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MISSION : 텔레노벨라 (4) >
성남 분당 야탑 역에서 성남예비군 훈련장 쪽으로 한참을 들어가면 나오는 목련마을 5단지 아파트는 분당이라고 해도 외진 위치 탓에 저녁이 되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그 조용한 주차장에 차량 한 대가 천천히 접어들었다. 출시된지 10년도 넘은 빨간색 마티즈는 천천히 빈 자리를 찾아 들어간 후 푸르르 소리를 내며 엔진을 멈췄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나왔다. 그녀의 품에는 식료품이 가득 든 봉지가 담겨 있었다.
정지혜는 힘겹게 차 문을 닫고, 식료품 봉지를 조심히 감싸 안은 다음 아파트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이 아파트를 좋아했다.
남편과 결혼하고 첫 신혼집을 차린 곳이 여기였고, 아이를 키운 곳도 여기였다.
이 아파트 단지에 대한 유일한 불만이라면, 너무 어둡다는 것이었다.
분당이라고는 해도 외진 데 있는 이 아파트에는 더 많은 전등이 필요했다.
단지는 조용했다.
예전에는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 소리는 사라져 갔다.
아마 지금쯤 아이들은 전부 학원에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아이들은 너무 힘겨운 유년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나마 살갑게 인사를 주고받던 경비원들도 얼마 전 경비 업체를 교체하면서 CCTV로 교체되었다. 그래서 더 조용하다고, 쓸쓸하다고 느껴지는지도 몰랐다.
양 팔로 집을 안고 걸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인지, 그녀는 갑자기 몸에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오랜만에 교육청에 갈 일이 있어서 힐을 신었는데, 힐 뒷굽이 보도블록 틈에 끼면서 어찌할 새도 없이 그 자리에서 넘어져 버린 것이다.
넘어지면서 손에 들고 있던 식료품 봉지를 놓쳐 버렸고, 내용물들이 모두 바닥에 쏟아졌다.
그녀는 넘어진 자세 그대로 잠시 멍한 눈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식료품들을 바라보았다.
혼자 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애 아빠가 생각났다. 애 아빠가 있었더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지혜는 재빨리 머리를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을 대충 털고 무릎을 잠시 문지른 후, 내용물들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그리고 세 개씩 묶인 참치 캔을 들려고 손을 뻗는 그녀의 눈에, 참치 캔을 집어 드는 다른 손이 보였다.
정지혜는 고개를 들어 그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 남자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칠칠치 못하게 넘어지고, 그게 뭡니까?”
씩 웃으며 그녀에게 참치 캔을 건네는 남자는 그녀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오랜만이네요, 규호 씨.”
***
집으로 들어온 정지혜는 주전자에 생수를 붓고 가스렌지 위에 올렸다. 그리고 머그컵을 꺼내 씻으며 물었다.
“규호 씨, 시간 괜찮죠? 커피 내려줄까 하는데요.”
“네, 뭐,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식탁에 앉은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며, 옛 상관의 부인이 컵을 씻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스무 살에 결혼을 하고 스물두 살 때 첫 아이를 낳은 그녀는, 스물여섯 살 되던 해에 남편을 잃었다. 남편을 잃었다. 잃어버렸다.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규호 씨, 너무 오랜만에 왔어요. 요즘 바빴어요?”
정지혜는 원두 그라인더 손잡이를 돌리면서 말했다.
“이리 주세요.”
한규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정지혜는 살짝 웃고는 그에게 원두가 들어 있는 그라인더를 넘겼다.
그라인더를 넘겨받은 한규호는 얼마나 사용했는지 광택이 도는 나무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신혼 혼수로 사온 물건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커피 원두가 갈리는 느낌이 손잡이를 타고 전해졌다.
“잠깐 외국에 다녀오느라, 이래저래 바빴네요.”
한규호가 말했다.
“외국? 어디 갔다 왔는데요?”
“베네수엘라.”
“와, 부럽다, 규호 씨. 나도 남미 한번 가 보고 싶은데.”
정지혜는 머그컵을 덥히기 위해 뜨거운 물을 부은 후, 드리퍼에 필터를 끼웠다.
“가면 되죠. 방학 있으니 갈 수 있잖아요.”
한규호는 손잡이가 헛돌자 그라인더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쳇, 그건 규호 씨가 몰라서 하는 소리에요. 뭐 다른 사람들은 다 교사들이 방학 때 노는 줄 안다니까. 실제로는 교육도 있고, 이런저런 업무도 있고, 교육청에 맨날 오라 가라 그러고. 쌤들을 놀게 놔두질 않아요. 하긴 뭐, 그래도 다른 직장인들보다 더 쉬는 건 사실이니
까.”
정지혜는 그렇게 말하며 드리퍼에 원두를 채웠다. 그리고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를 들어 조금식 끊어서 물을 부었다.
뜨거운 물이 천천히 커피 가루를 적시자 향긋한 커피 향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시간 되면 여행 가는 것도 좋지만, 당분간은 남미는 피하라고 말하고 싶군요. 안전한 지역은 아니니까.”
한규호가 말했다.
그 말에 정지혜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졌다.
“규호 씨······ 혹시 위험한 일 하고 다니는 건 아니죠?”
드리퍼에서 추출된 커피가 한 방울씩 서버로 떨어졌다.
“요한이는 어디 갔습니까?”
한규호가 말을 돌렸다.
“······요한이는 금방 올 거예요. 저녁 먹고 독서실 가니까.”
“독서실?”
“학교에서 강제로 하는 야자는 죽어도 하기 싫다고, 차리리 독서실 다닌다고 하는데······. 공부를 하는 건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알아서 하겠죠.”
“야자? 요한이가······ 벌써 고등학생인가요?”
“어머, 삼촌이 조카 나이도 모르고. 삼촌 실격인데요.?”
정지혜가 막 내린 커피 두 잔을 들고 식탁으로 걸어와, 한 잔을 한규호 앞에 내려놓았다.
“······뭐, 애들은 너무 금방 크니까.”
“정말로요. 저러다 어느새 졸업하고, 대학 가고, 군대 가고······.” “학교생활은 할 만합니까?”
한규호는 다시 말을 돌렸다.
스물여섯 살에 남편을 잃은 정지혜는 서른 살이 되던 해 수능을 보고 교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4년 후, 초등교원 임용 시험에 합격한 후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녀의 나이 서른다섯 살 되던 해였다.
“뭐, 정신없죠. 애들은 말 안 듣고, 엄마들은 더 말 안 듣고. 뭐 그래도 아직은 예뻐요, 귀엽고.”
두 손으로 머그컵을 들고 커피를 홀짝이며 정지혜가 말했다.
그 모습이, 고등학생의 아이를 둔 서른아홉 살 주부처럼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20대 후반이라고 말하면 더 믿어주지 않을까 싶은 그런 표정과 자세였다.
한규호는 안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식탁 위에 놓고 그녀 쪽으로 밀었다.
정지혜는 그 봉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커피를 홀짝이면서 한규호의 눈을 보았다.
“이제는 안 주셔도 괜찮아요.”
“전우회에서 드리는 겁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바보 취급 하지 말아요.”
정지혜가 여전히 머그잔을 들고서 말했다.
“······.”
한규호는 말없이 커피 잔을 들었다.
“아무리 돈독한 전우회라고 해도, 유족에게 매 분기마다 지급하기에는 너무 많은 금액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요.”
한규호의 시선은 백만 원 수표 다섯 장이 들어 있는 봉투로 향했다.
“이제는 안 돌봐 주셔도 괜찮아요. 저도······ 돈을 벌고 있고, 요한이도 이제 다 컸고.”
“딱히 돌봐 드리는 게 아닌······.”
“봉투를 보면.”
정지혜가 말을 끊었다.
“봉투를 보면······ 괴로워요. 봉투를 볼 때마다. 애 아빠가 생각나서. 마치 애 아빠의 목숨값처럼 느껴져서, 그래서 괴로워요.”
한규호는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얼마 전에 동작동에 다녀왔어요.”
정지혜는 컵을 내려놓았다.
“절하는 요한이를 보면서, 언제가 되어야 말해 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아빠는 여기에 없다고······.”
한규호는 다시 한 모금 마셨다.
“말할 수 없었죠.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어디에 있는지, 우리 규철 씨가 어디에 있는지.”
규호는 커피 맛이 유난히 쓰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말해 줄 때도 되지 않았어요, 우리 규철 씨 어디에 있는지?”
정지혜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규호는 정지혜의 차분한 목소리애서 어떤 기억을 떠올렸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잊어버리지 않은 기억을.
***
2006년 11월 17일.
함경북도 화대군 목진리.
백금산역 동쪽 74km 지점.
태양은 이미 함경북도의 높은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졌다.
아주 약한 미명만이 온 세상을 물들어 가는 어둠에 맞서 싸우고 있었지만, 어둠의 승리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 시간에, 한규호는 여전히 위장포 아래에서 아주 작은 움직임도 없이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해가 뜨기 전 기암동뒷산 한 계곡에 자리를 잡은 한규호는 이곳에서 12시간을 숨어 있었다.
이놈의 땅은 몇 번을 찾아와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지금 위치는 속초에서 직선거리로 3백km, 과속을 하면 3시간도 안걸릴 거리였지만, 한규호에게는 마치 화성에라도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같은 땅, 같은 식생이라고 했지만, 공기부터 달랐다.
우울함이 기체화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공기가 사람을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처음 북한에 왔을 때가 3년 전이었다.
중사를 달자마자 진도 팀에 배속됐고, 배속되자마자 바로 훈련에 투입되었다.
한규호는 훈련 장소가 북한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잠수함에서 내려 그저 고참들을 따라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걸었다.
밤새도록 불빛 하나 없는 산길을 걷고 또 걷고 걸으면서 그저 어서 빨리 훈련을 끝내고 라면 국물에 소주를 마시겠다고 결심하고 또 결심했었다.
10일 동안 그 결심을 수정하고, 반복해 다짐하고 나서 회수 팀을 만났을 때, 그제야 한규호는 자신이, 자신이 속한 진도 팀이 함경북도의 일부를 관통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인생에서 첫번째 북한 침투 훈련이었다.
그 이후 한규호는 계속해서 북한 땅을 밟았다.
물론 무언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팀의 막내인 한규호는 알 수 없었다. 알 필요도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왜 이곳에 왔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한규호는 몰랐다.
그저 진도 팀에서 정찰을 담당하는 진도3의 직무에 따라 본대보다 8km 앞에 은신처를 구축하고 팀원을 기다리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이제 어둠은 완전히 계곡을 잠식했다.
사람의 시각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한규호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감싸고 있었다.
한규호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교범에 따르면 사람의 눈은 어둠에 익숙해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광량이 있을 때 이야기다. 지금처럼 별빛도 하나 없는, 말 그대로 칠흑 같은 밤이면 시각은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반면에 청각은 더욱 활성화된다. 시각이 차단되는 만큼 뇌는 청각에 더욱 집중한다.
지금의 한규호가 그랬다. 그는 청각을 최대한 살려 주변에 들어오는 모든 소리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겨울의 한가운데 들어가 있는 11월의 함경북도는 벌레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귀는 자신이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한다. 그래서 활동을 체크하기 위해 소위 ‘지잉’이라고 표현되는 고주파음을 인지한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고주파음이다.
청각은 실체가 없는 고주파음을 인지함으로써 스스로가 활동하고 있다는 신호를 뇌에 보낸다. 한규호에 귀에는 일정한 진동의 고주파음이 계속 들려왔다. 그 감각으로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오랜만에 고주파음이 아닌 이질적인 소리가 그의 청각에 잡혔다.
한규호는 뇌가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한곳을 오랜 시간 주시하면 환각이 보이고, 오랫동안 청각에 집중하면 환청이 들린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감각의 착각이고, 한규호는 그 착각에 빠지지 않는 훈련을 받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부스럭 소리, 낙엽 밟는 소리, 그리고 구둣발에 작은 돌들이 걸리는 소리.
한규호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최대한 몸을 낮춰 스스로를 감췄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다.
동물은커녕 벌레조차 없는 함경북도의 한 야산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한규호는 더욱 기척을 감췄다.
그리고 그 발소리는 이제 한규호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뀨, 형들 왔다.”
다가온 발소리 중 하나가 말했다.
한규호는 작게 한숨을 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희미한 사람의 윤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뀨라고 하지 마십쇼.”
한규호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위장포를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INTERMISSION : 텔레노벨라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