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22화 (123/386)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69. 完) >

12일차

S.A CCS 보험 본사 건물(Seguros S.A CCS)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엘 오로는 S.A CCS 보험사 본사 건물 17층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요 며칠간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푸에르토가 자신의 본거지에서 납치되어 시체로 발견됐고, 더블 티는 채석장에서 자신이 쌓아 논 TNT에 의해 죽었다. 특히 더블 티가 그의 부하들과, 본거지와 함께 날아가는 장면은 텔레비전 뉴스로 생중계가 되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이렇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았지만, 그보다 화려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화려한 죽음이었다고 엘 오로는 생각했다.

더블 티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는 것을 마음에 들어 했을까?

엘 오로는 그게 궁금했다. 더 이상 의미 없는 질문이지만.

엘 오로는 CIA에 보고할 서류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가 CIA임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이곳 베네수엘라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3개 회사에 천명의 직원과, 2개의 독립된 무장 세력과 1개의 비밀 정보 수집처를 거느린 엘 오로는 직접 서류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엘 오로, 그가 오르테스 마르코스 라미레즈이던 시절, 미국 초청 장학생으로 예일 대학교에 다니던 당시 CIA가 그에게 접근해 왔다.

간단한 이야기였다. 미국을 위해 일하면 부와 명예를 안겨주겠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라미레즈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썩어빠진 정치, 절대로 뜯어 고칠 수 없는 구조적 불평등, 희망도 의욕도 없는 답 없는 민중에 지칠 대로 지쳐 있던 그는 자신의 몸에 흐르는 라티노의 피를 원망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미국의 이익을 위해 남미의 혼란을 이용한다는 CIA의 계획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라티노여서 다행이다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최저임금 미만의 시급을 받아가며 웨이터 생활을 하던 라미레즈는 CIA와 손을 잡은 후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돈에 대해 걱정할 일이 없었다.

예일에서 박사를 마친 후 미국의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러셀 앤 컴퍼니에서 최연소 디렉터 자리에 올랐다. 러셀 앤 컴퍼니가 CIA의 위장기업이기도 했지만, 라미레즈는 디렉터에 올라갈 만큼의 실력이 있었다. 특히 기업의 공격적인 인수합병과, 건실한 기업을 속부

터 망가트리는 데에 재능이 있었다.

그렇게 경력을 쌓고, 이곳 베네수엘라로 온 것이다.

미국에 적대적인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흔들기 위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는 금융마피아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고, 삼두사라는 웃기지도 않는 이름의 연합까지 만들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수치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본부에서 만족스러운 평가를 내렸기에, 그는 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알 수 없는 이방인이 삼두사를 박살 낸 것이다.

엘 오로는 그가, 정확히는 그레이스 박사 일행이 베네수엘라를 찾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방문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카라카스 영역을 지배하는 두 개의 폭력조직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푸에르토의 조직은 아직  남아있지만 엘 오로 자신이 곧 흡수할 예정이었고, 더블 티의 카바예로는 정말 말 그대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2주. 그들이 온 지 아직 2주도 되지 않았다. 2주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엘 오로는 2주간 있던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면서 짜증나는 서류 작업과는 별개로 아주 흥분해 있었다.

스즈키라는 그 남자를 보고 싶었다. CIA는 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주시하고 있고, 엘 오로 자신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내린 것일 테다.

그레이스 박사가 연극의 주연인줄 알았는데, 단역에 불과했다.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그에 대해 알고 싶었다. 정보라는 놈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그에 대한 정보를 먹고 싶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가, 스즈키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이 들려 있었다.

엘 오로는 놀랐다. 이 곳 S.A CCS 보험 본사 건물 17층에 오기 위해서는 적어도 3단계의 보안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렇게 17층에 올랐어도 다시 3단계의 절차를 거쳐야지만 이곳 그의 집무실에 접근할 수 있다. 그 단계 중 하나는 CIA에서 위탁 특수훈련을 받은 그의 경호원 4명을

뚫어야 하는 것이었다.

엘 오로는 놀랐지만 빠르게 그 감정을 숨겼다.

“어서 오십시오.”

엘 오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한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엘 오로의 모습에서 그가 일반적인 사업가나 단순한 마피아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이 저런 담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올 줄 알았나?”

한규호가 물었다.

“몰랐습니다.”

엘 오로가 답했다.

“그런 것치고는 침착하군.”

“그렇습니까? 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앉으시죠.”

엘 오로가 가죽 소파를 가리켰다.

한규호는 은은한 광택을 발하고 있는 가죽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마실 것을 준비해 드릴까요? 아 그러고 보니 밖에 비서가 있었을 텐데.”

“미인이더군.”

“죽었습니까?”

“죽지는 않았어.”

한규호가 말했다.

“다행이군요. 유능한 친구인데. 경호원들도 살아있습니까?”

“아쉽겠군. 유능한 경호원들인 것 같은데.”

한규호의 말에 엘 오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당신을 죽이러.”

한규호가 말했다.

“그렇습니까?”

엘 오로는 자신을 죽이러 왔다는 한규호의 말을 듣고서도 놀라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 사무실에는 별로 마실 만한 게 없는데. 물이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괜찮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제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겠습니까?”

“아니.”

한규호가 답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엘 오로가 말했다.

한규호는 침묵으로 그가 입을 열도록 허락했다.

“박물관연대(Museum Union)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한규호는 대답도, 고개를 움직이지도 한고 그저 엘 오로를 보고 있었다.

“홍콩을 중심으로 정보를 사고파는 일종의 사설 정보회사입니다. 아니, 정보 조직이라고 보는게 좋겠네요. 아무튼 얼마 전 그 곳에서 흥미로운 제안을 보내왔습니다. 아. 저도 정보를 사고파는 일을 하니까요. 그쪽 제안은 태국·라오스·미얀마 접경지대인 트라이앵글에

서 사고를 친 한 남자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국적은 한국, 이름은 데이빗 박.”

엘 오로는 한규호의 얼굴을 보았다. 무언가 반응이 있을까 싶어서. 그러나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데이빗 박에 대한 정보는 무엇이든 사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몇몇 단골 고객들에게는, 저처럼 교류가 많고 믿을 수 있는 고객들에게는 얼굴 사진도 보내왔습니다.”

엘 오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책상 옆에 있는 작은 서랍을 열었다. 단순한 서랍인 줄 알았는데, 작은 미니 냉장고였다.

거기에서 에비앙 두병과 물 잔을 꺼낸 엘 오로는 다시 소파로 걸어와 한 병을 한규호 앞에 놓고서는 자신의 물병을 따서 잔에 따랐다.

“드시죠. 요즘 베네수엘라에선 참 구하기 힘든 물건입니다.”

엘 오로는 여전히 반응 없는 한규호를 두고서는 자신의 잔에 물을 따르고 한 모금 마셨다.

“저는 스즈키님이 데이빗 박이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저에게도 정보망이 있고, 그 정보망에는 온갖 자질구레한 정보들이 들어와 저장됩니다. 랭리에서.”

거기까지 말한 엘 오로는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이 말씀을 먼저 드렸어야 했군요. 저도 랭리에 소속된 사람입니다.”

한규호는 그제야 이해가 갔다. 이 자식은 CIA가 키운 개여서, 일반적인 사업가나 마피아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는 것을.

“랭리에서 들어오는 정보 중에 얼마 전 미얀마와 방글라데시에서 미국이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랭리가 세계에서 일을 벌이는 것이야 비일비재하고, 그래서 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

습니다.”

“퍼즐이 맞춰진다?”

한규호가 말했다.

“네. 그 쪽에서 일이 있었다.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이 움직였고, 박물관연대 그놈들이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있다. 뭐, 지금 상황에서 숨길게 뭐가 있겠습니까? 전 이제 곧 죽을 몸인데.”

엘 오로는 그렇게 말하고 싱긋 웃었다.

“저는 박물관연대가 찾는 데이빗 박과 랭리에서 이번에 베네수엘라로 보낸 스즈키가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을 위해 일하는 독립요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죠.”

엘 오로는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위에 있는 시가 케이스를 열었다.

“시가를 즐기시는지요?”

“아니.”

“피워도 되겠습니까?”

“아니.”

엘 오로는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시가 케이스를 다시 닫았다.

“아무튼 널리고 널린 독립요원 중 한 명에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분위기 돌아가는 게 이상한 겁니다. 앤 챔버였나요? 그 아가씨? 그 아가씨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전혀 알아 낼 수 있는 정보가 없는데, 이상하게 랭리에서 신경을 쓴다는 기

분이 들었습니다.”

엘 오로가 자신의 잔에 다시 물을 따랐다.

“왜 그럴까요?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더 혼란에 빠진 기분입니다. 도밍게즈 소령과는 어떻게 그런 친분을 가지게 되신 건지, 이미 알고 계시던 사이였는지. 어떻게 그렇게 유기적으로 합을 맞출 수 있었는지, 제가 모르는 또 다른 프로젝트가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건지, 푸에르토는 어떻게 잡아온 것인지.”

“길군.” 한규호가 말했다.

“그렇습니까? 거의 다 끝났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저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스즈키라는 사람은 그냥 단순한 독립요원은 아닐 것이다. 랭리에 속해있거나, 아니면 아주 깊숙하게 관여되어 있을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상

당히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랭리에서도 단순히 용병으로 취급하는 것은 아닌 상황이다. 그리고 스즈키가 바로 직전에 수행한 작전이 동남아시아 작전이었고, 거기서 뭔가 제대로 화끈한 일을 벌였기에 박물관연대가 그를 찾고 있다.”

“소설에 재능이 있군.”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요. 그런 재능이 있는 줄 알았으면 한번 써 보는건데 아쉽군요. 아무튼 그런 결론을 내렸는데, 오늘 당신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니 당신이 데이빗 박이 아니셨군요. 평생을 정보로 먹고 살았고, 정보로 먹고 살 정도의 판단력은 있다고 생각했

는데,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군요.”

“그럴싸하군. 하지만 별로 재미는 없었어. 쓸데없이 긴 이야기였고. 이야기는 다 끝났나?”

한규호가 권총을 집어 들었다.

엘 오로는 당황했다.

자신이 CIA 소속임을 밝혔는데도, 그 사실을 밝히기 위해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했음에도 이 남자는 자신을 여전히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랭리에서 보낸 것이 아닐까?

하지만 당황함을 얼굴에 표현하지는 않았다.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만. 한 가지 묻고 싶군요.”

“뭘?”

“감당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감당?”

“절 죽이면 랭리의 분노를 살 텐데요.”

엘 오로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 말에 한규호는 웃었다. CIA놈들은 때때로 자신들이 대단하다는 착각을 한다. 대단한건 조직이지 개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하긴. 한규호 그도 그랬다. 그도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날 이전 까지는.

“당신은 여기서 실험을 했더군.”

한규호가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베네수엘라 경제를 가지고 이런 저런 실험을 했더군. 랭리에서 시켰는지, 백악관에서 시켰는지 난 솔직히 관심은 없어. 하지만 당신이 쳐놓은 장난질에 나라꼴이 이 모양이 되었으면 좀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말한 한규호는 피식 웃었다.

“미안. 내가 생각해도 웃기는군. 사실 관심 없어.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거기에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뭐랄까.”

한규호는 허공을 응시하며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삼두사 중 머리 두 개를 잘랐는데, 남은 하나를 두고 가면 찝찝해서. 그런 마음이 들었다. 뭐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되겠군.”

엘 오로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 변화가 드러났다.

“그리고 당신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실험이 해보고 싶어지는군.”

“실험이라면....?”

“랭리에서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키운 당신을 내가 죽이면 과연 내가 CIA의 분노를 살 것인지 말이지. 사실 요즘 그 쪽 때문에 나름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그런 스트레스도 있고. 그래. 당신 말처럼 금방 죽을 텐데 나도 이야기 해주지 뭐.”

그 말에 엘 오로의 목젖이 한번 크게 울렸다.

“당신의 CIA가 나에게 관심이 많아. 근거없는 자신감은 아니고. 확실히 그런 걸 느끼지. 과연 내가 당신을 죽이면 CIA의 분노가 관심을 넘어설까? 유치한 이야긴데, 당신과 나 둘 중에 누굴 더 중요하게 여길지 확인해보고 싶어지는군.”

한규호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농담이 지나치십....”

“딱히 농담은 아닌데. 재미있지도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한규호가 말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잠시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전화를 한 통 해도 되겠습니까?”

엘 오로가 한규호에게 물었다.

한규호가 손짓을 했다.

엘 오로는 감사를 표한 다음 자신의 책상으로 가 전화기를 스피커 폰 모드로 바꾸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얼마 전 국장과 통화를 했던 이리듐 위성전화의 번호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전화가 연결됐다.

(말씀하십시오.)

엘 오로는 당황했다. 국장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직통 전화의 번호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좋지 않은 징조였다. 그에게는 아주 좋지 않은 징조였다. 그러나 빠르게 그런 기분을 갈무리하고 평소 톤으로 말했다.

“코드.”

엘 오로가 말했다. 국장 직통 번호를 다른 사람이 받았다. 확인 절차가 필요했다.

(노벰버, 브라보, 오스카, 찰리, 찰리, 테이 라 트리, 올 토 에이트, 속 시 식스, 알파, 파파, 리마. 손님이 찾아오셨습니까? )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코드를 확인한 엘 오로가 답했다.

(미스터 한. 거기 계십니까?)

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한규호를 찾았다.

엘 오로는 미스터 한이 스즈키를 지칭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 있어.”

한규호가 답했다.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아닐 것이다. 그저 그들이 마련해 놓은 수많은 시나리오 중 하나일 것이다.

한규호는 군인출신이지만 정보기관과 일을 하면서 그들의 생리를 어느정도 알 수 있었다. 정보조직의 대부분의 일은 시나리오를 쓰고, 거기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저희 헤드로부터 전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조카딸을 보살펴줘서 고맙다’는 전언입니다.)

한규호는 헤드가, 조카딸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이해했다.

(그리고, 미스터 라미레즈에게 기회를 주실 수 있는지 여쭈어 보라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라미레즈의 등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에 대해서 알고 있나?”

한규호가 물었다.

(저는 그저 말을 전할 뿐입니다. 미스터 라미레즈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우리 측에서 미스터 한에게 커다란 빚을 하나 지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다는 전언입니다.) 한규호는 엘 오로를 바라보았다. 수트에 가려져 있지만 그의 몸이 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미국의 채권은 신뢰도가 낮은데. 더군다나 말뿐인 채권이라면.”

한규호는 일부러 미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렇습니까? 안타깝습니다만 미스터 한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처음으로 라미레즈의 얼굴에 당혹감이 드러났다.

(혹시나 필요한 것이 있으시거나 접촉을 원하시면 담당자에게 말씀하시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담당은 트레이시를 말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언제든 방문을 원하시면 저희 측에서는 최고의 예우로 맞이하겠다는 말씀도 전하셨습니다.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흠.”

한규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방금 미국에게 버림받은 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라미레즈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좌절감이 섞여 있었다.

한규호는 그에게 다가갔다.

“안타깝게 됐군.”

그리고 총구를 그에게 겨누었다.

MISSION 03 : La Mancha Negra <完>.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69. 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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