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4) >
2006년 11월 20일.
함경북도 단전군 백금산역.
백금산 폐광 내 38연구소.
서용석은 문을 열고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그가 이곳에 있는 동안 임시 집무실로 사용하는 방은 연구소 경비 부대 부대장 박호경 대좌의 방이었다.
서용석이 이곳을 자신의 집무실로 정한 이유는 단지 이 방이 가장 좋은 방 중 하나여서 아니었다.
박호경 대좌는 서용석을 위해 군인들이 사용하는 공간이 아닌 연구원들이 거주하는 구역에 괜찮은 방을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서용석이 그 방을 거부하고, 부대장인 대좌의 방을 자신의 거처로 정한 것이다.
무리를 이루는 짐승에게 자리는 권위를 의미한다.
우두머리의 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은 그 권위까지 전부 빼앗긴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전방부의 연대장, 특수부대 여단장, 일반 사단의 부사단장, 사단 정치 위원, 보위부장 등의 직책을 맡을 수 있는 대좌가 특무상사에게 방을 빼앗겼다는 것은 권위를 빼앗겼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서용석은 대좌의 방을 차지함으로써, 그가 여기 있는 동안 자신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서용석은 대좌의 의자에 앉아서 대좌의 책상에 다리를 얹었다.
새벽에 도착한 귀빈은 오전에 휴식을 취하고 오후 동안 시설을 둘러보았다.
그의 임무는 귀빈을 보호하는 것이었고, 서용석은 오후 내내 그의 반경 3m 이내에서 그를 지켰다.
귀빈과 귀빈이 데려온 기술자들은 김봉 연구소장의 안내를 받으며 연구소 이곳저곳을 둘러보았고, 그들이 제공한 장비를 점검했다.
그리고 그가 데려온 기술자들이 원심분리기에서 몇 가지 위험 요소를 발견했고, 그것을 수정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귀빈은 부총리에게 며칠 더 머물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했고, 부총리가 직접 평양에 전화를 걸어 허락을 받았다.
오늘 밤에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기로 했던 귀빈은 며칠 더 이곳에 남아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함이 발견되었다는 말에, 연구소장 김봉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연구소에서 결함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총책임을 맡은 그의 경력이 끝났다는 이야기와 같은 의미였었으니까.
김봉 휘하의 연구원들은, 그래도 공화국 내 최고의 두뇌와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연구원들은 무사할 것이다.
그들이 없다면 연구를 계속할 수 없을 테니.
그렇지만 김봉은 아마 조만간 경질될 것이다.
그가 없어도 연구는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평양도 익히 알고 있었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으니 말이다.
어찌 되든 서용석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서용석의 관심은 오직 귀빈에게만 쏠려 있었다.
서용석은 그의 반경 3m 밖을 단 한 번도 떠나지 않고 그를 지켜보았다.
그를 따라다니면서 서용석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적은 것이 아니었다. 아예 없었다.
그는 입을 열고, 눈을 깜빡일 때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입을 열고, 눈을 깜빡일 때도, 입과 눈을 제외한 얼굴 다른 부위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마치 가면을 쓴 것 같았다.
그가 데려온 기술자가 장비를 점검하는 지루한 시간 동안에도, 그는 단 한 번의 미동도, 표정 변화도 없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용석은 그런 그를 지켜보면서,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의도를 무엇일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공화국에서 국빈이라는 단어는 당의 손님, 최고 존엄의 손님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런 국빈을 해할 수 있는 사람은 공화국 내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서용석을 경호로 붙였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 격이다.
당과 최고 존엄은 완전무결하다.
그런 의미 없는 판단을 했을 리가 없다.
최고 존엄께서는 이미 꿰뚫어 보신 것이다.
그가 일반인이 아님을, 그 혜안으로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나를 여기로 보낸 것이겠지.
서용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당과 백두 혈통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서용석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어려운 시기에 공화국에 손을 내밀어 준 유럽 투자은행의 회장이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른 범주의 사람이라는 것을,
서용석 그와 비슷한, 맹수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을 최고 존엄께서는 알고 계셨고, 그리고 언제나처럼 놀라운 혜안으로 서용석 자신을 붙인 것이다.
그의 실체를 파악하라고. 그런 의도로.
서용석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귀빈은 김봉이 마련한 저녁 만찬에 참여했을 시간이다.
실책이 발각된 김봉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귀빈에게 최고의 대접을 하려고 할 것이다.
만약 귀빈이 서용석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사람이라면, 그 만찬은 귀빈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할 것이다.
그 무표정한 귀인이 서용석의 생각대로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만찬은 그에게 어떠한 의미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서용석이 말했다.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서용석과 15년 이상 한솥밥을 먹은 535의 박철 상사, 그리고 처음 보는 대위가 모습을 보였다.
들어온 두 사람은 책상 앞에 서서 경례를 올렸다.
“뭐야?”
서용석은 박철 상사에게 물었다.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박철이 말했다.
서용석은 눈으로 말했다. 누가 보고할 거지?
눈빛을 이해한 박철 상사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 그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영웅 동지.”
한발 물러난 박철의 행동을 이해한 대위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서용석은 조금 짜증이 났다.
영웅 동지라니. 아무리 그가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고 해도 이 무슨 이상한 호칭이란 말인가.
그리고 당연히 문제가 생겼으니까 갑자기 쳐들어왔겠지.
“본론만, 짧게.”
서용석이 말했다.
“동초 두 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서용석의 짜증을 눈치챈 박철 상사가 보고했다.
서용석은 책상 위에 올려놓은 다리를 책상 밑으로 내렸다.
“언제?”
서용석이 물었다.
“금일 08시에 교대 예정이었던 보초 두 명이 미복귀했습니다.”
박철이 다시 말했다.
“누구?”
서용석이 대위를 바라보며 물었다.
“동초가 속한 중대 중대장입니다.”
박철이 설명했다.
서용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대위를 향해 걸어갔다.
대위는 그보다 계급이 낮은 특무상사가 그에게 걸어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오금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08시?”
“그, 그렇습니다!”
대위가 크게 소리쳤다.
“조용히.”
뒤에 서 있던 박철이 말했다.
“네, 네?”
대위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대장님 앞에서 소리 지르지 마.”
“넷!”
박철 상사가 경고했음에도 대위는 멍청하게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서용석은 손짓으로 박철 상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대위 바로 눈앞까지 다가가 그의 눈을 보면서 물었다.
“왜 바로 보고 안 했나.”
“넷! 그 그게!”
“큰 소리 내지 말고.”
서용석이 말했다.
“네? 네, 그게. 그때 주무시고 계신다고…….”
“누가?”
“영웅 동지께서…….”
서용석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 새끼도 좋은 출신 성분을 가지고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나왔을까?
“누가 내가 잔다고 했나?”
오전 8시경 서용석은 자고 있지 않았다.
그 시간에 그는 허접스러운 경계 작전 계획을 조목조목 분석하며 이 방의 주인인 박호경 대좌를 박살 내고 있었다.
“누가 그랬나? 내가 자고 있다고?”
“그, 그게 그……. 새벽에 도착하셔서…….”
서용석은 다가가 대위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보고는 했나?”
서용석이 다가오며 팔을 자신에게 팔을 뻗자 순간적으로 움찔했던 대위는 그의 손이 자신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들기자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온몸의 힘을 주었다.
사신의 손길이었다. 그의 생살여탈권을 가진 사신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는지 온 세상이 그의 심장 소리로 가득한 것 같았다.
“박호경은?”
서용석이 박철에게 물었다.
“만찬에 참석 중입니다.”
“데려와.”
서용석이 말했다.
“네.”
박철 상사가 그렇게 말하고 재빨리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
만찬에 참석 중이던 박호경 대좌는 갑작스러운 호출에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자신의 예전 숙소로 달려온 그의 눈에 보이는 장면은 자신의 책상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무표정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특무상사 서용석과 그 앞에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 그의 부하 중대장의 모습이었다.
“대좌.”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서용석이 물었다.
“네,”
박호경 대좌는 큰 소리로 대답하려다 소리치지 말라고 했던 서용석의 말을 떠올렸다.
대좌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고, 자신이 큰 소리로 대답하는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빠르게 판단했다.
“동초 두 명이 실종된 것을 알고 있나?”
대좌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는 대위를 바라보았다.
대위는 하전사처럼 시선을 전방 15도 위로 고정한 채로 최대한 몸을 떨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박호경은 어떤 상황인지 단박에 눈치를 챘다.
동초 두 명이 교대 시간까지 복귀하지 않았다.
중대장은 그 사실을 바로 보고하지 않고, 자신이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최근 인민군 내에서 근무 이탈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열악한 보급 상황, 날로 해이해져 가는 군기 등의 이유로 하전사들 사이에서는 군무 이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는 했었다.
그러나 박호경의 부대는 38연구소 경계를 명 받으면서 근무 이탈이 전혀 없었다.
핵 시설의 경비라는 특수 작전에는 풍족한 보급이 따라왔다.
최근에 그의 부대원들은 밥 굶는 일은 없었다.
보급이 충분한데 근무 이탈을 했다면?
중대장은 동초들이 어딘가에 숨어서 잠을 자다가 복귀 시간에 늦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게 가장 가능성 있는 가설이었다.
박호경도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딘가에 숨어서 자다가 복귀 시간을 놓쳐 버린 상황이.
중대장은 보고 체계를 통해 보고를 올리는 대신 자기가 직접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
경력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서.
“몰랐습니다.”
박호경은 솔직히 말했다.
눈앞에 있는 이 특무상사는 단순히 특수부대 정찰대 대장이 아니었다.
공화국 영웅 칭호를 하사받은 인민 영웅이었고, 최고 존엄과 직접 연결되는 선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앞에서 거짓을 말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도박이었다.
서용석은 감정 없는 눈으로 박호경을 바라보면서 그에게 걸어갔다.
“대좌.”
“넷!”
서용석은 대좌에게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
“대좌는 당과 조국이 대좌에게 베풀어 준 은혜를 잊었는가?”
“아닙니다!”
박호경 대좌는 소리쳤다.
분명히 서용석이 자신에게 큰 소리 내지 말라고 한 것을 기억해 냈음에도, 그 질문에는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소리로 부정해야 했다.
“사상적으로 완벽하게 무장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나?”
“그렇습니다!”
다시 소리쳤다.
그 대답을 들은 서용석은 뒤돌아서 대좌의 의자에 앉았다.
“대좌는 군사종대(김일성군사종합대학) 출신인가?”
“……그렇습니다.”
“동무는?”
서용석이 옆에 서 있는 대위에게도 물었다.
“저도 인민의 총 폭탄이 되어서 조국 통일에 이바지하라고 위대한 태양이신 수령님께서 지어 주신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그렇군. 두 동무는 사상적으로 완벽하게 무장되어 있겠군.”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대답을 다른 어조로 답했다.
두 사람의 대답을 들은 서용석은 손톱으로 책상을 탁탁탁 하고 두드렸다.
한참을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두 동무는 남조선에 가 본 적 있나?”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답을 주저했다. 무슨 의도로 묻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남조선은 말이지.”
서용석은 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정말 다른 세상이 되었어.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경제라든가, 사회 기반 시설이라든지, 이미 공화국을 뛰어넘었지.”
서용석의 말에 두 사람은 몸에 잔뜩 힘을 주면서 긴장했다.
서용석의 발언은 위험했다.
아무리 그가 공화국 영웅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그 말만으로도 그가 이루어 놓은 모든 업적을 모래성처럼 무너트릴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었다.
“남조선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 공화국이 이길 수 없겠구나. 이제 더는 군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공화국이 참 어렵구나……. 그런 생각이…….”
“지금 그 발언은 해당 행위입니다!”
대위가 소리쳤다. 자신의 잘못은 둘째치고서라도, 지금 서용석의 그 발언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대위에게 박철 상사가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고 힘주어 잡았다.
얼마나 힘주어 잡았는지, 대위는 순간적으로 몸이 무너져 내렸다.
어깨뼈가 부서진 느낌이었다.
“닥치고 들어.”
그런 그의 귀에 박철 상사가 작게 으르렁거리듯 말한 다음 그의 어깨를 놔주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지. 뭐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서용석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에게 소리친 대위에게 다가가 그의 눈앞에 얼굴을 붙이고 말했다.
“사상적으로 완벽하게 무장되어 있다는 것은, 그런 절망 속에서도 절대로 당과 조국, 그리고 백두 혈통에 대한 충성심을 잃어버리지 않을 때 쓸 수 있는 말이야. 좋은 출신 성분을 타고 나서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기까지 말하고 서용석은 자신의 허리에서 권총을 뽑아 대위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그 동작이 얼마나 빨랐는지, 대위는 자신이 총을 맞는지도 모르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허물어져 버렸다.
“대좌.”
“네!”
“귀관을 보직 해임하고, 지휘권을 박탈한다.”
서용석이 박호경에게 말했다.
박호경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평양에 연락한다. 갑급 경보 대기를 요청한다.”
서용석의 말에 박철은 뒷굽을 딱 붙이고는 경례를 올렸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