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43화 (144/386)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6) >

2006년 11월 21일.

함경북도 명천군.

백금산역 북동쪽 32km 지점.

진도0 이규철은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새벽 4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일출 때까지 대략 3시간가량이 남아 있다.

“여기서 쉬었다 가지.”

이규철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아서 지도를 꺼내 들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위치에서 합류 포스트까지는 대략 10km 정도가 남아 있었다.

무리하지 않아도 일출시까지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이규철은 전자 기기를 담당하는 윤재운 중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연락을 취해 보도록.”

윤재운 중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토로라의 디지털 무전기를 꺼내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반응이 없습니다.”

이규철은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혹시나 해서 시도해 봤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지금 안 상사 팀은 작전 계획에 따라 북쪽으로 40km 떨어진 지점에서 철로를 정찰한 후, 지나다니는 열차들을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안 상사 팀이 5km 내외에 있을 때만 무전기에 반응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규철은 결정해야 했다.

안 상사 팀과 합류하기 위해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탈출할 것인지.

만약 이대로 최대한 빠르게 탈출한다는 선택을 한다면, 합류 지점에서 그들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탈출 지점으로, 탈출용 잠수함이 기다리고 있는 해변으로 향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

2006년 11월 15일.

국광해운(주).

서울 종로구 당주동.

“회수는 어떻게 진행되나?”

국정원 이규철 국장이 물었다.

2시간이 넘어간 브리핑이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진도 팀이 정찰을 완료하고 복귀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복귀 코드를 송신합니다. 복귀 코드를 수신한 본부에서는 동해상에 대기 중인 잠수함에 회수 명령을 하달합니다. 회수 명령을 하달받은 잠수함 함장은 바닷가로 접근, 팀을 회수하게 됩니다.”

국광해운 이사라는 위장 신분을 가진 정보사 엄주현 중령이 설명했다.

그는 말을 꺼내면서 살짝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너무 오랜 시간 잠을 못 잤다. 브리핑은 너무 길었고, 담배도 너무 많이 피웠다.

그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담뱃갑을 집어 들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잠수함의 특성상 통신이 쉽지 않습니다. 현재 동해상에 대기하고 있는 잠수함은 정보사가 직접 운용하는 SS-074 최국선 함입니다.”

해군은 전통적으로 함번에 ‘4’를 부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4’가 붙어 있다는 이야기는 함정이 해군 소속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아시다시피 잠수함의 가장 큰 특징은 실시간 연락을 주고받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최준함은 여타 손원일급 잠수함과 달리 이동 및 통신 기능을 특화해 건조하기는 했지만, 통신용 부력 와이어 안테나와 300kHz 이내의 초저주파를 사용해 약속된 시간에 통신을 주고받아야 하는 잠수함의 특성은 같습니다. 또한, 통신을 위해서는 통신용 부력 와이어 안테나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통신 심도까지 부상해야 합니다.”

엄주현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니코틴이 뉴런을 자극해 주길 바라면서 있는 힘껏 연기를 빨아들였다.

“진도 팀이 신호를 보냅니다. 본부에서 신호를 수신하고, 잠수함과 통신을 하기 위해서는 약속된 시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에 최대 6시간이 소요됩니다.”

“최대?”

김훈 차장이 물었다.

“가장 운이 없을 경우입니다. 아다리만 맞아들어 간다면 10분 안에도 끝날 수 있습니다.”

“재수 없으면 잠수함이 오기까지 6시간을 기다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군. 진도 팀은 언제 잠수함이 오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엄주현은 김훈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국정원 놈들은 현장의 어려움은 하나도 모르면서 말을 재수 없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정확하신 말씀이십니다.”

엄주현이 말했다.

김훈이 눈을 들어 엄주현을 바라보았지만, 엄주현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담배를 다시 한번 힘차게 빨아들였다.

“만약 적이 추격해 오는 상황이면, 장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이철원 국장이 말했다.

엄주현은 다시 한번 정확하신 말씀 어쩌고 하면서 비꼴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국정원 국장에게 그런 바보짓을 할 정도로 분별이 없지는 않았으니까.

“현장 최고 책임자인 팀장이 결정하게 됩니다. 잠수함을 통한 복귀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그는 작전 계획에 따라 대체 탈출 경로를 선택할 것입니다. 작전 계획상의 대체 경로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직접 새로운 경로를 찾아낼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보지.”

이철원이 다시 말했다.

“만약 백금산이 예상대로 핵 관련 시설이고, 그리고 그곳에 침투한 진도 팀이 발각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예상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이지?”

“…….”

엄주현은 잠시 주저했다.

아무리 대북 작전을 총괄하는 권환을 가지고 있는 국정원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월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주현은 김광용 사장을 돌아보았다. 국광해운의 대표이자 그의 상관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김광용 사장은 그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대로 해 줘.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끄덕임이었다.

“백금산이 핵 관련 시설이 맞고, 시설 경비 부대가 진도 팀에 필적하는 특수부대이고, 진도 팀의 흔적이 발각된다면.”

엄주현은 김광용 사장의 끄덕임이 귀찮음에서, 어서 빨리 이 브리핑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2006년 11월 21일.

함경북도 명천군.

백금산역 북동쪽 32km 지점.

이규철은 고민하고 있었다.

기다릴 것인가? 그냥 갈 것인가.

만약, 동초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진도 팀이 왔었다는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면 선택은 쉬웠을 것이다.

그는 합류 포스트에서 안 상사를 기다렸다, 팀을 하나로 모으고, 동해로 나가 잠수함을 탔을 것이다.

백금산에 대한 정보는 중요했다. 정보를 확보한 이상 최대한 빨리 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팀 리더인 이규철에게는 팀을 안전하게 복귀시키는 임무도 있었다.

70~80년대처럼 부대원들을, 요원들을 그저 희생양으로 소모하던 시기가 아니었다.

문제는 단서를 남겼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부대라면 진도 팀을 추적해 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535 정도의 부대가 아니라면 시신을 찾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동초의 시신을 찾았다고 해도 그 흔적을 찾아 역추적해 오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규철은 지휘관으로서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했고,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가장 보수적인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흔적을 남겼다면 추적당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모르는 안 상사 팀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규철이 어떠한 결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그는 그 결정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설사, 그 세 명을 미끼로 삼아서 자신들이 탈출한다 해도 말이다.

“이동 경로를 변경한다.”

이규철이 입을 열었다.

진도1 윤재운 중사와 진도4 정의성 상사가 이규철을 바라보았다.

“현재 위치에서 합류 포스트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10km. 바로 그곳으로 향하지 않고, 북쪽으로 우회한다.”

이규철은 안 상사 팀과 합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안 상사 팀과의 합류 시점은 24일 일출 시였다.

합류 포스트까지 10km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규철은 바로 그곳으로 가서 대기하는 것보다는 북쪽으로 크게 우회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규철은 지도를 꺼내 몇 개의 포스트를 찍었다.

“우회하면서 흔적을 남깁니까?”

진도4 정의성 상사가 물었다.

정의성 상사는 우회한다는 이규철의 의도를 이해했다.

이규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회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24시간 이상을 소모하면서 안 상사 팀과의 차이를 최대한 줄인다.

이규철은 그들과 합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기에, 24시간을 소모하면서 안 상사 팀과 합류하겠다는 의도로 우회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추격조에 대한 대비도 담겨 있었다.

혹시라도 추적조가 있다면, 이규철의 팀을 따라오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이규철의 흔적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당초 합류 시점은 24일 일출시. 우리는 23일 일출시에 합류 포스트에 들어간다. 거기서 24시간을 대기한 후 진도5가 이끄는 팀과 합류하고 탈출한다.”

그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팀 리더가 합당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

2006년 11월 21일.

함경북도 단전군 백금산역.

백금산 폐광 내 38연구소.

서용석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동초의 실종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이제는 죽어 버린 중대장의 기대처럼, 어디선가 숨어서 잠을 자다가 복귀 시간을 놓쳐 버린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동초들이 복귀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면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택할 것이다.

복귀, 아니면 탈영.

탈영은 아니다.

그럴 수가 없다. 자신들이 속한 부대의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단순한 시설 경비가 아니라, 공화국의 명운이 달린 38연구소를 지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복귀 시간에 늦었다고 탈영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목숨뿐만 아니라 가족의 목숨도 같이 끌고 들어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리라.

지연 복귀를 한다면?

아마 죽지는 않을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 구타를 당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이 있다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동초들이 실종된 지 30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복귀했다면 진즉에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그다음 시나리오는 의도치 않게 복귀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길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고, 실족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들짐승을 만났다거나.

마지막 시나리오는 적을 만난 것이다.

적.

정보사의 개들이라면 가능성이 있다.

서용석은 손을 들어 얼굴로 가져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이마에서 턱까지 이어지는 자상을 훑었다.

벌써 3년 전이나 지났는데, 이미 의학적으로는 치료가 끝났음에도, 서용석은 정보사의 개들을 생각하면 상처가 욱신거리는 느낌이었다.

침투 요원들의 실력은 언제나 북쪽이 우위였다.

단순 전투 실력은 비슷했을지 몰라도, 공화국의 요원들이 사상적으로 완전히 무장되어 있는 데 비해 자본주의의 개들은 돈과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항상 남한의 개들은 한 수 아래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과학적인 교육 훈련, 그리고 최신 장비. 무엇보다 장비의 격차가 너무나도 컸다.

남쪽으로 들어가는 것은 점점 어려워졌고, 놈들이 북쪽으로 올라오는 횟수도 점점 많아졌다.

분명 넘어온 것을 알고는 있는데, 추적해도 꼬리조차 잡지 못한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여기에는 무너져 버린 주민 감시 체계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서용석은 알고 있었다.

아무튼, 정보사의 개들이 백금산역 1km 이내까지 접근했다면, 동초가 사라진 이유가 그 때문이라면, 단순히 이번에도 왔다 갔구나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38연구소는 공화국의 미래니까.

***

서용석은 회의실에서 팔짱을 끼고, 부대원들을 보고 있었다.

팀장급 상사들은 지도를 펴놓고 적의 예상 탈출 지점을 논의하고 있었다.

흔적을 발견한 것은 동초가 미복귀한 지 32시간 만이었다.

가용 인원을 전부 동원해 동초의 이동 경로를 따라 정밀히 수색한 결과 핏자국을 찾아낼 수 있었다.

백금산역 기점 동쪽 1km 지점. 동초가 예정대로 움직였다면 새벽 3~4시 사이에 통과했을 지점에서 혈흔이 발견된 것이다.

서용석은 빠르게 평양에 보고를 올렸다.

이미 갑급 경보 대기를 요청한 바 있었기에, 서용석의 보고는 빠르게 처리되었고, 명령도 빠르게 하달되었다.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찾아낼 것.

전문을 받은 서용석은 535부대원들을 전부 소집했다.

만약 그들이 남측 정보사의 개들이라면 일반 부대로는 절대로 찾아낼 수 없을 것이었다.

오직 침투 부대만이 침투 부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지금 이곳에 있는 부대는 535에서도 가장 정예라고 할 수 있는 535의 정찰대였다.

서용석은 예상 이동 경로를 뽑아냈다. 동쪽으로 방향이 잡힌 이상 적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귀빈의 경호를 제외한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 모든 병력이 적 수색에 투입할 생각이었다.

“준비 다 끝났습니다.”

상사들이 정찰 구획을 정하고 인원을 분배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용석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철을 비롯한 정찰대의 상사들은 서용석이 오랜 시간 공들여 키워 놓은 정예 중 정예들이었다. 그들이 추격해 간다면 절대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고갯짓에 정찰대원들은 빠르게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동초의 시신을 찾는 것도, 그리고 적의 흔적을 찾는 것도.

정찰대원들이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서용석은 혼자만 남게 되자 사무실에 전화를 집어 들었다.

평양에 요청할 사항이 있었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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