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38화 (139/386)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1) >

2006년 11월 20일.

함경북도 단전군 백금산역.

백금산역 동쪽 0.9km.

진도0 이규철은 5백 m 밖에서 움직이는 무언가가 사람이라고, 그것도 그냥 사람이 아니라 움직이며 정찰을 하는 동초라고 판단했다.

5백 m라는 거리는 무언가를 판단하기에는 적절한 거리는 아니었다.

무언가가 움직인다는 것은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움직이는 무언가가 사람이라고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은 거리였다.

그러나 진도0 이규철 대위는 5백 m 밖에서 움직이는 두 사람이 동초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확신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은 아니었다.

논리적인 사고 과정으로 도출한 판단이었다.

핵 관련 시설이 있을 것으로 강하게 의심되는 이 지역에서, 자정을 지나 일출 시각을 향해 가는 야심한 새벽에, 손전등을 들고 움직이는 누군가가 민간인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조도가 높은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함경북도에 주민들이 손전등을 가지고 있을는지는 몰라도, 건전지 같은 귀중품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이규철은 왼손을 들어 진도2와 진도4에 교전 전 준비를 지시했다.

수백 m를 포복으로 빠져나면서 진도 팀은 체력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거기에 갑자기 나타난 동초들은 그들에게 부가적인 정신적 피로를 안겼다.

숨어 있는 진도 팀과 걸어오는 동초들 사이에는 작은 관목 지대가 있었다. 그 관목 지대 사이로 불빛이 살짝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규철은 그들이 그저 지나가기를, 더 불빛이 가까워지지 않기를 바랐다.

발각될 것을 두려워한 것은 아니었다.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진도 팀이 그들을 먼저 파악했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에 북한군 동초들은 그저 정해진 경로를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절대로 이곳에 적 특수부대가 매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준비 상태가 다르다. 접촉하게 되면 진도 팀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진도 팀이 그들에게 발각되기 전에, 처리할 수 있었다.

이규철 대위가 걱정하는 것은 그들을 처리하고 난 후의 상황이었다.

동초가 돌아오지 않으면 북한군은 의심할 것이다,

찾으려 할 것이고, 그리고 시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시체가 발견되면 경계를 강화할 것이 분명했다.

단순히 백금산역 주변으로 경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진도 팀에게는 그다지 상관없는 이야기이겠지만, 정보사의 판단처럼 백금산 폐광이, 그리고 백금산역이 핵 관련 시설이라면 추적해 올 가능성이 컸다.

시설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동초를 살해한 진도 팀을 찾으려 할 것이다.

사실 추적 팀이 꾸려진다는 것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일반적인 부대는 절대로 진도 팀을 따라잡거나 찾아낼 수 없었다.

문제는 진도 팀은 두 개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팀이 하나로 온전했다면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탈출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팀은 두 개로 나누어져 있었고, 다른 팀은 이 상황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했다.

지금 상황이라면 이규철 대위가 이끄는 팀이 훨씬 빠르게 합류 포스트에 도착할 것이다.

거기에서 두 가지 선택이 있다.

기다렸다 합류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계속 움직여 먼저 탈출할 것인가.

현장 책임자인 이규철은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했다.

만약 추격조가 만들어지고, 그 추격조가 진도 팀의 흔적을 찾아내고, 그리고 흔적을 따라 합류 포스트까지 찾아온다면?

이규철 대위가 그들과 합류하지 않고 먼저 움직인다면, 그 상황을 모르는 진도5 안성종 상사 팀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기다렸다 합류한다면?

최악의 상황, 추격조가 만들어지고, 북한군이 예상 탈출로를 상정하고 탈출로에 감시망을 조밀하게 설치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연결된다면, 기다렸다 합류하는 것은 지금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결과가 될 것이다.

현장 최고 책임자인 이규철 대위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정보사는 그 결정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딜레마였다.

차라리 명령을 받았다면,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라도 되었을 테지만, 팀 리더로서 작전의 성공을, 정찰 정보를 우선시할 것인지, 아니면 팀의 일원으로서 동료들과 끝까지 같이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진도0 이규철 대위의 임무였다.

이규철은 머리를 작게 흔들었다.

지금은 그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우선은 다가오는 동초부터 해결하자.

그는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향하던 불빛은 방향을 틀어, 진도 팀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손전등의 빛이 조금씩 가까워지며, 조금씩 밝아졌다.

이규철은 다시 신호를 보냈다.

교전 준비.

동초와의 거리가 2백 m 안쪽으로 접어들자, 두 명의 동초 중 한 명이 크게 하품을 하는 모습이, 그리고 그런 그의 엉덩이를 가볍게 걷어차는 다른 동초의 모습이 보였다.

이규철은 진도 팀과 다가오는 동초들 사이에 가상의 선을 그었다.

그들이 방향을 유지한 채로, 그 선을 넘으면 처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분석은 정확하게, 판단은 냉철하게, 행동은 신속하게.

언제나 좋은 결과를 도출해 주는 그의 신조였다.

이규철은 수신호를 통해서 진도2와 진도4에게 각각 표적을 지정했다. 그리고 자신도 둘 중 한 명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자신들에게 총구가 겨누어지는지도 모르는 두 동초는 피곤이 잔뜩 묻어 있는 발걸음으로 무언가 말을 하면서 진도 팀에게 다가왔다.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그리고 진도 팀 30m 앞, 이규철이 그어 놓은 가상의 선을 그들이 넘어섰을 때, 이규철은 사격 명령을 내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이규철은 잠시 주저했다.

조준경 너머로 보이는 그 얼굴이 너무 앳되어서, 중학생에게 군복을 입히고 군모를 씌운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주저했다.

25m.

이규철은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었다.

중학생 같은 얼굴이 아니라, 실제 중학생이라고 해도 그들을 처리해야 했다.

중학생이건, 초등학생이건, 그 손에 총을 들고 있다면 적일 뿐이다. 처리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쏴.”

이규철이 작게 말했다.

그 짧은 명령에 세 개의 총구에서 동시에 총알이 단발로 발사되었다.

그렇게 발사된 총알은 정확히 다가오던 북한군의 이마를 뚫어 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는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져 버렸다.

표적이 쓰러지자 이규철 대위와 진도4 정의성 상사가 빠르게 시체로 다가갔다.

진도1 윤재운 중사는 그 자리에서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체로 다가간 이규철과 정의성은 각각 자신이 담당한 시체의 등에 세 발씩 발사했다.

확인 사살을 마친 두 사람은 능숙하게 시체를 들어 어깨에 멨다.

시체를 멘 이규철은 너무도 가벼운 그 무게에 살짝 몸이 굳었다.

160cm도 안 될 것 같은 북한군의 시체는 그의 아내보다 가벼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시신을 확보하자 윤재운 중사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이규철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 자리를 벗어날 차례였다.

윤재운 중사가 선두에 서고, 시체를 들쳐 멘 두 사람이 그 뒤를 따랐다.

흔적을 청소할 시간은 없어도, 시신은 최대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 둬야 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복귀하지 않는 동초가 실종된 것인지, 탈영한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렇기에 번거로울지라도 북한군 동초의 이동 경로에서 시체를 숨기는 것은 당연한 절차였다.

이규철은 앞으로 걸어가며 최대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은 안성종 상사 팀과 합류하기로 한 포스트로 간다.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릴지, 아니면 철수를 계속할지를 결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안 상사의 정찰 지점은 백금산역에서 동북쪽으로 60km 떨어져 있다.

합류 지점까지 두 팀은 각각 40km를 이동해야 했다.

우선은 그 40km를 간다.

북한군이 동초의 미복귀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시행하고 추적 팀을 꾸릴 때까지, 아무리 빨라도 5~6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시간이면 진도 팀은 그들의 수색 범위를 빠져나갈 것이다.

일반적인 부대는 절대 그들을 추격할 수 없다.

535특수작전대대 정도의 부대이거나, 535의 서용석 특무상사 정도 되는 괴물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그들을 추적할 수 없을 것이다.

이규철은 그렇게 생각했다.

***

2006년 11월 20일.

함경북도 단전군 백금산역.

백금산역 플랫폼.

백금산역 플랫폼에는 북한군 제식 소총인 88식 자동보총을 든 북한군 병사들이 열을 맞춰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 채 그저 두 손에 든 소총이 흔들리지 않도록 꽉 붙잡은 채로, 전방 15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대한 부동자세를 유지하려는 그들도, 목젖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긴장 때문에 침이 바싹바싹 말라 가는데도, 이상하게 자꾸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을 긴장하게 만든 원흉이 지금 막 플랫폼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사람이 뛰는 것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열차는 천천히 백금산 역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짙은 녹색 바탕에, 창문 아래로 노란색 줄무늬가 그어진 DF-0001, 속칭 1호 열차가 천천히 백금산 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전체 17량이나 되는 열차는 그 느린 속도 때문에 멈추는 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때까지 플랫폼에 도열한 모든 사람은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열차가 멈추자 거의 몇몇 객차에서 문이 열리며 흑색의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빠르게 하차해 플랫폼에 도열했다.

군복도, 체격도, 분위기도, 미리 도열해 있던 북한 군인들하고는 확연히 다른 그들은 빠르게 열차에서 내려 열을 맞춰 섰다.

마치 의장대처럼 줄 맞춰 서는 연습을 수도 없이 반복한 의장대처럼, 그들은 빠르게 완벽한 줄을 이루었다.

17량의 객차 중, 중간쯤에 있는 객차는 그들이 전부 도열할 때까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새롭게 내린 군인들이 도열하고, 목젖조차 움직이지 않는 부동자세로 대기하고 몇 분이 지나서야, 중간 객차의 문이 열렸다.

일명 1호 객실, 또는 태양실이라고 불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전용 객차의 문이 열린 것이다.

문이 열리자 부동자세로 도열해 있던 북한군은 물론, 귀빈을 마중하기 위해 나온 고위 인사들도 몸에 힘을 주었다.

짧은 머리의 중년 남자가 제일 먼저 모습을 보였다. 짧은 머리의 중년 남자는 객차에서 내려서 말없이 객차 문 옆에 섰다.

마치 경호를 서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뒤로 백발의 남자가 두 번째로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정치국 후보 위원이며, 철도성참모장을 거쳐 2004년 내각 부총리에 오른, 북한 정치서열 20위 임기웅 내각 부총리가 모습을 보였다.

객차에서 내린 부총리도 대기하고 있는 고위급 인사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도 처음 내린 짧은 머리의 중년 남자와 마찬가지로 문 옆에서 멈추어 섰다.

세 번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감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객차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런 그를 부총리가 깍듯하게 맞이했다.

어두운 밤,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에서도 세 번째 남자의 특징은 확연하게 드러났다.

높고 좁은 코, 은발이 섞인 금발의 머리카락,

중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얼굴은 확연한 코카서스 인종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가 내리자 플랫폼에 도열하고 있던 고위급 인사, 북한 정무원 원자력총국 산하 181지도국 38연구소 소장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농축 우라늄을 만들기 위해서 필수적인 원심분리기를 북한에 제공한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외국인에게 다가갔다.

임기웅 부총리의 소개로 악수하는 외국인과 연구소장을 짧은 머리의 중년 남자는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직할 535 특수작전대대 정찰대를 이끄는 서용석 특무상사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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