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32화 (133/386)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5) >

2006년 11월 19일.

함경북도 단전군 덕만산.

백금산역 동쪽 59km. 정찰지점 남동쪽 11.5km.

장산에서 안대산으로 연결되는 산 지류 중 한 곳에서 한규호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어제 새벽 진도 팀은 두 개로 나뉘었고, 한규호는 진도2 박종연 중사와 함께 진도5 안성종 상사의 팀에 배속되었다.

이규철 대위의 팀은 그대로 계속 서쪽으로 이동해 백금산이라는 역의 시설 및 경계 병력 배치 상황을 파악하고, 한규호가 속한 팀은 북쪽으로 이동해 철도 환경을 조사하게 된다는 것을 어제 새벽 브리핑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일단 여기.”

한쪽 무릎을 꿇고 GPS를 확인한 안성종 상사가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정찰 지점까지 약 11km. 여기서 낮을 보내고, 일몰이 되면 이동한다.”

그 말에 박종연 중사가 군장을 내려놓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듯 앉았다.

한규호도 밤새도록 그의 어깨를 짓누르던 군장을 내려놓았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 앉지는 않았다. 안성종 상사가 아직 서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둘러보고 올 테니 매복 준비를 하고 있도록.”

그 자리에 자신의 군장을 내려놓은 안성종 상사는 그렇게 말하고 산등성이를 오르기 시작했다.

한규호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초라하고 쓸쓸하고 적막하다고 해도, 그래서 조금 덜 긴장한다고 해도, 이곳은 북한 땅이었다. 적지 한가운데 였다.

적지 한가운데에서 팀 하나를 이끌고 밤새도록 20km를 넘게 걸어왔는데, 안성종 상사는 피곤하지도 않은지 조금 더 돌아보겠다고 주변 정찰을 떠난 것이다.

팀에서 체력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규호도 며칠 동안 계속된 야간 행군으로 피로가 쌓이는 것이 느껴졌는데,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안성종 상사는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럽게 다시 주변 정찰을 떠난 것이다.

“저 노인네는 지치지도 않나?”

어느새 다가온 박종연 중사가 한규호에게 속삭였다.

그의 말에 한규호는 피식 웃었다.

“왜 웃어?”

“뭐…… 밥이나 먹읍시다.”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아 군장을 뒤져 그 맛대가리 없는 칼로리바를 다시 꺼냈다.

“왜 웃냐고, 인마.”

박종연 중사가 한규호에게 바싹 다가와 물었다.

“의식적인 겁니까?”

“뭐가?”

“그냥 헛소리할 때는 작전지역임에도 그렇게 크게 말하면서, 안 상사님 험담할 때는 속삭이는 거.”

그 말에 박종연 중사는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하더니 씩 웃었다.

“뭐가 더 무섭냐?”

“네?”

“북한군이 무섭냐? 아니면 진도5를 맡고 있는 저 노인네가 더 무섭냐?”

진도5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

“북한 놈들 만나면 그냥 목 따고 튀면 되지만, 저 괴물 같은…… 아니지, 저 괴물에게선 도망도 못 갈 거야. 그러니까 당연히 목소리를 낮춰야지.”

그렇게 말하고, 혹시나 들릴까 싶어서 다시 주변을 살피는 박종연 중사를 보면서 한규호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괴물 중에서도 괴물이 모인다고 하는 작전사령부 침투 팀에서도 진도5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분명했다.

거기에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체력적으로 괴물이 되어 가는 특수부대원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못 먹어 깡마른 북한군보다 안성종이라는 저 괴물이 더 무서운 존재임은 분명했다.

확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안성종 상사가 네 개 침투 팀 현직 팀원 중에서 가장 쌀밥도, 짬밥도 많다고 들었다.

일반적으로라면 후방에서 교관이나 맡을 경력인데 아직 필드에서 뛰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가 가장 괴물이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었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박종연도 그 괴물 중 하나였다.

SART(탐색구조비행전대) 출신에 TCCC 전문 요원이면서, 또한 작전사 내에서 가장 월등한 저격 실력을 가진 괴물이니까.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박종연의 실없는 농담이 허용되는 이유는 이곳이 괴물들이 모인 팀이었기 때문이다.

진도 팀은 실력으로는 어디 가서도 빠지지 않는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인 곳이었고, 팀원 개개인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되 그 외에 사항에 대해서는 서로 관여하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최고의 병력에 대한 그들 스스로의 예우라고 할까?

“쉽게 말해, 작전 중에 폭탄을 안고 가서 죽으라고 하면 군말 없이 가서 죽어야 하지만, 작전 아닌데 고참이라고 전투화 닦으라고 하면 X이나 까 잡수라고 가운데 손가락을 펴 주라는 말이지.”

진도 팀에 배속되고 한참이 지나, 한밤중에 술 먹자고 한규호를 불러낸 박종연 중사가 너도 이제는 팀원이 되었으니 알 때가 되었구나 하며 해 준 이야기였다.

작전에 관해 명령에 절대 복종, 그 이외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 어쩌면 이 나라에서 가장 미국식 군대라고 할 수 있었다.

칼로리바를 다 먹은 박종연 중사가 군장을 풀고 장비를 꺼내고, 매복을 준비하면서 완벽하게 주변 경관에 녹아드는 위치를 단번에 잡는 것을 보면서 저 괴물이 농담을 하게 계속 두는 이유는 그 또한 괴물이기에 가능하다고 한규호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뀨, 이번에 느낌이 싸하지 않냐?”

적당히 준비를 마친 박종연 중사가 한규호에게 다가오면서 물었다.

“뭐가 말입니까?”

“이거, 핵이잖아.”

그 말에 한규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까라면 까는 게 우리 일이긴 하지만 핵이라면 저놈들도 목숨 걸고 지키고 있을 텐데, 느낌 싸하단 말이지. 그나저나 이거 푼돈 받고 하자니 속 쓰린데.”

“푼돈이고 떼돈이고 뭐 어쩝니까. 가서 특별수당이라도 달라고 징징거린다고 들어줄 본부도 아니고.”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며 위장포를 꺼냈다.

“야, 뀨, 너 혹시 독립 요원이라고 들어 봤냐?”

군장에서 위장포를 꺼내 위치를 잡던 한규호는 박종연 중사를 돌아보았다.

독립 요원? 들어 본 적 없는 단어였다.

“뭡니까, 그게?”

“나도 어디서 들었는데, 독립 요원이라고 해서. 그 특수부대 나온 사람들 중에서 의뢰받아서 이런 일 해 주는 사람들 있다고 카더라.”

“이런 일?”

“침투, 정찰, 암살, 저격, 미행, 경호 뭐 그런 거.”

“그거 그냥 용병 아닙니까?”

한규호가 말했다.

그도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미국 델타포스나 데브그루 출신들은 전역하고 블랙워터 같은 PMC에 비싼 계약금을 받고 용병으로 재취업한다는 이야기를.

“아니, 용병 말고. 그 뭐시냐, 블랙워터 그런 놈들하고 다르게, 독고다이로 뛴다고 하던데?”

한규호는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뭐 그래 봤자 용병이지, 뭐 다를 게 있겠습니까?”

“아니야, 다르대. 듣기로는 건당 돈을 받는데 그게 엄청 짭짤하다고 하더라고. 더군다나 독고다이니까 나눠 먹는 것도 없고.”

한규호는 피식 웃었다.

돈이라.

중사 월급이라고 해 봤자 2백만 원이 겨우 넘는다.

물론 한규호야 특수한 직책이다 보니 이런 저런 수당에, 작전사 침투 팀에게만 따로 지급되는 돈이 있기는 하다.

아마 한규호의 나이 대에서 한규호만큼 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인 직장에 다닌다는 조건에서라면 말이다.

하지만 목숨값이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직업에서 그가 받는 월 3백~4백만 원의 돈이 목숨값이라면?

타산이 맞지 않는다.

PMC에 소속된 용병들은 일반 군인보다 몇 배의 월급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월 1천2백만 원을 받는다 해도, 목숨값 치고는 적은 돈이다.

돈 때문에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돈 때문에 북한에 드나드는 것이 아니었다.

“돈 벌고 싶으면 다른 거 해야죠. 목숨 걸고 이 짓거리 하는데. 통장에 수십억 있어 봐야 죽으면 끝인데. 뭐, 마누라만 좋겠지.”

한규호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위장포를 펼치고 자리를 잡았다.

일출시까지 대략 1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그 전에 오늘 낮 동안 숙영할 마무리를 해야 했다.

단순히 위장포를 까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계 방향이나 동선을 파악하는 등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마누라도 없는 놈이.”

박종연이 투덜거렸다.

“형님도 없잖아요.”

한규호가 맞받아쳤다.

“아…… 떡치고 싶다.”

박종연이 나직하게 말했다.

***

2006년 11월 19일.

함경남도 안대산 남측 봉우리.

백금산역 동쪽 5.53km.

진도0 이규철 대위는 GPS 좌표를 확인했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었다.

뒤따르던 진도1, 진도4가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여기에서 숙영한다.”

이규철 대위의 말에 두 팀원은 고개를 끄덕인 후 군장을 벗었다.

그리고 여느 특수부대원처럼 아무 말 없이 빠르게 숙영지 위장에 들어갔다.

이규철은 그런 그들을 잠시 바라봤다.

박종연 중사가 있었으면 뭔가 너스레를 떨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너스레에 눈살을 찌푸린 적도 있었지만, 오늘은 왠지 그 너스레가 없으니 조금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둘러보고 올 테니 쉬고 있도록.”

이규철은 그렇게 말하고 산 사면을 마저 올라갔다.

그들이 숙영지로 택한 곳은 안대산 남측 봉우리의 동측 사면이었다.

백금산에서 약 5km 정도 떨어진 이곳에서 하루해를 피하면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정찰 작전에 들어가게 된다.

이규철은 약 15분 동안 산봉우리를 올랐다. 그리고 정상에 가까워지자 몸을 낮춰 포복 자세로 정상에 올랐다.

그의 눈에 인공적인 형태의 건물이 보였다.

올족리. 백금산역에서 약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일제강점기 시기 백금산 금광이 개발되면서 만들어진 탄광마을은, 오랜 기간 버려져 있다 최근 들어 다시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색을 구별할 수 없는 야시경을 쓰고 있는 이규철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건물의 지붕이 파란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작전을 하달받던 날 브리핑에서 위성 지도를 통해 본 적이 있는 건물이었다.

정보사에서는 그 건물에 대해 두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무언가를 조립하기 위한 생산 공장, 아니면 노동에 동원한 수용자들을 위한 임시 수용소.

이규철은 그 건물이 수용소가 아니라는 것을 방금 육안으로 확인했다.

수용소라면 응당 있어야 할 철조망이나 감시탑, 또는 경계 병력이 보이지 않았다.

공장도 아니었다. 공장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전기 설비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북한이 순수 인력을 동원한 가내수공업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이 험지에 저런 건물을 세웠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는 건물이었다.

그 목적을 알아내는 것은 진도 팀의 임무가 아니었다.

진도 팀이 알아내야 할 것은 위성 영상으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백금산역에 무언가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지, 있다면 어떠한 것이 숨겨져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규철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뒤로 빼냈다.

그는 그대로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다 잠시 산등성이에 앉아 있다 가기로 했다.

밤새도록 한마디 말도 못 하고 그의 뒤를 따라온 팀원들에게 잠시 시간을 주고 싶었다.

시간을 준다고 해도 그들이 박종연 중사처럼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저 묵묵히 숙영지를 구축하고, 경계 방향을 점검하고, 브리핑받은 작전 내용을 다시 떠올리면서 자신들의 임무를 복기하고 있을 것이다.

재미없는 녀석들.

그렇게 생각한 이규철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었다.

재미없기로 따지면 그가 팀 내 제일이다.

아니, 진도5 안성종 상사가 있으니 제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안성종 상사도 그처럼 주변을 파악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을까?

만약 자리를 비웠다면 박종연 중사와 한규호 중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평소처럼 시답지 않은 그런 이야기를.

이규철 대위는 그 모습을 상상하다 한규호를 떠올렸다.

한규호. 진도 팀 내에서 유일하게 다른 특수부대 경험이 없이 바로 진도 팀에 배속된 팀원.

애초에 정보사 산하 침투 팀 백업 요원으로 선발했던 만큼 체력이나 실력, 배짱 등은 다른 팀원에 밀리지 않았다.

아니, 단순히 체력만을 생각한다면 한규호 중사 그가 팀에서 두 손가락 안에 드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가장 진도 팀에 맞지 않았다.

체력과 전투력은 정비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전투력은 진도5 안성종 상사와 진도4 정의성 상사에 비할 수가 없었다.

경험이라는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었으니까.

진도 팀이기에 기본적으로 월등한 사격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진도2 박종연 중사의 저격 실력은 따라잡을 수 없었다.

진도1 윤재운 중사와 비교하면?

체력적으로 한규호가 높은 점수를 받을지 몰라도 평균점으로 하면 윤재운 중사의 승리였다.

무엇보다 이규철과 윤재운 중사와의 끈끈한 신뢰 관계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다.

체력보다 특기와 경험이 더 중요시되는 이 진도 팀에 한규호가 배속된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다는 이상한 능력 때문이었다.

육감 또는 직감.

교육 과정에서 유일하게 론 울프(Lone Wolf) 테스트를 특급으로 통과했고, 다른 훈련 과정에서도 운영진이 파 놓은 함정을, 단순히 물리적인 함정뿐만 아니라 심리적 트랩까지도 모두 간파해 냈다.

그의 특기를 정보사에서는 육감이라고 판별했고, 그 비과학적인 특기를 가지고 진도 팀에 배속시킨 것이다.

육감 또는 직감.

그 말도 안 되는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24시간 전, 이규철이 이번 작전명령에 대해 브리핑하며 팀을 두 개로 나눠 핵 관련 시설을 정찰한다고 했을 때, 진도3은, 육감이라는 특기를 가진 한규호 중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이규철은 그 의문을 품고 잠시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잠시 허공을 노려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한규호가, 위험을 파악하는 육감을 가지고 있는 한규호가 부디 자신과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기를 기도하면서.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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