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7) >
2006년 11월 22일.
SS-074 최준함.
동해상, 북한 영해 5해리 기점.
-함장님, 함교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정보사령부가 운용하는 손원일급 잠수함 SS-074 최준함의 함장 한동욱 대령은 함장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 그의 독서를 방해한 것은 함교를 지키고 있던 부함장 정성원 소령의 호출이었다.
한 대령은 시계를 보았다.
22일 새벽 2시가 막 넘은 시간이었다.
본부와의 다음 통신 시간은 오전 3시 반이었다.
통신 예정 시간까지 아직 1시간 반이나 남아 있는데 그를 찾는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였다.
한 대령은 함장실 문을 열고 좁은 잠수함 통로를 거쳐 능숙하게 함교로 다가갔다.
함교에는 부함장 정성원 소령이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한 대령이 다가가자 정 소령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지휘권을 넘깁니다.”
고개를 끄덕인 한 대령은 방금까지 정 소령이 앉아 있던 함교 지휘 자리에 앉았다.
“상황이 이상한가?”
한 대령이 물었다.
“적의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정 소령이 보고했다.
패시브 소나에 적 잠수함 기지에서 움직임이 잡혔다는 것이었다.
214급 잠수함의 한국형 모델인 손원일급 잠수함에는 총 세 종류의 소나가 장착된다.
함수의 DBQS-40, 죄현과 우현의 측배열 소나로는 FAS-3, 선배열 예인 소나는 TAS-90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보사에서 운용하는 최준함은 매해군. 로스앤젤레스급에서 사용하는 AN/BQQ-10(v)4 함수 소나와 AN/BQZ-5D 측배열 소나가 장착되어 있었다.
재래식 잠수함에 6천 톤급 원자력 잠수함이 사용하는 소나를 장착하기 위해 설계를 새로 했다고 할 정도로 개조를 한 덕분에 최준함은 북한 잠수함보다 월등히 높은 탐지 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최준함의 소나에 지금 적 잠수함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보고였다.
“어디?”
“3, 4, 5 모두입니다.”
정 소령의 말에 한 대령은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북한군 동해함대사령부 산하 차호리 3전대, 마양도 4전대, 그리고 김책시의 5전대 모두에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최근 들어 연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은 잠수함 함대의 대규모 기동훈련을 자제하고 있었다.
특히 033형급이라고 불리는 로미오급 잠수함이 노후화되면서 5백 톤급 미만의 상어급 잠수함을 정찰용으로 사용하는 정도에서 기동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금 상황에서 동해에 있는 모든 북한군 잠수함 기지에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그리고 기동의 목적이 단순한 기동훈련인지, 아니면 뭔가를, 예를 들어 최준함을 노리고 있는 것인지 함장으로서 전혀 판단할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
어찌 되었건 함장인 한 대령은 선택을 해야 했다.
단순 기동훈련이라고 판단하고,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그냥 조용히 숨어 있을 것인지, 아니면 수많은 상어급들에게 둘러싸이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것인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었다.
수중 최대 속력 9노트, 잠항 심도가 150m에 불과한 상어급 잠수함은 최고 속도 20노트, 최대 잠항 심도 400m인 손원일급 잠수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일대일이 아닌, 다수를 상대하기에 손원일급이 완전 우위에서 서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동해상의 북한군 잠수함 기지에 정박 중인 상어급은 30척 정도로 분석되고 있었다.
몇 척이나 출항했을지는 몰라도, 다수의 잠수함이 출항했고, 그 목표가 최준함이라면 무조건 최신예 함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한편 최준함의 임무가 북한에 잠입한 정보사 침투 팀 요원들을 회수해 무사히 복귀시키는 것인 만큼, 지금의 위치를 지키는 것 또한 중요했다.
“뒤로 빠진다. 심도 300, 동력은 AIP(연료전지)로 전환, 최대 정숙모드로. 속도는 4노트.”
한 대령은 결정을 내렸다. 함장의 최우선 임무는 함정과 승조원의 안전이다.
한 대령은 도박을 할 생각은 없었다. 안전한 공해상까지 빠지기로 결정을 내렸다.
완전하게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최준함은 4노트의 속도로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남동쪽으로 이동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
2006년 11월 22일.
함경북도 단전군 백금산역.
백금산 폐광 내 38연구소.
서용석이 평양에 요청한 사항은 세 가지였다.
동해함대사령부의 가용한 모든 잠수함을 출동시킬 것.
직승기(헬리콥터)를 백금산에 배치해 줄 것.
귀빈을 최대한 빨리 평양으로 모실 것.
서용석은 연구소에 접근한 적이 남한 정보사의 개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놈들이 아니고서 여기에 이렇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서용석의 판단이었다.
정보사의 개들이 맞았다면 그들은 동해를 통해서 들어왔을 것이고, 또한 동해를 통해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가장 컸다.
퇴로를 차단하려면 잠수함을 출동시켜 경계도를 올리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많은 잠수함을 출동시켜 줄 것으로 요청한 것이다.
갑급 경보 대기 상황이었기에, 그의 요청은 즉각 받아들여졌으리라.
1차로 바다로 나가는 길만 막아 내면, 추적은 훨씬 수월해진다.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20대의 Mi-8 중에서 6대가 535부대에 배치되어 있었다.
서용석은 지금 당장 가용한 직승기를 요청했다.
적 침투 부대를 찾기 위해 535의 정찰대가 지금 흔적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러나 24시간 안에 흔적을 찾아내지 못하면 수색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범위가 확대되면 일반 인민군이 수색에 들어가고, 535는 대기하고 있다 흔적이 나오면 Mi-8을 타고 바로 현장으로 이동한다는 계획이었다.
마지막 요청 사항은 귀빈의 빠른 복귀였다.
이번 추적 작전에서 귀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귀빈이 있다는 이야기는 귀빈을 경호하기 위한 필수 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고, 그 필수 인력에는 서용석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직 평양에서 세부 지침이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만약 평양에서 귀빈을 지키는 것과 적을 추적하는 일을 동시에 완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면, 아무리 천하의 535정찰대라고 해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용석은 그러한 상황을 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귀찮은 짐인 귀빈을 빨리 보내 버리고 싶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요청 사항과 달리 세 번째 요청 사항은 갑급 경보와는 관련이 없었다. 당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랄 뿐이었다.
물론 당에서는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었다.
서용석은 시계를 보았다. 시침은 새벽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자, 생각해 보자. 나는 남조선의 개다.
나는 근처까지 와서 이곳을 정찰했다. 어디까지 정찰했을까? 아마 깊숙이 들어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족한다. 왜냐하면, 이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을 보았으니까.
열차는 못 보았다. 동초를 사살한 시간이 3~4시쯤. 열차가 백금산역에 들어온 시간이 4시 넘어서였으니, 나는 열차는 보지 못했다. 그저 백금산역에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것만을 보았을 뿐이다.
좋다. 어떤 방법으로, 아마 기어갔겠지만, 어떻게 저렇게 1km 밖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동초를 발견했다.
사살할까? 아니, 사살하고 싶지 않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사살해야만 했다. 발각되었거나 발각될 위험해 처해 있었거나.
아무튼, 사살했다. 시체를 버려둘까? 아니, 들고 가자. 탈영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게. 아주 작은 방심의 틈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들고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디에 숨겨 둘까?
최대한 안 보이는 곳. 어디?
계곡. 가장 무난하다.
11월의 추위에 얼어붙어 있는 계곡을 찾아가 얼음을 적당히 깨고 시체를 던져 두면 겨우내 시체는 얼음 속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4월이 되기 전까지 찾지도 못하겠지.
얼음을 깰까?
서용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수고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계곡에 시체를 버렸다. 그다음에는?
탈출밖에 없다. 최대한 일직선으로 동해안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20일 새벽 4시쯤 동초를 사살했다고 하면 지금은 어디쯤 나아갔을까?
지금까지 대략 48시간.
서용석의 정찰대가 급속 행군을 시행했다면 150km는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이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해안 지역은? 남동쪽의 김책시다. 대략 45km.
그리러 갔을까?
다시. 나는 남조선의 개다. 나라면 김책시로 갔을까?
빠른 길과 안전한 길. 둘 중에 고르라면?
그렇다면?
서용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백금산에서 정동쪽 방향,
함경북도 화대읍 목진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
2006년 11월 22일.
국광해운(주).
서울 종로구 당주동.
“젠장, 망할 새끼들!”
공항에서 급하게 사무실로 돌아온 엄주현 이사는 넥타이를 풀러 책상 위로 집어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계획대로라면 오전 3시 반에 통신이 열렸어야 했던 정보사 직할 잠수함 SS-074 최준함이 응답하지 않았다.
절차에 따라 최준함과의 연락 두절은 즉각적으로 이번 작전을 진행하는 국광해운에 전달되었고, 아침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엄주현 이사가 방향을 돌려 광화문의 국광해운 사무실로 다시 복귀한 것이다.
오늘 오전에 부산지방해양항만청에서 해수부 장관, 부산청장과 함께 부산신항 관련 간담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독일 H선사의 한국 해운대리점을 담당하고 있는 국광해운이, 엄 이사가 거기에 H社를 대신해 참석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는 갈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부산신항 따위는 엿이나 먹으라지.
엄 이사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야, 최 부장, 공항이냐? 가서 허튼소리 하지 말고, 그냥 듣고만 와. 그래. 야, 씨발 지금 선석이 문제가 아냐. 본사는 사장님이 책임지겠지. 그래.”
그를 대신해 급하게 부산으로 내려가는 최인석 부장에게 대충 업무 지시를 내린 그는 컴퓨터를 키고 정보사 내부망에 접속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작전계획대로라면 북한에 침투한 팀 중 진도 팀만이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진도 팀은 두 개로 나뉘어 두 곳의 포스트를 조사하고, 24일, 그러니까 내일 모래 합류한 다음 동해안으로 탈출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동안 최준함은 동해 해저 깊숙한 곳에 짱 박혀 있을 예정이었다.
원래 동해라는 곳은 각국의 수많은 잠수함이 짱 박혀 있는 곳이다.
수심이 깊고, 태평양과 오호츠크해가 바로 연결되어 있으며, 한국과 북한을 비롯해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은 물론 영국이나 프랑스 잠수함까지 훈련 삼아 들렀다 가는 곳이 바로 동해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시장 뒷골목처럼 방문객이 많은 동해에서 가장 힘을 못 쓰는 나라는 거리상 가장 가까운 북한이었다.
50년대에 설계된 로미오급이 북한에서 유일한 5백 톤급 이상 잠수함이었고, 기술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한 북한은 로미오급 잠수함 같은 것으로 절대 동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그나마 간첩 침투용으로 사용하는 상어급이 종종 동해에서 모습을 드러냈지만, 다른 나라 잠수함들에 놀림감만 될 뿐이었다.
그 정도로 북한의 잠수함 전력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그래도 최신예라는 손원일급 잠수함 중에서도 탐지와 통신 기능을 특화한 최준함이 숨을 죽이고 짱 박혀 있다면 절대로 북한놈들은 찾아내지 못한다.
설사 찾아냈다 하더라도 피해를 주기는 쉽지가 않다.
북한의 구형 잠수함으로 손원일급 잠수함에 피해를 주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다수의 상어급 잠수함들이 희생을 감수하고 동시에 달려드는 방법, 그뿐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 최준함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했고, 최준함을 북한 영해 경계선 바깥으로 몰아내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그래서 3, 4, 5전대가 가진 모든 잠수함을 출항시켰다면?
엄 이사는 며칠 전 했던 말을 떠올렸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묻는 국정원 이철원 국장의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이었다.
-백금산이 핵 관련 시설이 맞고, 시설 경비 부대가 진도 팀에 필적하는 특수부대이고, 진도 팀의 흔적이 발각된다면 북한 놈들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그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추격조를 편성하고, 가용한 모든 인력과 장비를 동원해 수색에 들어갈 것입니다. 한편으로 퇴로를 막기 위해 북-중 국경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해안선을 봉쇄할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미국이나 우리 잠수함을 찾기 위해 해상 수색도 진행할 것입니다.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만, 북한 놈들이 그들답지 않게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조처했다면, 예를 들어 1호 명령 같은 게 나왔다면, 8시간 안에 이 모든 조치가 취해진단 것이 정보 분석 팀의 분석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는데, 국정원 그 늙은 놈이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바람에 일이 꼬인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억지스러운 생각이 엄주현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7)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