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6) >
2006년 11월 19일.
함경북도 단전군 덕만산.
백금산역 동쪽 59km. 정찰 지점 남동쪽 11.5km.
정보사 직할 대북 작전 팀에게는 작전 중 수면이 허용되지 않았다. 작전에 돌입하고, 회수 팀을 만나 복귀하기 전까지 그들은 잠을 잘 수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이었고, 사람에게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뇌에 휴식이 필요했다. 일반인들이 ‘수면’이라고 부르는 휴식이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투 명상’을 취했다.
10분 내외의 쪽잠을 그렇게 표현했다.
한규호는 하사 시절, 특수정보요원 교육을 받던 ‘새끼 요원’ 시절에 전투 명상 방법을 배웠다. 악명 높은 ‘명상의 보름’ 훈련을 통해서 몸에 익혔다.
처음부터 특수정보부사관으로 입대했거나, 아니면 다른 특수부대에서 선발된 정예병들이 새끼 요원이라는 명칭을 달고 1년여간 정보사 특수 팀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그 지옥 같은 교육의 마지막 관문이 바로 ‘명상의 보름’이었다. 전투 명상이라고 부르는 10분 이내의 토막잠을 자면서 보름을 버텨 내는 것이었다.
3백 명으로 시작된 정보사 특수 팀 교육은 지옥 같은 1년을 거치면서 서른 명 가량으로 추려진다.
그렇게 추려진 서른 명가량이 강원도 한 산골짜기에서 2주, 정확히는 15일 동안 ‘명상의 보름’을 보냈다.
해병대나 특전사의 지옥주 훈련과는 달랐다.
음식을 제한하고, 체력적으로 한계까지 끌고 가면서 4~5일가량 잠을 재우지 않는 지옥주 훈련과, ‘명상의 보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교관이었다.
지옥주 훈련 교관이 잠을 자지 못하도록 괴롭히고, 억지로 깨우지만, 정보사 교관들은 훈련 그저 잠든 새끼 요원 옆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새끼 요원 한 명당 세 명씩 24시간 3교대로 일대일 전담 마크를 하는 교관들은 그저 새끼 요원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다 그들이 잠들면 스톱워치를 꺼내 시간을 재고, 10분이 넘어가면 새끼 요원을 탈락시켰다.
새끼 요원들은 그 보름 동안 평소와 똑같은, 오히려 더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점호를 하고, 가볍게 구보를 한 다음, 평소보다 잘 나오는 아침밥을 먹고, 오전 훈련, 그동안 받았던 훈련보다 훨씬 강도가 약해진 훈련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평소보다 더 풍성해진 점심을 먹고, 더 쉬워진 오후 훈련을 받고, 취사병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저녁을 먹고, 저녁 점호까지 막사에서 휴식을 취했다.
샤워를 하든, 누워서 TV를 보든, 책을 보든, 빨래를 하든, 모든 것이 가능했다. 오직 10분 넘게 잠을 자는 것을 제외하고는 영내에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었다.
저녁 점호를 마치면 아침 기상 시간이 되기 이전까지 새끼 요원들에게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불침번이나 야간 경계 근무도 없었다.
그 생활을 보름간 버텨 내는 것이 그 악명 높은 ‘명상의 보름’ 훈련이었다.
훈련이 시작되고 5일까지 단 한 명의 탈락자도 없었다.
가끔 아슬아슬하게 탈락 직전까지 가는 새끼 요원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건 육해공 3군을 통틀어, 추리고 추려 낸 정예병들은 어떻게든 5일까지 버텨 낼 수 있었다.
명상의 15일을 기획한 사람이 악마 같다는 평가를 듣는 가장 큰 이유는 주말 휴식을 강제했다는 것이다.
토요일이 되는 6일째 새끼 요원들에게 휴식을 부여했다. 말 그대로 강제로 쉬게 만들었다.
그 토요일에, 새끼 요원의 70%가 탈락했다.
1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사람이 견뎌 내기 힘든 훈련을 버텨 낸 그들이, 고작 토요일 오후의 지루함과 햇살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살아남은 30%, 열 명 중 한명이었던 한규호는 그 고통스러웠던 주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영하 18도의 추위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얼어붙은 계곡 위를 12시간 동안 기어가는 것보다 그 주말을 버텨 내는 것이 더 힘들다고 생각했으니까.
주말을 버텨 낸 후, 한규호는 감각을 잃어버렸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시간 감각은 물론, 시각이나 청각에 이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환각을 보고 환청을 들었다.
멍한 상태로 앉아 있는 자신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경험을 하고, 10년 전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1분 전 들었던 말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면서 그는 끝까지 버텨 냈다.
그 해 ‘명상의 보름’을 통과한 두 명 중 한 명이 한규호였다.
그리고 그 지옥 같은 시간을 버텨 낸 덕분에 그는 전투 명상을 완벽하게 몸에 익혔다.
한규호는 해가 만드는 산 그림자가 아직 남아 있는 시간에 명상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몇 번이나 명상에 들고 깨고를 반복하면서 낮 시간을 보낸 한규호의 몸은, 이제는 충분하다는 신호를 그에게 보냈다.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더 이상의 전투 명상은 필요 없을 것 같다고 그에게 말했다.
한규호는 하늘을 보았다.
어둠이 짙게 하늘을 덮고 있었지만, 서쪽에는 수묵화의 담묵 같은 빛이 남아 있었다.
완전히 의식을 되찾은 한규호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위장포 아래에 엎드린 그 자세로 점점 옅어져 가는 빛을 보고 있었다.
“일어났나?”
한규호의 귀에 진도5 안성종 상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규호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문제가 없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몸을 일으켰다.
위장포를 깔고 앉아 총기를 점검하고 있는 안성종 상사가 보였다.
“……편히 쉬셨습니까?”
한규호는 그런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도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히 쉬었냐고? 안성종 상사는 오늘 새벽 목적지에 도착해서 한규호와 박종연이 칼로리바를 다 먹고, 잠복 준비를 마치고 위장포 아래 들어갈 때까지 추가로 지역을 정찰했다.
최소 30분은 더 산악 지역을 정찰하고 온 것이다.
가장 마지막에 전투 명상에 들어간 것도 그였고, 그리고 가장 일찍 명상에서 깬 것도 그였다.
안성종 상사는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분해된 총의 먼지를 닦아 내고 있었다.
-뭐가 더 무섭냐? 북한이 무섭냐? 아니면 진도5를 맡고 있는 저 노인네가 더 무섭냐?
오늘 새벽, 박종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 괴물이 더 무섭다.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철길에서 놀아 본 적 있나?”
안성종 상사가 말했다.
“네?”
한규호가 되물었다.
작전에 관련된 사항이 아니면 일절 말을 하지 않는 안성종 상사가 작전과 상관없는 말을 건넨 것을 본적이 없었다.
적어도 한규호가 진도 팀에 들어온 이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철로 위를 걷거나, 철길에 깔아 놓은 자갈 중에서 이쁜 놈을 찾는다거나, 찾은 자갈을 철로 위에 올려놓는다든가.”
안성종 상사는 먼지를 털어 낸 부품을 하나하나 조립하기 시작했다.
“……철길 위를 걸어 본 적은 있습니다.”
“팔을 벌리고.”
얼마나 분해와 조립을 반복했는지, 조립하는 그의 손길에 주저함이 없었다.
“두 팔을 벌리고, 균형을 잡으면서.”
“네, 뭐. 그런 식이었죠,”
“그러고 놀 때 열차는 오지 않았나?”
한규호는 오늘 따라 안성종 상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특히 작전과 관계없는 말들을 말이다.
“……기억에 없습니다, 열차는.”
한규호는 그렇게 답하고 박종연 중사를 슬쩍 보았다.
언제 명상을 끝냈는지 어느새 대화하는 둘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군.”
안성종 상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입을 닫았다.
‘왜 저래?’
박종연 중사가 입모양으로 한규호에게 물었다.
한규호는 모르겠다는 의미로 어깨를 살짝 으쓱한 후 위장포를 천천히 말았다.
박종연 중사도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위장포를 말기 시작했다.
“한규호.”
안성종 상사가 한규호의 이름을 불렀다.
진도3이 아니라 한규호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그것도 처음이었다.
“네.”
한규호가 답했다.
“뭐라고 하던가?”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네?”
“네 직감이 뭐라고 하던가?”
한규호는 등골에 찌릿한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
박종연 중사가 무슨 말이냐는 의미를 담아 다시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한규호는 놀란 얼굴로 안성종 상사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안성종 상사는 자신의 총을,
한규호는 그런 안성종 상사를,
박종연 중사는 안성종 상사를 바라보는 한규호를 바라보면서, 세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좋지…….”
한규호가 말했다.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규호는 자신이 진도 팀 팀원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체력적으로, 전투 기술로도 군인으로서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은 했지만, 진도 팀의 괴물들과 비교해 특출하다고 말할 만큼의 무언가는 없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작전사에서 자신을 진도 팀에 배속한 이유가 육감 때문이라는 것을 한규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한규호에게는 유난히 특출한 무언가가 있었다. 직감이라고 사람들이 부르는 그것이 있었다.
집에 가려면 도로를 건너야 하는데 파란불이 켜졌음에도 건너고 싶지 않다거나 그런 것들 말이다.
단순히 어린아이의 변덕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었다.
만약 한규호가 건너고 싶지 않은 마음을 무시하고 길을 건넜더라면 브레이크 파열로 횡단보도롤 덮쳐 온 덤프트럭에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규호는 무언가 내키지 않는 마음이 들 때, 그것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특수정보부사관 훈련 과정 중, 한규호가 론 울프 테스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도 그의 그러한 직감 덕분이었다.
진도0 이규철 대위는 한규호가 그 직감을 특기로 진도 팀에 배속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팀 리더니까.
그런데 안성종 상사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비과학적인, 계측할 수 없는 육감에 대해 안성종 상사가, 저 괴물이 질문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언제부터.”
안성종 상사가 물었다.
“어제부터……입니다.”
한규호가 대답했다.
어제 새벽, 팀을 두 개로 분할하기 바로 직전, 이규철 대위가 작전명령을 하달할 때, 팀을 두 개로 나눠 백금산 폐광과 북쪽 철도 통과 지점을 조사한다고 브리핑을 할 때, 그 불길한 느낌이 한규호의 등골을 스쳤다.
한규호는 애써 그 생각을 무시했다.
한규호는 군인이었고, 그래서 명령에 따라야 했다. 거기에 하고 싶지 않다는 그 느낌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저 팀을 나눈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인지, 아니면 진짜 위험이 찾아오는 것에 대한 경고인지를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잠자코 있었다.
“그런가.”
안성종 상사는 한규호의 답에 관심도 없다는 듯 다 조립한 총을 눈에 가까이 가져가 살펴보면서 말했다.
한규호는 안성종 상사가 평소와 이상한 행동을 보이자 다시 한번 등골이 찌릿해지는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다 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자정이 되기 전에.”
안성종 상사가 탄창을 결합하면서 말을 꺼냈다.
“목표 지점에 도착하면 거기서 바로 정찰 작전을 시행한다. 진도2가 저격 위치를 잡고, 진도3은 나와 함께 철도 환경을 조사한다. 조사가 끝나면 다시 진도2와 합류 후, 44시간 동안 열차 이동 상황을 관찰하고, 다음 포스트로 이동한다.”
안성종 상사가 말했다. 한규호와 박종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