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28화 (129/386)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 >

2006년 11월 17일.

함경북도 화대군 목진리.

백금산역 동쪽 74km 지점.

한규호는 투덜거리며 흔적 정리를 시행했다.

정리라고 해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저 낮 동안 자신이 덮고 있었던 위장포를 정리해 군장에 결속하는 것뿐.

“이야, 뀨, 이제 중사 달았다고 막 나가는데? 엉?”

한규효를 뀨라고 부르는, 저격수를 맡고 있는 진도2 박종연 중사가 한규호에게 말했다.

“중사 단 지가 언젠데····. 시끄럽고, 언능 밥이나 드십쇼.”

한규호가 그렇게 투덜거리자 박종연 중사는 씩 웃고는 그 자리에 앉아 군장에서 칼로리바 하나를 꺼냈다.

2천 kcal가 농축되어 있는 손가락 두 개 크기의 칼로리 바가 작전 중 그들의 주식이었다.

맛과 식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열량 공급을 위해 만들어진 이 흉측한 물건이 작전이 끝날 때까지 그들에게 유일한 식품이었다.

한규호도 위장포를 군장에 결속하고 칼로리바를 꺼내 입에 물었다.

텁텁한 느낌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국방부 이놈들은 계약을 할 때 일부러 가장 맛없는 회사를 골라 계약한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칼로리 바는 맛이 없었다.

진도 팀의 오늘 일정은 단순했다.

밤사이에 야간 전술 보행으로 20km를 이동한다.

이동하면 진도3 한규호를 제외한 전원이 그 자리에서 숙영지를 꾸린다. 그래 봤자 위장포를 덮어쓰는 것뿐이지만.

숙영지에서 진도3은 8km 앞에 전초 좌표를 진도0으로부터 받는다. 그리고 2시간 동안 이동해 그곳에 전초를 구축한다.

다음날도, 같은 일을 반복한다.

해가 떠 있는 동안 그들은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해가 지면 본 팀이 8km 전진해 있는 진도3을 만나 영양을 공급한다.

짧은 시간의 영양 공급이 끝나면 부지런히 다음 포인트까지 나아간다.

다음 포인트에 도착하면 본 팀은 숙영지를 꾸리고 전초 임무를 담당하는 진도3이 8km를 더 나아가 전초기지를 구축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40.9610, 129.4936”

진도 팀 리더인 진도0 이규철 대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군장을 들쳐 메고, 전술 조끼 가슴 부위에 결속된 락웰 콜린스사(社)의 DAGR(Defense advanced GPS receiver)에 입력된 좌표를 읽어 주었다.

오늘 그들이 향하는 목표의 좌표였다.

나머지 다섯 명의 팀원들은 각자의 손목에 달린 GPS에 그 좌표를 입력했다.

그들은 그 좌표가 어디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음 좌표가 어디인지도 몰랐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좌표가 나오면 그쪽으로 향했다.

행군을 반복하다 회수 팀을 만나 복귀하면 훈련이었고, 무언가 다른 일을 하게 되면 작전이었다.

2일 전 함경북도 명천군 포하리 남쪽 2km 지점 해안을 통해 북한에 들어온 그들은 지금 행군이 일반적인 침투 훈련인지, 아니면 목적이 있는 작전인지 알지 못했다.

오직 한 명, 진도0 이규철 대외를 제외하고는. 이규철 대위는 GPS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녹색 빛을 작전명령서에 비추면서 다시 말했다.

“18일 월출시 03시 36분, 일출시 07시 14분.”

팀원들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4시 이전까지 20km를 걸어가 목표에 도달하고. 진도3 한규호는 6시 14분 전까지 8km를 더 걸어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규철의 말을 끝으로 진도 팀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도3을 만나고 영양을 보급했으니 남은 일은 다음 목적지 좌표를 향해 밤새 걸어가는 것뿐이었다.

진도5 안성종 상사가 선두에 섰다.

그 뒤에 팀 리더인 진도0 이규철 대위가 서고 나머지 팀원들도 각자의 순서대로 그 뒤를 따랐다.

한규호도 자신의 위치에서 행군 준비를 했다.

북한, 적지 한가운데에서 시행하는 야간 전술 행군이었다.

행군을 선도하는 안성종 상사가 GPNVG-18을 착용했다. 네 개의 CR123A 배터리를 사용하며 최대 40시간까지 사용이 가능한 이 야시경은 미국에서도 몇몇 특수 부대에만 실천 배치된 최신의 4안(四眼, Four lenses) 야시경이었다.

안성종 상사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은 2안 AN/PVS-21 LPNVG를 사용했다.

AA배터리 하나가 들어가며 최대 24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GPNVG-18 대비 가볍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화각이 협소했다.

전술용 배터리를 포함해 무전기 등 거의 대부분의 전술전자제품은 진도1 윤재운 중사가 짊어지고 있었다.

그의 군장에는 배터리와 전자 전술 제품을 제외한 그 어떠한 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식량을 포함해 윤재운 중사의 보급품은 진도0 이규철 대위가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함께해야 했다.

둘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둘 중 한 명이 KIA(Killed in Acition, 작전 중 사망)했다는 의미였다. MIA(Missing in Action, 작전 중 실종)는 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진도2 박종연 중사는 그 둘을 가리켜 부부라고 불렀다.

진도3 한규호는 진도2 박종연 중사의 뒤에 바로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진도4 정의성 상사가 맨 후위에서 그들을 따랐다.

여섯 명의 진도 팀은 각자의 임무에 맞춰 일렬로 섰고, 진도5의 선도 아래 천천히 발을 옮겼다.

6시간 반 동안, 그들은 야간 전술 보행으로 20km를 걸어가야 했다.

흔적을 최대한 지운 채로.

그들이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

2006년 11월 17일.

국광해운(주).

서울 종로구 당주동.

한국해운선사협의회가 있는 당주동 세종빌딩에는 많은 해운 회사들이 입주해 있었다.

그리고 국광해운도 그 건물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독일 H선사의 한국 대리점을 담당하고 있는 국광해운 회의실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미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주름이 잔뜩 진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들은 퇴근도 못 하고 회의실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담배만 피워 대고 있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해운업의 특성상 밤낮이 따로 없었다.

로이즈나 발틱해운거래소가 있는 런던 시간에, 때로는 아시아 해운거래의 중심이라는 싱가포르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그들에게는 정해진 출퇴근 같은 것이 없었다.

오히려 밤새토록 일하고, 낮 시간에 잠시 근처 사우나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물론 그 같은 업무는 임원 한정이었다.  일반 직원들에게는 9시 출근, 6시 퇴근이라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었다. 적용되었다고 해서 보호받는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이날도 회의실 상황판에는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취합한 자료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일반 사원들이 하루 종일 점심밥도 못 먹어 가면서 취합하고, 번역하고, 분석한 자료들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일반 사원들은 오후 10시가 되기 전에 집에 갈 수 있었다.

국광해운의 김광용 사장은 그 상황판을 주시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상황판의 정보들은 2003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선 시황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약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정보를 담고 있었다.

내년도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선복량도 늘어났다.

문제는 선복량 증가가 물량 증가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해운선사들은 미친 듯 배를 발주하고 있었고, 눈앞의 이익에 눈먼 조선사들이 계속 저가 수주 기조를 이어 가고 있다.

금융계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선박 금융 규모를 확대하고 있었다.

특히 중동 놈들이 그랬다. 가진 것이라고는 기름과 단순 무식함밖에 없는 그 중동의 멍청이들이 기름 팔아 벌어들인 달러로 미친 듯 시장을 흔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시장에 큰 위기가 닥칠 수도 있었다. 아니, 해운시장은 분명 위기를 겪게 될 것이었다.

“씨발, 진짜 개X같아서 못 해 먹겠네.”

김광용 사장이 피던 담배를 재떨이 대신 벽에 던져 버렸다.

벽에 튕긴 담배가 불꽃을 날리며 서류가 널브러진 바닥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엄주현 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꽁초를 발로 밟았다.

그리고 튀어 나간 불똥들이 종이에 붙지 않았는지 세심하게 살펴본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눕듯 몸을 기대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야, 엄 이사야.”

김광용 사장이 엄 이사에게 말했다.

“말씀하십쇼.”

“씨발, 너무하지 않냐?”

“······.”

“작전도 해야 하고, 씨발 돈도 벌어야 하고. 근데 작전은 졸라 맨땅에 헤딩이고, 해운시황은 개씹창 나고. 이거 씨발 어떻게 하라는 거냐?”

엄주현 이사는 사장의 말을 들으며 담배를 하늘로 내뿜었다.

답답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정기선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그에게는 최근 시황은 위궤양을 재발시킬 정도로 큰 걱정이었다.

“사장님, 진정하시죠.”

구석에 널브러져 있던 최인석 부장이 김광용 사장에게 말했다.

“······최 부장아.”

“네?”

“너 회사 들어온 지 얼마 됐지?”

“10년 넘었습니다. 12년인가?”

“그래. 너도 군 생활 오래했다. 이제 사장 달 때 됐지?” 최인석 부장, 정확히 국군정보사령부 정보국 소속 최인석 소령은 대꾸할 힘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위장 기업의 사장, 즉 현장 총 책임자인 중령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그는 몇 년의 군 경력이 필요했다. 아니면 직접 필드로 뛰든가.

승진은 군인에게는 당연한 목표이지만, 지금처럼 위장 기업에, 그것도 실제로 수익을 내야 하는 위장 기업에서 사장이 되어야 한다면? 성배가 아닌 독배다.

“사장은 뭐······ 아무나 합니까?”

지난해 중령으로 승진한 엄주현 이사가 담배 연기를 하늘로 뿜으며 말했다.

최인석, 육사 출신 후배로 임관 이후 평생을 정보사에서 근무해 온 첩보부 엘리트지만, 아직은 이르다는 것이 엄주현 중령의 생각이었다.

회사를 경영하기에는 머리가 너무 딱딱했다.

“하긴, 똥물도 순서가 있는데. 우리 엄 중령이 하면 되겠네. 국광해운 사장님 하시면 되겠네.”

김광용 사장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엄 이사에게 말했다.

“이거 망하면 한번 생각해 볼까. 해운회사는 자신 없습니다. 그리고 담배는 바닥에 던지지 마십쇼.”

그렇게 말하며 엄 이사도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회의실 공기 중 담배 연기의 밀도가 더욱 높아졌다.

똑똑.

노크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국광해운 2년 차 영업부 대리, 실제로는 정보사 소속 상병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오셨습니다.”

그 말에 세 사람은 인상을 쓰며 몸을 일으켰다.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자리에서 일어나기라도 해야 했다.

상병에 뒤를 이어 두 사람이 들어왔다.

들어온 두 사람은 자욱한 담배 연기에 얼굴을 찌푸렸다.

둘 다 흡연자였지만, 그럼에도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회의실 공기였다.

그러나 국정원장 이철원, 그리고 1차장 김훈은 그저 잠깐 인상을 쓸 뿐 아무런 말 없이 회의실 자리에 앉았다.

일반 사원으로 위장한 상병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최 부장이 닫힌 문으로 가서 다시 문을 걸어 잠그고, 문 앞에 섰다.

엄 이사는 창가로 가서 닫혀 있는 블라인드를 다시 한번 체크했다.

지금부터 이 회의실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회의실 밖, 사무실에서 위장용으로 녹음된 회의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오늘 밤 상황 근무를 서는 상병이 절차에 따라 틀어 놓은 소리였다.

국정원에서 온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정보사 김광용 중령, 국광해운의 김광용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상황판 옆에 있는 금고를 열었다.

그리고 서류철 두 개를 꺼내 두 사람에게 건넸다.

엄 이사와 최 부장은 각각의 자리에서 팔짱을 꼈다.

“지금부터 작전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에 대해 브리핑하겠습니다.”

이철원 국장과 김훈 차장은 눈앞의 서류에 시선을 고정했다.

< 작전명령 06-11 : 철도복합운송선하증권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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