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37화 (138/386)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0) >

2006년 11월 20일.

함경북도 단전군 덕만산.

백금산역 동쪽 63km. 정찰지점 남동쪽 0.4km

한규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보여야 할 불빛이 보이질 않았다.

한규호는 안성종 상사를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장비를 통해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한규호는 안 상사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 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박종연 중사도 한규호와 다를 바 없었다.

스코프와 안성종 상사를 번갈아 보던 그는 한규호를 돌아보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

‘보여?’

한규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환청?

침투 팀 요원들에게 환청은 생각 외로 흔한 경험이었다.

작전이 시작되면 일반인들은 감당할 수 없는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그들의 정신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감각을 날카롭게 유지하기 위해 신경에 과부하가 걸리고, 신경전달물질이 과도하게 분비되면서 뇌가 착각을 일으키고는 했다.

그래서 침투 팀 요원들의 행동 교범에는 의심하는 절차가 포함되어 있었다. 보이는 것이, 들리는 것이 실체하는 것인지 의심하도록 훈련받았다.

환각이나 환청은 비단 작전 중에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다. 작전이 끝나고 복귀하고 나서도, 며칠 동안은 날카롭게 서 있는 감각 때문에 환청을 듣고는 했다.

심하면 은퇴를 하고 나서도 지속되는 환각 환청에 고통받는 선배들도 있었다.

침투 팀원들의 직업병이었다. 그들은 자조적으로 ‘정보사의 진폐증’이라고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 들리는 소리는 환청이 아니었다. 한규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세 사람이, 그것도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세 명의 특수부대 요원 세 명이 동시에 환청을 들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실재한다고 보아야 했다.

한규호는 다시 한번 철길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열차는 분명히 있다. 분명히 오고 있다.

“온다.”

그동안 아무 말 없던 안성종 상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한규호와 박종연은 그 말에 빠르게 안 상사를 보았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는 장비가 가리키는 방향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향을 맞추었음에도 한규호는 여전히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야시경의 녹색광은 여전히 그동안 보였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함경북도 산악 지대의 황량한 모습만 비추고 있었다.

안 상사가 온다고 했다. 그가 열차를 보았다는 말이다.

그는 진짜 열차를 보았을까?

한규호는 몇 시간 전 안 상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계속 들리는 것이 없는지를 물었다.

확실했다.

그때는 들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만약 당시에 그가 무언가를 들었다면, 그것은 환청이었을 것이다.

몇 시간 전 안 상사가 헛것을 들었다면, 지금 그가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한규호에게 들리는, 그리고 점점 커지는 열차 소리가 안 상사가 헛것을 듣고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옵니다.”

망원 스코프로 같은 방향을 보고 있던 박종연 중사가 말했다.

세 사람 중 둘이 보았다. 이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 한규호는 열차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이 유일하게 망원 기능이 없는 야시경으로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 한규호는 시선을 더 멀리 향했다.

그래도 한규호의 눈에는 보이질 않았다. 보여야 할 기관차의 전조등 불빛이 그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하이 빔이라고 부르는 자동차 전조등 상향등의 가시거리가 1백 m 내외였다.

그 말은 그 전조등 불빛으로 1백 m 밖에 있는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체가 생물인지, 무생물인지, 생물이라면 사람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한편 전조등에는 전방 식별 이외에 다른 기능도 포함되어 있다. 차량의 위치를 알려 주는 기능이 그것이다.

여기 자동차가 있다. 자동차가 달려가고 있으니 조심해라.

그런 경고 메시지를 알려 주는 기능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1km 밖에서도 차량의 전조등은 보였다.

열차에 사용되는 전조등은 더 높은 밝기가 요구됐다.

차량보다 무게도, 제동 거리도, 그리고 충격할 때에 발생할 피해도 월등히 높은 열차이기에, 열차 전조등은 차량보다 몇 배는 더 긴 가시거리와 인식 거리가 요구됐다.

오히려, 식별보다, 위치를 인식시켜 주는 경고의 기능으로서 높은 밝기가 필요했다.

문제는 지금 한규호만 열차의 전조등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안 상사도, 박 중사도 열차를 발견했는데, 유독 그의 눈에만 그 전조등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한규호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청각과 시각의 불일치는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귀에는 들리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면, 신체는 불안감을 느끼고 신체 활동을 높인다.

무엇보다 한규호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이다.

귀에는 들리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의미였다.

소리는 열차가 거의 근처까지 다가왔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소리로 판단했을 때 열차는 1km 안쪽으로 접근했음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그 망할 놈의 불빛이 한규호에게만 보이지 않았다.

X발.

한규호는 속으로 욕을 했다. 보이지 않는 전조등에, 그리고 자신만 보지 못하는 미숙함에.

그 순간 그의 눈에 열차의 모습이 들어왔다.

“X발.”

불빛을 찾던 한규호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드디어 보았다.

마침내 보였다.

북쪽에서, 열차 한 대가 철로를 따라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 드디어 그의 눈에 보였다.

열차는 전조등을 켜지 않고 있었다.

***

선두에 선 기관차의 모든 전등은 꺼져 있었다.

기관차뿐만 아니라, 뒤따르는 객차에도 불빛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야심한 새벽, 산길 철로를 달리는 열차는 마치 유령열차처럼 불빛 하나 없이 천천히 철로를 따라 움직였다.

한규호는 야시경을 벗어 보았다. 그러자 짙은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야시경을 쓰면서 자신의 멍청함에 욕을 퍼부었다.

편견이다.

야간열차는 전조등을 켰을 것이라는 편견이 그의 시야를 좁게 만들었다.

열차라는 본질보다, 불빛이라는 부차적인 요소에 집착했기 때문에, 그가 가장 늦게 열차를 알아챈 것이다.

씨발. 나중에 생각하자.

한규호는 자책하려는 마음을 재빠르게 지웠다.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반성은 나중에 하면 된다. 지금은 우선 눈앞에 열차에 집중하자.

한규호는 다가오는 열차를 분석했다.

불빛 하나 없는 이 열차가 회송(回送) 열차일까? 영업 운전이 아닌, 공차 상태로 이동하는 열차일까?

그렇다면 객차에 불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 설명됐다.

그러나 회송 열차라고 해도 기관차의 전조등까지 끈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기관차가 4백 m까지 다가왔다. 진도 팀 매복지에서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지점을 통과했다.

기관차에 이어 객차들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한 속도로 그들 앞을 스쳐 지나갔다.

한규호는 몇 량의 객차가 연결되었는지 세기 시작했다.

의식해서 한 행동이라기보다, 그저 세심하게 관찰하는 침투 팀 요원의 습관이었다.

객차가 상당히 많이 연결되어 있었다.

천천히 나아가는 열차 속도 때문에 객차는 유독 많게 느껴졌다.

17이라는 숫자를 끝으로, 모든 객차는 천천히 진도 팀 앞을 지나쳐 갔다.

그리고 다른 진도 팀이 정찰을 하는 백금산역 방향으로 향해 조금씩 멀어졌다.

가장 가까운 지점을 통과할 때, 온 천지를 진동했던 열차 소리도 점점 멀어져 갔다.

“몇 량?”

안성종 상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열일곱.”

박종연 중사가 말했다.

“열일곱입니다.”

조금 뒤늦게 한규호가 말했다.

안 상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들고 있던 감시 장비를 본래 주인인 박종연 중사에게 넘겼다.

그리고 말했다.

“이동한다. 준비하도록.”

한규호는 순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임무는 철로를 정찰하고, 열차들이 이곳을 지나다니는지, 지나다닌다면 40시간 동안 몇 대의 열차가 어떠한 빈도로 오가는지를 확인하는 임무였다.

이제 고작 열차 한 대가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동한다고? 벌써?

그런 의문과는 별개로 한규호는 재빨리 위장포에서 몸을 빼냈다.

임무와 관련된 지시가 내려오면 따른다. 그것은 비단 진도 팀뿐만 아니라 군인이라면 모두가 지켜야 할 사항이었다.

한규호는 최대한 소음 발생을 자제하면서도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늘어놓은 장비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레펠용 로프를 회수하고, 흔적을 지우고 하려면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밤이 많이 지나 있었다.

어디까지 이동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일출 전까지 최대한 많이 이동하려면 빠르게 준비하는 것이 선결 조건이었다.

그렇게 분주하게 준비를 하면서, 한편으로 안 상사가 이렇게 무리하게 이동을 지시한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고작 한 대의 열차만 확인했을 뿐인데.

“준비하면서 듣도록.”

안 상사가 말했다.

“애초 진도0과 합류 지점이었던 다음 포스트로 이동한다. 선두에는 내가, 후미에는 진도3이 선다. 일출 이후에도 가능하다고 판단이 되면 이동을 계속한다. 다음 포스트에 도착하면 일몰 이후 진도0을 마중 나간다.”

열심히 군장을 꾸리던 한규호와 박종연이 동시에 안 상사를 돌아보았다.

마중 나간다?

진도0을 기다리지 않고, 그들이 있는 쪽으로 나아간다고?

“지금 이동하면 22시간 정도를 아낄 수 있다. 합류 포스트에서 8시간 마중 나가고, 만나지 못하면 12시간 대기한 다음, 애초 합류 시간에 맞춰 다시 합류 포스트에 당도한다. 질문?”

두 사람은 당연하게도 질문이 있었다.

애초 작전계획과 달리, 갑자기 이렇게 급하게 이동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해가 뜨고도 가능하면 이동한다고?

정말 위급한 비상 상황이 아니고서야 시행하지 않는 주간 이동까지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고작 열차 하나를 보았을 뿐인데, 그 열차에 어떤 의미가 있기에?

하지만 질문하지 않았다.

지금 이 팀에서 판단하는 사람은 진도5 안성종 상사였고, 다른 둘의 임무는 판단이 아니라 진도5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알아야 하는 사항이 있다면 알려 줄 것이다.

한규호는 군장을 꾸리면서 혹시나 박종연 중사가 대신 물어봐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평소 헛소리를 입에 달고 살지만,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것을 아는 박종연 중사는 말없이 장비를 챙기고만 있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군장을 꾸리고 이동 준비를 마쳤다.

한규호의 심장박동이 약간 빨라졌다.

급하게 몸을 움직여서가 아니라, 알 수 없는 지금 상황에 긴장이 되어서, 그의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긴장이 아니라 불쾌감 때문인 것은 아닐까?

모든 준비가 끝났음에도 안 상사는 출발하지 않았다.

잠시 서서 두 사람, 한규호와 박종연을 바라보았다.

“태양호.”

안 상사가 입을 열었다.

태양호? 무슨 소리지?

한규호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1호 열차입니까?”

박종연 중사가 되물었다.

“그렇게 의심된다.”

안 상사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박종연이 말했다.

그제야 안 상사는 발을 옮겼다.

한규호도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태양호. 속칭 1호 열차.

인식 번호 DF-0001.

중차청도사방궤차차량고빈유한공사에서 제작한 DFH3 기관차를 수입해 평양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에서 특별 개조한 김정일 전용 열차.

지금 자신들의 눈앞 4백 m 지점을 지나간 열차가 김정일의 전용 열차인 태양호로 의심된다고 안 상사가 말한 것이다.

그들이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단 세 음절의 단어 하나로 설명한 것이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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