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21화 (122/386)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68) >

10일차

Arenera MINATACA 채석장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RPG가 보였다는 보고를 받고 도밍게즈는 곧바로 병력을 뒤로 물렸다. 채석장으로 돌입하던 APC들이 그 명령에 따라 빠르게 뒤로 철수했다.

병력을 철수시킨 도밍게즈는 다시 한 번 본부에 화력지원을 요청했다. 4.2인치 박격포 고폭탄 효력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변함없었다. 박격포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RPG가 있단 말입니다!”

도밍게즈가 무전기를 잡고 소리쳤다.

(확인된 건가? 보고만 받은 거 아닌가? 잘못 볼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소령 속단하지 말게. 지금 온 나라의 관심이 거기에 쏠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사령부 참모장인 준장이 그렇게 말했다.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럼 이대로 계속 대치합니까? 아니면 RPG를 확인할 수 있도록 APC를 다시 전진시키란 말입니까? 4.2인치가 안되면 여기 있는 81mm라도 쏠 수 있게 해달란 말입니다!”

도밍게즈가 다시 소리쳤다.

(박격포는 절대로 안 돼. 거기 지금 카메라가 몇 대나 있는 줄 알아? 민간인에게 박격포를 쏘면 그 장면이 앞으로 10년은 계속 방송을 탈거야. 절대로 안 돼!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지는 현장 지휘관인 귀관이 결정할 부분이지. 잊지 말게. 작전에 대한 모든 책임은 현장

에 있는 귀관이.....)

“야 이 개새끼야!!”

도밍게즈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뭐? 지... 지금 뭐라고 했나?)

“개새끼라고 했다. 이 씨발놈아! APC 몰고 갔다가 RPG 맞아 애들 다 불타 죽으면 그때 박격포 쏴줄 거냐? 병사들 돌격시켰다가 IED 밟고 시체도 못 찾도록 가루가 되면 그때 화력 지원해줄 거냐고! 어디 다시 씨불여 봐! 평소 하던 것처럼 책상에 앉아서 입으로만 씨불

여 보라고 이 개 같은 새끼야!”

(너... 도밍게즈. 이 새끼가. 지금. 그 말 책임 질 수 있나?)

“책임? 책임? 그래. 내가 책임진다. 너도 책임질 준비해 씨발놈아!”

도밍게즈는 그렇게 말하고 본부와 연결된 무전기를 바닥에 던지며 소리쳤다.

“대위!”

“네!”

대위가 짧게 답했다.

“60mm, 81mm 방열하고, 바로 고폭탄 쏴버려!”

“네!”

대위가 대답하고는 무전기를 얼굴에 대며 뛰어 나갔다.

도밍게즈의 부대는 특수부대였기에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특임병과 위주의 편제였지만, 그렇다고 박격포반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포를 쏘아도 된다는 허가였고, 도밍게즈는 그 스스로가 허가를 내린 것이다.

도밍게즈는 그의 옆에 서 있던 다른 대위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같은 5방위군 소속이지만 직속은 아니었기에 평소에 도밍게즈의 지시를 받지 않는 부하였다.

“당장 가서 부대 내에 있는 박격포탄 싸그리 다 가져와! 다른 가용 포반 있으면 전부 다 데려오고!”

도밍게즈의 명령을 받은 대위는 아무 말 없이 경례를 붙이고는 바로 몸을 돌려 나갔다. 그는 도밍게즈가 왜 저러는지 알 수 있었다. 병사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

더블 티는 건물 2층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항상 들고 다니는 군주론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옥상에서 RPG를 들고 있던 까바예로가 저격으로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도, 그의 눈은 여전히 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전쟁. 더블 티의 궁극적인 목적은 혁명이었다. 민중을 기반으로 하는 혁명이 그의 최종 목표였다.

티노 토르이던 시절, 선거로, 민주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교체하고, 베네수엘라 국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던 시절의 순진함 때문에 그는 가족을 잃었다.

더블 티가 된 그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혁명. 민중을 통한 혁명. 그 방법뿐이었다. 프랑스 대혁명도, 볼셰비키 혁명도 전부 민중의 힘으로 이루어냈다. 민중의 힘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다.

더블 티는 혁명을 일으키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어둠의 길을 택했다. 정치인으로, 합법적으로 입지를 다지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쉽고 효과적이었으니까. 범죄조직을 만들고, 세력을 확장했다. 공포와 카리스마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푸에르토의 죽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까티아 농장에 대한 압수수색은 너무도 전격적이었다.

더블 티는 숨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평상시처럼 비정기적으로 거처를 옮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단 이틀 사이에 까티아 농장이 털리고, 그는 인신매매 집단의 수괴로 전국방송에 발표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올린 민심이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단번에 흩어져 버렸다.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민중의 지지가 이처럼 빠르게 그에게 등을 돌릴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공포와 카리스마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생각했는데, 결국 공포 뿐이었던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더블 티는 답을 찾기 위해 책을 폈다.

이곳 채석장은 더블 티가 향후 있을 혁명을 대비해 마련해 놓은 화약고였다. 그가 몰래 사들인 무기가 채석장 이곳저곳에 차곡차곡 보관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가 밟고 있는 땅이 단단해졌다는 확신이 드는 그날, 그의 민중들은, 그의 백성들은 이곳에서 그가 준비한 무기를 가지고, 새로운 베네수엘라를 만들기 위한 혁명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RPG를 발견했기 때문인지 다가오던 장갑차들이 뒤로 물러났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그러나 더블 티는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민중을 통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순수한 마음과 열정만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티노 토르이던 시절 배웠다. 그래서 그 이름을 버린 그날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민중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다가가 손을 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총을 겨누고, 배를 가르고, 시체를 걸어 놓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자신이 공포의 대명사가 되어가는 것을 더블 티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군주는 자기네 백성을 단결시키고 충성을 지키게 하려면 잔인하다는 악평쯤은 개의치 말아야 한다. 자애심이 너무 깊어서 혼란 상태를 초래하여 급기야 시민들을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군주에 비하면 소수의 몇몇을 시범적으로 처벌하여 질서를 바로잡는 잔인한 군

주가 훨씬 인자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군주론에 적혀 있는 이 문장을 그는 성경처럼 외우고 있었다. 그가 민중에게 줘야 하는 것은 바로 선 베네수엘라다. 지금 그 가난한 손에 빵을 쥐어주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는 그들의 손에 빵 대신 총을 쥐어 줄 생각이었고, 총을 쥐어주기 위해

그들의 눈물을 외면했다.

본보기를 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7살 아이라 해도!

퓌웅~

총 소리가 잦아들고 찾아온 잠깐의 고요함이 새롭게 들려오는 이질적인 소리에 깨졌다.

까바예로 중 한명이 급하게 2층으로 뛰어 들어오며 적들이 박격포 사격을 시작했다고 외쳤다.

더블 티는 여전히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는 오늘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전혀 두렵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궁금할 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위험합니다! 피해야 합니다!”

까바예로 중 한명이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그의 몸에 손을 댔다. 감히 그의 옥체에 손을 댔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위험합니다!”

위험하다. 더블 티도 알고 있었다. 이 채석장에 보관된 폭발물은 혁명을 치르기에는 부족했지만, 채석장을 날려버리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정신 차리십쇼! 지금 이딴 책을 볼 때가 아닙니다! 빨리 몸을 피해야 합니다!”

이름이 뭐더라? 아주 오래전부터 그를 따랐던, 더블 티가 초기에 거두었던 까바예로 중 한명이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콰콰쾅

조준을 재조정했는지 박격포탄의 폭음이 가깝게 들렸다. 건물 지하에, 정확히 말하면 건물 지하에서 연결된 TNT 보관 장소는 박격포탄을 견뎌낼 수 있을까?

콰콰콰쾅

건물에 맞았는지, 폭음과 함께 건물이 세차게 흔들렸다.

“이런 씨발.”

까바예로는 자신을 바라보는 보스를 두고 급하게 1층으로 뛰어갔다.

더블 티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로마인들은 전쟁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았으며 전쟁을 회피하는 것은 적을 이롭게 만드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로마인들이 전쟁을 회피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들이 유리할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군주론의 또 다른 구절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 계집아이가 문제였던 건가.”

더블 티가 중얼거렸다.

며칠 전 납치해온 7살 계집아이. 이름도 모르는, 더블 티에게는 하등 가치 없는 계집아이가 떠올랐다.

“이 더블 티의 목숨 값이, 고작 계집아이 목숨 값과 같았던 것인가?”

더블 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엄청난 폭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람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가 그를 덮쳤다.

***

10일차

Arenera MINATACA 채석장 서쪽 1.6km 야산 중턱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한규호는 자신이 쏜 두 번째 총알이 RPG-7 사수의 머리를 관통하는 것을 보았다. 일종의 도박이었는데, 운 좋게 두 번째 총알이 사수를 맞힌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보이는 방위군의 움직임에서 한규호는 방위군이 RPG-7을 확인했음을 알았다.

다행이군.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편한 자세를 잡았다. 방위군이 RPG의 사거리 바깥까지 물러나고 나면 조금 전 돌입 대신 다른 전술을 택할 것이다.

참호전이자 포위섬멸전이자, 시가전의 성격을 모두 띠고 있는 이번 전투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곡사화기로 적을, 진지를 초토화시키는 방법이다. 일단 포탄을 쏟아 붓고 나중에 청소를 하는 방식이다.

한규호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저격수의 몸을 뒤져 담배를 찾아냈다.

“저격수가 흡연이라니. 기본이 안 되어있군.”

한규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한 모금 깊게 들이마셨다.

한규호가 담배를 피울 동안 채석장의 상황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뒤로 물러난 방위군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채석장의 조직원들도 나올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뚜궁

한규호가 세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 대포보다는 작고, 총보다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규호의 시선에, 호를 그리며 날아가는 포탄이 보였다. 조준을 위한 초탄이 채석장 건물 뒤쪽으로 떨어져 폭발했다.

소리와 폭발범위 등으로 지금 발사된 박격포 탄이 81mm임을 알 수 있었다. 한규호도 81mm를 다룬 적이 있다. 그가 군인이던 시절, 남과 북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무기를 전부 다뤄야만 했다.  81mm 똥포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탄이 발사된 후, 여러 대의 박격포에서 동시 효력사가 발사되었다.

장약이 터지는 뚜궁 소리 다음에, 포탄이 공기를 가르는 휘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과과광

포탄이 명중한 건물 귀퉁이가 무너져 내렸다.

“끝났군.”

한규호는 손가락으로 담배를 비벼 끈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범죄조직이 군사 조직 흉내를 내도, 군대와 맞서 싸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국가의 무력을 담당하는 군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민간조직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었다.

아무리 나라가 어려워도 군대는 군대였다.

군대를 상대하려면 군대가 필요하다. 아니면 한규호처럼 이능을 가졌다거나.

한규호는 땅에 쓰러진 남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어깨 위에 들쳐 멨다. 도밍게즈가 이 남자를 필요로 할지 말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도움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런 그의 등 뒤로 박격포탄에 의해 유폭된 TNT가 내뿜는 에너지가 미약하게 느껴졌다.

한규호는 잠시 뒤를 돌아보고는 몸을 움직였다.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6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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