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34화 (135/386)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7) >

2006년 11월 19일.

함경북도 단전군 덕만산.

백금산역 동쪽 63km. 정찰 지점 남동쪽 0.4km.

자정이 되기 전 진도5 안성종, 진도2 박종연, 그리고 진도3 한규호는 목표한 좌표에 도착했다.

직전 숙영지에서 4시간밖에 떨어지지 않은 장소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48시간가량을 보낼 것이다.

1960~70년대 초창기 대북 작전 당시 침투 팀은 북한 땅을 밟으면 그다음부터는 현장 지휘관의 감으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했다.

더 나아갈지, 멈출지, 멈춘다면 어디서 멈출지, 얼마나 멈출지 등등을 말이다.

당시 북한 사회는 지금보다 안정적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군기가 살아 있는 군대와, 감시체계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북한 주민들의 눈을 피해 가면서 주먹구구식으로 작전을 수행해야 했었다.

한 자릿수에 불과한 작전 복귀율이 그 열악한 상황을 증명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작전 환경은 확연하게 달랐다.

진도 팀이 숙영을 하거나, 작전을 수행하는 포스트의 위치좌표는 작전 계획이 세워질 때 이미 다 정해져 있었다.

위성 감시를 통해 파악된 북한의 지형, 부대와 가옥의 분포, 주민들의 동선은 전부 파악되어 있었고, 인공지능이 그 정보를 바탕으로 네다섯 개의 동선과 포스트, 예비 후보군을 산출했다.

이후 정보 분석 팀에서 산출된 후보군을 면밀히 검토했고, 그 이후 작전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확정된 좌표는 팀 리더에게 전달되고, 팀 리더는 그 좌표에 따라 움직였다.

지금 그들이 도달한 포스트도 동일한 절차에 의해 결정된 장소였다.

한쪽은 가파른 낭떠러지, 다른 한쪽도 완만하지 않은 경사도를 가지고 있는 산등성이.

바위와 관목 덩굴이 적당히 어우러져 있었다.

정찰 대상인 기찻길을 포함해 포스트로 접근하는 모든 것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으며, 노출되지 않는 천혜의 장소였다.

무엇보다 접근은 쉽지 않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포스트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3km 정도 떨어져 있었고, 그들이 이곳에 접근하려면 절벽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른 바위산을 오르거나, 아니면 5km를 빙 돌아오는 방법뿐이었다.

그리고 이 장소에는 그 정도 거리를 돌아와 얻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같은 천혜의 정찰 장소에 도착한 팀원들은 군장을 한곳에 모으고 필요한 장비를 꺼냈다.

한규호도 배낭에서 레펠 장비를 꺼냈다.

정찰을 담당하는 진도3 임무 중에는 레펠링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규호의 군장에는 언제나 레펠 장비가 들어 있었다.

하사 시절부터 지겹도록 레펠 훈련을 받은 한규호는 작전 중 실제로 레펠 장비를 꺼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군사 작전용으로 만들어진 음영 처리가 된 특수 로프를 하강 확보 지점에 단단하게 결속한 한규호는 절벽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벼랑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야시경을 통해 파악한 암벽은 요세미티 5.11 등급 정도로 판단됐다.

지독한 훈련을 반복한 그들에게 시야가 확보된 주간이라면 큰 문제가 없을 난이도였지만, 문제는 지금이 야간이라는 것이다.

빛은 거의 존재하지 않고, 무엇보다 암벽에 대한 사전 조사가 없는 상황에서 체감 등급은 확연히 올라가게 된다.

야시경이 있다고 해도 실제 가시광선의 시감각과는 달랐다.

무엇보다 작전 레펠은 일반적인 현수하강과 달리 중간에 어떠한 지지도 하지 못했다.

그저 최상단 하강 확보 지점에만 로프를 고정한 상황에서 하강과 상승을 모두 빠른 시간 안에 해내야 한다.

그렇다고 철도를 조사하기 위해 후방으로 5km를 돌아가는 것보다 절벽을 빠르게 내려갔다 올라오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기에, 진도 팀은 아무런 고민 없이 레펠을 선택한 것이다.

“잠시 대기.”

갑자기 안성종 상사가 말했다.

결속된 로프를 막 절벽 아래로 내리려던 한규호는 그의 말에 동작을 멈추었다.

북쪽을 바라보는 안성종 상사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말이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안성종 상사는 한규호에게 물었다.

“들리나?”

들리냐고? 갑자기 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지?

한규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들리는 것이 없었다.

안성종 상사는 박종연을 바라보았다.

박종연도 고개를 저었다.

11월의 함경남도 산자락에서는 그들이 움직이는 소리 이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계속 진행하지.”

안성종 상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정찰 준비를 계속할 것을 명했다.

한규호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레펠용 로프를 아래로 천천히 늘어트렸다.

미리 파악하지 못한 지형에서 감만으로 로프를 끝까지 내린 한규호는 군장에 하강기를 장착했다.

그리고 하강기에 로프를 걸었다.

“아니, 내가 먼저 내려가지. 무전기 켜 놓고 있도록.”

안성종 상사가 말했다.

작전 계획대로라면 진도3인 한규호가 먼저 내려가서 안전을 확보해야 했다.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필요하다면 다음 팀원이 내려오는 것이 정식이었다.

그런데 안성종 상사는 자신이 먼저 내려간다고 이야길한 것이다.

한규호는 말없이 하강기에 연결된 로프를 풀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러나 안성종 상사는 하강기에 로프를 걸고 주저 없이 절벽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안 상사가 내려오라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대기해야 하는 한규호는 혹시나 싶어 다시 한번 하강 확보 지점을 확인하려고 몸을 돌렸다.

그런 한규호를 박종연이 손짓으로 불렀다.

한규호는 하강 확보 지점, 즉 로프를 결속한 바위에 별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박종연에게 다가가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왜 저래? 불안하게?”

박종연이 작게 속삭였다.

“모르죠.”

한규호가 말했다.

박종연은 불안하다고 표현했다. 그 표현이 지금 가장 정확했다.

한규호는 불안했다.

브리핑을 받던 그 순간에 느껴진 불쾌한 기분이 계속 남아 있는 가운데, 안성종 상사의 평소와 다른 행동이 그 불쾌한 기분을 증폭시켰다.

증폭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불안함이라는 익숙지 않은 감정으로 전환시키고 있었다.

“들리냐니, 뭔 소리지? 뭐 들려? 들리는 거 있어?”

“없……는 것 같은데…….”

한규호는 다시 한번 청각에 집중했다.

그러나 여전히 들리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안성종 상사가 하강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짜 사람이 아닌 건가, 저 괴물은…….”

박종연은 괴물이라는 말을 할 때 평소보다 더 소리를 낮춰 말했다.

“뭐 안 상사님이 괴물이면…… 우리에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한규호가 애써 기분을 바꿔 가며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지. 아무튼 노인네, 괜히 사람 불안하게 말야. 그건 그렇고 그 소린 뭐야?”

“뭐 말입니까?”

“직감 어쩌고 하던 거.”

박종연 중사가 물었다.

출발 전 안성종 상사가 한규호에게 물었던 질문의 배경을 그는 모르는 것 같았다.

사실 모르는 게 당연했다. 안성종 상사가 한규호의 직감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라고는 한규호도 몰랐다.

“뭐, 그냥. 그거죠. 느낌이 어떠냐, 그런 거?”

한규호가 대충 얼버무렸다.

한규호는 야시경에 가려진 박종연 중사의 눈이 거짓말 하지 말라는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말할 수 없으면 어쩔 수 없고.”

진도 팀 내에서는 상하가 없다. 각자가 각자의 직분에 최선을 다할 뿐.

박종연 중사가 한규호보다 짬밥을 더 많이 먹었다고 해서 억지로 말하게 하거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 기찻길 이야기는 또 뭐야?”

박종연이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러게요. 그건 진짜 모르겠는데. 무슨 의민지.”

한규호가 말했다.

“진짜?”

박종연이 물었다.

“뭐…….”

한규호는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며 말을 흐렸다.

“나중에. 작전 끝나고 술이나 한잔하면 그때 이야기합시다. 지금 뭐 말해 봤자 좋을 것도 없고, 수다 떨 타이밍도 아니고.”

한규호가 그렇게 대충 마무리했다.

“하긴, 수다 떨 타이밍은 아니지. 술은 네가 사라.”

“뭐…… 에휴, 그나저나 뭐 보이는 거 없어요?”

한규호는 그렇게 말을 돌렸다.

박종연은 주변에 몇 가지 장비를 깔아 놓고 있었다.

저격 총에 거치된 저격용 적외선 스코프는 물론 ENVG(성능향상형 야시경) 망원경에 휴대용 TOD(열열상장비)도 거치해놓고 있었다.

“없어.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어.”

“개미는 겨울잠 자니까 없죠.”

“이런 무식한 새끼. 개미가 곰이냐? 겨울잠 자게?”

“참나, 지금 누가 누굴 무식하다고 합니까? 개미도 겨울잠 잡니다.”

“……처음 들어 본다. 개미가 겨울잠 잔다는 이야기는.”

“겨울에 개미 본 적 있습니까?”

“있지. 나 어릴 때 겨울에 졸라 추울 때 학교 운동장에서 개미 본 적 있는데?”

“……구라 치지 마십쇼. 무슨 겨울에 개미를 봤다고.”

“어? 너 이 새끼, 지금 고참이 구라 친다고 하는 거야? 고참이…….”

틱 티티틱 티티틱 틱.

박종연이 막 짬밥을 앞세워 한규호를 갈구려고 하던 찰나, 두 사람의 무전기에서 신호가 들어왔다. 작전 속행을 의미하는 약속된 코드였다.

“고참은 무슨. 고참 대접 받고 싶으면 다른 부대 가든가.”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절벽쪽으로 걸어가 하강기에 로프를 걸었다.

박종연이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지만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작전 끝나면 보자.’ 같은 이야기였겠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

로프를 타고 낭떠러지 밑으로 빠르게 내려온 한규호는 빠르게 지향 사격 자세를 취했다.

안성종 상사가 미리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고 해도 ‘저 내려왔어요. 어디 계세요?’ 할 수는 없었으니까.

야시경을 통해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안성종 상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규호는 잠시 숨을 고른 후 천천히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갔다.

여전히 총구는 전방을 향해 있었고, 그의 손가락은 방아쇠에 걸려 있었다.

“이쪽.”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한규호는 순간적으로 긴장 상태로 몸을 돌렸다.

안성종 상사가 먼저 내려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 목소리가 안성종임을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며 총구가 그쪽으로 향했다.

“……총 치워.”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한규호는 빠르게 총구를 치웠다.

한규호는 순간적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벌써 북한을 몇 번이나 다녀왔는데 아직 이런 미숙한 모습을 보이다니.

그러나 안성종 상사는 별 상관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천천히 철길 쪽으로 걸어갔다.

한규호는 그 뒤에 바싹 붙어서 몸을 굽히고 그를 따라갔다.

절벽을 내려와 3백여 미터를 걸어간 그들은 드디어 임무 지역인 철로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한규호는 명령받은 대로 우선 철로의 상태를 조사했다.

사용하지 않는 철로라면 녹이 슬어 있다. 녹이 얼마나 슬어 있느냐에 따라 철도의 이용 빈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한규호는 장갑을 벗고 철로를 만져 보았다.

미묘한 느낌이었다. 녹이 슬어 있지 않다고도, 그렇다고 녹이 슬어 있다고도 표현할 수 없었다.

열차가 다녀간 것일까? 다녀갔다면 얼마나 전에 이 위를 지나갔을까?

철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한규호는 그저 감각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데 그칠 뿐이었다.

“침목을 살펴봐.”

안성종 상사가 말했다.

한규호는 철로에서 손을 떼고 그 밑에 깔린 침목을 보았다. 일반적인 나무 침목처럼 보였다.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한규호가 안성종 상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 상사는 장갑을 벗고 침목을 만지고 있었다.

“만져 봐.”

안 상사가 다시 말했다.

한규호는 오른손을 뻗어 침목을 만졌다. 그리고 이질감을 느꼈다.

나무의 질감이 아니었다.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차가운 느낌은 나무라기보다는 시멘트에 더 가까웠다.

“시멘트?”

한규호가 안성종 상사에게 물었다.

“콘크리트.”

안성종 상사가 답했다.

한규호는 북한을 오고 가면서 많은 철길을 지나왔지만 단 한 번도 콘크리트 침목을 보지 못했다.

갈라지고 비틀리고 금간 나무 침목이 대부분이었지, 이렇게 단단한 콘크리트 침목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한규호는 침목 밑에 있는 자갈을 집어 들었다. 여기저기 모난 자갈의 상태가 양호했다.

깔아 놓은 지 오래된 자갈들은 열차 진동에 따라 모난 부분들이 조금씩 마모되면서 조금씩 구 모양에 가까워져 간다.

그런데 지금 그의 손에 들린 자갈은 자갈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사실을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이 철로는 정비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7)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