빼는 두 개의 방법이 남는다.

재빠르게 처리?

최소 다섯 명. 움직이는 모습으로 봐서 특수 훈련을 받은 병력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단순 수색이라고 해도, 저런 식으로 소리를 내면 마치 우리가 수색하고 있으니 알아서 피해라 하며 소리치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특수 병력이 아니라면 처리하기는 훨씬 쉬워진다.

지금 여기에 인원은 셋. 저쪽은 다섯? 여섯? 많아 봤자 일곱?

어둠이 짙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진도 팀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설사 어둠이 없다고 해도, 태양이 작열하는 대낮에 평야 지대에서 만났다고 해도 문제없다.

특수 병종과 일반병의 차이는 그 정도로 크다.

처리하는 건 문제가 없다.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 문제다.

적을 처리한다. 뒤따르는 추적조가 그 시신을 발견한다.

여기에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방향성이 생긴다. 수색하고 추적할 범위가 좁아진다.

마지막, 먼저 몸을 빼내는 방법은?

한규호가 생각하기에 이대로 몰래 몸을 빼내는 것이 가장 상책이었다. 최선이었다.

진도 팀은 지금 다가오는 저들보다 더 은밀하게, 그리고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지금 뒤로 몸을 빼내면, 저들은 절대로 진도 팀을 찾아내지도, 따라잡지도 못한다.

이대로 합류 포스트로 가서 이규철 대위 팀을 만나고, 약속된 경로로 탈출하면 끝.

잠수함 타고, 복귀하고, 술 마시고 오랜만에 이불 덮고 잘 수 있다.

만약 한규호가 판단할 수 있었다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면, 그는 바로 몸을 빼냈을 것이다.

그러나 안 상사는 그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 없이 다가오는 적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한규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적들은 50여 미터를 더 다가왔다.

결정 안 하십니까?

한규호가 속으로 말했다.

그때 안 상사가 손으로 지시를 내렸다.

야시경 착용. 교전 준비.

안 상사는 그들을 처리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

2006년 11월 23일.

함경북도 단전군 백금산역.

임시 지휘소.

서용석은 작전지도를 보고 있었다.

동초의 이동 경로에서 혈흔을 발견하고 535정찰대를 보내 수색을 진행했다.

숨어 있는 사람을 가장 잘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숨어 본 사람이다. 특수부대원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특수부대원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의 자랑스러운 535정찰대원들은 얼마 걸리지 않아 실종된 동초 두 명의 시체를 찾아냈다.

그들이 시체를 숨겼을 만한 곳에, 동초의 시체가 있었다.

백금산역 동쪽의 한 계곡, 거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만한 깊은 계곡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은 두 구의 시체를 찾아낸 것이다.

시체를 찾음으로써 방향성이 생겼다. 서용석이 예상했던 것처럼 그들은 동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흔적을 찾았다면 이제 그놈들을 추격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평양에서는 요청 사항을 아주 잘 처리해 주었다.

동해에는 잠수함과 정찰함이 잔뜩 깔렸다.

남측 정보사의 쥐새끼들이 어떻게 해변에 접근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구출하러 올 잠수함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직승기도 빠르게 배치되었다. 최근 공화국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당에서 빠른 결단을 내려 준 덕분이다.

백금산역에 도착한 직승기 중 한 대에는 김영남 최고인민의회 상임위원장이 타고 있었다.

백두 혈통을 제외하면 공화국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직접 백금산역으로 온 것이다. 귀빈을 모시라는 최고 존엄의 지시를 받들어서.

귀빈, 크레디트 에우로파(Credit Europa)의 얀 베르그만(Jan Bergmann) 회장은 최고 존엄께서 보내 주신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평양으로 떠났다.

서용석이 평양에 요청한 모든 사항이 승인된 것이다. 쥐새끼들을 사냥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제 서용석의 차례였다.

당과 최고 존엄은 그에게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적들을, 백금산에 침투한 쥐새끼들을 찾아내라고 지시했다.

동초의 시체를 발견한 서용석은 535 부대원을 전부 백금산으로 집결시켰다. 그리고 주위에 동원 가용한 모든 부대에 명령을 내려 수색을 시작했다.

시체 발견 지점에서 동쪽으로 방사형으로 수색구역을 충분히 넓게, 그리고 조밀하게 잡는다.

시간 단위로 위치 보고를 진행하고, 미보고가 발생하면, 그곳에 쥐새끼의 꼬리가 있는 것이다.

일반병들이 남쪽 정보사 쥐새끼들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찾아낼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미끼다. 미끼가 죽으면 보고가 끊기고, 보고가 끊겨야 적의 모습이 드러난다.

쥐새끼들의 꼬리가 드러날 것이다.

꼬리만 드러나면 서용석이 직접 부하들과 함께 쥐새끼들을 사냥하러 갈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

2006년 11월 23일.

합류 포스트 북서쪽 13km.

“신호를 보내 보도록.”

이규철은 진도1 윤재운 상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북쪽으로 우회한 이규철 팀은 합류 포스트에서 약 13km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안 상사가 40시간의 정찰을 마치고, 합류 포스트로 이동하는 경로의 한 지점이었다.

작전 계획대로 안 상사 팀이 40시간을 대기했다면, 그래서 지금 합류 포스트로 이동 중이었다면, 두 팀 간 거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을 것이었다.

만약 통신 가능 거리인 5km 안에 그들이 들어온다면 합류 포스트로 갈 필요도 없었다. 미리 합류하고, 바로 이동하면 된다.

만약 만나지 못한다면?

그래도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 이규철의 판단이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지금 위치에서 합류 포스트까지 거리는 고작 13km에 불과했고, 빠르게 움직이면 몇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규철은 안도감을 몰아내기 위해 일부러 근육에 힘을 불어 넣었다.

지휘관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흔적을 남겼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사라진 동초들을 단순한 탈영으로 생각할 수도 있어. 시체를 찾기도 쉽지 않을 거야. 시체를 찾았다고 해도 그리 빠른 시간은 아닐 것이고, 설사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고 해도, 추격해 오기는 쉽지 않을 거야.

이 같은 낙관은 너무 위험한 도박이었다. 얻는 것은 적고, 잃는 것은 자신과 팀원들의 목숨이었다.

그는 온몸에, 근육에 힘을 불어 넣음으로써, 근육을 긴장시킴으로써, 정신에 스며드는 안도감을 억지로 밀어 냈다.

“반응 없습니다.”

윤재운 중사가 보고했다.

이규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면 안 상사 팀이 이곳을 지나쳐 갈 시간은 빨라도 내일 새벽 03시 즈음이었다.

조바심 낼 필요 없어.

이규철은 자신에게 말했다.

“00시까지는 1시간에 한 번, 00시 이후로는 30분에 한 번씩 신호를 보낸다.”

이규철은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

‘분석은 정확하게, 판단은 냉철하게, 행동은 빠르게.’

온몸에 힘을 잔뜩 준 이규철은 자신의 정신에 이렇게 속삭였다.

언제나 그를 사랑하는 아내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었던 그의 철칙을 다시 한번 속삭였다.

***

2006년 11월 23일.

합류 포스트 서쪽 15km.

한규호는 모르고 있었지만, 안성종 상사도 한규호와 거의 비슷한 사고 과정을 거쳐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 몸을 빼내는 것이 상책, 교전이 그다음, 적들이 지나쳐 가기를 바라는 것은 최하책.

그러나 상책을 선택할 수는 없다.

안 상사는 한 가지 가능성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규철 대위 팀이 작전 계획보다 빠르게 움직였다면?

태양호를 발견한 안 상사는 더 이상의 철로 감시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고, 이동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마찬가지로 이규철 대위가 백금산역에서 무언가를 보았다면? 그래서 더 이상의 정찰이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면?

몸을 뺐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이동을 개시했을 것이다.

우선순위가 높은 정보를 최대한 빠르게 보고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몸을 빼는 과정에서 흔적을 남겼다면? 그래서 추격조가 그들을 따라온다면?

안 상사는 태양호를 인지한 그 순간부터 그 시나리오를 생각해 두고 있었다.

북한군 수색조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시나리오가 신빙성을 얻게 된 것이다.

진도5의 주 임무는 교전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만약에 상황에서 진도0을 지키는 그것 또한 그의 임무였다.

안 상사는 진도5의 두 번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교전을 하기로 한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북한군들을 처리한다. 그들에게서 연락이 끊기면, 북한군은 이곳을 기점으로 다시 수색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안 상사 팀은 애초 이동하려고 했던 접선 포스트 대신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움직인다.

흔적을 남기면서, 그들이 미끼가 되어서.

어차피 이규철 대위의 팀이 탈출 지점에 도달한다면 동해 탈출 경로는 폐쇄된다.

그러니 아예 북쪽으로, 작전 계획에 있는 또 다른 탈출 지점인 중국 길림성 허룽(和龙)으로 향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안 상사는 판단을 내렸다.

안 상사가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250m. 왼쪽부터.

안 상사의 신호를 본 박종연 중사와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250m 안쪽으로 들어오면 교전을 개시한다. 표적 지시는 왼쪽부터 순번을 매겨 담당한다.

맨 왼쪽을 안 상사가, 그 사람 다음을 박종연 중사가, 세 번째는 한규호가 처리한다. 그리고 나머지도 마찬가지 순서로 진행한다.

적들이 산개하건 엄폐하건 상관없이, 맨 왼쪽의 적을 기준으로 순서대로 처리하라는 지시였다.

한규호는 자세를 잡고 조준선을 자신에게 할당된 병사에게 맞췄다.

야시경과 조준경을 통해 그에게 할당된 적 병사의 모습이 잡혔다.

그의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에, 병사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더는 숨을 쉬지도, 움직이지도, 가족들과 대화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한규호는 경험이 있었다. 이미 훈련과 작전을 수행하면서 몇 명의 북한군 병사들을 그의 손으로 처리한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총을 겨누고 있는 그의 손에는 어떠한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적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며 있었다.

계속 그를 괴롭히는 불길한 예감이 그의 눈동자 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쏴.”

안 상사의 명령이 내려졌다.

한규호는 부드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방아쇠에 올린 자신의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총구가 불을 뿜었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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