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4)>
2006년 11월 18일.
함경북도 화대군 까치산.
백금산역 동쪽 59km 지점.
한규호는 앞에 있는 박종연 중사의 발만을 보면서 걸었다.
북한에서 하는 훈련이나 작전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다.
진도 팀에 배치되고 첫 훈련을 할 때도 이랬다, 낮에는 사람의 눈을 피해 잠을 자고, 밤에 그저 조용히 걸어간다.
지옥 같은, 두 번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하사 시절 훈련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너무 쉬워서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팀에 배속되면 하사 시절 그 훈련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훈련과 작전을 반복할 줄 알고 잔뜩 겁먹고 있었는데, 막상 팀에 배속되고 하는 첫 훈련이 얼마나 쉬웠는지, 밤새도록 걸으면서 훈련이 끝나고 첫 번째 술자리 안주를 무엇으로 할지 심도 깊은 고민을 할 정도였다.
그 장소가 북한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쉽다고 생각한 훈련이 끝나고 자신이, 팀이 함경북도를 관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한규호는 등골에 한기가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북한이었다니. 북한 땅을 걷고 있었다니.
그로부터 몇 달 후 두 번째 실전 훈련에서, 한규호는 처음부터 북한에서 훈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엄청나게 쫄아 버렸다.
얼마나 잔뜩 쫄아 있었는지, 박종연 중사가 네 얼굴만 봐도 고추가 번데기처럼 잔뜩 쪼그라들어 있다는 걸 알겠다고 할 정도였다.
실질적으로 북한에서 시행하는 첫 번째 실전 훈련에서 한규호는 생각할 여유 따위가 없었다. 나뭇가지에 스치는 바람소리에도 깜짝 놀라 총구를 돌리곤 했었다.
그렇게 쫄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장소가 북한이었고 한규호가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처음으로 진도4의 직책을 받은 훈련이기도 한 것이다.
진도 팀 여섯 명에게 부여된 각각 번호에는 임무가 배정되어 있었다.
우선 0은 지휘관의 번호였다. 정보사 본부로부터 작전명령을 받은 현장 최고 결정권자가 진도이었다.
결정이 진도0의 임무였고, 진도0이 현장에서 내린 결정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물론 진도0이 모든 결정을 전부 다 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마지막 번호인 진도5는 최고 베테랑에게 부여되는 번호였다.
가장 군 경력이 오래된, 그리고 가장 실전 경험이 많은 부사관이 진도5를 맡았다.
작전을 지휘하는 것은 진도0이고, 전투를 지휘하는 것은 진도5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진도5에게도 결정권이 있었다. 일명 ‘임무 : 11챠리’의 발동 권한.
1950년 8월 포항 철수 작전 당시 3사단 철수를 위해 마지막까지 화력지원을 수행했던 11야전포병부대 챠리(Charlie)포대의 이름을 딴 11챠리의 내용은 진도5가 시간을 벌어 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진도 팀이 적과 우연히 만나고 교전이 발생했을 때, 적에 대한 완전한 제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진도5가 시간을 버는 사이 다른 팀원들이 빠르게 그 장소에서 탈출하는 임무였다.
간단히 말해 진도5의 목숨과 팀원이 이탈할 시간을 바꾸는 임무였다.
11챠리의 발동 권한은 진도5만이 가지고 있었다.
11챠리 발동을 결정하는 판단력,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적들의 발을 묶어 두기 위한 전투력이 필요했고, 그래서 진도5 자리는 가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에게만 허용되었다.
진도5가 11챠리를 발동하면 진도0은 빠르게 그 지시에 따라 자리를 이탈해야 했다.
한규호가 두 번째 실전 훈련에서 담당한 진도4의 임무가 진도5를 보좌하는 것이었다.
교전이 벌어지면 진도5와 더불어 전투의 맨 앞에 서고, 11챠리가 발동하면 진도5와 더불어 시간을 벌어 주는 자리였다.
그렇기에 한규호는 잔뜩 쫄아 있었다.
죽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팀원들을 지켜 내야 하는 임무 그 자체의 무게가 그에게는 너무도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낮에는 쪽잠을 자고, 밤새도록 걷는 것도 물리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 장소가 적지 한가운데라는 것은 심리적으로 무겁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팀원을 지켜야 하는 진도4라는 직책의 무게가 더해지자, 한규호는 거의 탈진 직전까지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워야만 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규호는 몇 번의 훈련과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생각 외로 북한이 무서운 땅은 아니라는 지식도 필요했다.
북한은 위험한 땅이었다. 또한 위험한 땅이 아니었다.
북한 노동당은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군사적 역량을 세 곳에 분산해 집중했다.
휴전선, 북-중 국경, 그리고 평양.
1년 국방 예산이 한국의 5분의 1에 불과한 북한이 130만 명에 육박하는 병력을 먹이고 입힌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예산의 대부분은 핵심 방위 지점이라고 불리는 휴전선, 중국 국경, 그리고 평양에 집중됐다.
돈이 없고 식량이 없으면 군대는 전투력을 유지할 수 없다. 함경남도를 담당하는 북한군 7군단이 딱 그 상황이었다.
북한군 열한 개 군단 중 함경북도와 동해 해안선을 담당하는 7군단, 그리고 군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군단 직할 함흥시 병력조차도 식량 확보를 위해 농사를 지어야 했다.
그나마 군대로서의 기능이 남아 있고, 군기가 살아 있다고 하는 함흥시조차 그럴 정도이니 내륙 산악을 담당하는 병력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규호는 그 사실을 아는 데 1년이 걸렸다.
주요 경계 지점만 회피하면 북한군을 만날 일이 없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험하는 데 1년이 걸렸다.
물론 접촉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이탈했거나, 아니면 영구적으로 탈영한 북한군 병사들이 운 없게 진도 팀을 만나곤 했다.
그들은 진도 팀에 어떠한 위험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진도 팀이 그들에게 사신이 되었다.
꼭 따지자면 위험하기는 주민들이 더 위험했다. 북한은 주민들은 조직되어 있었고, 그들은 군인과 다를 바 없는 감시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함경남도의 땅은 척박했고, 척박한 땅에는 젊은이들이 살지 못했다.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은 군대로, 군대에 가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고, 진도 팀이 이동하는 경로에는 노인들밖에 없었다.
노인들은 무기력했고, 산에 오를 일이 없었고, 해가 지면 바로 잠들었다.
평양과 일부 대도시 핵심 지역을 제외하면 전기가 끊긴 지 오래되었고, 그래서 망이 되는 음력 15일 전후 북한의 밤은 말 그대로 암흑천지였다.
해변만 벗어나면 진도 팀을 위협할 병력은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주민들은 무기력했고, 해가 지면 활동을 멈추었다.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고,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면 야시경을 가진 진도 팀에게 오히려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 줬다.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한규호는 이 땅이 생각보다 초라하고, 쓸쓸하고, 적막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공포를 떨쳐 낼 수 있었다.
***
“여기.”
행군을 선도하던 진도5 안성종 상사가 걸음을 멈추고, GPS를 확인한 후 말했다.
3시 15분. 월출(月出) 예정 시간보다 20분 빠르게, 도착 마지노선인 4시보다 45분 빠르게 진도 팀은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아이고, 고생들 하셨습니다.”
진도2 박종연이 군장을 내려놓으며 하루 일을 마친 일용직 노동자처럼 말했다.
한규호는 그런 그를 보고 어둠 속에서 피식 웃었다.
박종연 중사는 항상 저랬다. 작전 중인 특수 요원에 어울리지 않게 말하고 행동했다.
한규호에게 뀨라는 이상한 별명을 지어 준 그는 항상 헛웃음 나는 농담을 멈추지 않았다.
두 번째 훈련, 한규호가 잔뜩 쫄아 있던 그 실전 훈련 당시 박종연 중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산 능선을 가리켰을 때, 그 손가락에 놀라 빠르게 몸을 낮추며 지향 사격 자세를 취한 한규호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가 했던 말처럼 말이다.
“저 산 저거, 능선 모양이 꼭 여자 가슴처럼 생기지 않았냐? 근데 꼭지가 함몰이네.”
지금도 그랬다. 군장을 내려놓으며 능글맞게 말을 계속했다.
“언능 밥 먹고 잡시다.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잘 수 있을 때 자 둬야지. 아! 우리 뀨는 더 가야 하는구나. 불쌍한 우리 뀨…….”
한규호는 그런 박종연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두 개 있었다.
황당하다 못해 참신하기까지 한 그의 어이없는 농담들이 어떻게 끊임없이 나오는지, 그리고 그런 그를 다른 사람들이 왜 가만히 두는 것인지를 말이다.
진도0 이규철 대위는 물론 진도5 안성종 상사도 그의 실없는 농담을 제지하지 않았다.
다른 대원들은 가끔 그 어이없는 농담에 맞장구를 쳐 가며 같이 웃곤 했었다. 적진 한가운데에서 작전 진행 중 농담을 하도록 두는 특수부대라니.
뭐 나중에야 이해하게 되었지만, 아무튼 잔뜩 쫄아 있던 1년 동안, 한규호는 항상 그게 궁금했었다.
“지금부터 작전명령 06-11을 하달하겠다.”
진도0 이규철 대위의 말소리가 한규호의 상념을 깨웠다.
작전명령을 하달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지금 그들이 행하고 있는 것이 단순히 지점에서 지점으로 이동하는 단순 실전 훈련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특정한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작전이라는 이야기였다.
한규호는 손에 들고 있던 칼로리 바를 급하게 입에 욱여넣고서는 이규철 대위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규호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의 시선이 어둠 속의 이규철 대위의 얼굴로 향했다.
***
2006년 11월 15일.
국광해운(주).
서울 종로구 당주동.
“마지막으로 진도5 안성종 상사입니다. 1969년생 올해 서른여덟 살입니다. 1989년 특전부사관으로 1공수에서 근무하다 1994년부터 707 특수임무대대에서 복무를 해 왔습니다. 1999년 특수전사령부 산하 특수전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했고, 2001년 정보사에 배속되면서 현장에 복귀했습니다.”
엄주현 이사가 안성종 상사에 대해서 설명했다.
“독특하군. 후방으로 갔다가 다시 현장으로 복귀라니.”
이철원 국장이 말했다.
“안성종 상사와 관련된 사항은 기밀로 봉인되어 있습니다. 세부 정보가 필요하시면 관련 절차를 밟으셔야 합니다.”
엄주현이 말했다.
“꼭 알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좀 신기해서. 그럼 이 여섯 명이 이번 작전을 진행하는 것인가?”
“진도 팀의 임무는 크게 두 개입니다. 우선 핵 개발 관련 시설, 정확히는 핵실험 관련 보급기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백금산폐광과 백금산역에 대한 육안 정찰입니다. 백금산역에 대해 다중 위성정찰을 시행한 결과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성정찰에서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육안 정찰이 진행되어야 한다.
일반인들의 관점에서는 이상하게 들릴 소리였지만, 정보 쪽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듣게 되는 이야기였다.
“백금산역에 대한 육안 정찰과 더불어 백금산역에 연결되는 금골선 철로에 대한 조사도 진행됩니다. 노반과 철로 상황을 파악하는 임무입니다.”
김훈 차장이 고개를 들었다.
철로를 조사한다? 그런 의미를 담아서 엄주현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확보한 북한 철도성 자료에 따르면 금골선에는 주 2회 100번대 완행열차, 600번대 화물열차만이 운행합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평양 인근과 국제 열차가 운행하는 경의선 일부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열악한 상황입니다. 침목이 훼손되거나 일부 유실되었고, 궤간도 균일하지 않습니다. 철로에 슬어 있는 녹은 기본입니다. 만약 북한이 금골선을 이용해 핵실험 관련 자재들을 운반했다면 철로에 대한 정비를 진행했을 것이고, 진도 팀이 알아 올 것입니다.”
김훈은 다시 시선을 서류로 향했다. 알겠다는 의미를 담아서.
진도 팀이 백금산역에 접근해 시설이 운영되고 있거나 폐광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경비 병력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거기에 철로 상태도 백금산역, 또는 금골선이 핵실험 관련 시설이라는 것을, 감시할 가치가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18일 새벽, 작전명령이 팀원 전원에게 하달됩니다. 하달 직후 팀을 두 개로 나누고, 백금산역과 백금산역 북쪽 9km에 위치한 철로 환경을 정찰합니다. 좌표는 40.9730, 128.8314입니다. 이후 각각의 복귀 경로를 거쳐 복귀하게 됩니다.”
이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거제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진도 팀에 대한 설명을 마친 엄주현은 서류를 앞으로 넘겼다.
그리고 여전히 진도 팀 서류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는 이철원의 시선을 보면서, 국정원이 주목하고 있는 곳이 백금산이라고 확신했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