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42화 (143/386)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5) >

2006년 11월 21일.

함경북도 명천군.

백금산역 북동쪽 42km 지점.

“도착.”

선두에서 팀을 선도하던 진도2 박종연 중사가 군장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호흡이 약간 흐트러진 박 중사의 말에 안성종 상사는 손목에 달린 GPS를 확인했다.

41.0365, 129.1906.

합류 포스트가 맞았다.

안 상사는 지도를 꺼내 다시 한번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합류 포스트는 풍계리역에서 남쪽으로 10km, 이 지역에서 교통의 요지인 길주군에서 북서쪽으로 1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학무산과 대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동쪽 사면, 경사가 급해 사면의 그림자가 짙은 곳이었다.

위성 지도를 기반으로 인공지능과 정보 분석 팀이 반경 50km 이내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을 합류 포스트로 선정했을 것이다.

안 상사는 그들이 일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안 상사는 지도에서 눈을 떼고, 박종연과 한규호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어깨가 동조를 이루어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산소를 받아들이기 위해 상체 근육을 모두 이용해 호흡을 하고 있는 것이다.

21시간 전, 태양호가 지나간 정찰 지점을 출발해 최소한의 휴식을 취하면서 40km를 돌파했다. 그것도 산을 몇 개나 넘으면서.

애초 계획대로 40시간을 그곳에서 쉬었다면, 쉬면서 체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했다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좋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속되는 강행군에, 그들은 피로를 풀고 체력을 회복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문제는 지금 그들이 여기에서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그들은 진도0 이규철 대위가 있는 백금산 쪽으로 마중을 나갈 것이다.

안성종 상사는 8시간 거리를 마중 나가기로 결정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24일 일출시에 이곳에서 진도0과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안 상사는 8시간 거리를 마중을 나가 23일까지 대기한 다음 24일 애초 계획된 합류 시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마중 나간다.”

안 상사는 위아래로 움직이는 두 사람의 어깨를 애써 무시하면서 무심하게 말했다.

이곳에서 휴식을 조금 취할까 생각도 했지만, 우선은 이곳에서 벗어나기로 안 상사는 결정했다.

사람이기에, 아무리 특수부대원이라고 해도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에 심리적인 부분은 중요했다.

어차피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잠깐의 휴식을 더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이 안 상사의 판단이었다.

그렇기에 일단은 출발하고, 합류 포스트에서 적당히 멀어졌다고 판단이 들면 그때 휴식을 취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체력적으로 아직 한계는 아니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지금 바로 갑니까?”

조금은 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박종연 중사가 물었다.

안 상사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박 중사는 안 상사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에서 저 괴물은 협상하려는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는 속으로 ‘어이구 내 팔자야.’ 하면서 군장을 다시 어깨에 걸쳤다.

그때 한규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꼭 마중 나가야 합니까?”

박종연은 한규호를 돌아보았다.

한규호는 금기를 범하고 있었다.

***

안 상사는 한규호의 말에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진도3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판단하는 자리도 아니었다. 애초에 생각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수류탄 하나를 안겨 주고 적진에 뛰어들라고 해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렇게 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가 아는 한 한규호는 그렇게 멍청한 행동을 하는 놈이 아니었다.

“힘든가?”

안 상사가 물었다.

박종연 중사는 안 상사의 질문에서 짙은 분노를 느꼈다. 평소와 비슷한 어투였지만 박종연은 알 수 있었다.

“아닙니다.”

한규호가 답했다.

“무서운가?”

“아닙니다.”

안 상사는 침묵으로 답변을 요구했다.

한규호는 난감했다.

마중을 나가면 안 된다고, 이곳에서 대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그렇게 그의 직감이 말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확실했다.

안 상사가 마중 나간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강한 직감이 그를 찾아왔다.

가면 안 된다.

등골에서 시작되는 불쾌한 기분이 그를 휘감았다.

그가 기억하는 첫 번째 불쾌감,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드는 대형 트럭을 미리 인지하고,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겠다고 떼를 쓰던 그때의 그 기분이 명확하게 그에게 찾아왔다.

지금까지 느껴 왔던 막연한 불안감, 불쾌감과는 달랐다.

분명히 이곳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미친 새끼.”

박종연 중사가 다가와서 한규호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이 새끼야, 누가 너보고 생각하래? 너보고 판단하래? 어디서 감히 입을 나불대.”

안성종은 한규호의 멱살을 잡고 낮게 으르렁거리는 박종연을 보면서 그가 한규호를 보호하기 위해 선수를 쳤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분노가 한규호에게 향하기 전에 그가 먼저 행동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아챘다.

안 상사는 자신의 안에서 불이 붙으려고 하던 분노가 조금 사그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사실 안 상사, 그도 초조해하고 있었다.

태양호를 본 순간부터, 아니 팀을 나눴을 때부터, 아니 이번 작전에 들어가면서부터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불쾌감이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심리적으로 약해질 것을 걱정한 것은 저 두 사람이 아니었다. 그 스스로였다.

“힘들면 조금 쉬었다 가도록 하지.”

안 상사가 말했다.

한규호의 멱살을 틀어쥐고 있던 박종연은 그 목소리에서 분노가 사라졌음을 느꼈다.

“아닙니다.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한규호가 다시 말했다.

“닥쳐, 이 자식아.”

박종연이 손에 힘을 주었다.

“직감인가?”

안 상사가 물었다.

한규호는 말로도, 행동으로도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안 상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박종연 중사는 그런 두 사람을 보다 안 상사가 분노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손에 힘을 풀었다.

“확실하게 말하도록. 직감이 들었나?”

“그렇습니다.”

한규호가 답했다.

안 상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한규호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반대했었다. 네가 팀에 들어오는 것을.”

박종연 중사는 안 상사의 갑작스러운 말에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잠시 쉬었다 가지.”

안 상사는 그렇게 말하고 군장을 내려놓았다.

박종연 중사는 안 상사의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군장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한규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팀장님이 말해 줬지. 새끼 요원이 현장 경험 없이 바로 팀에 배정됐다고. 교육한 후에 진도3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이지. 본부에서 결정한 것이고 팀장이 받아들였으니 나에게는 좋다 싫다 할 권한 같은 것은 없었지. 그런데 특기 이야기를 듣고 나는 반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박종연 중사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한규호의 특기는 그저 월등한 체력 아니었던가?

“직감 또는 육감. 본부에서는 너의 특기를 그렇게 분류했더군. 그렇기에 나는 반대했었다.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최고의 군인이지 무당 같은 게 아니니까.”

무당이라는 단어에 박종연은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한규호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이 드러나 있지 않았다.

“너와 함께 작전을 나가고, 시간이 흐르고, 네가 진도3으로 한 사람 몫을 하게 될 때까지 너는 단 한 번도 너의 의견을 말한 적 없었지. 팀장님도 너에게, 그 직감이라는 것에 관해 묻지 않았고. 맞나?”

“맞습니다.”

한규호가 대답했다.

한규호는 본부가 자신의 직감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직감 때문에 팀에 배속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직감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직감을 기반으로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직감이 찾아왔나?”

안 상사가 다시 물었다.

“그렇습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뭐라고 하나?”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직감이 찾아온 적이 또 있었나?”

“없었습니다.”

“좋지 않다고 했던 것과는 다른 건가?”

“다릅니다.”

“확실하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박종연은 말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이제야 얼마 전 두 사람이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안 상사가 철길에서 놀아 본 적 있냐느니 어쨌냐느니 하며 이상한 소리를 했을 때 나누었던 대화를.

-뭐라고 하던가?

-네?

-네 직감이 뭐라고 하던가?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제부터?

-어제부터······입니다.

박종연은 그제야 완벽하게 이해를 했다. 며칠 전 대화와 지금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한규호는 직감이라는 특기를 가지고 팀에 배속됐고, 그동안 단 한 번도 직감을 기반으로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팀 리더인 진도0 이규철 대위도 그에게 직감을 기반으로 의견을 묻지 않았다.

그러나 이규철 대위와 안성종 상사는 직감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안 상사가 며칠 전 한규호에게 직감에 대해서 처음으로 질문을 던진 것이다.

한규호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다고 이야기했고, 그리고 지금의 직감은 며칠 전의 막연한 불안감과는 달리 확실하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증명할 수 있나?”

안 상사가 다시 물었다.

“……없습니다.”

한규호가 답했다.

증명할 수 없다. 증명하려면 결과가 나와야 한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직감에 대한 증명은, 그 직감을 무시함으로써 나타나는 좋지 않은 일로 증명된다.

어릴 적 그때, 횡단보도를 그대로 건넜으면, 죽음이라는 결과로 증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종연은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다. 지금 상황은 절대로 한규호에게 좋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한규호를 옹호해야 할지 아니면 윽박질러야 할지, 어떤 방법이 한규호에게 도움이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만약 그 기차가 태양호가 맞다면.”

박종연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안 상사가 말을 꺼내자 그를 돌아봤다.

“아마 맞을 것이다. 1호 열차인지는 확실치 않아도 태양호는 맞다고 판단된다.”

1호 열차, 북한은 김정일과 관련된 모든 것에 ‘1호’ 명칭을 사용했다.

1호 명령, 1호 소식, 1호 작전, 1호 방침, 1호 차량, 1호 열차 등등.

백두와 태양과 더불어 1호가 북한의 최고 권력자를 가리키는 대명사였다.

태양호는 그 자체만으로 1호 열차가 아니었다. 김정일이 탑승했을 때에만, 태양호는 1호 열차로 불릴 수 있는 것이다.

“태양호가 맞다면, 김정일이나 적어도 그에 준하는 고위인사가 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야심한 새벽에 불을 끄고 이동한다는 것도 그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고. 정찰한 것처럼 침목도, 노반도 모두 정비되어 있었다. 모든 증거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백금산은 핵 관련 시설이 맞다고.”

한규와 박종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금산이 핵 관련 시설이 맞다면, 백금산역, 폐광에 대한 정보가 우선순위가 높다.”

한규호의 목젖이 한 번 크게 움직였다.

“핵 관련 시설이 맞다면 경계 레벨도, 그쪽이 더 높을 것이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더 크고, 만약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한규호는 안 상사가, 진도5가 어떤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우리가 미끼가 된다. 이목을 우리가 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도5. 팀 내 전투력을 담당하는 그에게는 또 다른 임무도 있었다.

11챠리. 자신을 희생해 팀을 탈출시키는 임무가.

“한규호.”

안 상사가 한규호를 불렀다.

“네.”

“너의 직감을 존중한다. 그러나 요청은 각하한다. 지금부터 진도0의 확보를 최우선으로 한다. 질문?”

“없습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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